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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1장 (후반부) 새 언약의 약속

LNCK 2025. 1. 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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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의 약속       렘31:31~34, 히8:7~13      2009.11.01.

 

◑1. 주님께서 말씀하신 새 언약  (눅 22:19~20)

 

주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를 마치고 해방되던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 식사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먹은 후 포도주 잔을 나누어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특별한 밤에 제자들은 매우 특이한 말씀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은 “새 언약”이란 말이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새 언약이란 말을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렘 31:31~34; 32; 33:14~16)가 사용했고,

에스겔 선지자(겔 34:23~26; 36:25~27)도 예언한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선지자들의 예언과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하기에

오늘 이 부분을 함께 상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1절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했습니다.

33절에서는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언약은 출애굽 때 맺은 시내산 언약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32절).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시내산 언약과 다르다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2. 새 언약의 약속 안에는 네 가지 내용이 주어집니다.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 중생

 

첫째로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는 것입니다(33절).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실 때 돌비에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 언약은 돌비가 아니라 심비에 기록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3장에서 비교한 것과 같이

이 구절은 중생 곧 죄인의 마음 속에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화해 (하나님과 죄인의)

 

두번째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33절).

32절 옛 언약 하에서는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다”고 했는데,

이제 새 언약 하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일어나게 될 화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전격적인 화해의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3)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 성령의 기름부으시는 사역

 

셋째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입니다.

이것이 왜 '성령의 기름부으시는 사역'이 되는가요?

 

새 언약에 속한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식이 주어질 것이기에

그들은 아무에게도 여기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2:20, 27의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적인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확신을 의미합니다.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예배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지만, 확신에 속하는 것이고,

이 지식으로 인하여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한 것은 바로 이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탄식했을 때의 의미가 그것입니다(호 4:6).

그러나 새 언약의 백성들은 사랑과 신뢰와 복종을 가져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4)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 언약 백성의 속죄

 

넷째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34

 

이것은 새 언약의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것이

얼마나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인 시내산 언약은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속죄의 제사가 필요했을 뿐 아니라

양심을 깨끗하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새 언약은 그 백성들을 양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히 9:14)

영원히 온전케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히 10:14).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한 가지는 이 완전한 속죄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 곧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3. 새 언약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 (히8:7~13)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새 언약의 약속이 의미하는 바가 대략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더 중요한 단서를 히브리서를 통해서 얻게 됩니다.

 

히브리서는 바로 지금 우리가 상고한 이 구절들을 해석하는 열쇠를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7~13을 봅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거의 정확하게 예레미야의 새 언약의 약속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 첫 언약과 새 언약의 비교

 

히브리서 기자는 첫 언약인 시내산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함으로써

새 언약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첫 언약이 무슨 잘못이 있거나 그 내용이 그릇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던진 두번째 질문,

새 언약이 어떤 의미에서 옛 언약과 다르다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에서 뭔가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는 새로운 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 백성에게 한 새 마음을 주신 것이 다르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법의 거룩하고 의로운 요구들과 일치하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롬 7:22).

 

이것은 단지 지적인 이해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깊은 정서와 의지의 영역까지를 차지하여 하나의 성향(inclinations)이나

경향(tendencies)이 형성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참된 순종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곧 성령께서 죄인의 내면에서 행하시는 중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복종하게 하는

지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옛 언약인 시내산 언약은 순종을 보장할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과 옛 언약의 본질적 차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 언약은 결코 옛 언약의 갱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앞서 제가 제기한 이 새 언약의 약속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부분인

첫번째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새 언약의 약속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

혈통적 이스라엘인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 언약인 시내산 언약은 자연적이 것 즉,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에게 관련된 것이지만,

새 언약은 영적으로 얻어지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 이스라엘이 된 교회에게

주어지는 약속이었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외부적인 것으로 행위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새 언약은 내면적인 것 즉 마음에 속한 것입니다.

 

주님은 살인하지 말라(옛)는 것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며,(새)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옛), 여자를 보고 음욕도 품지 말라는 것이라고(새) 해석하셨습니다.

이처럼 새 언약은 내면의 마음에 관계된 법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옛 언약은 국가 이스라엘에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 개개인들에게 주어진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새 언약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시내산 언약은 온 땅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를 예기하는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질서로서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적이고 모형으로서의 시내산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 사명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쇠하여 없어지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입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히 8:13).”

 

2)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와 맺어진 은혜언약의 총체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새 언약의 약속을 해석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와 맺어진 은혜언약의 총체라는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범죄한 후 아담과 하와에게 간접적으로 주어진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

이라는 약속,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언약의 약속,

그리고 다윗에게 주어진 영원한 은혜언약의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 언약은 어느 미래의 천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루어질 남아있는 약속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10:16~17에서도 반복해서 히브리서 기자가 예레미야의 약속을 인용하는 이유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와 맺어진 은혜언약이라는 것입니다.

