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31장 (전반부) 북이스라엘의 회복
◈렘31장 (전반부) 북이스라엘의 회복 렘31:1~22 여러 설교 정리
<31장의 내용 구조>
북이스라엘의 회복(1-22절),
남유다의 회복(23-30절),
진정한 회복과 새 언약(31-40절)
예레미야 31장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31장에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31:31
오늘 본문은 새 언약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전, 31장 전반부 1~22절입니다.
전반부는 ‘북이스라엘의 회복’에 초점이 있습니다.
*후반부 23~30절은 ‘남유다의 회복’
27장에는 바벨론 포로로부터 속히 돌아올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에 현혹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가 있었고,
28장에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2년 안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거짓 예언과
거짓 예언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선포가 있었습니다.
29장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과 달리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70년이 차서 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참 예언보다 거짓 예언을 더 믿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시기가 몇 년이 아니라 몇 십 년도 부족해 70년이라고 하니
포로로 끌려간 세대 사람들에게는 다시 본향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절망적인 예언이었습니다.
하지만 30~33장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마치 '파괴 후의 건설'과 같죠.
비록 70년이 긴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 파괴, 건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당하여 영원히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마땅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 대한 연민과 자비가 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개망나니 같은 자식이라도 그 자식에 대한 미련을 어찌 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너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는다’ 31:20 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1장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 있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절별 해석, 본문 내용 파악하기
▲3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30:22의 약속이 다시금 반복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은 30:1-24의 내용을 결론짓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소 복잡한 구성을 보이는 31장의 제목으로서 쓰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회복의 때입니다. 31:13, 31:29, 32:2, 32:16, 33:15
본문에서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이 회복은,
1차적으로 바벨론 포로 귀환을, 영적으로 '신약 그리스도 복음의 영원한 회복'을 뜻합니다.
“그 때에”는 쓰러짐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을 추고(4절),
포도나무의 열매를 따고(5절),
시온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나아갈 것입니다(6절).
처녀 이스라엘이 다시 세움을 입을 것이라는 의미는 이스라엘이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며
그로 인해 즐거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땀을 흘려 심어도 그 소출을 수확할 수 없고,
수확을 하더라도 강한 자들에게 빼앗기지만
하나님께서 비와 햇빛을 적당히 주시고 외세를 막아주시면 열매를 기쁨으로 거둘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언제 외세의 공격을 받지 몰라 마음 편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파수꾼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에서 편히 예배드리라고 외칠 때가 올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이 말씀은 신구약을 관통해서 반복되어 나오는, '성경 전체의 주제'와 같은 말씀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천국에 데려가서 영원히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3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이스라엘이 자기의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에 : 새번역)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은혜를 얻었나니'
본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당시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오던 사건으로 소급되고 있으며
특히 바로 군대가 홍해까지 뒤쫓아온 위급한 상화에서 구출된 것을 말합니다(출 14:5-23).
또한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은혜로 생존할 수 있었음도 뜻하죠.
그와 같이,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곧 내가 이스라엘로...갈 때에라’
그 의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하였으며
자기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을 향해 나아가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결국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는, 새로운 광야에서의 방황 상태로 묘사되고 있죠(호 2:14).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옛적에'라고 번역된 '메라호크'는 시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공간적 의미에서 '멀리 떨어진'이란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죠. 후자의 의미를 취할 경우,
이스라엘이 시온을 떠나 이방 포로지 멀리에 있는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음을 의미하죠.
또한 본절에는 언약과 관련된 두 개의 중요한 낱말인 '사랑'과 '인자함'이란 말이 쓰이고 있죠.
특히 '인자함'은 '헤세드'인데, 구약에서 245회나 나타나고 있으며,
대부분 언약과 관련된 상황에서 쓰입니다. ‘언약적 사랑’
70년 포로생활을 보냈으나, 그들을 회복시키시는 것은 '헤세드- 언약적 사랑'때문입니다.
'언약적 사랑이란', 한 번 사랑하기로 맹세했으면, 그 후로 절대 변치 않는다는 뜻.
▲31: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여기에는 예레미야의 소명 때 등장하였던 '건설하고' 말이 또 쓰이고 있습니다(1:10). *바나
위 4절에 나타난 '세우리니'죠. *바나
진정한 세움은, 무너뜨림(포로 70년의 징계) 후에 나타납니다.
