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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찬양을 같은 양으로 / 케네스 해긴

LNCK 2010. 4. 9. 02:54

◈기도와 찬양을 같은 양으로    행16:25~26    -케네스 해긴/츨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승리의 열쇠다!

 

사도행전16:25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부르자 죄수들이 다 듣더라”

 

저는 이 구절에서 '밤중'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한밤중의 시간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한편 이 밤중이라는 단어가, 비유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밤중의 어두운 시간이, 때로는 여러분의 삶에 가장 어두운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큰 시험과 어려움을 겪는.. 때로 출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시간입니다.

 

아시다시피 바울과 실라는 채찍질당하여, 그들의 등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의 가장 깊숙한 곳에 쳐박힘을 당하고, 그들의 발은 묶여 있었습니다.

두 사도들은 가장 불편한 상황에 쳐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찬양을 입에 담을 수 있었겠습니까?

-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해서도, 뭔가 하실 일이 있으시다는 것을

  그 절대적 사랑과 전능하신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쓸데없고 불필요한 것이라면, 왜 허락하셨겠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행한 일을 하십시오.

한밤중에 그들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불려드렸고

옆의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그 말은 사도들이 한밤중에 큰소리로 기도하고 찬양을 불렀다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드릴 것은 죄수들만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그들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내려오셔서

그 감옥을 흔드셔서 모든 감옥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족쇄가 풀려졌습니다. 

간수는 모든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 그는 검으로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16:26~32절에서 보듯, 하나님께 영광,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자 이제 이점이 바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해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도했을 때 응답이 온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 역할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홀로만 가지고는 응답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들을 놀라게 할 수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의 위 구절에서 보듯이 기도만으로 

바울과 실라에게 응답이 오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주지할 사실은, 하나님의 응답은 그들이 하나님께 찬양드렸을 때에 왔던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는 만약 여러분들이 한 문제가지고 했던 기도를 반복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응답과 승리를 가져 올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응답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온다.

 

1945년 3월에 저(케네스 헤긴)는 텍사스 주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교회목사님과 사모님과 저는 그 교회 교인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점심초대한 집의 부인이, 8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그녀는 천식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주변대도시의 병원에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 병원에서는 다른 주의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니

결국은 달라스에 있는 세계적인 전문의에게 옮겨가야 했습니다.

 

“제 남편은 석유회사의 중역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제병치레로 1만$이나 소비했는데도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1945년경, 그 당시에 1만$이면 엄청난 비용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의 목사님들이 저희교회에 오셔서 부흥집회를 여셨습니다.

저는 신유기도를 하실 때마다, 다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신유능력이 강하셨던 신유 부흥사, 레이몬드 리치형제님도

인근에 오셔서 천막집회를 하시기에, 제가 가서 신유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에게 기도하다가 중단하고, 저를 쳐다보면서 묻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님은 여러 번 기도를 하시고 받으셨죠?’

‘네’

 

리치형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매님을 위해 기도를 안 하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시키는 일을 하시겠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쉽다면 하겠습니다.’

 

그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당부하고 싶은 일은 쉽습니다. 병문제가 생각될 때마다

하나님이 치유해주심을 찬양하십시오.’

 

제가 대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치유 받지 못했는데요?’

제 말의 의미는 ‘제가 응답받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까?

저는 아직 병을 고침 받지도 못했어요.’ 이런 뜻이었습니다.

 

리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17에서 하나님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약함과

우리의 질병을 대신 담당하셨다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전서 2:24에서는

그분이 채찍을 맞음으로 당신은 나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약속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내가 치료 받은 줄을 믿고, 찬양을 드리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후로 기도를 → 찬양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성경말씀에 따르면 저는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주님을 찬양하는데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남편을 직장에 보내면서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도.. 하나님을 입으로 찬양했습니다.

 

저는 침대를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병문제로 염려될 때마다, 저는 말씀(마8:17, 벧전2:24)을 붙잡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천식의 통증이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남편이 대답하길, ‘한 30일이 됐어.’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천식으로 인한 통증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신유집회가 있었을 때마다,

모든 신유전도자들에게 기도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치유응답은, 그녀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났던 것입니다!

 

 

◑저는 1937년에 모 형제에게서 치유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는 젊은 독신으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었는데,

사랑스러운 자매를 자신의 집회에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사귀다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부흥전도자 였고,

그자매는 아름다운 찬양가수로 그 형제의 사역에 일조했습니다.

 

그들 부부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연속해서 부흥집회를 열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그 형제가 결핵에 걸렸음을 발견했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서 결핵은

그 당시에 사망사유 중에 제일 높은 질병이었습니다.

그 형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집회를 열 때마다, 마지막 날 밤집회에서는 모인 사람들에게

제가 결핵에 걸려 있음을 알리고,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날 때마다 기도를 해주겠다고 말은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기도를 합치면, 어마어마한 시간을 이 형제를 위해 기도해준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병이 악화만 되어갔습니다.

 

결국은 계속해서 집회를 인도할 수가 없어서

그는 장인의 시골농장으로 떠나 죽음을 맞기로 했습니다.

 

이형제는 폐에 출혈이 생겨서,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저에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전 침대에 누워서도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약해져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죽음에 가까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침대시트를 덮어줘야 했었고

그저 저는 머리만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인이 농장 뒤쪽에서 쟁기를 갈고 있었고,

제 아내와 장모님은 집 뒤에서 손으로 세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머리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습니다. 저는 집에서 400미터밖에 있는

숲속의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에게 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큼의 힘만 지금 주신다면

일어나서 저 숲속의 나무있는 데로 가서

제가 병 고침을 받든지/죽든지 할 때까지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거기서 죽든지/아니면 병고침 받길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침대에서 일어나, 그 숲속까지 간신히 걸어갔습니다.

