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다 창48:8~9 2020.09.21.설교일부녹취
◑요셉이 장자의 축복을 상속하다
(야곱의 실질적 장자권은 요셉에게로, 영적인 장자권은 유다에게로 계승됩니다)
창49장은, 야곱이 12아들들을 축복하는 유명한 장 chapter 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자세히 보면, 임종을 앞둔 야곱의 축복은
르우벤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에브라임과 므낫세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창48:8~9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내가 그들을 축복하리라'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이 두 손자를 아들의 반열로 끌어올린 것은
두 몫을 주는 장자권이 르우벤에게서 요셉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대상5: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장자는 나머지 다른 아들들보다 두 몫을 줍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 이렇게 두 몫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49장의 나머지 아들들보다
48:8~9절에서 먼저 축복한 것은,
요셉을 실질적 장자로 인정해서, 그에게 두 몫을 주었다는 것이요,
그래서 48장의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내용은
49장의 다른 아들들 축복보다 먼저 기록된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위한 축복은 48:15~16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9~20 '그(므낫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차자를 장남보다 앞세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주1)
이렇게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받은 축복이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자기의 아들로 족보에 올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식적으로 자기 아들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야곱이 자기 자녀들을 축복한다면
르우벤 부터 먼저 순서대로 내려가야 되는 것이 당연한데
놀랍게도 아버지 침상을 더럽혔던 르우벤은 장자권을 빼았기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았으며,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요셉이
먼저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49 장에 보면 아주 우리가 주목해야 될 구절이 하나 나오는데
'그들의 분량대로 축복하리라' 49:28
-이 축복은 하나님의 주권대로 주어지지만,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느냐에 따라서
분량이 달라지기도 하는..
우리의 삶을 따라서 주시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2가지 면을 다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복
48:21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야곱은 '이제 나는 간다. 이제 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나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이것이 야곱의 축복의 놀라운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자기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앞으로는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이게 사실은 놀라운 복이고, 은총입니다.
이게 야곱 자신이,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고 난 얼마 후에, 벧엘에서 받았던 놀라운 축복이었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15 참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느냐.. 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보다,
내 손에 들려주시는 선물을, 우리는 더 좋아할 때가 많죠.
그렇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뒤를 이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계속해서 함께 써내려갈 자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8:21
▲왕하2장을 보면, 본문과 비슷한 상황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별세를 앞두고, 자기의 축복권, 상속권을 엘리사에게 물려주는 장면입니다.
왕하2:14절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며
엘리사도 문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가니라.. 고 했습니다.
원래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장자권을 상속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왕하2:9
'갑절을 달라는 것은' .. 두 배를 달라는 게 아니라, 장자권을 의미하는 거죠.
이제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역사하셨던 구속 역사의 주인공을 엘리사로 바꾸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자권이 이어지는 그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엘리야의 겉옷'이라는 축복을 주십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들고 물을 쳤어요.
그랬더니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면서
엘리야와 같은 능력, 엘리와 같은 축복이 자기에게 임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엘리사가
엘레야의 겉옷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14절을 보면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십니까?'
그러니 엘리사가 간절히 바래왔던 것은
엘리야의 축복이 이어지는 것도 바랬지만, 무엇을 바란 것입니까?
'엘리야와 함께하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 어디 계시냐?'고 묻고 있고
그 하나님이 엘리사 자기와 함께 해 주시기를 지금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삭의 축복을 이어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무엇을 이어받은 사람입니까?
이삭과 함께하던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이었어요.
이삭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어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함께 해 주시던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했던 것,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이야기(구속사)를 이어서 기록하게 될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의 마지막 피날레를, '임마누엘,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는 너희에게
내가 너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는 축복을 주리라.. 라고 끝내지 않고,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게 될 자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주시겠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학기부터 제가 순장이 되었습니다. (펀 글)
순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중보기도하는 순장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기도에 게으름이 없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우리 순cell group에 처음오신 집사님이 3분이나 계십니다.
처음 시작부터 이렇게 풍성하게 순원들을 보내주시니
저는 복이 많은 순장입니다.
처음오신 집사님들을 소개할 때,
우리 순의 한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잠깐 일어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계속 거실을 서성대며 기도를 드립니다.
어제 잠깐 뵈었던 집사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요 아직 젊으신 분이신데.. 암이라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봅니다.
순장을 시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말이야 순장이지.. 우리 순에는 장로님이 두 분이나 계시고
전임 순장님을 빼면 사실 저 혼자나 다름없어서
등 떠밀려서 당첨된 땜빵용 순장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장을 시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순에 집사님을 보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요 하나님! 길지 않은 인생에서,
이렇게 제게 순장의 길을 열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새벽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를 드립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하지 않으신 분 어디 있을까요?
가정에 문제가 없는 분이 어디 계시며
기도가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 어디 계실까요?
전 사실 저의 기도도 급합니다만
이렇게 기도로서 하나님과 같이 동역하실 기회를 주셨습니다.