2-6절이 북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지라고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혹은 전체 이스라엘
다른 곳에서 흔히 ‘처녀 시온’이란 말로서 등장하는 것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4절의 '처녀 이스라엘아'란 어구를 대단히 강조해서 설명합니다.
이는 5, 6절에 언급되고 있는 사마리아와 에브라임이란 말에 의해 더욱 강조됩니다.
물론 본장에는 메시지의 대상이 북이스라엘과(1-22절) 남유다(23-26절)로
비교적 뚜렷이 구분되어 있죠. 그러나 6절의 '시온'이란 말이 분단된 민족적 현실에서
통일 시대, 더 나아가 메시야 시대를 예견하는 예언에서 주로 사용되었음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사 2:3, 미 4:2).
▲31: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이제 회복될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 다시금 돌아가
자신의 경작한 수확물을 일상 용도로 사용하며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아울러 여기서는 대적들에 의해 포도원이 훼파되는 불행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약속도
엿볼 수 있습니다(사 62:8, 9, 65:21-23).
▲31: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나아가자'
여로보암이 다윗 왕조에 반발하여 북쪽 왕국을 건설했을 때
그는 북쪽의 벧엘과 단에 예루살렘에 필적할 만한 종교 중심지를 건설하였죠.
그러나 이스라엘이 새로이 회복될 그때가 되면
옛 북쪽 왕국의 사람들도 시온으로 모여들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본절은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로 인한 감격과 기쁨을 여러 동사로써 강조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런 기쁨과 환호의 외침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죠(사12:6, 14:7, 54:1등).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과거 조롱거리의 대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러 민족들 앞에서 스스로 자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파멸에서 속량하신 후에,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시103:4
▲31:8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바벨론을 가리키죠.
여호와께서는 지상의 모든 지역에서부터 자기 백성을 모으실 것입니다.
특히 '소경과...해산하는 여인'등과 같이 장거리 여행에 큰 부담이 되는 자들까지도
이 행렬에 끼게 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권능이 함께하시기 때문이죠.
이렇듯 하나님의 회복은 놀랍습니다.
그래서 9절에는 본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릴 것이고,
하나님께서 목마르지 않고 물이 있는 평탄한 길로 인도하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회복의 손길을 느낄 것이고
이에 감사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31:9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 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이는 상당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면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죠.
신32:6에서 '아버지'란 말은 이스라엘과 여호와 사이의 밀접한 유대 관계를 묘사하는데 쓰였죠.
예레미야도 이 말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31: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본절의 단어와 어구들은, 이사야서 후반부(40~66장)의 주제를 강하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사 40:11과 비교해보면,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신약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사회에서 소외되어 몸은 같은 영역에서 살아가지만
그의 마음이 '땅 끝'에 머물러 있는 사람,
사회에서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로서 변방에 흩어져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고 가치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그 사람(죄인)들을 모으셔서, 구원의 위로와 기쁨을 주십니다.
▲31: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 redeemed (히. 파다) 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 ransomed (히. 가엘) 하셨으니
'구원하다'로 번역된 '파다' 역시 이사야서 후반부를 특징지워주는 말입니다.
'속량하다'로 번역된 '고엘'과 더불어 이 말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람이나 재산과 관련되어 흔히 사용되었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서 자기 토지나 재산을 팔지 않으면 안 될 때
그의 가까운 친척은 그것을 구입하고, 그에게 돌려줄 때, 그게 바로 속량이었죠.(레 25:25).
하나님이 무조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게 아니라, '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속량을 암시합니다.
▲31: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이곳에 언급되어 있는 곡식이나 포도주 등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생산되었던
주요 산물들이고, 회복의 증거입니다(호 2:5, 8).
'물댄 동산 같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다는 의미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즐거움과 기쁨으로 노래하게 될 것이며
항상 기도하고 또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는 사람들은 예배가 회복되고, 경제적 어려움에서 회복되고,
심적인 고통에서 회복된다는 의미입니다.
회복되어 예배가 온전히 드려지면, 마음에 근심은 사라지고 물 댄 동산같이 평안해 집니다.
▲31: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슬픔과 눈물은 이제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그들에게 위로를 주실 것이고
슬픔 대신에 즐거움을 베푸실 것입니다.
▲31: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케하며'
'기름'은 양이나 소의 가장 맛있는 부위입니다. 최고 등급의 고기이죠.
