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철판으로 단절된 예루살렘 겔4:1~8 11.12.07.설교일부녹취
▲서론/ 에스겔의 무언극
에스겔은 지금 말없이 연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1년이 넘는 기간(총 430일)을 무언극만 하고 있습니다.
그 무언극은 겔4:1~5:4절까지 계속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선지자가 1년이 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언극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에스겔의 집 앞에는,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늘 북적였습니다.
참고로, 지금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가운데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 에스겔은 미쳤나 보다!
얼마 전에 하나님의 영광(1장)을 보았다 그러다니..
이제는 말도 안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네!’
그 무언극을 430일을 계속했으니,
아마 본토 이스라엘까지 그 소문이 퍼졌을 것입니다.
▲4:1~2,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토판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점)토판에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라고 합니다.
이런 (점)토판들은 바벨론지역의 고고학 발굴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왕이 조공을 받거나, 적을 정복한 내용, 또는 법조문들을,
점토판에 그림과 글로 새겼습니다.
이런 토판에,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지도를 그리면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알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성읍을 그린 토판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를 흙으로 에워싸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다리를 세우고, ‘공성퇴’를 둘러 세웁니다.
즉, 토판에 그린 그림의 내용은..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공격받는 모습입니다.
◑철판이 가로놓이다
▲4:3 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여기서 철판은, 떡을 굽는데 쓰이는 iron pan입니다. 두꺼운 철판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공격받는 모양을 만들어놓고서
거기에 철판을 가져와서
에스겔과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징조가 되리라고 합니다. 무슨 징조입니까?
토판의 그림은.. 예루살렘의 성읍이 포위되고 공격받는다는 징조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징조는.. 철판으로 철벽이 막아지는 것입니다.
철판이, 예루살렘과 에스겔 사이에 가로놓여 졌습니다.
에스겔은 지금 '하나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데,
철판이 가로막힌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친밀하게 바로 되어 있으면,
어떤 대적이 치러 와도..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과거에 그런 역사가 수두룩했습니다.
출애굽 때는, 애굽을 쳐서 이기기도 했고,
히스기야 왕 때도, 그 강한 앗수르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제압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적의 공격을 받아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거뜬히 적을 제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단절의 상징인 철판이
에스겔과 예루살렘 성읍 사이에, 가로 놓이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적이 쳐들어와서 성읍이 망하는 것 보다, 더 무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고양이 앞의 쥐’신세입니다.
▲내 죄악이.. 철판입니다.
이사야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갈라놓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나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철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나의 삶의 형편이 어려워지고, 환경이 막히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즉, 내 직장은 안전할까?
-내 은퇴 후의 대책은?
-내 사업의 미래는?
-우리 교회의 운영은 제대로 될까?
이렇게 우리가 늘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의 환경적 문제입니다.
이런 두려움들보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의 단절을 더 두렵게 여겨야 합니다.
나와 하나님과 관계만 두텁다면.. 앗수르, 바벨론.. 아무 걱정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면..
재산, 직장, 가족.. 그 무엇도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TV ‘개그콘서트’에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 환산표에 만점 받으면 된답니다.
그런데 만점을 받으려면,
아버지가 장/차관쯤 되는 공무원이거나,
아버지가 수 십 억 이상 되는 사업체를 운영하면.. 만점을 받는답니다. 개그입니다.
그러면 젊은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데..
이런 개그가 나오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장래 결혼에 대해, 모두 다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며,
자기들 힘으로는 어렵고..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행복한 결혼이 되리라는
뭐랄까요, 불안 심리의 반영이며, 건강하지 못한 의존 심리를 나타내 보여줍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막힌 사람들의, 공통적인 두려움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악의 철판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삶의 두려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관계적 측면으로 접근하면.. 정답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만 친밀하면.. 즉 하나님이 나의 뒷받침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세상에 두려울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쯤이야.. 아무 두려움이 안 됩니다.
▲삶의 불안은.. 철판/철벽 때문
여러분, 지금 삶의 염려가 많으세요?
뭔가 걱정이, 끊임없이 나를 뒤따라 다닙니까?
삶의 불안을 떨쳐 버리기 힘드십니까?
-이게 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철판이 가로막혀 있다는 증상들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경제적 위기보다, 더 큰 위기는.. ‘철판으로 가로막힘’입니다.
내 삶의 걱정, 염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철판으로 단절됨’입니다.
그런데 내 영안이 가려져서.. 문제의 핵심을 엉뚱한 곳(현실적 환경의 문제)에서 찾고 있습니다.
경제적 궁핍의 적, 자녀교육의 적, 미래 불안의 적.. 이런 문제들, 너무 염려 마십시다.
하나님과 관계만 정상화 되어 있으면, (교회에서는 '친밀하다'는 표현을 쓰지요)
하나님이 한 번 명령하시면.. 모든 대적들은 물리쳐 질 것입니다.
정작 문제는.. ‘철판이 예루살렘과 에스겔 사이에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 철판을 제거하는 길은,
철저히 내 죄악을 회개하면서, 자기 죄악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 달라고, 회개의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로 간구해야 합니다.
▲무언극에 담긴 의미
지금 에스겔은 일절 말이 없습니다. 그저 행위로만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서 하나님은, 말을 하지 말라고 에스겔에게 명하셨습니다. ↙
겔3: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예언을 하지 말라’ .. 이것은 벌써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도 에스겔은, 무언극을 통해, 행위로 예언합니다.
이것은 ‘아직 완전한 관계 단절은 아니다’를 의미합니다.
아직 이스라엘이 돌이키고, 회개하면..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 더 읽으실 분 ...................
◑430일간 모로 눕다
▲겔4:4~8, 에스겔의 또 다른 상징행위가 나옵니다.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 수 대로 그 죄악을 담당하라고 합니다.
왼쪽으로 누워서 390일, 오른 쪽으로 40일을 담당하는데
하루가 일 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줄로 몸을 묶어서,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게 합니다.
에스겔은, 이런 행위를 430일을 했습니다.
물론 24시간 누워있기 보다는,
아마 자기 집에서 출퇴근 하면서, 그런 예언적 행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징행위는 ‘죄악을 담당’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것이 대속이냐,
아니면 유대인들의 벌 받음을 뜻하느냐에 대하여
대부분 신학자들은 대속(에스겔의 대신 속죄)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사람은 대속의 역할도 말합니다.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처럼,
에스겔이 대신 고난을 당하는 것이며
‘그가 도수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아니한’ 것처럼
에스겔이 지금 벙어리가 되어있습니다.
저/이 목사는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에스겔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의 형벌’을 받는 의미와
‘대속’적 의미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죄악에 대한 형벌과
-포로가 속죄와 회복의 일이기에.. 둘 다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왼쪽으로 누워 390일
에스겔 당시부터 390년을 소급하여 올라가면
솔로몬의 성전 완공시대까지 올라갑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이스라엘은 곧 우상숭배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바벨론 포로로 잡혀오기까지
늘 우상숭배한 이스라엘임을 고발 받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누워 40일은
아직 남은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기간이 포함되는 40년으로 봅니다.
이 둘을 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430년과 같은 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이러한 상징행위는, 심판과 동시에 대속의 기능을 둘 다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