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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이 체험한 청년의 절망과 희망 겔1:1~28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pp.57~92. 정리
오늘날 한국은, 에스겔처럼, 여호와의 말씀이 특별히 임한
말씀의 청년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장년이 아니고, 특별히 '청년'인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주로 -청년 때- 임한다.
장년때 부름 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 대개는 너무 늦다. 예외도 있겠지만...)
◑절망한 청년 에스겔
▲30세의 에스겔
30년(30세)...에 내가 (바벨론의)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겔1:1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5년...이라 1: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때는 2차포로인 주전 597년 경 이며,
그 때로부터 5년이 지났으니까,
에스겔이 포로로 사로잡힌 때는 그의 나이 25세이며,
그가 하늘이 열리는 신비 체험을 한 것은, 포로생활 5년 후인, 그의 나이 30세이다.
▲절망적인 포로 신분
‘사로잡혔다’는 말은 전쟁 포로, 노예 신분이라는 뜻이다. 1:1
나이 25세면 가장 한창일 때, 그는 타국에서 짐승 취급을 받는 노예가 되었다.
그는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로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1:3
고대사회는 제정일치의 사회로, 제사장은 동시에 정치가요, 세도가를 의미했다.
그런 떳떳한 신분이... 하루아침에 타국에 끌려온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으니...
바벨론 역사 기록에 의하면,
유다의 포로들은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그발 강의
운하 공사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다의 기능공, 석수장이 등 기술자들을 잡아온 이유였다. 왕하24:14
그 중심지는 텔아빕이라고 밝히고 있다. 3:15
*텔아빕 : 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와는 다른, 현 이라크 지역의 텔아빕(유대인 정착촌)
▲당시 절망적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시137편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무한 경쟁 시대의 포로가 된 오늘날의 청년들
대학 입시 경쟁은 고사하고, 졸업 후 입사 경쟁으로
오늘날의 청년들은 혹사당하고 있다.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전에 반년~1년 정도 외국 유학을 갔다 와서, 적어도 영어가 유창해야 한다.
영어가 유창한 학생은, 일본어나 중국어 등 제2외국어 연수를 또 떠난다.
그리고 대학 졸업반이 되면, 인턴사원으로 들어가서 온갖 심부름을 다 한다.
인턴사원은 월급이나 보수도 없는, 그야말로 자원봉사이다.
그렇게 뼈를 깎는 경쟁을 뚫어야 비로소 올바른 취직자리를 얻게 되고,
취직자리를 얻어야 버젓한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외모가 떨어지면 또 취직이 안 되니까.., 성형수술해야지,
그런 가운데 수 십 대 일, 수 백 대 일의 경쟁력인 직장에 입사 원서를 넣으려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경쟁대상으로 보이고,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자기 혼자 외롭게 내던져진 것처럼 느껴진다.
더욱이 한국도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면서,
이제는 경쟁범위가 한국이 아니라,
농사를 지어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하게 되었다.
그 중에 금융이나 IT 등으로 성공한 사람은 수 만 명 중에 단 몇 명이고,
승자독식시대에 패배한 대다수는 그야말로 포로처럼 비천하게 살아야 한다.
마치 그발 강가의 포로수용소 같은 전방위적 스트레스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을 본 청년 에스겔
▲1. 말씀에 강하게 사로잡힌 청년 에스겔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expressly
여호와의 권능(손, 히브리어 '야드')이 내 위에 있으니라 겔1:3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서 신자유주의가 되고,
앞으로 그 보다 더한 적그리스도가 장악하는 ‘대환란’이 닥치더라도
성도가 사는 길은 ‘말씀에 사로잡히는데’ 있다.
오늘날 세상은 끊임없이 돈이 풍부해야 행복한 웰빙이 된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먹어야’ 참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 우리는 뭔가 물질, 명예가 결핍해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자기가 불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 사실은 말씀의 결핍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말씀의 목마름, 말씀의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신에 세상적인 목마름과 배고픔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말세인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연구해 보시라. 그 설교 안에는 풍성한 말씀이 들어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설교 시간조차도 말씀에 결핍한 경우가 종종 있다.
성경 한 구절 읽어놓고, 다른 잡다한 세상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말씀으로 부흥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그런 절대 믿음이 점점 희박해 지고 있다.
오늘 이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장차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은, 그냥 열심인 청년이 아니라
- 말씀에 사로잡힌 청년이다.
에스겔처럼, 여호와의 말씀이 특별히, 권능으로 임하는 청년이다. 1:3
거기에 장차 우리 나라의, 한국 교회의 미래가 있다.
▲말씀이 밥 먹여주는가,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오늘날 세상은 ‘밥 먹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도, 그 일이 ‘밥 먹여 주지 않으면’ - 보통 일이고,
아무리 허접한 일을 해도, 그 일이 ‘밥을 많이 먹여 주면’ - 위대한 일이 된다.
이런 것들을 가리켜 ‘세속적 가치관’이라고 한다.
물론 밥 먹여 주는 일도 매우 소중한 일이다.
또한 세상에는 자기 밥벌이도 못하고 기생하는 몰염치한 인간들도 많다.
그러나 밥 먹여 주는 일이 - 하나님 나라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에스겔처럼, 말씀이 특별히 위에서 임하는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삶과, 인생과, 세상에 대하여 새로운 가치관이 생긴다.
