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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6장1~8 에서의 족보가 주는 교훈

LNCK 2011. 7. 25. 11:26

https://www.youtube.com/watch?v=m5IgwNYPqH0 

◈에서의 족보가 주는 교훈        창36장 1~8                 2014.03.09.출처

 

창세기 36장은 에서의 족보입니다.

'야곱의 족보를 공부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에서의 족보까지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족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상들 가운데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나는 누구의 후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족보를 추적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족보는 이런 호기심 때문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에서의 족보에 호기심을 가져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에서라는 사람의 족보를 성경 한 장의 분량으로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에서가 야곱의 형이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야곱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 야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이루시고,

이 나라에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자를 구원하여

영생을 얻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에서의 족보를

이토록 자세하게 기록해 놓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에서는 이 하나님의 계획에 부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이 될 때에는

중요한 인물로 취급이 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페르시아 왕 고레스와 같은 인물들은 모두 불신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인물들이기 때문에 성경 속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자기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와 연관된 인물, 부수적인 인물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오늘은 창세기 36장의 내용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에서의 족보는 어떤 내용인가?

 

에서의 족보에는 발음이 어려운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고, 복잡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6장 1~8절에 에서에게 세 아내가 있고

다섯 아들이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세 아내의 출신을 살펴보면

그 중에 두 명은 가나안 일곱 족속 중에서 나왔습니다.

한 명은 헷 족속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히위족속입니다.

이름은 ‘아다’와 ‘오홀리바마’입니다.

 

세 번째 아내는 아브라함의 첩이었던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 ‘바스맛’입니다.

 

그러니까 에서의 세 번째 아내는 아브라함의 손녀입니다.

그런데 에서의 세 아내는 모두 부모가 원하지 않았던 며느리였습니다.

 

에서는 혼인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부모의 소원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혼인할 때 하나님의 뜻과 부모의 소원을 고려하고 결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9~14절에는 에서의 다섯 아들로부터 나온 열 명의 손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15~19절에는 에서의 후손들 가운데 나온 족장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 큰 가문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20~30절에는 에서의 후손들인 에돔 족속들이 차지했던

세일산의 원주민인 호리 족속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경은 이들에게도 일곱 족장들이 있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내쫓고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처럼

에돔 족속들 역시 세일산을 차지할 때 호리 족속을 몰아내고 차지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2장 12절에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하였더니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일반이었느니라”

 

그리고 31~39절에는 에돔 땅을 다스린 왕들의 계보입니다.

8명의 왕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고, 모두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니까 에서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왕들의 조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0~43절은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거처가 구별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즉 창세기 36장은, 에서에게 세 아내가 있었고, 자식이 다섯이었으며,

손자가 열 명이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에서는 세일산 지역에 거주하였다는 내용입니다.

 

 

◑2. 창세기 36장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사실들

 

첫째로, 에서는 영적인 복보다 육적인 복을 선호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내세의 복보다 현세의 복을 더욱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에서의 복이 좋습니까? 야곱의 복이 좋습니까?

에서의 복은 현세의 복이고, 야곱의 복은 내세의 복, 영원한 복입니다.

 

에서는 현세의 복을 선호하였습니다. 에서라는 이름의 의미는 ‘털보’(Hairy)입니다.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었고, 야곱은 피부가 매끈매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었습니다.

‘에돔’의 의미는 ‘붉은’(Red)이라는 뜻입니다.

 

에서는 붉은 색의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은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인 복은 붉은 죽 한 그릇 만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에서가 영적인 복이나 장자권보다

순간적인 배부름과 육적인 복을 원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가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서의 후손들도 대부분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후손들이 보고 배운 대상이 아버지 에서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영적인 복보다 육적인 복, 내세의 복보다

현세의 복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후손들은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사님이시지만 영적인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교회를 나가시기는 하지만 매일 돈, 사업 이야기만 하고

아버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현세의 복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따라 배우게 되어있습니다.

 

에서의 후손들도, 에서에게 배웠기 때문에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동일한 부모 밑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교육을 받은 쌍둥이 형제이었지만,

에서는 육적인 복을 좋아하고, 야곱은 영적인 복을 좋아하는

전혀 다른 기질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 2~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영적인 은혜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에서는 사랑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세상적인 사람으로 그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적인 복이 좋으십니까? 영적인 내세의 복이 좋으십니까?

아니면 둘 다를 원하십니까?