사실 오늘날 양고기를 먹을 때도, '기름' 부분이 제일 맛있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제단에 바치게 될 제물에 의해, 제사장들이 받게 될 몫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제물의 가장 좋은 부위를 받게 된다... 즉 제사장도 회복된다는 뜻이죠.
여호와 신앙과 예배가 새롭게 회복되는데, 백성들이 성전에 가져오게 될 희생물 중에서
제사장들은 그들에게 할당된 것을 넉넉히 가지게 될 것입니다.
▲31: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본절로부터는 북이스라엘의 귀환을 선포하고 있는데,
이들은 B.C. 722년에 포로로 잡혀갔었죠.
그리고 본절의 라헬은 북이스라엘의 주도적인 지파였던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선조로서 언급되고 있죠. 이들 지파는 북쪽 이스라엘 영토 중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죠.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들로서, 라헬이 낳음
'라마'는 예루살렘 북쪽 약 8km 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삼상10:2, 3에 따르면 라헬의 무덤이 이 근처에 있었죠.
한편 라헬이 자기 자녀로 인해 통곡한다는 내용은 마2:16-18에서
헤롯이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살해시킨 사건에 인용되었습니다.
2절에서 출애굽과 광야시절의 역사를 상기시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이스라엘을 회복으로 인도할 것을 말씀하는 것처럼
15절부터는 라헬(북이스라엘)의 슬픈 역사를 상기시키며, 북이스라엘도 회복된다는 거죠.
‘라마’는 라헬이 자식 때문에 슬퍼 울었던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슬픔의 처지가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6절에서 울고 있는 라헬에게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하나님께서 위로를 못해주실망정 왜 울지 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제 포로에서 돌아올 것이니, 울 필요가 없게 된다는 거죠.
▲31: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17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결국 15절은 본문에 언급된 소망의 메시지를, 보다 극적으로 전달함과 아울러,
하나님이 심판을 통해 공의를 깨닫게 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위로를 베푸신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16절 하반절에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은 이제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 대가,
위로가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는 것이죠.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귀환을 의미합니다. 어떤 위로의 말보다 더 큰 위로의 선물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때에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31: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이것은 에브라임이 뉘우치며 내뱉는 통한의 부르짖음입니다.
에브라임은 포로에서의 고난을 통해 겸손해지고 낮아졌습니다.
따라서 이제 에브라임의 귀환이 허용될 때, 그들은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예언이죠.
18절과 20절에 나오는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자 라헬의 손자입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던 지파입니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멍에에 서투른 송아지 같은 자신을 징벌하셨다'고 고백합니다.
▲31:19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 thigh 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과거의 죄와 어리석음, 그리고 우상 숭배를 부끄럽게 여기고
회심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에 있어 자신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이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 thigh 를 쳤사오니'
'볼기'는 한국어로 '엉덩이'를 뜻합니다.
그래서 한글성경은 대부분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는 식으로 의역했습니다. 자책했다는 거죠.
원어는 '정강이 thigh' 나 '허리 아래 부분'을 뜻합니다. 엉덩이는 아닌 듯 합니다.
에브라임은 자신의 못남을 책망할 정도로 자기 성찰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있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마다
하나님은 마치 라헬이 라마,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자식 잃은 어머니처럼
저 멀리서 아들이 돌아오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슬피 우십니다.
그런데 개망나니 같은 자식이, 인생의 고난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과거사를 부끄럽다고까지 고백하니 그 얼마나 감동이겠습니까?
우리 역시 하나님께 이런 고백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자식이 아니냐' (나의 사랑하는 자식이다.. 라는 뜻)
회개의 부르짖음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은 에브라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하나님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위로의 말로써 주어졌습니다.
이 구절의 사상은 호 11:1-4, 8, 9의 내용을 상기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인내할 것을 권면하면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자녀들에게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인해 연단받은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죠(히 12:11).
21절부터 22절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잘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정표와 푯말을 세우고 돌아오는 길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이정표와 푯말을 세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십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하루하루 걸어가다 보면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복된 미래를 맞이할 것입니다.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이정표, 푯말'은 모두 쌓아올린 돌무더기를 뜻합니다.
이러한 돌무더기들은 광야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분명하게 지시하는 역할을 하였죠.
바벨론으로 가는 길에 이처럼 길표를 만들어 둠으로써, 그것을 보고 다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랜 포로 생활로 인해 실의와 좌절에 빠진 자들에게, 귀환의 확신을 심어주는 메시지였죠.