예수님이 생각하시고 가르치신 것처럼.., 영원한 가치관이 생긴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말씀이 권능으로 임하는 체험을 했다. 1:1
그 이전의 에스겔과 이후의 에스겔은 -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부터 -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돈과 권력이 있어야 -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 이후에는, 말씀이 있어야 -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 말씀을 먹은 청년 에스겔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네 앞에 있는 것을 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라”
그래서 내가 입을 벌렸더니, 주님께서 두루마리를 내 입에 넣어 주셨다. 3:1~2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말씀을 자기 입속에 두시는put 체험을 했다. 렘1:9)
‘먹었다’는 뜻은 -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는 뜻이다.
어렴풋하게 알지 않고, 완벽히 소화해서 말씀을 전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소위 신학을 공부한 전도사들도
예언서 등에는 겉핥기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성경을 편파적으로 가르치는 메신저들이 많다.
앞으로 나올 청년 에스겔 같은 사람은 - 66권 말씀을 먹고 소화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런 작업은 1~2년 만에 되지 않는다.
10~20년, 길게는 평생 되어진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신학대전」을 썼던 것처럼,
존 칼빈이「기독교강요」를 쓰고서
오랜 세월동안 그것을 다시 고치고 보충한 것처럼,
한국에도 수 십 년을 말씀에 헌신하는 그런 청년들이 장차 나올 줄 믿는다.
에스겔은 포로생활 5년~25년까지 1:1
즉 20년간,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예언을 꼼꼼히 기록했다. 40:1
그것이 바로 에스겔서이다. 적어도 20년에 걸쳐서 기록하고 다듬어서 만든 책이다.
수 십 년 준비해서 펴내는 기독교 고전서적들이
지금 준비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에스겔들에 의해서, 장차 한국에서도 나올 것이다.
▲3. 희망의 비전을 본 청년 에스겔
지금 에스겔은 국가적으로 큰 시련과 격동의 역사 한 가운데 서 있다.
남유다 왕 여호야긴도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왔고,
예루살렘에는 시드기야 왕이 세워져 있으나, 그는 바벨론에 의해 세워진 왕이었다.
시드기야도 다윗의 가문이긴 하나,
포로로 잡혀온 유다 귀족들 분위기는 여전히 여호야긴을 왕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지금 비록 예루살렘의 유다 왕의 보좌는.. 비어 있었지만, (시드기야가 있었지만)
그 상태에서 에스겔은 하늘의 보좌를 보았다.
천상의 하나님의 보좌에는.. 하나님이 좌정하고 계셨다.
그는 ‘불의 전차’ 위에 좌정해 계시는 여호와를 환상 중에 뵈었다. 1:4~28
폭풍과 큰 구름을 동반하면서 강림하신 하나님, 1:4
일찍이 모세와 엘리야가 뵈었던 하나님을, 에스겔이 뵌 것이다.
고대근동 문명에서, 한 나라가 망하면, 그 나라가 섬기던 신도 망한 것으로 보았다.
앗수르가 망하면, 앗수르의 신도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바벨론이 망하면, 바벨론의 신도 그날로 시효가 끝나던 문화였다.
그래서 유다가 포로로 잡혀갈 때, 당시 사람들은 여호와도 망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당하게, 불의 전차 위에 좌정해 계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계신 형상(하나님)을 보았다. 1:26
‘하나님이 보좌에 계신다.’는 말은
- 정상적으로 통치 행위를 수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유다 민족의 환경은.. 소용돌이 속에 있고, 보좌는 비어 있었지만,
유다와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보좌는.. 전혀 요동함이 없으셨다.
겔1장에 이어, 그 후로도 에스겔은
생수의 강의 환상을 보며(47장)
하나님의 성전이 회복되는 환상을 본다.(40장~)
그는 현실의 절망을 본 것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 가운데 미래의 희망을 본 것이다.
여전히 하나님이 보좌에서 다스리고 계심을 본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기도와 말씀이 사라지면,
청년들은 현실에 함몰되어 절망한다.
그러나 기도와 말씀에 깊어지면, 하늘이 열리면서, 신비한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계획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미래의 비전을 보게된다.
▲4. 신비 체험을 한 청년 에스겔
신앙이 신비주의에 빠지면 안 되지만,
신비적 체험은 필요하다. (단, 자기 자랑과 교만이 되면 안 된다)
①공중으로 머리채가 잡혀서 올라감, 날아감.
그는 손처럼 보이는 것을 뻗어 내 머리털을 붙잡으셨다.
영이 땅과 하늘 사이로 나를 들어 올리셨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 나를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서... 8:3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은 약 1천 킬로이다. 부산에서 신의주 거리보다 더 멀다.
그런데 그는 시공을 넘나드는 체험으로
머리채가 잡혀서 공중으로 들어올려져서
1천 킬로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곳을 보게 된다.
그래서 에스겔은 당시 자신의 상태를 ‘어리둥절하고 놀란 상태로 지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개역성경엔 ‘민답히 지냈다’고 번역했다.
그 중에서 민답히 칠일을 지내니라 3:15
신비체험을 사모할 필요는 없지만,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다 보면... 신비체험은 자연히 뒤따르게 된다.
신비체험은 - 자기 소명과 사명에 대해 확신과 인내와 끈기를 준다.
그래서 신비체험이 있는 사람은, 쉽게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