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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LNCK 2011. 7. 10. 16:42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딤후2:14~26      설교스크랩, 정리

◑2:14절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그들'은 2절에서 언급된 '충성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죠. 

'이 일'에 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시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2) 혹자는 1-13절, 그중에서도 특히 8-13을 직접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바울이 가리키는 '이 일'이 너무 광범위하며 막연해지기 때문이죠. 

바울은 디모데에게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충성되고 타인을 가르칠만한 사람들에게 숙지시키라고 권면합니다.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여기서 말다툼은 '신화와 족보'로 인해서 생겨난 것으로(딤전 1:4, 4:7) 
당시 교회 내에 침투해 있는 이단들의 가르침과 변론을 의미합니다(딤전6:3-10).

바울은 당시 디모데가 시무하던 에베소 교회 내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 
계속해서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며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변론이나 논쟁들을 하나님앞에서 금할 것을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단들의 헛된 가르침과 논쟁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혀 이로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파멸의 길로 치닫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익이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망하게 함이라' 
충성된 사람이 피해야 될 것의 첫 번째가 '말다툼'입니다. 

◑2:15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말다툼(:14) 대신에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라' 
'옳게 분별하라'는 말은, 원어로 '똑바로 자르다' 그래서 '길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주1) 

하나님 말씀을 옳게 분별한다는 것은, '말씀을 똑바로 잘라서(잘 해석해서)'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위한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나를 위한 길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한 길이 있습니다. 
이 세상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이 하나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우리 한국 교회 가운데, 
우리 대학부와 청년부 가운데 한번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데, 
그 부흥의 중심에는 뭐가 있느냐?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사람'이 나와야 돼요.  2:15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위한 거룩한 길을 만들고, 
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다른 사람들, 즉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길을, 
진리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인정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모스'는 
문자적으로 '시험을 거친 후 받아들여진' 이라는 의미죠. 

바울은 디모데에게 임무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애쓰라고 명령합니다. 디모데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애써야 할 것은 
말씀을 잘 분석하고(똑바로 자르고) 이해해서 거짓 교리를 전하는 자들을 
대적하고 양들을 잘 보호하며 인도하는 것입니다.

◑2:16절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4 
디모데가 사역한 에베소에 팽배했던 이단들의 거짓 교리로서 
헛된 신화와 족보를 가리킵니다. 딤전1:4, 4:7 

‘버리라’
'버리라'는 헬라어로 '피하라'는 의미.
그래서 영어성경은 Avoid, Shun 으로 번역했죠.

◑2:17절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빌레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후메내오는 딤전1:20에 언급된, 진리에서 떠나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된 자를 가리키죠.

이 두사람은 에베소에 있던 이단자들로서 그리스도께서 실제 육으로 오셔서 
부활하신 역사를 부정하고, 영적인 부활을 주장한 영지주의자들이었죠.

이들은 출교당하기 전까지 교회 내에서 복음을 훼방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여 사단의 길로 가게 하였습니다(딤전1:20).


◑2:18절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본절은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비롯한 이단자들의 행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후메내오와 빌레도 등 에베소 교회 내에 있었던 이단들은 
영의 부활은 인정하나 육체의 부활은 부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특히 플라톤의 이원론(二元論), 
즉 영적인 것은 선하며, 물질적인 육체는 악한 것이라는 그릇된 사상에서 비롯되었죠. 

그래서 선한 영은 부활하며, 물질적인 몸은 악하므로 부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죠. 
이런 영지주의의 거짓 사상은 기독교 진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육체적 부활을 부인하는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십자가 복음이 완성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육체적 죽음과, 몸의 부활이 필요하죠. 

이런 이단 사상은 당시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을 무너뜨려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죠. 
디모데는, 당시에 에베소교회를 목회하고 있었고요.