사람이 사는 곳에는 도시나 마을의 지명이 있고, 그곳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도로나 시설물을 따라서 주소가 정해져 있고 그곳을 정확히 찾을 수 있도록
위치와 거리를 알려 주는 이정표를 만들어 둡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자동차에 도로와 위치를 정확하게 안내해 주는 장치(navigation)가 있어서
초행길을 운전하는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찾아가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처녀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정표(돌무더기)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받은 특권과 함께 그들이 지켜야 될 마땅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후손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렘18:15).
▲31:22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리라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이는 본서 전체에서도 가장 난해한 구절에 속하며, 해석도 여러가지죠.
1)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것임
2) '처녀 이스라엘'이 주께 돌아올 것을 가리킴
3) 전쟁시에 여인들이 대적들을 무찔러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이 평화와 안정을
구가하게 되리라는 뜻
4) 이제까지는 주께서 이스라엘(여인)을 사랑으로 안으셨으나,
새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것이라는 의미
5) 이스라엘이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이방 열국들을 제압하게 된다는 의미
이러한 여러 견해들 중 어느 하나를 단정적으로 선택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우리는 본절 내용이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새 일'이 하는 점에 근거하여,
믿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역사를 가리킨다는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적용
20181028주일-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예레미야31장10~40 (정리)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렘31장은
예레미야서 전체에서 가장 밝은 본문이며, 가장 따뜻한 본문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레미야서의 하이라이트 본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회복시키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실은 본문 렘31장에 가득하게 담겨 있습니다.
심판과 징계와 저주를 선포하시던 그 한복판에서 *렘1~29장
렘30장부터 회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회복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이 누림에 대한 말씀까지 하시면서
사실은 가장 밝고, 우리를 향한 가장 소망이 넘치는 본문이, 예레미야서에서 31장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회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하나님은 렘30장부터 쭉 이야기를 하시는데,
렘30장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신다고 하는 그 회복이 무엇인가 하면,
첫 번째는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던 북방 바벨론 강력한 나라,
그리고 3세대가 지나가야 돌아올 수 있는, *70년
내 자식도 돌아가지 못하고, 내 손자 대가 되어야 겨우 돌아가게 될 그 땅에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있어야 될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그들의 마음이 돌아가는 것, 즉 마음의 회복,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회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결코 꺾을 수도 없고, 풀 수도 없었던 멍에와 결박을
하나님께서 꺾으시고 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옭아매고 있었던 강력한 문제인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
'그것이 회복이다'라고 말씀드렸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이 자유와 은혜를 가지고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섬기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회복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인생의 가장 축복된 곳으로
우리가 돌아가며,
젖과 꿀이 흐르는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문제가 건강 문제든, 상처든, 경제적 문제든, 어떤 문제든지 간에
그것을 하나님께서 꺾어주셔서,
이제 그 자유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회복이죠. *키 워드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볼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런 회복은,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나?'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빛나고 따뜻한 회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누려지고, 가능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말씀하신 70년이 지나기만 하면, 시간만 버티면,
그저 우리는 회복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70년 지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때에,
그냥 하나님은 자동적으로 그때에 순식간에 우리 상황을 바꾸셔서
이런 일(회복)들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은, 우리가 어떻게 누리게 되는가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먼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아름다운 회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주심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1:18~19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방금 읽었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한번 살펴봐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를 주신다 라는 것인데,
여러분, 우리는 보통 어떻게 생각하냐면,
'내 인생이 변화되고 회복되는 이유는.. 내가 회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착각하고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회개를 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회복을 해주셨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받은 회복은, 내가 한 회개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런 말도 맞죠.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 회개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위 18절에 보니까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이렇게 말씀해요.
그러면 회개는, 징벌 받으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 내가 돌이켜야 되겠다. 매를 맞아 보니까 내가 돌이켜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되는
징벌 때문에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까? No
19절에 보면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다' 이렇게 말씀하듯이
그러니까 스스로 내 마음이 갑자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러니까 회개는 그렇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No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회개를 했든지,
혹은 징벌을 통해서 맞고 돌이켜서 하나님께 회개를 했든지,
'우리가 회개를 하면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신다'고 착각합니다.
