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tig7O55h-Ag&feature=youtu.be
◈엘리사는 예수님의 예표 왕하4:1~44 인터넷설교 녹취
열왕기하에서 엘리사를 읽을 때,
우리는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예표)을 꼭 볼 수 있어야 한다.
◑1. 부족함을 채워주는 엘리사
▲가진 게 없는 사람보고 채워주라 하신다.
엘리사는, 가난한 과부의 빈 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워 주었다.
마치 예수님이 광야에서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신 것처럼, 엘리사도 그 가족을 먹였다.
예수님이 지치고 정신적인 메마름 속에 사는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신 것처럼,
엘리사도 사람들의 필요와 부족함을 채워주고 있다.
여러분, 엘리사를 가만히 살펴보시라.
가진 게 뭐가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빈털터리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엘리사를 보고,
가난한 과부를 도와주라니... 하나님도 무심하신 것 아닌가?
사도바울도 이렇게 고백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6:10
오늘 이 땅에 사는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엘리사처럼,
자기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항상 주위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들이다.
도리어 자기가 도움 받아야 할 형편에 있는, 엘리사 같은 빈털터리지만,
항상 주변의 사람들을 도우며 살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손, 빈털터리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마14:16
물질적인 필요는 기본이요,
그들의 정신적인 필요, 정서적인 필요, 영적인 필요들을
나눠주고 채워주며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본분이다.
많이 가져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나눠 주다보면,
거기에 필요한 자원들은 자연적/기적적으로 생기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과부의 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았다.
▲내가 엘리사가 되어야!
엘리야만 우리와 성정(본성)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약5:7참조
엘리사도 우리와 성정(본성)이 같은 사람이다.
‘엘리사는 특출한 사람이고, 나 같은 범인凡人과는 차원이 달라!’ - 변명이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엘리사를 본 받아 살 것을> 교훈하시는 것이다.
내 믿음이 엘리사 수준, 사도 바울의 수준까지 올라가야 하겠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고후6:10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고후5:7
오늘도 주님은 <나를 통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내가 오늘날 엘리사처럼 되는 것이다. 엘리사가 따로 있지 않다.
◑2. 남을 세우다보면, 자기가 세워진다.
▲철길 위를 걷는 지혜
저는 어릴 때, 철길 레일 위를 자주 걸어보았다.
혼자서 걸으면.. 몇 발자국 못 가서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그런데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으면.. 신기하게 넘어지지 않는다.
그 친구가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이,
동시에 내가 넘어지지 않는 길이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다.
내가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웃이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다 보면,
나도 꿋꿋이 서서 가게 된다.
▲작은 새가 노래한다. 큰 새는 노래를 못 부른다.
여러분, 세상에는 새들이 많고, 새들마다 자기 고유의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큰 새들은.. 목소리가 곱지 않다. 독수리, 솔개의 소리는 징그럽다.
그러나 아주 작은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카나리아, 종달새, 그 소리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힘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만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힘없고, 약하고, 작은 사람들이
그들이 불러주는 노래는 마치 카나리아의 노래 소리처럼 내 영혼에 울린다.
주변에 작은 사람들이 도와주는 그 도움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그런 작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
▲엘리사가 붙잡아준 과부 때문에, 엘리사의 인생은 든든히 세워졌다.
나를 향해 슬픔을 호소하고, 부족함을 호소하는 자들이 내미는 손을
거절하지 마시라!
그들의 내미는 손을 내가 붙잡아 줄 때,
철길처럼 미끄러지기 쉬운 이 험한 세상을,
그들과 함께 내가 모두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채워주는 그 과정을 통해,
내 인생도 성령의 기쁨과 은혜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3. 죽음을 직면하는 용기
▲십자가의 놀라운 예표
엘리사가 도와준 과부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된다.
그러나 엘리사는 도피하지 않고, 그의 죽음과 직면했다.
죽은 아이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맞대고,
아이의 몸에 자기 몸을 맞대어..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린다. 왕하4:32~37
이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으시고,
그 죽음을 직면하시고, 그것을 이기시고 부활 생명을 주시는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거기에 주님만 달리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십자가 위에, 주님과 맞닿아 있었다.
내 얼굴이 주님 얼굴에, 내 몸이 주님 몸에, 내 손이 주님 손에 맞닿아 있었다.
내 죄와 내 정욕으로 죽어있던 나에게
주님이 맞닿아 대신 죽으시고, 생명을 내게 불어넣어주셨다.