거기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포기하고 땅바닥에 쓰러지게 됐습니다.

 

저는 주님께 속삭일만한 힘도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힘이 충분히 생길 때, 기도를 시작해야지.

내가 죽든지/낫든지 할 때까지 결사적으로 기도해야지.’

 

제가 거기에 누워 있는 동안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기도만으로 응답받는다면, 지금쯤 나는 이미 나았어야 될 것인데,

왜냐하면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를 위해 기도해줬잖아.’

 

그래서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여기 누워서 내가 죽든지 낫든지 할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너무 힘이 없어 모든 사력을 다해 속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이것을 무슨 주문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간절한 마음입니다./주)

 

두시간반동안 그렇게 하자 드디어 나는 발로 일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고 외칠 수 있게 됐습니다.

너무나 큰소리로 찬양하여 3킬로미터밖에 있는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병고침을 완전히 받았습니다.”

 

아시겠어요? 여러분, 승리와 응답은 그가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도의 능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뭐가 부족한지 알겠습니까?

 

응답은

-바울과 실라와

-천식에 걸렸던 부인과

-결핵에 걸렸던 형제의 경우처럼

무두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나타난 것입니다.

 

 

◑기도와 찬양에 똑 같은 시간을 분배하시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는 많이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찬양을 하는지요?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뭔가를 해주시기를 구합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똑 같은 시간을 나눠서

기도와 그분께 찬양 드리면서 주님과 교제를 갖는다면,

우리의 삶속에서 강력한 그분의 능력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이미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그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때에 왔던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오순절신앙잡지에서 읽은, 한 여선교사의 치유간증입니다.

그녀는 천연두백신이 나오기 수년전에, 천연두에서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의사는 천연두가 전염병이라

그녀를 격리하였습니다.

의사는 전염시키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여선교사님이 혼자 따로 격리되어 있었을 때

그녀는 기도하기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답니다.

 

환상 속에서 그녀는 대칭저울을 보았습니다.

대칭저울의 한쪽은 “기도”라고 명칭되어 있었고

그쪽은 꽉차 무게가 실려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고,

다른쪽은 “찬양”이라고 명칭되어 있었는데

그 안은 조금만 채워져 있어서, 허공에 솟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시길,

‘너의 찬양의양이 기도의 양과 동등하게 될 때에 너는 병고침 받을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틀 낮과 밤으로 하나님을 찬양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온전히 치유 받았습니다!

천연두의 징후는 그녀가 기도한만큼 찬양했을 때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우리는 예배/경배의 자세를 갖는 것에 시간을 두지 않기에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잃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을 섬기며 그분의 음성을 기다리는 것

그분에게서 응답을 받는 것에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실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찬양은 간절히 임재를 기다림입니다.)

 

주님께 우리의 목소리 높여 찬양 드리는 것을 시작한다면,

그분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의 삶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수년전에 오순절교회의 감독중의 한분이

찬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을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밤중에, 교인 중에, 자기 아이가 고열이 있고 경련이 있어서

와서 기도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젊은 목사님과 사모님은, 같이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러 갔답니다.

 

가보니, 벌써 여러 명의 교인들이,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러 그 집에 와 있었고,

그때 자기만 목회자였기에, 다들 자기만 쳐다보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고열이 나는 아이에게 기름을 붓고(미국 오순절 전통. 올리브 같은 기름)

안수하고 기도하고 병마귀를 꾸짖었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별로 차도가 없었답니다.

 

그러자 잠시 후에 사모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사람씩 서서히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을 드렸답니다.

그러자 그 경련이 멈췄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들이 서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는데

다시 아이가 경련을 일으켰답니다.

그들은 다시 반복하여 기름 붓고, 안수하고 기도하고 마귀를 쫓았답니다.

그리고나서 사모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답니다.

 

모두가 찬양에 동참했답니다.

그러자, 경련이 멈추고 다시 생기지 않았답니다!

 

여기서도 보시다시피 응답은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위기에서야 성령께서 움직이실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찬양’을 무슨 신통한 주문처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찬양을 통해.. 주님의 임재가 임한 것입니다.

주문을 외듯이 찬양하면.. 주님의 임재가 임하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의 임재’만 임하면.. 모든 질병이 다 고쳐진다.. 이것도 아닙니다.

많은 질병이 고쳐지지만,

어떤 질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도 있습니다.

성경에, 팔 하나를 잘라 내버려도, 천국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님의 성품을 찬양하는 것이지,

무슨 내 목적/기도응답을 꼭 이루는 방편으로, 찬양하는 것은 안 됩니다.

 

꼭 기도30분, 찬양30분.. 이렇게 어떤 시간의 양을 맞추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기도시간에 찬양과 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내 소원 간구’를 위주로 기도하는 사람은.. 찬양을 거의 안 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교제와 동행’를 위주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시간에 찬양을 많이 하게 됩니다.

 

찬양이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그대로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부분도 ‘찬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에도

그가 꼭 50:50으로 기도와 찬양을 균형 맞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의 기도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많은 찬양을.. 기도시간에 드린 것을 봅니다.

 

윗 글은,

‘찬양’마저도, 내가 원하는 기도응답을 받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수단/잔꾀로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어떠하심/하나님의 성품/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다보면                     ▣ 기 도           

뜻밖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다.. 는 식으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