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생기를 모아서 불어넣는 사람 겔37 :1~14
출처 :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PP.95~123. 토대로 재 작성.
생기는, 에스겔이 말씀을 대언할 때... 저절로 반응해서 일어나는 역사였다.
오늘날에도 위에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대언하면
사방에 있던 생기가 몰려와서, 마른 뼈들을 살아 일으키게 한다.
◑에스겔서 개요
▲에스겔의 전반부, 후반부
에스겔서의 전반부(1~24장)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온갖 종류의 우상 숭배가
멀리 바벨론 땅에 있는 예언자 에스겔의 눈에 고스란히 포착된다.
하나님은 에스겔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 내부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우상숭배로 가득 차 있는지 고통스럽게 대면하게 하신다. 8:14등
에스겔서의 주제 중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10:4, 11:23
회복된 성전에 복귀하는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을 목격하는 환상이다. 40장
에스겔서의 후반부(25~48장)는, 주변 열방에 대한 예언이 나오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던 영광이
회복된 성전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에 필요한 회복과 갱신을 예언하고 있다.
▲예루살렘 함락 소식을 듣고 한결 바빠진 에스겔
에스겔 등 바벨론의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이 마침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포로된 지 12년째, 33:21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날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33:22
민족이 위기에 처하면, 예언자들의 활동이 한층 더 바빠진다.
그래서 이어지는 33:23~39장 끝은 예루살렘 함락 소식을 들은 직후에
터져 나온 예언이다.
40장부터는 함락 후 14년 지나서 받은 예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40:1
그래서 37장 ‘마른 뼈들이 일어나는 환상’은,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선포한
(그 절대 절망의 시기에 선포한) 희망의 예언이라고 본다.
▲예언자의 연속성
엘리야, 엘리사 시대가 이스라엘에 암 세포가 자라기 시작한 시기라면 주전9세기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시대는 암 말기 시대라고 본다. 주전8세기
이어지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암세포 제거 수술이 필요 없다는 사망선고를 내리면서
죽음 너머의 부활과 회복을 예고하는 예언이다. 주전7~6세기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함락(주전586)직후에 그 예언이 끝난다.
에스겔은 여호야긴 포로5년(주전592)부터 그의 예언 활동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동시대에 활동한 기간은 592~586년, 즉 약 6년 동안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고, 에스겔은 바벨론에 있었으므로
서로 만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오기 전에, 즉 25세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는 당시 50세쯤의 예레미야를 보았거나 소문을 들었을 수는 있다.
◑‘마른 뼈들의 골짜기’ 환상
▲37:1절. 여호와의 손에 붙들린 에스겔
여호와께서 권능(손)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37:1
에스겔서에는, 성령의 강한 역사에 사로잡힌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스겔은 다분히 오순절 적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12:1, 17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했다. 37:1, 1:3, 33:22, 40:1 등
(개역은 ‘권능으로 임했다’고 번역)
주의 신spirit이 나를 데리고... 11:1, 5, 등
예수님도 성령에 의해 광야로 내 몰리신 적이 있다. 막1:12
여기서 ‘몰아낸다’(에크발로)는 ‘집어 던진다’는 뜻이다.
에스겔도 지금 여호와의 강권적인 손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는 것이다.
▲2절. 마른 뼈들을 목격한 에스겔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7:2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현재 영적 상태를 직시했다.
사람이 언제나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낙관적인 것도 거짓선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도 내면적 현실을 보면서 ‘살았다 하나 죽었다’고 탄식할 수도 있고, 계3:1
반대로 외형적 현실을 보면서 ‘세계 2위’를 자랑할 수도 있다.
오늘 나와 내 주변은 ‘마른 뼈들’인가?
아니면 ‘생기가 넘치는 여호와의 군대들’인가?
선지자는 영안으로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3절. ‘선지자적인 비관’의 에스겔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십니다!” 37:3
“예, 능히 살겠습니다!” 라며 에스겔은 확실하고 단호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상태가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뜻이다.
도저히 다시 살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하기야 마른 뼈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서 인간이 되겠는가?
