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크리스천의 모델, 윌리엄 윌버포스 갈6:9 2008.03.30.
(1759~1833)
아래에서 윌버포스의 인생길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이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앞으로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1.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죽은 사람
1833.07.29. 윌버포스는 70대 노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젊어서부터 정치계에 입문했기 때문에, 사업해서 돈을 번 것은 아니었지만,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때문에, 상당히 큰 부자였다.
더욱이 그가 8살 때 부친이 돌아가셔서, 어릴 적부터 큰 재산을 상속받았다.
나중에, 그가 해마다 익명으로 기부한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부 액수가 1년에 평균 (오늘날 가치로) 1백억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거액의 기부를 수 십 년 동안 그는 계속 했다.
그러다가 숨을 거둘 때는, 그는 완전히 가난뱅이로 죽었다.
여러분 <부자로 사는 것>은, 도적질 하지 않은 이상, 하나님의 축복이 맞다.
그러나 <부자로 죽는 것>은, 그것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주님이 나에게 많은 물질을 주실 때, 어떤 지위를 주실 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윌버포스가 바로 그런 삶의 모델을 잘 보여주었다.
◑2. 쉽지 않은 길(노예무역폐지), 평생을 싸우며 걸어가다.
▲28세 때 받은 사명
윌버포스가 28살 때, 그는 이미 영국 의회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때 그가 기록한 일기장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2가지 사명이 있다.
첫째는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이요,
둘째는 잘못된 인습을 타파하는 것이다.”
그는 28살 때부터 벌써, 크리스천 정치가로서의 사명감,
크리스천 리더로서의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후 그는 46년 동안, 1833년에 76세로 죽을 때까지, 평생 그 사명대로 살았다.
▲너무 큰 돈을 벌어주는 사업인데, 폐지하자고 나서다니...
그가 노예무역제도를 반대하고 나섰을 당시 영국의 상황은
그 때까지 영국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붙잡아서 팔아먹은 숫자가
무려 3백만 명이라고 한다.
영국 한 나라가 3백만 명을, 서인도제도, 신대륙 등지로 팔아넘겼다.
그 노예무역규모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노예무역에 종사하는 배와 관련종사자 숫자를 합하면,
당시 영국 산업의 총수입중 1/3이 노예무역을 통해 올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영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주요 산업이었던 셈이다.
노예들이 무한 고통 받고, 죽고 살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 나라가 부강해지고, 영국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수준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모두들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는커녕, 영국 귀족과 관리들은 노예무역에 앞 다투어 자기들 재산을 투자했고,
그런 분위기에 크리스천들이라고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노예무역을 철폐하자는 주장 자체가, 매국노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르는 척하며 사는 사람들
아프리카 가나 박 선교사가 사진 한 장을 찍어 와서 우리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가나에 하얗고 예쁜 예배당을 지어놓고
노예사냥꾼들은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렸다.
그 다음에 그들은 노예사냥을 떠났다.
그리고 노예사냥에서 돌아와, 그 붙잡은 노예들을 배에 태워 영국으로 보냈다.
그러다 주일이 되면, 그들은 다시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그 예배당이 지금도 가나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거대한 영적 어두움이 온통 뒤덮고 있었는데,
윌리엄 윌버포스는 가만히 잠잠히 있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모르는 척 하고,
자기도 노예무역에 투자해서, 어쩌면 거금을 벌어들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 좋은 저택을 사들이고... 남들처럼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선지자의 길에 따르는 위협
그러나 윌버포스는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았던 것이다.
영국은 기독교가 국교Anglican Church로 당당히 정해져 있었고,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엄청난 숫자의 사람(노예)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에,
모두들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이것은 영국 나라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 아니다!>라며 당당히 외쳤던 것이다.
그렇게 투쟁하는 46년 동안,
그는 생명의 위협도 당하고, 테러의 위협도 늘 느끼면서,
자기가 물려받은 그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두 다 쏟아 부어 가면서
1833년, 그가 76세로 죽던 바로 그 해에
영국 의회가 드디어 노예무역을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승리하다.
지난 2천년 교회역사 속에서
윌버포스처럼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강력하게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로 열매를 거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윌리엄 윌버포스를 다시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놀렸을 것이다.
수 천 억에 달하는 자기 재산을 모두 남들에게 나눠주어 날려버리고,
성직자도 아니고, 수도원에 들어간 사람도 아닌데도...
그는 정치가였다.
그런데도 그가 크리스천으로서 그가 남긴 업적은
영국 사회에 그 영향이 너무 커서
그가 죽을 때 즈음에 윌버포스의 영향을 받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
영국 의회에만 1/3쯤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3. 그가 이루었던 업적은 <노예무역폐지>말고도 많다.
①당시 ‘침니 보이 chimney boy’가 성행했는데,
좁은 굴뚝청소를 위해서, 몸집이 작은 아이를 거기에 집어넣는 것이다.
7살 이하의 아이들을 발가벗겨 굴뚝에 집어넣어 하루에 15시간 청소를 시켰다.