 

둘 다 가지면 좋겠지만,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영적인 복이 훨씬 좋은 것입니다.

 

영적인 복을 귀하게 여기고

우리 후손들에게도 영적인 복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물질적인 것은 나중에 다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추구할 것이 아닙니다.

 

금번 춘계부흥성회에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의 손자 주승중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주기철 목사님과 그 아들이 순교를 당하고 죽을 고생을 당했지만

그 후손들은 아주 큰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로 그 후손들은 엄청난 복을 받고, 할아버지의 덕을 보는 사람이 되었고,

주승중 목사님은 주안장로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면 나중에 현세적인 복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복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야곱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에서는 세일산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형제끼리 싸우지 말고 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그들이 갈라지게 된 이유는 가축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랗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창36:6~7 

 

야곱은 가나안 땅을 받았고, 에서는 요단강 동편에 세일산 지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흘러서 오랜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이것이 하나님의 참으로 놀라운 섭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을 들어갈 때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에서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다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전쟁을 미리 막아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신 23:7).

 

하나님이 에서와 야곱을 싸우지 못하도록 거처를 구별하신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인간적이고 경제적인 이유,

그리고 소유물의 풍부함 때문에 다른 거처에 거주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형제끼리 서로 싸우지 않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때론 잘못 되기도 하고 잘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된 결정이든, 잘못된 결정이든 모든 결정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인도하면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사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연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사에 무슨 일을 일으킬 만한 힘이 없습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결정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과 에서의 거처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에서의 후손에서 아주 악한 족속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말렉 족속입니다.

 

12절에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낳았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입니다.

 

그런데 이 아말렉 족속은 매우 비겁한 족속입니다.

신명기 25장 17~18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이라는 자는 성품이 매우 야비합니다.

그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에 광야를 방황할 때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뒤에서 쳤습니다. 비열한 짓입니다.

사람이 싸우려면 정면에서 싸워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뒤에서 치고 공격하였습니다.

 

제가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은 비겁한 것을 굉장히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비하고 비열한 짓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인격의 모자라고 부족함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못 생긴 것은 죄가 아니라 개성입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라면을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자라고 부족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야비한 것은 죄입니다. 아말렉은 참으로 야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말렉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한 구절도 나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아말렉은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나올 때에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진을 치고 있다가 홍해를 건너,

마라와 엘림을 거쳐 신 광야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르비딤을 갔는데,

이곳에서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을 뒤에서 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지는 것을 아론과 훌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을 쳐서 도말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그리고 모세가 그 곳에 단을 쌓고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후 아말렉과 이스라엘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아말렉과 같은 성품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이 대대로 미워하셨습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위를 당하였습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다윗이 블레셋 지역 시글락에 피신해 있을 때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와서 아내들과 부하의 아내들과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습니다.

 

시글락에서 다윗이 부하들과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내들과 자식들이 다 없어지고

거처는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들이 ‘너 따라다니다가 처자식을 다 잃게 되었다’며 돌로 쳐 죽이려고 했고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400명 이끌고 쫓아가라 내가 이기게 해주겠다’고 하셨고,

400명을 이끌고 쫓아가다가 쓰러진 애굽 소년 한 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애굽 소년에게 정체를 물었을 때, 소년은 아말렉 군대에서 일하던 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있느냐고 다시 물었을 때, 아말렉 군사들이 병들어 버리고 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아주 치사한 자들입니다. 일꾼으로 쓰다가 병이 들면 버리고 갑니까?

그러니까 약한 사람에게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애굽 소년의 도움으로 다윗은 밤에 쳐들어가서 아말렉 군사들을 다 죽이고 아녀자를 되찾아오고,

위대한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시므온 자손 중에 오백 명이 이시의 아들 블라댜와 느아랴와 르바야와 웃시엘로 두목을 삼고

세일 산으로 가서 피하여 남아 있는 아말렉 사람을 치고 오늘까지 거기 거하였더라” (대상 4:23~24).

아말렉은 히스기야 왕 때에 거의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살아남았습니다. 그가 바로 하만이었습니다.

이 자가 페르시아로 가서 출세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는 귀환하지 않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모르드개가 성문의 문지기가 되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사람 하만이 모르드개의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성질이 나서

그의 민족을 전멸시켜버리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았더니 유대인 월력으로 12월 14일과 15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고

“죽으면 죽으리라”하며 나아가서 자기 민족 유대인들을 살려달라고 왕에게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자기 집에다 세웠던 나무에 하만이 달려 죽게 되고,

유대인들을 죽이려던 75,000명이 완전히 살육을 당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날을 두고 ‘부림절’이라고 합니다. ‘부림’은 ‘제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부림절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날이요,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복을 빌어주면

그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고 우리를 저주하면 하나님이 그를 저주하십니다.

