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둘을 선택하신 기준은? 눅6:12~16 09.05.03.설교스크랩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눅6:12~13
▲예수님 사역의 초점 또는 대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 대적하고, 그들을 교정하는 것을
사역의 주 목적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필요한 경우 그들의 잘못됨을 지적하셨지만,
예수님 사역의 주 목적은, 12제자들을 세워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적 대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대안으로 예수님은 12사도들을 세우시기 위해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12명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선택 ... 과연 잘 된 선택입니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경스럽고 불신앙적으로 보입니다만
예수님이 밤샘기도 하시고, 하나님 응답을 받고 선택하신 12제자들을
인간적 시각으로 보면,
선택이 썩 잘 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12제자들의 행적을 한 번 보십시오.
(가끔 잘 한 적도 있었지만) 거의 유치한/미숙한 행동으로 일관했습니다.
-서로 누가 더 크냐며 다투는가 하면
-풍랑이는 바다에서 예수님을 모시고도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 어머니를 통해서 예수님께 ‘인사청탁’을 넣는가 하면
-믿음이 없어서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막9:19, 16:14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 다 도망갔습니다.
3년의 훈련과정을, 그것도 합숙하며 집중훈련을 마치고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그들은 한때 자기들이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분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더욱이 한 사람은 스승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려는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영화 <스파르타쿠스>에 보면,
로마군이 반란군을 다 잡았할 때, '스파르타쿠스 한 명만 내어주면, 나머지는 다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때 반란군 노예들이 너도 나도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라고 자처하고 나섭니다.
그래서 진짜 스파르타쿠스를 보호합니다. ... 이런 것과 너무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역은.. 명백한 실패로 보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애초에 예수님이 12제자를 <선택하신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뭘 보고 그 12명을 특별히 ‘사도’로 선택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들의 <지식>이나 <가문>을 보고 뽑은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면 충성심? ... 나중에 뿔뿔이 다 도망간 것을 볼 때, 이것도 아니고..
그들의 용기? ... 그것도 아닌 것 같고
‘....’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선뜻 <그 기준>이 뭐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훈1. 그 기준은 <오직 은혜>였습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다른 대답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차원의 <은혜>가
바로 선택의 기준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인간적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12사람 중 오직 가룟 유다 한 명만 빼고
나중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안에서 응답해서 살아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날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 은혜에.. 깊이 감사와 헌신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들이 사도가 되기로 만세 전에 만약에 예정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도 ‘오직 은혜’입니다.
그러나 ‘오직 선택’, ‘오직 은혜’만 믿고 있다가는 큰 일 납니다.↓
▲교훈2. 그렇다면 가룟 유다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사람도, 밤샘기도해서 응답 받아서 선택한 제자가 맞습니까?
우리는 ‘맞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 그 사람도 예수님의 밤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룟 유다의 배신은
하나님의 유도하심과 계획하심이 아니라
오직 가룟 유다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요6:70참조
이 점은 우리를 잔뜩 긴장시킵니다.
가룟 유다 자신조차도
마지막 순간이 될 때까지도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 편에서는.. 완전히 확정적이고, 영원한 것이 틀림없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믿음이 항상 확보된 티켓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거룩한 긴장감이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받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래 두 상반되는 구절을, 치우치지 말고, 균형 있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히6:4~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8
이 두 가지 말씀을 놓고 생각해 볼 때,
현실에서 내 시각으로 볼 때 '정말 아닌 것 같은 사람'에게도 요10:28절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하며
현실에서 교회를 10~30년 이상 다니고도 전혀 변화/성장이 없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히6:4~8절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롬1:17, 요3:16절의 이 절대 불변의 명제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마7:23절과 조화시켜서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의 한 쪽만 고집하다가, 나중에 심판대에서 예수님이 반대쪽 말씀을 들고 나오시면 어찌될까요?
요한3서에 나오는 디오드레베도, 세례도 받았고, 교회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요삼1:9
그러나 사도요한의 엄중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 각자도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 더 읽으실 분 .........................................
▲복음서는 12 숫자를 강조하지만 누가복음은 12라는 숫자를 더 부각한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에피소드가
예수님이 12세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의 율법사들과 대화하신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12년 동안 혈루병에 걸린 여인을 치료해 주셨다. 눅8:43 (이 사건은 마, 막, 눅에 기록)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셨는데, 그 딸의 나이는 12살이었다. 눅8:42 (이 사건도 마, 막, 눅에 기록)
-예수님께서 5병2어의 기적 후에 남은 것을 12광주리에 거두셨다. (4복음서 모두 기록)
-예수님은 12제자를 뽑으셨다. (마, 막, 눅에 기록)
이렇게 '12'를 강조하는 것은, 구약의 12지파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숫자)처럼
신약에서도 12는 새로운 백성 공동체를 대표하는 숫자라는 것이다.
마지막 요한계시록에 14만4천명이 나오는데, 12 X 12 X 1000이다.
이것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와, 1000(10 X 10 X 10, 10은 滿數)이다.
즉 이것은 '구원받을 백성들의 충만한 수'를 의미한다. ▣ 리더쉽,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