 

◑4.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으로 주어졌다   (히 9:15~17).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15~17이 독특하게 이 언약을 ‘유언’이라고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이 언약을 의미하는 구약의 히브리어 단어 ‘베리트’를 의미할 때,

헬라어 ‘신데케’라는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언을 의미하는 ‘디아데케’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신약성경만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주전 3세기의 서기관들도 언약을 번역할 때

그 자체로 언약을 의미하는 ‘신데케’ 대신

보통 유언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디아데케’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의도적인 번역입니다.

‘신데케’ 라는 말은 계약, 언약을 의미하지만,

이 말이 전달하는 강력한 뉘앙스는 ‘쌍무적’인 계약이란 점입니다.

두 동등한 당사자의 계약이란 점인데, 이것이 구약의 언약을 번역하기에는 부적절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언을 의미하는 ‘디아데케’를 선택했는가요?

이 단어가 비록 언약을 설명하는데 한계를 지니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본질적 성격을 드러내는데 더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유언은 결코 쌍방적 계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유언한 자의 의지이며, 유언한 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집행되는 법적 효력을 지니는 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언약의 성격이 무엇입니까?

범죄후 아담에게 주신 언약,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

다 은혜언약이었습니다. 그 성격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겠다, 내가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쪼개진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아무리 범죄해도 다윗의 언약은 깨어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죽으심으로 새 언약의 효력을 발생시키셨다.

 

이것이 히브리서 10:16의 의미입니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디아데케 라는 단어를 신약성경의 모든 곳에서 언약, 혹은 계약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10:16과 17절에서만 ‘유언’이라고 번역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분명하게 히브리서 기자가 유언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는

그 새 언약의 수혜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해하기 쉽게 유언의 수혜자가 되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2) 유언의 수혜자(beneficiary)

 

어떻게 유언의 수혜자가 됩니까?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죽으셨고 그 죽으심의 효력으로 유언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히 10:17), 이 말씀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로 첫 언약 때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15절 말씀의 의미입니다.

 

3) 유산 상속의 권리는 빼앗길 수 없다(롬 4:14,16).

 

그러므로 성경이 강조하는 단어 가운데, ‘기업’이라든지, ‘유업’ 혹은 ‘상속자’, ‘후사’와 같은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산 상속의 수혜자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 여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유언의 수혜자가 되는 것은 유언한 사람의 유언장의 내용에 따르는 것입니다.

유언한 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유언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 선행을 얼만큼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언장에 쓰여진 대로 법이 집행할 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유언의 수혜자들이

유산 상속의 권리를 빼앗길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4:14,16의 말씀의 뜻입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상속자)이면 믿음은 헛 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그러므로 후사(상속자)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이 유산, 생명보다 귀한 기업은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5. 새 언약의 백성들의 특징은 중생으로 얻어진 새 마음이다.

 

옛 언약으로 대표되는 시내산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라고 했습니다.

 

돌비가 아니라 우리의 심비에 기록하시겠다는 말씀은

중생,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 선한 성향을 창조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새 언약의 약속이 어디서 이루어졌습니까?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믿는 모든 자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그 마음 속에 주셔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렘 32:40).

 

이것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의 약속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으로써 이미 모든 믿는 자에게 빼앗길 수 없도록 주어진 유산인 것입니다.

 

중생, 거듭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는 중생은 없습니다.

 

거듭남은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게 만들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살고 싶은 성향을 우리 속에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믿는 자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알지 못하시는 분들은 그 확실한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를 맛보신 분들은 그 확실한 은혜 가운데 거하시기를 구하십시오.

이것이 우리로 하늘의 유업을 얻게 하는 거저 주어진 자격인 것입니다.

 

 

............................................

 

◑렘31장 절별 해석

 

<31장의 내용 구조>

북이스라엘의 회복(1-22절),

남유다의 회복(23-30절),

진정한 회복과 새 언약(31-40절)

 

※31:1~22절까지의 절별 해석은 rfcdrfcd.tistory.com/15982201 에 있습니다!

 

31: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31: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31: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에브라임의 귀환과 회복이 예언된 후여기서는 그것과 동일하게 강한 확신에 찬 어조로

유다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23~

유다 백성이 돌아오면 그들도 엄청나게 번영할 것이다. 경건과 근면함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때 여호와는 그들의 진정한 안식처가 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또 예루살렘은 의로운 성이 될 것이고 그 성전은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약하고

지친 자들이 거기서 휴식을 취하게 될 것이며, 슬픔을 당한 자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31:26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본장 2절에서 시작되어 25절에서 끝나고 있는 예언이 예레미야에게 꿈으로 전달되었던 것 같다. (단 10:9, 슥 4:1).