(그런 말도 맞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를 주셔야지, 우리가 회개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18b절을 한번 보십시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Bring me back that I may be restored / NASB
'(하나님이여)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성경은 일관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회개를 하거나 징벌을 받아서 회개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회개의 은총을 주시면, 그래서 우리가 돌아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칼빈주의적 관점이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 용서, 그래서 구원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들 뿐만 아니라,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용서, 구원 뿐만 아니라, 회개도 하나님이 주셔야지
그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행5:31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베드로가 설교 가운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죄사함도 주시지만, 뭐도 주신다는 거예요?
회개함도 주신다' 라고 말씀합니다.
행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위 구절은 명확하게, '하나님이 회개를 주신다'고 말씀하죠.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 중에 첫 번째는, 바로 회개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은총을 주셔야지,
그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빛나고 아름다운 회복,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를 주심으로써, 그 일을 행하신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31:18
▲2. 두 번째,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회개의 은총을 받아 회개하고 난 후에,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성령을 주십니다
렘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본문 렘31장에, '성령'이란 말이 안 나옵니다.
그러나 구약에 나오는 '새언약'의 병행구절인 에스겔 36:26에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렇게 '새 영' 곧 '성령'을 주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한일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죠. 요일2:20, 27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0, 27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복음과 진리를 깨달아 안다... 는 것입니다.
왜냐면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새 언약에 속한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식이 주어질 것이기에
그들은 아무에게도 여기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
렘31:34절에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이 말씀이 요일2:20, 27절과 매치되는 것입니다.
즉 새언약에 거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모두'
그래서 새언약에 속한 자들은,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경 말씀과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가르쳐 주십니다.
이 성령으로 인하여 사람은. 하나님을 더 알고, 사랑하고, 믿고,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법을 우리 마음 속에 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보내시는 성령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처음, 이집트에서 종노릇 하면서
죄의 권세 아래, 바로의 권세 아래,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던 그들을,
기적과 능력으로 애굽에서 끄집어내셔서
마치 신랑이 신부의 손을 잡고 신혼여행을 떠나듯이
광야를 지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과 맺어진 관계 속에서 지켜야 될 여러 가지 것들을 말씀하셨지만,
그들 자신도 그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그 법도 연약하여서, (아직 새언약의 신약복음이 아니어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드려야 될 삶을 온전히 드리지 못했습니다.
신랑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의 신랑된 하나님 앞에
우리는 마땅히 살아야 될 삶을 살지도 못했고,
그 신랑이 우리에게 준 그 법도,
우리를 그렇게 살아내도록 만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 자신도 연약하고, 내게 주어진 그 처음 받았던 (심비가 아니라)
돌비에 새겨졌던 그 계명도 약하여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지 못했다... 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언약 (신약의 복음)은 다릅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그들도, 새언약의 맛을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새언약의 회복은, 신약의 예수님이 가져오신 복음을 통해서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 새 언약은 이러하니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둔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돌비의 새겨서 너희에게 줬던 그 법은, 너희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너희를 회복시키지도 못하고, 너희를 나의 신부답게 살아가지도 못하게 만들었으나',
그래서 이제 '그 법을 바꾸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될 그 법은 같지만,
그리고 그 법을 지켜낼 대상인 우리를 갈아치우고서,
다른 대상에게 그렇게 하시지 않고...
그럼 바꾸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다가 이제 그 법을 우리 심비에 새겨서,
우리가 그 뜻대로, 그 법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을 우리 속에 주신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아니라, 율법을 만드신 그분 자체가, 성령으로 우리 속에 들어오신다는 거죠.
우리가 어떻게 회복되느냐?
회개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고,
마음이 회개로 말미암아 깨끗해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뭘 주신다는 거예요?
그 속에, 성령을 우리 속에 주셔서,
율법이 아니라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하셔서
결국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 라는 이 놀라운 말씀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럼 우리가 한 가지 더 살펴봐야 될 것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회복되는가요?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좀 독특한 표현이 나오는데, 33절을 다시 한번 보시면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라고 말하기 전에
'그러나 그날 후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이 우리에게 회개를 주시고
-회개한 우리 심령 가운데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회복하시는데,
근데 이것은 '그러나 그날 후에' 그렇게 하신대요.
그 무엇인가 먼저 선행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1) '그 날 후'는 역사적으로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그날 후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언은 언제나
-역사적인 방면에서도 이루어지지만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적인 예언이 있고,
그 영적인 의미가 진짜 이루어진 때도 있죠.
