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커 보이면 주님이 안 보인다 요3:26~30 설교편집
◑하나님이 안 보이는 이유
어렸을 적 커다란 바위처럼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던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가 다 큰 어른이 된 후 바라봤을 때는
초라하고, 작고,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의 아버지로 보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너무 잘 나고 커지면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눈에도 안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나를 통해, 그들은 예수님을 못 봅니다.
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겸손해지고,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그 위대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왕이 된 후 인생의 눈높이가 높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자기자신만 커 보이는 세상을 늘 보고 살았습니다.
하루는, 아말렉을 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울은 자신이 왕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그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지키시려는 깊은 마음 때문에 아말렉을 치라 명령하셨는데
사울 왕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너무 높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은 보지 않고 세상의 좋은 것에만 시선이 가서
모두 탈취하려고만 급급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진멸하려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옵니다.
또 아말렉의 소유물들도 끌고 왔습니다.
무엇인가 세상의 것에 집착하면, 절망의 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또 사울은 잘못을 회개하기는커녕 핑계까지 댑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그 모든 것이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사울이 집착한 성공과 명예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인생의 키높이와 마음을 모두 낮춰야
하나님을 보게 되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성도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08.09.21. 아프리카 어느 한인교회 설교 중 발췌
◑들러리 세례요한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3:26
▲세례 요한이 ‘세례’에 대해 도전 받았는데...
‘세례’만큼은 세례요한이 전문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이 ‘세례자 요한’으로 불릴 만큼!
그런데 자기 전문분야인 ‘세례’에 대해,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 다 그에게로 몰려갔습니다.
자기 성도들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래도 세례 요한은 자유했습니다. 기쁨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3:29~30
▲사람이 드러나면 은혜가 사라집니다.
설교를 해도.. 설교자가 드러나는 설교가 있습니다.
간증을 해도.. 간증자가 드러나는 간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 압니다.
말은 “주님, 주님을 높입니다!” 해도
자기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다 느낍니다.
하물며 주님은 어떠실까요?
그런 사람의 특징은 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주님이 드러날 때, 그 속에서 은혜와 능력이 역사하는데,
주님은 겉포장이고, 결국에 자기가 드러나면... 거기엔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영광에 집착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이름에 집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굉장히 피곤하게 살며,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봉사합니다.
받을 필요가 없는 피곤함, 스트레스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좀 알아준다 싶으면.. 기분이 좋고,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 싶으면... 마음이 눌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어떤 목사님과 전화 통화를 하는데, 대뜸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 그 교회가, 목사님네 교회보다 더 많이 모일걸요?”
순간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왜 꼭 그런 식으로 표현하시나...’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게 내가 섭섭해야 할 일인가..? 그 교회가 많이 모이든지 말든지...
하나님께서 그 교회로 통해서 하실 일이 있으실 것이고,
또한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으실 것인데,
그런 말에, 왜 내 감정이 자극되었을까?, 생선가시처럼 탁 걸렸을까?
나 스스로에게 나도 모르는 비교의식이 있었다는 것일까?’ (없었다)
이렇게 내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그런 순간적인 섭섭한 마음을 품었던 것을, 툭툭 다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선교센터가 떠내려 가고 난 다음에 깨닫다
남미에서 부족 선교를 하던 (외국)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 년 동안 모금하고, 온갖 애를 써서 선교센터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사 막바지에 이르러서, 갑자기 예전에 없었던 큰 비가 내렸습니다.
이어서 강물이 범람하고 홍수가 나서,
건축이 거의 다 되었던 선교센터가, 그만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버렸습니다.
수 년 동안의 수고와, 땀과, 눈물의 결과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선교사는 망연자실해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 때 자기 마음속에 세미한 하나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정녕 나를 믿느냐?’
선교사는 자세를 고치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는 연이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심은 자도 하나님이시고 거두는 자도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나서 눈을 떠 보니
선교센터는 다 떠내려가서, 텅 빈 공터만 남았지만
대신에 거기에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자기 영광을 부인하고 산다고 했지만,
그렇게 허탈해 한 것을 보면,
모든 것이 자기의 업적인 것처럼 여기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나의 이름은 다 떠내려가도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빛나게 해 주십시오!”
그때부터,
선교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며 사역했다고 합니다.
후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남미 선교사역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게 해 주셨다고 합니다.
▲마치는 말, <내 업적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드러나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성취해 놓은 것, 그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업적에서 해방됩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가져가시더라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영광 받으시옵소서!” 하면 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앞으로 더욱 소중하게 쓰실 것입니다.
<08.09.14. 중국 어느 한인교회 설교 중 발췌
▲관련예화 : 스펄전의 설교가 위대했던 이유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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