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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2~2003

파괴, 건설

LNCK 2011. 10. 27. 20:09

◈파괴, 건설                 렘1:4~10           스크랩, 출처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1:10

  

여기 선뜻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아주 과격한 표현입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거의 과격분자, 테러리스트가 씀직한 표현을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어로 읽어보면 어쩌면 더 섬짓합니다.

 root out(뿌리 뽑는다), pull down(잡아당겨 끌어내린다), destroy(파괴한다), throw down(던져서 깨트린다)


하나님이 이런 과격한 표현을 써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시려는 일, 또는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파괴되어야.. 건설된다.

요즘 많이 듣게 되는, 옛날에 못 듣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재개발이라고 하는 겁니다.


아주 몇 십 년 전 낡은 집입니다마는 재개발 지구가 되면

새로운 모습에 현대식 건물이 거기에 들어섭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좀 끔찍하다 싶은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1:10


영어로 읽으면 더 무시무시합니다.

to uproot and tear down, to destroy and overthrow, to build and to plant.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시다.. 싶은데, 그게 아닙니다.

새로 깨끗하게 세우려면, 먼저 허물어버려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딜레마와 하나님의 응답

성 어거스틴은 주후 410년 로마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영원히 건재하고, 그 영광이 영원할 것이라고 여겼던 대 로마제국이

야만인 서고트족(게르만 족의 일파, 당시 비문명 부족)에 의해서 로마가 무너지게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 로마가   *당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

이 화려한 로마 도성이,

어찌 저 도끼를 휘두르고 벌거벗고 다니는 야만족에 의해서 무너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그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화려했던 로마의 영광이 역사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큰 번민에 빠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신앙적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예수 믿는 로마가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깊은 고민 끝에 그는 마음이 열리고, 영적인 세계를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세워놓은 세상나라가 무너지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걸 보았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하나님의 도성 City of God>이라는 책을 저술하게 됩니다.

세상나라는 역사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

이 영광을 그는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딜레마에서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은 계속 발전, 건설만 바라지만.. 하나님은 무너뜨리고, 세우신다.

여러분, 파괴와 건설,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종종 파괴 없는 건설,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계속적으로 흥왕하고,

그렇게만 되기를 바라죠.


그러나 실제 역사와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파괴가 있고, 건설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흥망성쇠로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나라가 없습니다. 영원한 승자가 없습니다.

그 화려했던 영광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건설’만 좋아합니다만,

그 앞에는 무서운 ‘파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파괴(붕괴)’가 일어나더라도, 우리가 염려하지 말 것은

그것 또한 미래의 ‘건설’의 선행지표 이기 때문입니다.


▲파괴하시고 / 건설하시는 하나님.. 을 예언한 예레미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1:10은 예레미야서의 총 주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즉 ‘파괴와 건설’입니다.


예레미야는 일명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의 도성 예루살렘, 회개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너는 가서 외쳐라! 망할 것이다. 이대로 가면 망할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외쳐라’ 고 하십니다.


그런 와중에 예레미야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보면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보면서

그 앞에 있는 멸망을 환히 보면서.. 그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은 예루살렘은 망했고, 그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까지,

하나님의 성전까지 불타 버리고 맙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그는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 파괴가 없이, 이 무서운 멸망이 없이,

아름답고 밝은 미래만 있어지기를 바랬습니다마는..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갔습니다.

예레미야의 마음속에 더 괴로웠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심판 받는데,


어째서 하나님의 모르는 느부갓네살 왕,

잔인하기 이를 때 없는 악한 왕을 통해서 이루시느냐는 거죠.

왜 악한 왕에게 승리를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멸망케 하십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막대기로 사용했다고,

눈앞에는 느부갓네살이 나타납니다마는.. 그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이 무너지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예레미야는 보아야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어찌하여 이런 길로 멸망이 있는 것입니까?


파괴와 건설!

뽑으시는 하나님과, 심으시는 하나님!

헐어버리는 하나님! 그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예레미야는 전해야 했고, 믿어야 했고, 몸으로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사야서 59:1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하나님의 귀가 둔해서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하나님과 너희 사이에 죄가 있느니라, 죄로 인해서 망한다.

죄로 인해서 심판은 있고, 파괴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이 저희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레미야도 같은 식으로, 눈물을 흘리며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무너뜨리고 / 세우셨다.

요2장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을 때,

46년 동안 지었다고 하는 화려한 헤롯성전을 앞에 놓고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헐라.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


정말로 40년 후에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고,

예수님은 새로운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였습니다.


그때 허물어진 헤롯 성전은, 2천년 동안 아직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솔로몬 성전에 있었던 성벽 하나가 (‘통곡의 벽’) 남아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경건한 백성들은 그 벽 앞에 와서 통곡을 합니다.

화려했던 예루살렘 성전, 그 옛날에 솔로몬 성전을 생각을 하며 눈물을 뿌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놀라운 역사는 잊지 말아야 됩니다.