▲다시 말씀드리면,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했느냐? 
기독교의 복음을 헬라화 시켜 버리려 했어요.  
그들의 철학적인 테두리 속에서 성경을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뭐라고 이야기했느냐?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그분이 몸으로 부활했다? .. 있을 수가 없다는 거죠. 
그분의 부활은 뭐냐? 영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이 헬라 철학은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 너무나도 깊이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우리 몸은 죄악 덩어리다. 죄악 덩어리니까 포기해라' 

우리가 거룩하게 유지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들의 영혼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술을 마셔 봐야, 술 마시는 사람들의 그 아픔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죄를 지어 봐야 죄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고상한 신앙은 뭐냐? 
'몸은 죄악 속에 던지더라도, 영혼은 하늘을 향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이런 가르침의 현혹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죄를 짓는데.. 그것을 득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둔갑시킵니다. 
이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유혹 중에 하나입니다. 

아름다운 철학, 아름다운 미학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예술의 이름으로, 
타락을 미화시키는 거죠. 
그것(타락)이 우리들의 영혼을 고결하게 한다는 겁니다. 
영혼만 깨끗하면 되고, 육체는 좀 더렵혀져도 별 상관 없다는 '이원론'이죠.

이게 헬라철학의 핵심 중에 하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독교는 하나님은 우리들 영혼만 거룩하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의 몸을 너무나도 귀하게 생각하셔요.  

로마서 12:1절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라' 

기독교 부활신앙의 핵심이 뭡니까? 우리 육신의 부활입니다. 
왜 하나님이 육신의 부활을 허락하실까요? 육도 그만큼 하나님 앞에 귀하다는 겁니다.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은 뭐냐? 마음만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행동까지 바르게 하는게, 그게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이렇게 거짓된 가르침(이원론)은 우리들의 삶을 깨뜨립니다.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은, 손과 발에서 일어나기에 앞서  
우리들의 머리와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의식 속에서.  

말씀을 통해 이 의식을 싸워 이기지 않으면, 여러분의 삶을 거룩하게 지킬 수가 없어요. 
삶이 무너지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뭐냐? 의식이 먼저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가 성경으로 여러분을 '의식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회복도 똑같아요. 여러분의 삶을 바꾸고 싶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 의식을 먼저 새롭게 하셔야 돼요. 

이런 거짓된 교훈들이 지금 성도들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2:19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본절은 교회 내에 이단 사상이 들어와 일부 교인들을 넘어지게 한다 할지라도 
교회가, 성도가, 복음이 하나님 안에 굳게 서 있음을 뜻합니다.

‘인침이 있어’ 
이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인침'의 행위는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인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이단 사상에 의해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인침이 있기에, 굳게 서 있을수 있습니다(엡1:13, 4:30).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본절은 민16:5의 인용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기노스코)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이단 사상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굳게 설 수 있습니다.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본문은 바울이 민16:27과 사26:13을 인용하여 해석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불의에서 떠나야 함을 시사합니다. 

에베소 교회 내에 있던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비롯한 영지주의자들은 
입술로 주를 불렀지만 그들의 행위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불의 가운데 있었죠.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죠. 

하나님의 자녀는 입으로 주를 부를 뿐만 아니라 
모든 불의(不義)에서 떠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드러냅니다.

요3:16, 롬1:17절을 믿어서 구원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증거가 나타나는데,
불의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거기엔 반드시 열매가 따른다는 것이죠. 

불의에서 떠날 수 있는 힘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셔야 돼요. 그 말씀에 성령의 불이 임해야 돼요.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악한 이단들이 잘못된 가르침들이 판을 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터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인치십니다.  

