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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9장, 유다지파에서 나오는 구원

LNCK 2012. 4. 29. 12:39

https://blog.naver.com/karamos/220310356620

 

◈유다지파에서 나오는 구원      창49:8~12, 18         2014.07.13.

 

서론

 

야곱이 어느 덧 147세가 되었습니다. 애굽으로 이주한 지 17년이 되었고,

이제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눈도 어두워지고 기력은 쇠하였으며,

침상에 앉으려고 해도 지팡이를 의지를 해야 하는 약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영혼은 그의 평생에 가장 깨끗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깨끗해야 합니다. 영혼이 혼탁하고 더러우면 삶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의 영혼은 성령님이 온전히 역사하실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 열 두 아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창49: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여기서 ‘후일’은 가까운 장래를 의미할 수도 있고, 먼 장래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꺼내는 야곱의 말은 잔소리가 아니라

성령충만을 받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49:28절에 야곱의 열 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12지파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야곱의 12아들이 12지파라고 최초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창49:28절입니다.

 

그들은 이때로부터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12지파가 된 것입니다.

오늘은 창49장에 기록된 예언의 일반적인 교훈은 무엇인지,

12지파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셉과 유다지파를 향해 선포된 예언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49장 전체를 통해 야곱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창세기 49장 예언의 일반적인 교훈

 

▲첫째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미래는 열 두 아들이 지닌

각자의 성품이나 성격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은총, 일반법칙)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은 복을 받았고,

좋지 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분량대로 축복하리라' 49:28

 

이로 인해 사람의 장래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품에 좌우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첫째 아들이었던 르우벤에 대해 ‘나의 능력이요 기력의 시작이라’고 했지만

4절에 보니 ‘너는 탁월치 못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지파에서는 이렇다 할 인물이 한 사람도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학자 등 성경 속 유명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르우벤이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은 정욕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은 ‘둘이 뭉치면 잔인해진다’는 내용입니다.

각기 따로 떨어져 있으면 괜찮은데, 몰려다니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동생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디나와의 결혼을 요구하기에 “세겜의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으면 여동생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은 지 삼일 째 되던 날 그들이 가장 괴로울 때,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지역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를 향해

“너희는 잔인하도다”라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7절 후반에 “그들을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시므온 지파와 레위 지파는 붙어살지 못했습니다.

레위 지파는 땅도 별도로 분배받지 못하고 12지파 전역에 흩어져서

집을 지을 땅만 얻고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14절에 잇사갈 지파는 ‘건장한 나귀 같다’고 했고, 17절에 단 지파는 ‘독사’라고 했습니다.

길거리에 가만히 숨어 있다가 말의 뒷꿈치를 물어서 말 위에 있는 사람을 떨어뜨리는 자들이

단 지파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21절에 납달리 지파는 온순하고 빠른 ‘암사슴’같다고 하였고,

27절에 베냐민 지파는 ‘물어뜯는 이리’같다고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와 붙으면 남아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지파의 미래는 12지파의 조상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성품에 의해서

결정이 되었다는 일반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미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을 보면 “아! 이 사람은 성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니, 불성실한 사람이 성공한 경우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가난한 삶을 살게 되겠구나!”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하게 근검절약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지,

게으른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성품이 간사한 사람을 보면 배신자나 사기꾼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사람의 미래는 그 사람의 성품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밝은 미래를 살아가려면 좋은 성품과 습관을 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한 아버지 밑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성품과 받은 복이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획일성이 강조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사도 사람에 따라서 성격이 다르고, 은사, 재능도 가지각색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다릅니다.

“너는 왜 OOO목사와 같지 않냐?”는 식의 비판은 불합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다 같지 않습니다.

“너는 왜 나와 같지 않느냐?”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야곱의 모든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창세기 49장의 예언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언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점쟁이가 미래를 알아맞힐 확률은 50%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확률은 우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친척 가운데 제가 아무리 전도를 해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집안의 아주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10명의 무당을 전부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10명의 점쟁이가 각기 다른 입장과 점괘를

내놓는 것을 보고 “이놈들은 모두 사기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다시는 점 같은 것을 보지 않고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답니다.

지금은 한 교회의 집사가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된 예언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에 예언된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볼 때,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일반 서적이 아닙니다.

 

▲넷째로, 야곱의 열 두 아들은 고센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기에,

하나님은 고센교회의 세세한 면까지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미래를 배려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남중앙침례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이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49장은 28절까지가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언이 기록된 28개의 구절 가운데 각각 5구절씩 길게,

총 10개 구절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개 지파가 있습니다.