혹자는 이것을 꿈, 곧 그의 소망과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해 보기도 한다.

즉 이스라엘의 번영을 목격하게 될지 알 수는 없으나, 그때가 되면 무덤에서 깨어나서라도

그러한 번영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31: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는 여호와께서 사람과 가축을 번성케 하실 것임을 말한다.

공동 번역은 이를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을 사람이나 짐승 할것 없이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고 쉽게 번역하였는데,

결국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언약(창22:17)에 대한 확증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다.

 

31: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구절은 심판과 심판 후의 갱신이라는 이 책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1:10참조).

 

31: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1: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여기서는 범죄에 따르는 형벌이 각 개인의 책임으로 주어지게 됨을 강조한다.

이는 아마, 조상들의 잘못으로 고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포로민들의 잘못을

염두에 둔 말씀인 듯하다.

 

'아비가 신 포도를...아들들의 이가 시다' 이 말은 당시 유행하던 속담인 것 같으며,

어쩌면 출 20:5, 6에서 착안되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개인이 지은 죄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일관되게 교훈한다(신 24:16).

에스겔도 이와 유사한 언급을 하고 있다(겔 18:2-4).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구역에서 '새 언약'이 언급되고 있는 곳은 오직 이곳뿐이다.

비록 짧은 내용이긴 하지만 본절로부터 34절까지는 본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되며

구약 전체에서도 가장 심오한 부분에 해당되며 구약 전체에서도 가장 심오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훗날 쿰란 공동체는 여기에 근거해서 자신들을 새 언약의 사람들로 이해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새 언약은 강력한 율법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서

모세 언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분명 본문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성취된

예수 그리스도이 피언약에 대한 예언이라 할수 있다(눅 22:20, 고전 11:25, 히 8:8-9:28).

 

31: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언약은...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새 언약의 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여호와 간에 시작된 언약이

제시되고 있다(출19:1-24:11).

언약의 계속적인 존속 여부는 여호와를 계속적으로 주로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

곧 언약에 규정된 조항과 약속에 대한 계속적인 순종 문제에 달려 있었다(11:1-8).

 

이러한 율법에 순종하지 못하면 심판과 언약에 명시된 저주 조항의 가동이라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반면에 순종은 언약의 축복을 가져왔다.

 

그러나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언약 규정 조항에 순종하는 데 언제나 실패했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강력한 구원의 능력으로써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첫 번째 언약을 파기하고 말았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언약이 필요했다.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이제 여호와는 백성들의 내적인 성품의 변화를 주실 것이며,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순종할 수 있도록 할 것임을 선언하신다.

 

즉 여호와는 그들의 마음에 그의 율법을 기록할 것인 바 이는 곧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도의 삶에 전인적이고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을 암시한다(롬8:1-11).

 

한편 옛 언약은 돌 위, 혹은 책에 기록되었었다(출 24:7, 31:18, 신 4:13).

그리고 기록될 장소로서의 '마음'이란 표현은 17:1에서는 죄와 관련되어 쓰이고 있다.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여기에는 변화가 어느 정도까지 일어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제사장이나 선지자 등이 '여호와를 알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을 정도까지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적 중보(仲保)가 필요없이 작은 자에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여호와를 알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사 54:13에도 나온다.

 

이 말은 신약의 성도가 믿음의 선배로부터 전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체험적으로 교제하는 것이 외부의 지시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죄사함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과 더불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신령한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당사자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깊고 친밀한 인격적 앎이라는 대단히 심오한 개념을 담고 있다.

 

31: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이 구절은 창 1:16, 17의 내용으로 소급해 올라가고 있다.

거기서도 이곳에서 쓰이고 있는 '주다'란 뜻의 히브리어 '나탄'이 해, 달, 별들과 관련해서 쓰였다.

또한 바다와 파도를 소용돌이치게 한다는 서술도 다른 곳에서 나온다(사 17:12, 51:15, 시 46:3 등).

 

31: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는 해가 낮에 빛을 내고 달이 밤에 빛을 내는 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되리라는 예언이 기필코 성취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다음 절에서 다른 표현으로 재차 강조되고 있다.

 

31: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하늘을 측정하고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향해

지니신 하나님의 계획도 절대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 식언치 아니하시며 한번 이루고자 작정하신 것은 그대로 성취하신다(민 23:19).

 

31: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31: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앞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재건을 언급함으로써 회복에 관한 메시지를 마감하는데,

재건될 예루살렘 성의 모습은 다윗의 전성기의 그것에 비추어 조금도 손색이 없음을 시사한다.

 

하나넬 망대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하였다(느 3:1, 12:39, 슥 14:10).

가렙 산은 예루살렘내에 있는 남서쪽 언덕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아란 곳은 예루살렘 교외의 남동부의 어느 지역이었을 것이다.

이 두 장소는 구약의 다른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