그래서 내 죽었던 영혼이, 과부의 아들처럼, 새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났다.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던 내 눈에, 주님의 눈이 맞닿아, 내 눈 열어주셨다.
저주와 악독을 퍼부으며 죽었던 내 입에, 주님의 입이 맞닿아, 내 입 열어주셨다.
그래서 용서하는 입, 찬양하는 입, 감사하는 입으로 다시 살아났다.
죄짓는 일에 재빠르던 내 발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맞닿은 내 발에 그 온기가 전달되어 살아났다.
이제 내 발도,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사용되는 발로 변화되었다.
오늘 예배드리는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이.. 예수님과 맞닿기 바란다.
여러분의 입과 손발이.. 예수님과 맞닿기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의 온기와 생기가 전이되어, 예수님 같은 눈, 입, 손발 되시기 바란다.
▲죽음의 고통을 직면하시라!
심리학의 대가 칼 융은
신경증 질환과 그것이 발전된 정신분열증, 신경쇠약 등 모든 정신병적 질환은
그 원인이 <정당한 고통을 회피한 대가>라고 지적했다.
어떤 고통을 피하고, 도망 다니면.. 그런 정신병적 질환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
죽음을 직면하고, 십자가를 직면해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직면해서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길이, 가장 쉬운 길이다.
당장은 죽는 것 같은 고통을 당하겠지만.. 주님의 은혜로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 체험이 있어야 한다.
◑4. 해독하는 사명자
▲복음의 가루
선지 생도들이 들호박을 따서 큰 솥에 넣고 국을 끓였다.
그런데 독이 온 솥에 퍼져서, 못 먹게 되자
엘리사는 어떤 가루를 국에 넣어서, 그 독을 제거했다. 왕하4:39~41
그래서 모든 제자들이 맛있게 그 국을 먹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독들을 볼 수 있다.
절망의 독, 비난의 독, 쓴뿌리의 독, 꼬인 환경의 독 등이 있다.
지금 여러분 중에 어떤 이도, 지난 주간에 친구가 내뱉는 독한 말을 듣고
마치 독이 온 몸에 퍼진 것처럼.. 기진맥진 지쳐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엘리사처럼,
우리 주변의 모든 독들을 제거하는, 생명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한다.
엘리사가 솥에 뿌린 가루는, 신약적으로 ‘복음’을 의미한다.
복음의 말씀이 들어가는 곳에, 모든 독들이 사라지고 해독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해독 역사는 주님의 약속
우리 가정/교회 공동체 속에도 자칫 방심하면 독이 자꾸 퍼질 수 있다.
미움의 독, 불신의 독, 염려의 독이 얼마든지 퍼질 수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16:17~18
입으로 마시는 독보다 더 무서운 독은, 우리 마음에 퍼지는 독이다.
어떤 사람의 독한 말을 듣고 나를 낙심하게 만드는 독이다.
그러나 어떤 독이든지
믿는 자에게는 제거하는 표적이 뒤따른다고 주님이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독이 퍼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위 말씀을 외우고, 주장하며, 기도하고 선포해서,
독을 씻어내야 한다.
▲냉면에 무를 같이 먹는 이유
냉면이나 막국수의 재료인 메밀의 껍질에는 원래 독성이 조금 있다고 한다.
메밀의 <껍질>에는 살리실아민과 벤질아민이라는 유해성분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을 해독시켜 주는 음식이 무다.
무에는 비타민 C와 효소가 풍부하여 이런 성분을 제독하기에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메밀국수를 먹을 때엔 무즙과 같이 먹는다.
이 냉면을 먹을 때마다, 크리스천의 사명을 새롭게 깨닫는다.
어떤 독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제거하고,
도리어 그것을 영양식품으로 만드는...
엘리사가 바로 그랬다.
독이 퍼진 국을... 먹는 국으로 바꾸어 버렸다.
▲어떤 독한 말을 듣더라도..
우리는 그 독을 도리어 비타민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엘리사가 그 시범을 잘 보여 주었다.
가정의 독, 교회의 독, 사회의 독을 제거하는 생명의 역사가
오늘날 <엘리사와 같은 여러분을 통해> 놀랍게 나타나게 되기를 축원드린다.
<08.08.24. 인터넷설교에서 녹취 *원제목 : 생명의 역사 [주제별 분류]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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