하나는 요셉 지파이고, 다른 하나는 유다 지파입니다.

 

요셉 지파는 후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지도하게 되었고,

유다 지파는 후에 남왕국 유다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요셉의 막내아들인 에브라임이라고도 불렸으며,

남왕국은 유다라고도 불렸습니다.

 

창세기 49장에 기록된 예언의 순서에 의하면,

후에 나온 요셉 지파가 예언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언의 핵심은 유다 지파에 있습니다.

 

르우벤이 상실한 장자의 직분과 복을 요셉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적인 복은 유다가 받았습니다.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대상 5:2).

 

장자의 복은 요셉이 받았어도 영적인 복은 유다가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도 5구절, 유다도 5구절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 요셉에 대한 축복 (22~26절)

 

22~26절에 요셉이 받은 복은 장자의 복입니다.

(*요셉은 르우벤을 대신한 야곱의 장자권을, 유다는 영적 장자권을 받았습니다)

 

또한 야곱은 요셉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도우실 것이며, 전능자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가리켜 ‘형제 중 뛰어난 자’라고 하였습니다. 왕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과연 왕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셉 덕분에 다른 형제가 다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문 49:22~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요셉에게 세 가지가 되어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요셉에게 샘(Well)이 되어주셨습니다.

22절 전반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포도나무 가지에 비유하면, 열매를 아주 많이 맺는 무성한 가지인 것입니다.

요셉이 왜 그렇게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요셉에게 샘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샘에서 물이 끊임없이 공급되니까, 가뭄이 와도 항상 열매가 풍성한 것입니다.

 

제주도 한라산에 가면 백록담이 있고, 백두산에 가면 천지가 있습니다.

백록담과 천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은 비가 오면 물이 좀 있다가 금세 말라버리는 반면,

백두산 천지는 밑에서 찬물이 솟아 올라옵니다.

냉수가 끊임없이 솟아 나와서 그 속에 들어가 2분을 채 견디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물의 온도가 매우 낮습니다. 하나님이 백두산 천지에 있는 물과 같이

요셉의 삶에게 항상 물이 솟아오르도록 샘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요셉에게 담(Wall)이 되어주셨습니다.

22b절에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포도나무가 아무리 무성해도, 타고 올라갈 담이 없으면 땅에 떨어져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이 의지해도 쓰러지지 않을 담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댈 수 있는 담이 되어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기댈 수 있는 담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담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요셉에게 전쟁(War)중에도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23~24절에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사람들이 요셉을 향해 활을 쏘았습니다. 형들도 그랬고, 보디발의 아내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모함을 이겨내고 승리하였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화살을 쏴도 하나님이 요셉의 팔에 힘이 되어 주셔서

요셉의 화살이 더 힘 있게 멀리 나갔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샘, 담, 그리고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도 “하나님, 나에게도 샘과 담과 힘이 되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12지파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대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야곱의 양자가 되어서 12지파 가운데 두 몫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장자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요셉이 모든 복을 다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야곱의 넷째아들 유다입니다. 야곱이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자식보다

레아의 자식이 더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아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 받는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3. 유다에 대한 축복 (8~12절)

 

창세기 49장에 기록된 예언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좋은 예언의 말씀을 받았지만, 유다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유다의 성품은 부도덕했고, 불경건하고,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 가운데 동생 요셉을 은 20개에 팔아먹은 사람이 바로 유다입니다.

37:27절에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38:15~16절에는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아내 몰래 바람을 피러 나갔다가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와 간음을 하고 자식을 낳은

아주 부도덕한 자입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베레스와 세라였는데,

예수님은 베레스의 후손이 되셨습니다.

 

유다는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인지 손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경건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복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복의 원인이 없습니다.

저주를 받아도 가장 큰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이 바로 유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유다가 형제들 중 가장 큰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막내 동생 베냐민이 애굽 총리의 은잔을 훔쳤다는 죄목 때문에

평생 총리의 노예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머뭇거리는 형제들 사이에서 유다가 했던 말 때문입니다.

 

그 때만 해도 형제들은 요셉이 총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애굽 총리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청컨대 이 아이를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 아이의 생명과 아비의 생명이 결탁되어 있으니 우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흰머리로 슬피 울며 음부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막내 베냐민을 대신해서

저를 노예로 삼아 주십시오. 제가 애굽을 위해 일평생 종노릇하며 살겠습니다.”

 

유다가 변화되었습니다.