◑2:20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바울은 그릇의 종류를 다양하게 표현함으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안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다양한 그릇을 기능별로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본절을 롬9:21-23과 상관된 것으로 보아 '귀히 쓰는 그릇'은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롬 9:23)이며 
'천히 쓰는 그릇'은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거짓교사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2) 하나님의 교회 내에 귀하게 쓰이도록 예비된 교인과, 천하게 쓰이도록 예비된 교인이 있다는 해석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닙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도 있습니다. 
꼭 금그릇과 은그릇이 귀하게 쓰임받는다는게 아니라,
나무그릇, 질그릇도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집에서 매일 쓰는 그릇은, 금그릇, 은그릇이 아니라, 나무그릇, 질그릇입니다.
금그릇, 은그릇은 1년에 한 두 번 명절 때 쓸 뿐이죠.

바울의 방점은 '(무슨 그릇이든지)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자는 것입니다.
자기는 나무그릇, 질그릇이라고 비관하지 말고, 
그런 그릇도 얼마든지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그릇 말고도,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십만원을 호가 하는 비싼 옷도 있고, 만원짜리 츄리닝, 잠옷도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쓰임 받는 옷은, 만원짜리 츄리닝이나 잠옷입니다.
꼭 비싼 옷은 아니지만, 주인에게 얼마든지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2: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도, 오물이 묻어 있으면, 일단 쓰지 않습니다. 닦고 나서 쓰겠죠.
아무리 값비산 옷이라도, 때가 묻어 냄새가 나면, 일단 입지 않습니다. 세탁해서 입겠죠.

성도 각자의 가치는, 금그릇, 은그릇의 재질에 있는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깨끗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깨끗하기만 하면, 나무그릇, 질그릇도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이 된다는 거죠.

우리가 인생을 한번 사는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그릇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으로, 자기를 구별시키라는 것입니다. 


◑2:22절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가 버려야 할 것을 언급합니다. 
'청년의 정욕'은 단순히 성적(性的)인 욕망뿐만 아니라, 
지나친 식욕, 지식욕, 명예욕 등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후에 언급할 '의', '믿음', '사랑', '화평'과 반대됩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이제 바울은 디모데가 추구해야 할 덕목을 언급한다. 

한편 디모데가 이런 덕목을 추구할 때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권면하죠. 

▲교회에 뭐 우아한 백조 같은 분 있잖아요. 혼자 지내는 분. 
'나는 뭔가 혼탁한 이런 사람들 속에 같이 못 있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우아하게 백조처럼 나홀로 그렇게 살아가겠다.' 

이런 분들은 밤에 돌변해서 야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는 아니지만요.
기억하십시오. 절대로 혼자 힘으로 '청년의 정욕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을 좇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삶의 순결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이냐? 공동체 안에 붙어 있는 겁니다. 
이거는 꼭 기억하세요. 특별히 여기 대학부에 이성교제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교회에서 이성만나서 교제하면 어떻게 되죠? 그외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집니다. 
그러면 반드시 따로 놀게 되어 있습니다. 무리에서 차츰 떨어지죠.
그냥 둘이만 있고 싶어져요. 그리고 사람들의 '말'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어지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공동체 떠나면 거의 죽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섬기면서 특별히 결혼, 직장과 관련해서  
아픈 그런 경험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결혼에 쓰라린 실패를 맛보는 사람들, 
직장에 가서 너무나도 큰 낭패를 당했던 사람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이 뭐냐? 그때 공동체를 떠났어요.  
직장에서도 계속 둘만 같이 있으려고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죠.

공동체와 소그룹이 귀한 것을, 우리가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소그룹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내가 볼 때 별로 사람 같지 않은 애들하고도 장단을 맞춰 줘야 되고...'   
정말 주님의 이름 때문에 뭔가 참아줘야 되잖아요. 
참아줘야 되고, 그냥 웃어줘야 되고... 
또 전화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한 번씩은 받아 줘야 되고... 
너무 피곤한게 많아요.

그러니까 잘못 생각하면 '소그룹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공동체와 소그룹의 가치 언제 나타나느냐? 
내가 넘어져 보면 합니다. 