▲4절.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라!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37:4
하나님은 오늘도 대언자(메신저)를 찾으신다.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대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위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말씀을 전할 때에만... 마른 뼈들이 살아난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강퍅한 이유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 대언하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5~6절. 하나님은 생기를 주시기 원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37:5
이 생기는 바람(요3:8)이요, 숨(요20:22)이요, 하나님의 신(창1:2, 루아흐)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기 원하신다. 살리기 원하신다. 37:6
단 필요한 것은, 에스겔과 같은 ‘대언자’이다.
그런데 오늘날 상당수 청년들은, ‘몇 천 명 목회’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몇 명에 관계없이 그 목표를 ‘대언자’로 바꾸어야 한다.
▲7절, 대언하면, 마른 뼈들이 움직인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37:7
그것이 ‘대언 된 말씀’, ‘위에서 받은 말씀’,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일진대
그냥 아무 일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반드시 마른 뼈들이 움직이는 역사가 나타난다.
또한 서로 연락해서 ‘조직’되어지는 역사가 나타난다.
▲8절, 아직 생기는 없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벼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37:8
주님의 사명은, 반드시 생기(성령)가 있어야 감당할 수 있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요셉을 보고 이렇게 감탄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창41:38
초대교회의 7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택했고 행6:3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행6:10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려면, 성령의 충만을 입어야 한다. 행1:8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9~10절, 말씀을 대언하면 생기가 들어간다! ★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사방의 바람들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37:9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자 아담이 생령이 된 것처럼,
에스겔은 사방의 바람들로부터 생기를 불러내어, 마른 뼈들에게 불어넣는다.
에스겔이 ‘생기야 ~ 사방에서~ 살게 하라!’고 대언하고 외칠 때
생기가 불어넣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꼭 '생기야!' 를 외치지 않더라도, 위에서 내린 대언의 말씀을 전하면,
생기는 사방에서 몰려와 자연적으로 청중들에게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러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대고 입으로 훅훅 불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설교는, 대언된 말씀을 외칠 때,
사방에서부터 생기가 모아져서, 모인 청중들에게 들어가게 하는 작업이다. ★
이에 내가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로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37:10
그 뼈들은 정말 아무 소망이 없던 상태였다. 37:11
그 소망이 없던 뼈(포로가 된 유다인)들에게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주신다... 37:12~14
▲마치는 말
에스겔이 이 말씀을 대언하던 시기를 주전586년경이라고 본다면,
그의 나이 36세 경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36세면 여전히 청년이다.
사실 늙으면 노련해지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생기가 부족하고 굳어지는 단점이 있고,
청년은 생생하고 생기발랄한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아직 미숙한 단점이 있다.
오늘날 에스겔 같은 생기발랄한 청년들이 가져야 할 비전은,
말씀을 대언할 때, 진짜 생기(성령의 바람)가 사방에서부터 모여와서
마른 뼈 같은 심령들에게 들어가게 하는 비전이다.
즉, 사방에 흩어진 생기를 한 곳에 불러 모으는 자이다.
대언(위에서 받은 말씀을 전하는 것)만 잘하면, (=생수만 솟구쳐 내면)
생기가 몰려와서 마른 뼈들에게 들어가는 역사는 저절로 일어난다.
오늘의 기진맥진한 현실을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탓하고 비관할 필요 전혀 없다.
대언하지 못하는 청년들, 곧 나 자신 때문인 것이다.
내가 대언하려면(예언자가 되려면), 아래의 체험이 필요하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했다. 12 :1, 17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했다. 37 :1, 1 :3, 33 :22, 40 :1 등
주의 신 spirit이 나를 데리고... 11 :1, 5,
<*출처 : 「김회권 목사의 청년설교」PP.95~123. 토대로 재 작성.
[후기] 에스겔이 본 '마른 뼈 골짜기'는 신약에서 '골고다'(해골) 언덕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마른 뼈같이 죽어 있던 많은 영혼들을 살리시고 여호와의 군대를 일으키셨다.
에스겔이 대언하여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사,
제자들은 성령충만을 받고 담대한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당시에 포로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신약에 되어질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 사건을 [이중 예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