유다는 부도덕하고 더러운 죄인이었고 복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가장 큰 복을 주십니까?

우리는 유다가 복을 받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변화된 사람에게 가장 큰 복을 부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성령이 임하고 변화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49장을 연구하다가 발견하게 된 한 가지 놀랄 만한 사실은

유다가 복을 받을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그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세 가지 ‘W’가 되어주셨는데,

유다에게는 알파벳 ‘P’로 시작되는 네 가지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유다로 ‘찬송’(Praise)이 되게 하셨습니다.

8절에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형제들이 다 같이 모이면 유다가 최고라고 찬송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셉을 최고라고 해야 하지만 요셉을 최고라 하지 않고, 유다가 찬송이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미의 아들들의 찬송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아비의 아들들의 찬송이 된다’고 기록된 것입니다.

 

이는 물론 유다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찬송’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확실하게 모든 형제들로부터 유다가 찬송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창 29:35).

 

일반적으로 많은 형제 가운데 칭송을 받는 자가 있는가 하면

형제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모두 형제들의 찬송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유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Power)을 받게 되었습니다.

9절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동물원가서 사자를 보면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자가 ‘동물의 왕’이라는 별명만큼이나 그 생김새만으로도 엄청난 위엄과 품위가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사자는 얼굴도 크고 벌써 앉아 있는 모습에서 권위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다를 사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유다 지파의 하나님이 사자와 같은 힘과 용맹과 품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후에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도 보면 차지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던 산지는

유다 지파가 올라갔습니다. 사자와 같이 아주 용맹스러워진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유다에게 ‘왕권’(Prerogative, 특혜)을 주셨습니다.

10절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왕이 잡고 있는 지팡이를 홀이라고 하는데, “실로가 오시기까지 하겠다”는 말은

“너를 통해 왕권이 유지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실로’가 무엇인지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논란이 많이 되고 있죠.

그러나 다수의 견해 가운데 첫째는 ‘평화를 가져오는 자’라는 해석이 있고,

둘째는 ‘왕권이 그에게 속한 자’(To whom it belongs)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해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실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왕권은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유다 지파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유다 지파였고, 합법적인 왕권은 유다 지파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로부터 나오시게 된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유다를 ‘번영’(Prosperity)하게 하셨습니다.

11~12절에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빨래는 허드레 물로 하는 것이지 포도주로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포도주를 빨랫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리고 당나귀는 보통 어디에 묶어둡니까? 일반적으로 뽕나무에 묶어두거나

그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나무에 묶어두기 마련인데,

유다는 그 비싼 포도나무에 당나귀를 묶어 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은 유다 지파가 앞으로 돈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마어마한 번영인 것입니다. 물질에 조금도 구애를 받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네 가지 ‘P’로 시작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찬송’(Praise), ‘힘’(Power), ‘왕권’(Prerogative), ‘번영’(Prosperity)입니다.

 

결론

 

야곱이 12지파를 모두 축복했지만 그 핵심은 유다 지파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8절에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9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 가운데 가장 문맥이 맞지 않는 구절이 18절입니다.

갑자기 야곱이 자기 소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18절의 말씀이 문맥에 맞지 않는 의아한 구절이기는 하지만

야곱이 예언한 모든 말씀의 궁극적인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다 불러놓고, 궁극적인 목적은

너희들로부터 주의 구원이 온다는 것을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너희들 가운데 유다로부터 주의 구원이 온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유다로부터 오는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야곱의 아들들로부터 오고, 구원은 유다 지파의 왕들 가운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계5:5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유다 지파의 사자’(The lion from the tribe of Judah)라 했죠.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사자이십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구원받기 싫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구원받기 싫다는 사람을 하나님이 왜 구원하셔야 합니까?

 

우리를 지옥과 마귀로부터,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부처는 훌륭한 종교가였지 구원자일 수 없고,

모하메드 역시 종교 천재였지만 그를 구원자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오직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창49장에 야곱이 기다리는 주의 구원은

우리를 지옥의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천국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로 이뤄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구원은 2천년 전에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언이 실현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야곱이 기다린 주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주의 구원은

주의 재림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질병, 죽음, 가난, 전쟁과 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의 산 소망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고 부활하여 죽지 않고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는 우리에게 은혜를 가져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기다립니다.

 

신앙생활은 주의 구원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주의 구원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샘과 담과 힘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이 유다에게 주신 번영, 영적인 복도 우리에게 내려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9:28절에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그릇에 맞게 받을 만큼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영혼의 그릇을 더욱 넓히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