백부장같이.. 순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순장이 되고 싶습니다.
백부장 같은 기도하는 순장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해 주세요.
저는 힘이 없답니다. 저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저에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내려 주시사, 기도하는 순장이 되게 해 주세요!
“암 투병이신 집사님의 병이 나을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집사님의 몸을 괴롭히는 암덩어리야, 썩 물러 갈지어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야곱의 인생 전체에 대한 평가를 의미 있게 바라봤던 이유는
야곱의 삶이,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과 같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야곱의 이름을 이어서 등장하게 될 12지파의 이름들,
이 이름에 대하여, 세대가 교체되는 이 순간에
우리가 주목하면서 그들이 받고 있는 축복을 주목하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야곱을 이어서 하나님의 이야기(구속사)를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부름 받은 자들이
그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사용 하셨지만
그들을 데리고 가시고, 이제 누구를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 순간 우리를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그들에게 이어졌던 축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축복이라는.. 우리에 대한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니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축복해주신 야곱과 같은,
그와 같은 인생에 역사했던 똑같은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해 주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하여 감격 하면서 오늘 이 말씀을 마무리 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해 주시는 가에 대한 이유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축복을 우리에게 주십니까?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까?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야곱에게, 이삭에게, 아브라함에게 그리 하셨던 이유는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이야기(구속사)를, 하나님의 뜻을 펼쳐 내기 위해서
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주셨다는 이 축복과 이 은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왜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 주실 까요?
야곱이 요셉과 그의 아들과 바로 사이에서 세상을 축복 했던 것처럼
세상을 축복(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내 안에 넘치는 복은, 흘려보내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우리에게 축복만 주지 않고, 왜 굳이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 계십니까?
사람이란 가장 의미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를 닮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유는, 그런 축복을 주신 이유는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하늘의 복을 땅에 흘려보내기 위한 통로로써 주신 것이고
또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이유는
야곱이 그 147세 되는 시간 동안
아브라함 175년이란 시간 동안,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그가 하나님을 닮아 갔던 것처럼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해주시면서, 하나님을 닮아 가라고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가진 자답게
세상에 축복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작은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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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차자를 장남보다 앞세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그래서 이삭이 장자인 에서가 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요셉이 자신의 장자인 므낫세가 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뒤집어엎으셨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에서와 므낫세가 뭔가 흠이 있고
야곱이나 에브라임이 뭐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냥 힘의 원리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가치가
하나님 나라에서도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하나님의 선택이 무조건 옳다는 것을
우리에게 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가 메시지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차자 선택의 이유가 오늘 본문에 명확하게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창48:19)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이유가 뭡니까? 작은 자가 큰 자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 평가의 기준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가 된다는 이 말씀을
우리가 전에 신약을 공부하면서도 본 적이 있지요?
(롬9:11~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기에 보시면 작은 자인 야곱이 큰 자인 에서를 제치고 복을 받은 이유가 나오는데
그렇게 야곱이 복을 받은 이유는 야곱이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이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야곱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야곱이나 에브라임의 선택을 통하여
야곱과 에브라임의 탁월함을 강조하시려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은 브라임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에피소드가 함의하고 있는 정말 중요한 메시지는
작은 자, 즉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의 계시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야곱은 자신이 승리하고, 힘을 얻고,
이기는 것이 큰 자가 되는 것인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탈취하기도 하고,
단풍나무 신풍나무를 사용하여 자기의 소유를 늘리려 획책하기도 하고,
외삼촌에게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 곁을 떠나기도 하고,
벧엘로 올라가는 길의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가족들의 우상을 전부 묻어버리기 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우상의 힘을 동시에 의지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를 계속해서 두들겨 패십니다.
야곱은 당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만 놔두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렇게 자신의 태어남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험악하게 경험하고 난 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의 힘을 얻어내어 행복에 이르려 하는 자들이
복 받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작은 자,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사실을 그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작은 자로 태어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큰 자의 머리에 얹어야 할 우수를 얹은 것입니다.
절대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잘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독자들인 교회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를 가르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야곱이 믿음의 후손인 요셉과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남겨준
가장 큰 축복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루스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을 이야기 한 후
요셉 앞에서 작은 자를 축복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똑같은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마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바로 이 원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는 이렇게
작은 자, 섬기는 자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하늘의 큰 자들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하늘의 삶의 원리로 이 땅을 살다가 가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짐승의 구유로 오셔서 가난하고 못 배우고 못 생긴 모습으로 사시다가
온갖 수난을 다 겪으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까지 모두 빼앗기는 삶을 살다가 가셨습니다.
그 분은 그렇게 평생을 종의 모습으로 살아내셨습니다.
그러한 섬기는 자, 종으로 사는 자들에 의해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천국입니다.
예수님의 섬김과 종 됨으로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났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섬김의 삶, 종 된 삶을 통해 ‘나’이외의 다른 이웃들이 행복해 지고
낙망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