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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말씀’이 ‘직접 음성’보다 더 확실 Charles Spurgeon

LNCK 2008. 6. 5. 15:17
 

◈‘기록된 말씀’이 ‘직접 음성’보다 더 확실하다          눅7:36~50         찰스 스펄전 

*출처 : 강단의 거성들 명설교 中 → 평안히 가라 (찰스 스펄전)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 7:50


여러분, 예수께서 여인에게 “평안히 가라!”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2천년 전, 그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을

오늘날 내게 하신 말씀으로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질문1 - 주님이 오늘날 제게 직접 말씀해 주시면 믿겠는데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도 그 여인에게처럼, 주님께서 제게 직접 오셔서

그분의 입술로 친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해 주신다면

그녀처럼 평안을 얻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육성이나 편지나 똑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 그대로 육신을 입으시고 당신 앞에 서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하시든,

그분의 성경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든 결국 그 효력은 똑같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제 육신의 아버지에게 어떤 말을 전해들을 때,

아버지를 대면해서 직접적으로 그 말을 듣던,

부친의 편지를 통해 그의 말을 전해 받든,

결국 제가 아버지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은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아들인 저는, 아버지께서 할 말이 있으시거든,

꼭 언덕 위에 있는 제 집으로 올라와서 직접 말씀하시라고 당부하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저는 아마 바보이겠지요.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 아버진 왜 편지로 사랑의 말을 전하세요?

그렇게 하니까 제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잖아요?

아버지, 다음부터는 직접 제게 오셔서 눈과 눈을 맞대고

제 귀에다 직접 음성으로 전달해 주세요. 부탁해요."


그러면 아버지는 십중팔구 "얘야, 왜 도대체 그러느냐?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릴 땐 안 그랬는데..."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도 그런 청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기록하신 말씀을 믿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직접 말씀하신 것만큼이나 확실하고 진실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질문2 - 그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날 제게 적용할 수 있나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는 갑니다만,

그럼에도 주님은 그녀를 향해서 <오직 그녀에게만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분이 나에게 직접 말씀으로 확신시켜 주시지 않는 이상, 글쎄요,

내가 그녀처럼 평안히 갈 수 있을까요?" 


▲말씀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하는 말씀을

혼잣말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를 더 들면, 주님께서 눅8장에서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쳐다보시며 하셨고,

그녀는 분명 그 말씀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확신을 주어야 할 대상이 오인되는 실수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본문 눅7장에서도, 다른 사람들도 방 안에 있었지만,

주님은 그 말을 바리새인 시몬(집 주인)에게 하신 것이 아니었잖아요?

물론 베드로나 요한을 향한 건 더더욱 아니구요.

그녀는 주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말씀이 분명 자신을 향한 것임을 자각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오직 그녀 한 사람만이 '평안히 떠났던' 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말씀 속에도 분명 단수를 지칭하는 단어가 쓰였잖아요?


오늘날도 말씀을 받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내적 확신’이기는 합니다. 거기엔 평안, 기쁨, 소망, 용기가 동반됩니다.


▲여러 사람 앞에 말씀하셔도, 제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 다시 비유를 들어 봅시다. 만약 제 아버지가 저와 제 형제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시다.

"얘들아, 난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꽤 많은 재산을 아껴서 모아 두었단다."


그런데 제가 이 말을 듣고선 아버지에게

"아버지, 전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하겠어요.

 

아버진 분명 절 제외시킨 다른 형제들에게 그 말씀을 하신 거죠?

전 아버지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왜 형제들과 자매들에게까지 그 말씀을 하시는 거죠?

콕 찍어서 저한테만 말씀하시지,

왜 두루뭉술하게 여러 사람 앞에서 말씀하셨냔 말입니다.

그래서 전 아버지가 보증하시는 말을 듣고서도, 안심이 안 된단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을 한다면, 저는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사람이겠습니까?

아버진 아마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혼자한테만 말씀하는 것보다

오히려 여러 형제에게 공언하는 것이 더 많은 신뢰를 형성하지 않을까요?


주님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대상으로 저를 지목해 단독적으로 말씀하시는 것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저를 다루시는 것 사이에는,

믿음에 관하여는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끝끝내 토를 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맞아요! 그런데 전 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 다수 사람 안에 제가 포함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전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람들 속에, 저도 속해 있는 건지 그게 궁금하단 말입니다."


친구여, 그건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성경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요3: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믿는지 혹은 믿지 않는 지는, 당신 자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당신이 그분을 믿는다면, 당신은 그분의 것이고,

그분이 하신 모든 약속 또한 당신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일반적인 법칙으로 내놓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모든 곳, 어느 장소 어느 시대에서든지 적용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을 믿읍시다. 주님이 거짓말 하시겠습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당신에게 믿음이 있다면,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안히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직접 듣지 못했더라도, 이것은 분명 진리입니다.

그분은 단지 직접 음성뿐만 아니라, 기록된 말씀으로 증거 하셨습니다.

직접 안 들린다고 해서, 못 믿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글로 씌어진 말이든, 직접 음성에 실어 내놓는 말이든

그 사람이 진실되다면 그의 말을 믿습니다.


▲만약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우리는 대부분 말보다는 글을 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음성은 발한 후 곧 사라지지만,

글로 기록된 말은 그보다 더 오래 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글은, 우리가 거듭거듭 읽을 수 있으므로, 더 나은 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밤에 당신에게 나타나

"네 죄는 용서되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보다

책으로 기록된 것을 거듭해서 읽는 것이 우리의 확신에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록된 문자가 일회성의 음성보다 더 낫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권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산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베드로는 하늘의 영광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후일 영감을 받아 성경을 쓸 때,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어(벧후1:19)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변화산에서 보고 들었던 일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테지만,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더 확신을 심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제 생애의 어느 순간, 주님을 직접 뵈옵고

그분이 제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경험이 있어서,

오늘 이 아침에 그 일을 다시 떠올린다면

제 가슴은 다시금 감동으로 벅차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만일 우울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가끔씩 그러하듯이 흑암의 세력이 제 영혼을 짓누르고 있다면,

저는 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혼잣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니가 보긴 뭘 봐? 잠시 정신이 이상해져서 헛것을 본 거겠지.

일시적인 정신착란이었던 거라구. 아무 것도 아니었어."


그러나 제가 말씀으로 확신을 얻었다고 합시다.

제 눈앞에 그 말씀(성경책)이 있는데, 제가 헛것을 본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저는 종종 성경의 행간에 손가락을 얹고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주여, 저는 주님이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책에 있는 이 말씀을 조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다른 어떤 것들에는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있으나, 이 성경만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제 혼에게 하셨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몸소 겪은 경험들이 진실임을 확신하는 만큼이나

이 책이 주님이 쓰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제게서 의심을 제거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제게 직접 나타나셔서 주님의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할지라도,

성경의 기록으로 약속하신 것보다 더한 구원의 확신을 주진 못했을 것임을

저는 잘 압니다."


여러분 기록된 말씀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믿고 있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확실하듯,

당신의 구원도 그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 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여전히 당신 앞에 서 있을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요3:36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10:9


이 약속에 관한 위의 말씀 중에는 "만약"이나 "그러나"같은 단어가 없습니다.

말씀에서 구원은 현재적이며,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며,

모든 경우에서도 확실한 것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걱정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진리를 믿고 안심하면 되는 것입니다.

(후략)

 

*위 설교문의 전반부 <생략된 부분>을 보시려면 클릭!  

*위 설교문의 후반부 <후략된 부분>을 보시려면 여기 클릭!  

 

▣ 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