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해야할 우상은 내 안에 있다. 겔6 :1~7, 마5:43-48 06.02.19.설교스크랩, 축약
▲우리는 오늘 ‘현대판 우상을 타파하자’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아마도, 이 제목을 보고는, 제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들을 박멸하자"고
말씀드릴 것을 기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읽은 에스겔 6장에서 우리는 동일한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우상 숭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마다, 계곡마다 산당과 번제단을 만들어놓고,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가 소원하는 대로 잘 응답해 주시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소원하는 대로 즉각 응답해 줄 다른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대체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은 ‘우상을 타파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해하면,
이것이 <종교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파괴하라고 명령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역에 침입하여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을 자세히 살펴서,
우리가 섬기고 있는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은 언제나 '우리의' 우상 숭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을 타파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영역에 침입하여, 물리적 실력을 행사하여
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왜 우상 숭배를 이렇게도 혐오하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출 20:5)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인간이 섬길만한 대상 중에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고 자유케 하며 복되게 하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도, 인간의 섬김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인간은 그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다른 영적 존재이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 인간보다 작은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섬기는 순간 속박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보다 크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불상 훼손 사건이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반대로 십자가 훼손 사건도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사사기에 기드온이, 우상을 제거한 뒤에
하나님께 큰 용사로 쓰임 받은 대목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기독교 신자는.. 그래야 잘 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상 훼손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봅니다.
(기드온이 부숴버린 우상은, 자기 집안에 있는 우상이었습니다.
또한 때때로 이스라엘이 우상을 척결했을 때가 있었는데, 자기 나라 안의 우상이었습니다.
물론 신약적으로, 우상은, 어떤 형상이 아니라, 보다 정신적인 것이지만요)
제가 불상 훼손 사건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그 일을 행한 분들은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기독교의 세력을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그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선교의 길은 더욱 막혀 버렸습니다.
그 행동을 보고 "아, 기독교가 참된 종교구나!"라고 깨닫고
마음을 고쳐먹을 사람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오히려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 않겠습니까!
선교의 출발점은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내 신앙을 참되게 회복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하나님을 드러내 보일 때,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내 종교에 관심을 보일 것이고,
때가 되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우상을 제거하고 참된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덮어놓고 다른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파괴시킨다고 해서
선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선교를 막는 일이 됩니다.
▲선교의 목적은 기독교의 세력을 확장하자는 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해외 선교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제 마음에 석연치 않은 느낌이 일 때가 있습니다.
해외 선교에 대한 논의가 마치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세력 다툼'처럼
진행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겸손히 나의 삶과 믿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타파하여
참된 신앙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어느 기독교 저널에서, 매우 엄격한 이슬람 지역에서 사역을 하는
데이빗 쉥크 (David Shenk)의 대담을 읽었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그들을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랑과 낮아짐의 진리를 나타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지역의 단체장이 그를 사무실로 불렀답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이슬람을 떠나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당장 모든 사역을 중지하지 않으면 중대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데이빗 쉥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내가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만일 이것이 문제라면 내일이라도 사무실의 문을 닫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목회와 신학', 2006년 2월호, 177쪽).
그 단체장은 이 대답에 할 말을 잃고 그냥 일을 지속하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방문했던 방글라데시 개발 협회(KDAB)도
역시 이와 같은 정신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의 우선적인 목적은 모슬렘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즉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정성들여 할 뿐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자신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하나님을 만나야만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에,
하나님께서 거기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섬기는 것뿐이었습니다.
▲참된 선교는 결코 다른 종교를 원수로 두고
그것을 박멸하려는 열심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선교는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뿐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선교의 결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선교의 사역을 방해합니다.
저는 방글라데시에 가서야 비로소,
지난 수 세기 동안의 잘못된 선교 활동으로 인해
모슬렘들이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지독하게 증오하고 의심하고 경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문제가, 내 안에 있는 우상은 그대로 두고
다른 사람이 섬기는 우상만을 파괴하려 했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분이 진정으로 참된 하나님이라면,
그분을 의지하고, 모든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받아주고 선대하십시다.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까지도 주의 사랑으로 선대하십시다.
그리고 겸손과 사랑으로 그들보다 낮아져서, 그들을 섬기고,
참된 크리스천의 기쁨과 영광을 보여주면서,
나머지는 살아계신, 참된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으십시다.
(복음 전파를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자세’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우상을 타파하는 일입니다.
타종교의 우상을 타파하기 이전에
내 안에 있는 우상,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찾아서 제거해야 합니다.
(교만, 세를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 물리적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시도..
이런 것들이 다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본의 아니게) 세를 과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개신교의 집회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고,
그 과시가 기독교의 본질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