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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8장, 벧엘의 하나님

LNCK 2009. 6. 8. 17:15

75 벧엘의 하나님 (창28:10~22) (tistory.com)

◈벧엘의 하나님        창28장

 

김성수 목사 창세기 75강

 

▲성경은 논리적이면서도, 논리학의 잣대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책입니다.

 

성경은 역사성과 동시에 미래의 구속사 안에서 일어날 어떤 일들을

묵시로 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논리로 설명이 되지 않지만, 믿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종종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도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려하면

도무지 성경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를 간파하기가 힘듭니다.

 

성경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십자가,

그리고 그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불가능함으로 결론이 나야 하는데

오늘 본문 같은 경우는 논리의 잣대로만 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불가능함을 찾아내기가 힘이 듭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보실 때에,

항상 그 속에서 위의 네 가지(위 밑줄)를 염두에 두시고 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지요.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뒤

형의 복수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알거지가 되어서 도망을 하고 있습니다.

참 처량하지요?

 

‘젊은 나이에 그럴 수도 있지 뭐’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때 야곱의 나이가 일흔 일곱이었습니다. 야곱이 바로 왕을 만났을 때가 백 삼십 세였지요?

 

그 때 요셉의 나이는 서른아홉입니다.

왜냐면 그가 서른 살에 총리가 되어서 칠년 풍년을 지냈고

이 년의 흉년을 지났을 때 야곱이 애굽으로 와서 바로를 알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야곱과 요셉의 나이차를 계산해 보면, 야곱이 요셉을 91세에 낳은 것이지요?

*130-39=91

 

그런데 야곱이 요셉을 낳은 것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을 지낸 후이므로

91에서 14를 빼면 77이 되는 것입니다.

77살이면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창26장에 보면, 형 에서는 헷 족속의 딸 유딧과 바스맛이라는 여자들과 혼인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77세에 홀로 타지로 도망을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가나안에서 추방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에게 축복을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77세의 나이에 외삼촌 집에 가서 머슴살이를 하며

수없이 사기를 당하고 20년간 죽도록 고생을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야곱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답은 한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는 영생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야곱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야곱의 벧엘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오늘 본문에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오늘 본문 안에 숨어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십자가를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창28장을 보면, 하나님은 가나안을 떠나고 있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무조건적인 축복을 하십니다.

 

그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그를 쫓아가시면서 그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 축복의 내용을 한 번 보겠습니다.

 

(창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형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중도에 고단하여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와 그의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며,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반드시 야곱을 벧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언약의 핵심은 ‘벧엘로 돌아오게 하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야곱이 만일 그렇게 해 주신다면

자기가 하나님에게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창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의 서원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것이고

-그곳에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는 것이고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정말 그렇게 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없습니다.

나중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히려 이 야곱의 서원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다 지켜내십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을 곡해하고 있었음이,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 저러한 것을 해주시면

나도 이러 저러한 것으로 보답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될 하나님의 자손들과

그들에게 주어지게 될 하늘의 땅을 약속하시는 것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입을 통하여 성경의 독자인 교회에게 그 축복의 결과까지도

친절하게 설명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서원은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 내실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릴 수 있는 것처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명명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그 곳을 하나님의 집이라 하느냐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른 말로 당신의 백성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시고

그의 삶속에 간섭하시며 임재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그 곳을 벧엘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야곱이 ‘아, 여기에 하나님이 계셨구나’하고 그 곳 이름을 벧엘로 명명합니다.

 

그러니까 벧엘, 하나님의 집은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을 어떻게 곡해했든지 간에

당신의 축복을 기필코 내리시기 위해 당신의 백성의 삶에 쉬지 않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그는 벧엘이라 한 것입니다.

 

따라서 ‘벧엘로 돌아가라’는 말은 언약을 완성하시기 위해 35:1

당신의 백성의 삶에 간섭하시며 임재하시는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그분께 순종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성도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삶의 긴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임을 깨닫고

그 자리로 돌아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예배하는 자로 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이며, 성도의 완성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내가 너를 이곳(벧엘)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시는 것이며, 그의 삶 속에서 벧엘로의 행진을 촉구하고 채근하시는 것입니다.

 

(창31: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꾀를 좇아 외삼촌 집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있는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가라 하십니다.

 

자신의 힘과 지혜로 세상의 힘을 얻어내어 스스로를 자랑하고자 하는 삶에서

돌이켜 당신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당신의 백성들을 절대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항복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야곱은 그 길로 외삼촌 집을 떠납니다.