왜 이런 복을 받았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기 때문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창 12:3).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대단한 사람입니까?

 

아말렉은 하나님의 택한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멸망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아말렉은 누구의 후손입니까? 에서의 후손입니다.

우리에게서 이런 악한 자녀들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으로 살아야 합니다)

 

 

◑3. 에서의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심지어 불신자들에게 하신 약속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에서에게 하신 약속도 지키신 하나님이십니다.

 

에서가 어떻게 왕들의 조상이 되고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것은 이삭이 받은 복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장 39~40절에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칼을 믿고 생활할 것이라는 말은 나쁜 표현이 아닙니다. 군사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느 국가든지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은 경제력이 있다는 의미이고,

과학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사력은 돈과 과학, 인력의 집중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에서의 군사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말은 경제력도 있고,

인적 자원도 있고, 과학도 발전하여 세상의 현세적인 복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에서에게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할 것이다”라고 한 마디 말씀을 해 주시고

얼마나 풍성하게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언약의 대상이 아닌 백성들에게도 약속을 하면 지키시는 분이시고,

언약의 대상이 아닌 백성들에게도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얼마나 더 큰 복을 주시겠습니까?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은 에서와 같이 지옥에 갈 사람에게도 약속을 해 주시고 복을 주셨는데

나처럼 예수 믿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지 않을 리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불신자들에게도 복을 주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신앙적인 사고에 큰 유익을 주는 말씀입니다.

 

불신자들도 복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왜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사 49:15).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수시로 보시고, 매일 기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손바닥에 지워지는 펜으로 쓴 것이 아니라 지워지지도 않게 칼로 새겨 놓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신 33:29).

 

▲둘째, 악인이 세상에서 형통해도 종말과 내세에서 멸망한다는 진리입니다.

에서와 야곱을 비교해 보면 에서가 현세적으로는 성공하였습니다.

국가를 이루었고, 왕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에서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야곱은 어떻습니까? 양이나 염소를 끌고 다니는 시골 농부였습니다.

시골의 목자에 불과했습니다. 애들은 많이 낳아서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했고

현세에서는 에서가 야곱보다 더 화려하고 부요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현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과 내세가 있고, 영원도 있습니다.

에서는 현세를 살다가 개인적 종말을 맞고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에서는 지옥에 가 있습니다.

야곱은 험한 세월을 보내었어도 그의 영혼은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조금 고생하더라도 천국에 가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조금 누리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의 고민도 그것이었습니다.

아삽은 찬양대장이었는데, 하나님이 아침마다 때리시고 저녁에도 때리셨습니다.

 

아삽이 보니 악인들이 현세에 잘 되고 형통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나는 매일같이 충성해도 아침저녁마다 때리시고, 악인들은 저렇게 형통합니까?’

라고 항변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아삽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시 73:19).

 

존 칼빈은 “에서의 영광을 멋진 무덤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돈 한 푼을 쓰더라도

현세만 생각하지 말고 내세의 영원을 생각하며 행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과 다른 것은

사고의 범위가 영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서의 후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갈렙입니다.

 

민수기 32장 12절에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나스는 누구입니까? 창세기 36장 15절에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에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나스는 에서의 손자였습니다.

에서의 손자 중에는 아말렉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나스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나스의 후손에서 나온 사람이 갈렙입니다.

갈렙은 이름의 의미가 ‘개’입니다.

그런데 개는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와께 충성하기를 개가 주인에게 충성하듯이 해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의 은혜는 이런 것입니다.

 

◑마치는 말

 

무당 자손 가운데 하나님의 종이 나올 수 있고,

악한 사람의 후손 중에도 훌륭한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또 공산주의 국가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있을 수 있고,

이슬람 국가에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자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에서 못지않은 불신자들이었습니다.

에서의 가치관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에서와 무엇이 다릅니까?

현세적인 것을 구하는 것밖에 더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에서하고 가치관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런 조상들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별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갈렙이 받은 은혜와 우리가 받은 은혜가 바로 이런 ‘구별된 은혜’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영적인 은혜, 영적인 복을 받은 우리는 자손들에게

위대한 영적인 복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