2) 그래서 '그 날 후'가 영적으로 성취된 구절이 마2:17~18절입니다. *렘31:15참조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지금 마2장에서는,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범죄하여서 바벨론에 끌려간 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범죄하여 영적인 바벨론(마귀)에 끌려간 것을 똑같이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사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 하셨을 때에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다가, 베들레헴 인근 유아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죠.
그래서 큰 통곡이 일어나요.
그 이후에 고레스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려보내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난 이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이 말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면
예수님이 가져오실 '영적인 해방'에 대해서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우리가 진짜 회복되는 이유는,
우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회복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날'은 언제일까요? 31:33
하나님께서 자신의 전부이신 아들을 십자가로 보내신 그날,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전부인 물과 피, 생명을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날,
즉 십자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회복되었는가요?
우리를 사랑하신 그 아버지가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전부이신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심으로써,
그리고 그 아들은, 자신의 신부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마지막 한 방울 물과 피까지 십자가에서 다 쏟으셔서
생명을 주신 주심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회복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렘31장은, 영적으로, 신약적으로 해석할 때, 바로 그 '회복'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회복되는가요?
본문 렘31장은 너무나도 밝고, 너무나도 따스하게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시네' 라고 우리를 찬양하게 만들고,
기쁨 가운데 있게 만들지만,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본문을 살피면서, 우리가 회복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감추신 듯 하지만 드러내시는데,
즉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고,
자신의 전부인 아들을 주셨고,
그 후에 우리에게 회개를 주셨고,
그 후에 우리 속에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회복되고 누리게 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렘30장부터 시작되는 본문들을 쭉 한번 읽어보십시오
그 본문은 하나님의 아픔이라고는 하나도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회복이라는 찬양소리만 넘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이 본문을 살피면서
우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는 거져받은 구원이며
우리는 거져받은 회복 같지만,
그러나 그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는가가
오늘 본문 말씀에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31: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 redeemed 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 ransomed 하셨으니
'구원하다'로 번역된 '파다'과 더불어
'속량하다'로 번역된 '가엘'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람이나 재산과 관련되어 흔히 사용되었죠.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서 자기 토지나 재산을 팔지 않으면 안 될 때
그의 가까운 친척은 그것을 구입하고, 그에게 돌려줄 때, 그게 바로 구속, 속량이었죠.(레 25:25).
하나님이 무조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게 아니라, '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속량을 암시합니다.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밝은 본문(31장) 가운데서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운 회복을 주시기 위하여
가장 어두워지셨고 가장 아파하셨던 자신의 어떠한 대가 지불을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참 은혜를 받았던 게 <응답하라 1988>의 12화입니다.
그 12화의 제목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데,
거기에 아주 주옥같은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얘기해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거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고 싶은 넉넉함이 아니라,
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 인거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이야기할 때,
하나님이 넉넉하셔서 우리에게 주고 싶으셔서 뭔가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기에,
우리가 절벽 가운데, 죽음이 임박한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전부신 아들을 대신 줄 수밖에 없는 절박함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거예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 남아 돌아서가 아니라, 피가 차고 넘쳐서가 아니라,
신랑되신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의 품에 안긴 창녀 같은 우리를,
그래도 여전히 신부로 받아주시기 위하여서,
아버지께서 보내신 그 십자가에서
'넉넉함으로가 아니라, 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으로' *연속극 대사
자신의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회복되느냐?
자신의 전부를 주신 그 하나님, 그리고 우리에게 회개를 주신 그 하나님,
그리고 이제 자신의 생명이신 영, 그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회복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빛난 회복으로 이끄시기 위해서, 당신 자신이 지불하신 대가,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살리신 내용이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부를 주셨다' 라는 것을 *구속, 속량, 값을 치르셔서
오늘 우리 마음 가운데 새기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의 전부인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아들 삼아 주신 겁니다.
예수는 자신의 전부인 생명을 주셔서,
처음 아담이 자신의 신부에게 고백했던 것처럼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해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너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그래서 그분은 모든 것을 쏟으셔서 우리를 그분의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이제 자신이 우리 속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더러웠던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만들어 주셨다 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받은 이 놀랍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이 밝은 회복을 위하여,
그분은 죽으셨고, 어두우셨고, 차가우셨고, 대가를 지불하셨다는 것을
내 마음에 새기면서,
그분의 사랑의 분량만큼 살아가기로 애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찬양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그 사랑'이라는 찬양을 함께 찬양하죠.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꺽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진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사랑
죽음도 생명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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