가난한 부모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자기 아이를 그렇게 희생시켰던 것이다.
거기에 동원된 아이들은, 몇 달 지나서 ‘산재’로 죽어나갔다.
그래도 당시 영국사회는 그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윌버포스와 뜻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아동보호법’을 만들면서
비로소 그 악습이 종식되었다.
②귀족 남자들의 <결투 방지법>도 윌리엄 윌버포스가 제안했다.
간혹 영화에 보면,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누구에게 모욕적인 말을 한 마디 들으면
자기 손수건을 꺼내서 확 집어던진다. ‘결투신청’이었다.
영화로 보면 근사할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겐 정말 어리석은 도박이었다.
모욕적인 말 한마디 들었다고, 그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이... 제정신인가?
그 엉터리 같은 자존심 지키는 일 때문에, 서로 칼을 겨누고 총을 겨누었다.
이것이 당시 귀족사회의 악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윌버포스가 나서서, 법적으로 이 제도를 금지하도록 통과시켰다.
◑4. 십자가의 길을 떠날 때 <잃는 것>도 있다.
①그는 가난뱅이로 죽었기 때문에 자기 재산을 잃었다.
②그는 명예를 잃었다.
어떤 역사가는 이렇게 기록했다.
“만약에 윌버포스가 <노예무역폐지>같은 인기 없는 일에 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영국에 수상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의 지도력이나 그가 가졌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영국의 수상이 되고도 남았을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③일평생 외로운 길을 걷다.
워낙 인기 없는 일(노예무역폐지)에 뛰어들다보니, 사람들은
‘그가 옳기는 옳은데, 그와 함께 했다가는 계속 대중의 원망을 사게 될 것이고,
평생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할 것’ 같은 두려움에...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많은 크리스천들과 양심적인 동조자들을 얻어서
그 원대한 뜻을 이루었지만,
그의 삶은 참으로 <외로운> 삶이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의 생애와 죽음은 쓸쓸한 것이었지만,
주님께서 그의 죽음을 보실 때, 정말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칭찬하셨을 것이다.
◑5. 사회 문제에 대한 잘못된 두 가지 극단적 태도
사회에 너무 엄청난 구조악과 죄가 있는데,
이거 뭐 나 한사람 노력한다고 해서, 도저히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①혹자는 ‘저 망할 세상과 나는 상관없어! 그냥 교회나 열심히 다니자’ 한다.
자기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으니, 그냥 포기해 버리고, 방치해 버리고, 포기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걷고 있는 길이다.
②혹자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씨름을 해 보다가
세상과 동화가 되어버린다.
세상의 목적도 못 바꾸고, 방법도 못 바꾸고, 자기가 바꾼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바뀐 것은 딱 한 가지 있는데, ‘자신의 처세술’이다.
자기도 남들처럼 적당히 먹을 것 먹고, 적당히 돈을 굴릴 데 굴리고,
돈 생기면 좋아하고...
이런 사람들은 지난 교회사속에서 어떤 역사도 이루지 못했던 실패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나를 구원하신 이유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놓으신 이유는
우리 이웃, 직장 속에서
작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걸음을 한 걸음씩 내디딜 때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런 승리자’로 받아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를 크리스천으로 구원하신 이유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그런 뜻은 고의로 다 잊어버리고,
자기 먹고 살기에 바쁘고, 출세하기에 바쁘다면,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늙고 병들어서,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이르렀을 때,
어물어물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구원 받을 사람>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크리스천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6. 윌버포스의 동역자들
▲교제에서 공급을 받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그렇게 바쁜 정치인이었지만,
매일 하루 2시간을 성경 읽으며 기도하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서 ‘공급’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 외로운 길을, 동역자들과 함께 꿋꿋이 완주할 수 있었다.
외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던 것이다.
▲존 뉴턴이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어릴 적부터 부친을 여윈 윌버포스는 숙부와 같이 살게 된다.
그런데 이 숙부는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고,
또 이 숙부의 절친한 친구가 바로 존 뉴턴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작사자)
존 뉴턴은 윌리엄 윌버포스의 개혁운동의 든든한 배후인물이 되어주었다.
또한 ‘클라팜’이라는 신앙공동체 운동에도 적극 도와주었다.
존 뉴턴은 예수를 믿기 전, 일찍이 노예무역선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자기도 커서 노예무역 일에 종사하면서, 많은 죄를 지었던 사람이다.
그는 이런 자기 과오를 뉘우치면서, 윌버포스의 ‘노예해방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존 웨슬리의 영향
존 웨슬리 1703-1791 (1738-귀국, 회심)
윌버포스 1759~1833
연대표를 보면,
웨슬리가 소천 할 때, 윌버포스가 약 32세 경이 된다.
같은 런던에 살면서, 윌버포스는 웨슬리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다.
특히 웨슬리는 소천하면서, <노예해방>을 유언으로
윌버포스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1791년 요한 웨슬리는 그가 죽기 사흘 전 윌버포스에게 편지를 띄워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스런 사업"을 위하여 그를 세우신 것을 확신시키고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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