◈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4~35 설교 편집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4~35
◑‘서로 사랑’은 세상 구원의 기초
▲새 계명을 주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시고
(이것은 서로 죄를 씻어주는 것임을 앞서 #1507에서 설명했습니다.)
이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너무 유명한 구절이다.
다 아는 구절이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가장 쉽게 망각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한데...
▲과거 유대인의 표식이었던 안식일 법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법이 굉장히 중요한 법이었다.
심지어는 오늘날의 유대교도 마찬가지다.
안식일을 안 지키면, 단순히 법 하나 안 지킨 것이 아니라
내가 유대인 공동체 일원이라는 것을 포기하는...
자기 외적 행동으로 ‘나는 유대인이 아니요!’ 하는 그런 도전이요, 반항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안식일을 잘 지킴으로써 내가 유대인 공동체 일원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 안식일 법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것을 다 폐하셨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격노했던 것이다.
▲오늘날 크리스천의 표식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대 크리스천들에게는
<마치 유대교의 안식일 규례처럼>
내가 크리스천 공동체의 일원인 것을 밖으로 알리는
외적인 표지mark가 과연 무엇일까?
크리스천이
이 세상과 구별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유대인의 철두철미한 안식일 규례처럼)
사도 요한 그것을 너무나 명쾌하게 가르쳐 준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5
▲그래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사랑의 원리다.
사랑이 있을 때, 그 사랑으로
우리 믿는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향해서
‘아,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점이 세상과 다르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결정적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형제사랑이다.
요한복음 외에도, 요한일서, 마태복음, 고린도전서 등
다른 성경도 다 마찬가지다.
▲전도/선교의 기초는 ‘형제 사랑’
그런데 우리가 하는 ‘사랑’이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초라하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없지, 그러니까 나는 크리스천이야!’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끼리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 전도, 선교를 하면서 사는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기초부분에서 매우 흔들리고 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했는데,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서로 사랑 안 하면... 전도의 문이 닫히는 것이다.
많은 교회가,
세상에 나가서 복음 전도하는 열정을 가지자고 강조한다.
그것을 갖추고자 교회마다 피나게 노력한다.
그래서 교회마다 예배드리자 그러고,
나가서 전도하자, 선교하자 그러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진짜 매력인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나 무관심하고, 너무나 어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의 눈>을 가졌는가?
정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한다면
형제를 바라보는 그 눈이
<사랑의 눈>이어야 한다.
정말 주변의 믿는 형제들을 받아들여주고
그 사람들을 이해해 주고
좋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되는데
그런데 우리 눈이 안 그렇다.
내가 주변의 형제들을 정말 선한 눈으로 보는가?
볼 때도 있지만, 안 그럴 때도 있다.
그런데 안 그럴 때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가슴 아파 하지 않는다.
‘왜 내 눈이 이렇게 되었지?’
‘왜 내 마음이 이렇게 되었지?’
하며 뉘우치지 않는다.
그런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내 시선이, 내 마음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그렇게 오래 동안, 수 십 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문제다.
▲삼위일체의 모델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을 말씀하셨을 때
모델을 보여 주셨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델이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시고 서로 동역하시면서
우리를 그 세계로 초청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사역에 서로 동역하셨다.
구원사역에 있어서 동역의 모범을 잘 보여주셨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받아 서로 사랑한다면
정말 이웃의 교회, 성도들과 동역해야 한다.
세상의 구원사역을 위해서 동역해야 한다. 우리도!
▲불가항력적인 은혜
삼위일체 세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구원을 위해서 동역하시면서
우리들을 그 분의 사랑의 세계로 쫙 빨아들이신다.
즉, ‘사랑’을 의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칼빈은 <거부할 수 없는 은혜>로 말한 것 같다.
하나님은 그 은혜로 우리를 이끄시사,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 구절을 암송해 보자.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게 될 것이다.
선교와 전도의 가장 큰 무기는
우리끼리 사로 사랑하며 동역하는 것이다.
믿는 사람들끼리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동역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될 것이다.
▲등한시되었던 진리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고도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그러나 너무 우리가 등한시 했던 성경의 원리라 생각한다.
우리 공동체에 이런 사랑이 있기를 너무 너무 바란다.
<이상 08.08.14. 인터넷설교에서 발췌
◑ ‘서로 사랑’은 나의 구원의 기초 <이하 08.02.03. 인터넷설교에서 발췌
▲원수까지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본문에서 사랑하되, 어느 정도 사랑하라는 것인지
그 기준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이 곧 예수님을 배신하고 부인하고 도망갈 것을 다 아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도 다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배신자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기준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어렵습니까?
말씀을 듣고 가슴이 답답하신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다 용서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일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①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②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3:14-15,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많은 성도들이 [믿기만 하면] 사랑이 없어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정말 믿으면 반드시 원수도 사랑하는 자가 됩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내가 예수님을 믿었지만, 원수도 사랑하게 되지는 않던대요?”
그러면 그는 예수님을 진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정말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십자가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도 십자가를 분명히 통과한 사람이 아니면
형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원수도, 배신자조차도 용서하는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아니면 원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가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롬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고후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용서와 사랑은 내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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