야곱이 왜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라반의 집을 떠났을까요?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열 번이나 속으면서 죽도록 고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이 세겜에서 머물며 세겜 족장과의 사건을 호되게 치르고 있을 때

그 때 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역시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예배를 드리라고 채근하십니다. (창35:1)

 

하나님은 그렇게 창세전에 복을 주어 당신의 백성을 삼으신 당신의 백성들을

이 역사와 인생 속에 집어넣으셔서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힘과 꾀로 행복에 도달하려 하는 자들의 고단함과 고통스러움을 경험케 하시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순종하고 예배하는 자의 삶을 살도록

당신의 백성들을 성숙시키고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호12:1-6 참조)

 

그렇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던 죄인이 벧엘로 돌아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

바로 십자가(얍복강)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행보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는 얍복강 사건이 삽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간 정리를 하면 이런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20년간을 죽도록 고생하면서

큰 재산을 얻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외삼촌 라반을 사용하셔서 야곱을 열 번이나 속이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야곱에게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야곱은 큰 재산과 하인들과 자녀들을 이끌고 벧엘로 향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는 자였고,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임기응변과 권모술수를 언제든지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러한 옛 야곱을 죽여 버리시고

새로운 야곱, 즉 이스라엘로 새롭게 창조해 내신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축복을 해달라고 조른 것은

그가 20여 년 간 성취해 낸 부와 풍요가, 참 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는, 그러한 세상의 힘이 자신의 복인 줄 알았는데

환도 뼈를 맞고 야곱의 자아가 죽게 되자, 진짜 복에 대한 갈망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환도 뼈가 위골 되자마자 하나님께 매달려

나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못 가십니다하고 졸랐던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십니다. 새로운 이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되어

벧엘로 돌아가는 것을 참 복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의 복은 우리의 소유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와 신분이 새롭게 바뀌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로 말미암게 된다는 것이

야곱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서원을 통해서도 십자가를 보여주십니다.

야곱의 첫 번째 서원이 뭐였지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거였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자기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이라 불러주겠다는

건방진 서원이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불러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그가 성전을 짓겠다고 서원했지요? 정말 그렇게 했나요?

아니요.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드심으로 야곱 자신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지으신 것입니다.

 

야곱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참 십일조이신 예수를 죽이시고

그분을 받으심으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끝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해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사랑하시기로 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구하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내어 놓으신 당신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그 은혜의 수혜자의 자격이나 조건이나 열심을 근거하지 않으시고

순전히 은혜로 당신의 언약을 지켜내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야곱과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야곱이 뭘 잘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거기에 십자가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꿈으로 그 십자가를 보여줍니다.

 

언약을 받은 야곱 위로 사다리가 내려지고 천사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림은

‘언약의 당사자는 하늘과 땅의 연결 통로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요한복음 강해를 하면서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언약의 원형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맺어진 피의 언약이, 바로 모든 언약의 원형이라 했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야곱의 사다리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늘과 땅의 사다리로 말미암아

죄인 야곱과 하늘이 서로 화해를 하고 소통을 하게 될 것임을

미리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약으로 가서 그 그림이 어떻게 예수님과 이어지는지 볼까요?

오늘 본문이 예수님에 의해 인용이 되는데 거기가 어디지요?

요한복음 1장의 나다나엘과의 대화에서입니다.

 

(요1:50~5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인자 위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 내용을 오늘 본문 12절과 비교해 보자고요.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위 두 구절을 비교하면, 창28장의 사닥다리는

요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라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야곱의 사닥다리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늘과 땅의 사닥다리로 말미암아 연결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죠.

 

주님은 지금 나다나엘에게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게 되는

하나님과 땅과의 화해 장면을 그리고 계신 것입니다.

구원은 그런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설명하시면서, 오늘 본문의 야곱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에게 창세기 28장의 주해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너희의 조상으로 그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대역으로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라’고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야곱의 사다리 그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게 되는 하늘과 땅의 화해를 모형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과 같이 불가능한 자가 벧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늘과 야곱을 연결하는 사다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예언적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과의 화해의 자리, 그 하나님의 열심 앞에 납작 엎드려

그분께 순종하고 그 분을 예배하는 벧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사다리가 되셔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벧엘로 돌아간 자들은 ‘자기’라는 우상을 상수리나무 아래 파묻습니다.

 

(창35:2~4)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우여 곡절 끝에 벧엘로 돌아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하는 자로 서게 된 야곱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그동안 하나님 말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소지하고 있던

우상들을 모두 상수리나무 아래에다 파묻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 벧엘로 돌아오신 분들입니다.

아니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집, 벧엘이 되신 분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나’라는 우상을 파묻는 삶을 사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부인이 될 때, 용서가 나오고, 사랑이 나오고, 참 섬김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용서하세요. 섬겨주세요.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자리,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하는 자리,

벧엘의 자리에 선 사람들은 그 분의 말을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십시다.

용서하고, 섬겨주고, 인내하며 벧엘의 삶을 사십시다.

자기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용서하세요. 그리고 사랑해 주세요.

 

우리는 자기의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를 양자 삼아 결국 제자로 길러낸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에는 감동을 받으면서도 자기에게 돈 몇 푼 빚진 사람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아닙니다. 사랑합시다.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일에 감격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사랑의 원자탄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