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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호14:1-9 2002. 6. 19
그동안의 호세아서 본문의 말씀이 오늘 마지막 장입니다. 그 결론은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음란한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주님께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다독거리며 다정히 말씀하시고, 때로는 호되게 매를 드시기도 하시면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를 드시는 것도 돌아오라는 사랑의 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돌아오라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끝끝내 고집하며 돌아오지 않다가
결국 낭패와 실망을 당한 후에 겨우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으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매를 드셨는데 정수리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 뿐 인데도
돌아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땅이 황무하고 성읍이 불타고 이방인에게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원의 원두막처럼, 원두밭의 상직막처럼 에워싸인 성읍처럼 겨우 조금 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주님께서 조금 남겨 두셨기에 남은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소돔과 고모라 같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사야서에서나 호세아서에서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서도 돌아오지 않은 것은 왜 입니까?
돌아오라는 말씀을 들을 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귀가 막히고 눈이 감겨 있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돌아오라고 소리치는 선지자들을 돌로 칠지언정 돌아오지 않는 모습이 이스라엘의 모습이요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오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고쳐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스스로 고쳐서 돌아올 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듣고서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은혜를 받았기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발로 돌아와야 합니다. 두 개가 다 필요)
4절을 봅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용서 하셨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것입니다.
이렇게 각기 제 길로 간 것은 우리 소견에 옳은 대로 각자의 탐심을 따라 간 것입니다.
이미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수중에서 그가 끄는 대로 끌려가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주님께서 먼저 찾아내시고 고치심으로 돌이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이 살려내어야 아들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면, 그것은 살아났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호세아 14:1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 엎드려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불의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불의함으로 엎드려진 그들이
주님께서 살리시고 남기셔서 돌아오게 하실 때, 어떤 자세로 돌아오는 가를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신다는 말을 합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주님께서 고치시고 돌이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구원 얻는 방법론의 차원이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돌이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구원 받은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지 구원 얻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도 엄연히 있죠. 이 설교문은 '하늘 차원의 구원, 하나님 차원에서의 구원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은혜 주시고, 구원해 주셔야 된다는 거죠.
그래야 우리가 회개하게 되고, 주께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하늘 차원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가 불가항력적으로 회개하고 돌이키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땅 차원, 인간 차원의 구원도 동시에 꼭 필요합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야 돼죠.
호세아서나 다른 예언서에도, 백성들이 망하고 멸망케 된 것은,
자기들이 돌이키지 않아서 그런 거지, 하나님이 돌이키는 은혜를 주시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가 구원 받은 주의 백성인가를 찾아내는 것이지
이렇게 하면 구원받는다는 비결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주님께로 돌아 왔다면
2-3절의 자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죄를 인정하고 주님을 찬송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2절에서 너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2절의 내용입니다.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라고 합니다.
자기 불의로 엎드려진 것을 알기에 자기의 불의를 인정하고서, 그것을 제하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하는 것입니다. 불의로 망한 자가 무슨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서 선한 것이란 회개하는 심령인 것입니다.
회개하는 심령을 회개하는 입술이라고 보아도 되겠습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입으로 나오기에 입술의 열매를 받으소서! 하는 것입니다.
시편 51:14-17절입니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구원하여 달라고 하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노래하는 것입니까? 주의 의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술로 주를 찬송하고 전파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사나 번제를 즐겨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14:1-2절의 내용과 시편 51편의 내용이 의미상으로 거의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로 돌아온 자는 3절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말을 타지 않고, 우상을 향하여 너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않고
고아의 심정으로 주의 긍휼을 구하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호세아서에서 만이 아니라 이미 이사야 예레미야 다른 선지서 등에서
아주 많이 언급되어 있는 것입니다.
강대국의 힘을 의지 하지 말고, 말의 힘을 의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우상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힘으로 삼지 않고 '고아의 심정으로 오직 주님께 긍휼을 얻는 것입니다'
하고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이런 방식으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구원받는 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서 그 패역을 고치시고
주님의 진노가 떠나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서 이러한 모습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상한심령 고아의 심정으로 주님의 긍휼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까?
강대국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의 힘과 실력 경제적인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가 행한바 의롭다는 일을 바라보지 않고 고아의 심정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오전에 자주 구걸하러 오는 사람이 또 왔었습니다.
마치 돈이 하나도 없어서 없노라고 하니 무어라고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48년 만에 월드컵 4강전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기분 좋게 돈 좀 주면 좋을 텐데...'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하고 월드컵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였지요!
그러자 신학을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으면 축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하는 말투였죠.
이 사람이 평소에는 아주 말도 없이 불쌍한 표정으로 구걸하는데
자기가 목사 장로 전도자 뺨치게 말은 잘 한다고 하면서
'내가 나쁜 짓 안하고 사는 것을 보아서라도 좀 도와주면 될 텐데' 하면서 투덜거리며 가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이 사람의 마음하고 우리의 마음하고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월드컵 성공을 위하여 교회에서 빌고, 절에서도 빌고,
그렇게 근엄하던 유림들도 빌고 있으니 우리나라 잘된다는 것에 거지도,
교도소에서도 다 기뻐하는데 왜 목사 너는 그런 소리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나쁜 짓 안하고 다니는 것만 해도 도와줄만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전혀 가난한 심령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런 모습이 아닙니까?
무슨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 하였기에 이런 고생을 주는 것입니까?
내가 그래도 나쁜 짓 안하고 그래도 열심히 바르게 살려고 이렇게 예수도 믿는데
이렇게 도와주지 않으시렵니까? 라는 식이 된다면 우리는 아직도 주님께로 돌아온 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주님께 돌아온 자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자기 죄를 인정하기에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주시는 은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나의 힘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5-8절을 봅니다.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돌아온 자들에게 주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돌아오게 하신 자들에게 하나님은 정말 생명의 풍성함,
그 은혜의 풍성함을 맛보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헛된 것을 의지하고 따라 갔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서
이제 주님께서 진노를 거두심으로 주님께 돌아온 자들에게
진정한 안식과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본문 호14:4-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패역을 고치시고 사랑하심으로 그 진노가 떠난 자들에게 이슬과 같고,
백합화 같이 피겠고,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고,
그 가지가 퍼지고 감람나무 같고 그 향기가 레바논의 향기 같으며 곡식같이 소성하고,
포도나무처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시적인 표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성도들이 받아 누리는 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이 촉촉이 적셔 지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늘 임하는 것과, 백합화 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운성도,
백향목 같이 뿌리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자라는 것 등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참된 생명의 기쁨인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오직 주님 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론으로 9절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이 말씀을 지혜가 있어서 깨닫는 자는 의인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이 돌에 거쳐서 넘어질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걸림이 됩니까? 기쁨이 됩니까?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될 것이요 다른 것을 힘으로 삼는 자는 걸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