전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우리가 한 평생 사는 동안, 한 번도 안 넘어질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한 번 이상은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화 있을진저!' 어떤 사람이냐? 
넘어졌는데 일으켜 세워줄 사람이 없는 것, 이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지금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 나를 힘들게도 하고, 피곤하게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게 만드는 이 사람들... 또는 귀찮은 존재들...

여러분이 넘어졌을 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들이 바로 여러분을 일으켜 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2

◑2:23절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 권면은 목회서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죠. 딤후2:16, 딤전1:4, 4:7, 딛3:9

'어리석고'는 '둔한' 혹은 '지각이 없는'을 의미하며 
'무식한'은 '교육을 받지 못한'을 의미합니다. 

이런 지각이 없고 무식한 변론은 앞서 언급한 이단들의 허탄한 족보와 신화에 대한 논쟁을 가리키죠. :14절
디모데는 이러한 변론에 휘말려서는 안되며 단호히 배격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으로 인해 교회의 분열과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24절부터 26절까지 마지막 한 이미지를 줍니다.  

◑2:24절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성경에 '주의 종'은 모든 성도가 주의 종입니다. 목사만 주의 종이 아닙니다. 
다 주의 종입니다. 
그러나 범위를 좁히면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했으니 :24
특별히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를 뜻합니다.

엡4:12~13절에,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 목사-교사의 5대 직임이 나오는데,
초대교회에는 '교사로서 목사'가 있었습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고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이거는 누구 모습이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사야 42장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했죠. 
그분은 누구시냐? '상한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 목소리를 밖에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누구냐? 
'그분은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온유하고' 그러면서 가르치기를 잘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우리의 인격을 준비하셔야 돼요. 

아직은 잘 모르시는데, 앞으로 여러들 청년들은 '온유'라는 단어를 주목하셔야 돼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교제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거나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반드시 어떤 순간이 오느냐?
여러분으로 하여금 분노를 폭발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이 옵니다.

분노를 폭발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상황, 
더 이상 도저히 참을을 수 없는 상황을.. 가끔은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그때를 기억하시고 지금부터 온유하는 연습, 훈련을 하셔야 돼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온유하고 참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셔야 됩니다. :24

저는 많은 어른들 청년들을 섬겼잖아요.  대부분 다 어디에서 미끄러지느냐?
잘 나가다가 한번 폭발해 버려요. 폭발하면 어떻게 되느냐? 
가정이 깨집니다. (미혼인 경우) 교제가 깨집니다. 
직장에서도, 그동안 그렇게 애쓰면서 성취했던 모든 수고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려요.  

직장 상사가 크게 호통을 안 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 폭발하면, 직장 상사는 '너는 이제 영구 퇴출이다' 딱 결심합니다!

지금부터 영혼들을 섬기면서, 별난 후배들을 섬기면서  
여러분이 그들을 돕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는 겁니다. '온유하고 참는 인격으로!'

모든 사람을 향하여 온유하고 참으면서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
이 사람은 가정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교회도 부흥하게 만들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요. 

◑2:25절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징계할지니'는 심판이나 정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역하는 자들이 진리의 길에 들어서도록 권면하고 지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교사들이 '거역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징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 교훈을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죠.

이 내면의 힘이 무서운 거죠. 이거는 기도하셔야 돼요.  
영혼을 최선을 다해서 힘이 닿을 때까지 인내하면서 섬겨 보셔야 돼요. 

그래야만  내 힘이 한번 탈진해 봐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해라' 
이것이 주의 종의 핵심적인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2:26절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주의 종들이 감당해야 되는 최종적인 사역은 뭐냐 충성된 사람들만 세우는 그 정도가 아니라, 
거역하는 자들까지도 온유함으로 훈계하여서 
그들을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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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딤후2:15절의 '옳게 분변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쏘토메오'는  ὀρθοτομέω
'바른'을 뜻하는 '오르소스'와  *영어로 ortho
'자르다'를 의미하는 '토모스'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 '바르게 자르다'를 의미합니다. 
은유적으로 '바르게 잘라 길을 만들다'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