로마 사람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하나님은 헐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신령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보이는 성전은 헐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기독교회를 세워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속된 것을 헐어버리고.. 신령한 것을 세우시고

교만한 것을 낮춰버리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시고,

세상적인 것을 헐어버리고.. 거룩하고 영원한 것을 세워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허무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까요.


다만 그 타이밍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느리고, 더디겠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행하십니다.


토인비의 <미래를 산다>하는 책 속에서 그는 말합니다.

과거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사람의 뜻대로는 안 되더라.

- 사람이 똑똑한 척하고 뭐 어쩌구 어쩌구 .. 영구할 것이다, 번영할 것이다,

  중단 없는 발전.. 별소리를 다해도 안 됩니다.


여러분, 미국에 911사건이 터졌을 때, 그 똑똑한 사람들 그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쾅! 하고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거죠.

 

새로 건설하기 전에, 먼저 파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의 뜻대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믿어볼게 못됩니다.


둘째,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더라.

- 흥망성쇠! 하나님 마음대로더라. 하나님이 생각하신 대로, 기준대로 하시더라!


셋째, 사람들은 미처 모르고 있지만, 현실 속에는 작으나 크나 거기에 의미가 있다.

- 흥망성쇠! 망하고, 흥하고, 살고, 죽고..

  많은 사건 속에 겸손히 받아들이면 그 속에 메시지가 있어요,

  말씀이 있더라, 그런고로 사건에는 우연은 없다. 필연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그의 역사 연구의 결론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그래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계획성도 있고, 목적도 있고, 뜻이 있습니다.

반드시 있을 일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얼마나 깨끗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냐가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그 속에 있는 의미를 듣느냐, 아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고저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같은 방향에서

내가 이제부터 살아갈 수 있느냐? 그것만이 문제입니다.

 

 

▲파괴하고/건설하는 십자가

여러분, 십자가라는 것은.. 파괴하고 건설하시는 역사의 중심적이요, 대표적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뽑고, 심으십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어떻게 보십니까?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내가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내가 행동하고, 내가 깨닫고, 내가 결심하고, 내가 고치고,

내가 자기 부정을 해야겠지만, 천만에요.

우리의 신비로운 경험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십자가 앞에 섰을 때, 십자가가 나를 죽입니다.

내가 혼자 회개하면 내 스스로 뉘우침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뉘우치게 하면 회개할 수밖에 없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면

그건 십자가가 나를 심판 하시는 겁니다.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나는 죽어집니다. 

현저하게 나 자신이 죽어야 비로소, 내 안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에서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었어요.

오늘도 십자가를 쳐다 볼 때마다, 그 앞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지고 있어요.

아니, 이미 죽어버렸어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갈5:24절에서 말합니다.

“정과 욕심까지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 끈끈한 정, 죽여 버려. 그 많은 욕심, 깨끗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면

그때부터 자유인이 됩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문제가 있다면 끊을 걸 못 끊었어요.

버릴 걸 못 버렸어요. 아직도 덜 죽었어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근데 단, 함께 죽어야(파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건설) 것입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파괴건설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합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옛사람이 죽는 거죠.

중생이 무엇입니까? 성령 안에서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에요.

성화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로운 변화되는 나의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깨끗하게 옛사람이 청산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말합니다.

“내가 전에 좋아하는 것, 내가 전에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이제는 분토와 같이 여기고 해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싹 지워버리고 산다고 말합니다. <파괴>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여지없이 파괴하십니다. 파괴하고 건설하십니다.

건설을 위한 파괴일 때는.. 파괴 자체도 축복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은 뼈아프고 어려운 경험을 했습니다.

반세기 전에 6.25가 있었구요.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요즘 중동 이라크에 전쟁에 있었다는 소식과 아까운 장병들이 전사했습니다만,

우리는 백 오십만 죽었습니다. 미군도 4만 가까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땅이 다 초토화됐습니다.

옛 모습을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깨끗하게 다 파괴됐습니다. 엄청난 파괴가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파괴가 있었습니까마는


여러분, 잊지 마십시다. 뼈아픈 경험이지만은,

그 파괴가 있어서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그 6.25 가 아니었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공산화되고 말았을 겁니다.


이 엄청난 파괴로 인해서 우리는 이만큼의 건설이 이루어지고,

이만큼의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 살게 된 겁니다.


그걸 잊지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이 파괴하십니다. 무엇을 파괴하는가?

우상과 교만과 허상과 잘못된 이데올로기와

인간에 마음속에 있는 죄악을 파괴하시고 새롭게 건설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십니다.


오늘도 파괴 없는 건설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부득이 이러해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아픔입니다.

파괴하시고 또 세우시는 하나님,

뽑으시고 새롭게 심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주 앞에 그 거룩한 역사를 바로 수용하고

주의 말씀에 응답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엄청난 파괴 속에서도 세우시고,

엄청난 손해를 지불했으나 또 더 큰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파괴를 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무너뜨리고, 세우시고, 뽑으시고, 다시 심으시는 주님의 역사 앞에 우리가 바로 서서

그것이 무엇으로 의미하는지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똑바로 알고

바른 역사의식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저 먼 세우시는 역사, 건설하시는 역사를 바라보며

오늘도 바르게 승리 생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