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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센교회에 주신 특별은혜 창47:20~31 2014.06.29.
서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아무런 공로나 이유 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두 가지 종류의 은혜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일반은혜’(General grace), 혹은 ‘보통은혜’(Common grace)라고 합니다.
마5:45절에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하나님은 비를 내리실 때, 기독교인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불교인, 회교도들에게도 주십니다.
불신자와 신자를 가리지 않고 주신다는 것입니다. 해를 비춰주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소와 물도 사람을 가려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세를 내는 것은 물을 공급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일 뿐, 물도 공짜입니다.
행17:25절에도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생명과 호흡도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주시는 일반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만 베풀어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특별은혜’(Special grace) 또는 ‘구원의 은혜’(Saving grace)라고 합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주는 면에서도
예수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창47:13~26절에는 애굽 백성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말하고 있고,
27~31절까지는 야곱의 후손들, 즉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는 특별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고센 땅에 구별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그 당시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고,
본문 속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고센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일반은혜와 특별은혜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애굽 백성에게 베푸신 일반은혜(13~26절)
본문 창47장의 시간적 배경은, 7년 흉년이 계속되는 와중에 4년째가 지나고
앞으로 3년을 더 남겨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때 요셉이 애굽 백성들에게 행한 일들은 비윤리적으로,
심지어 잔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는 애굽 백성들의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요셉은 양곡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굽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애굽 백성의 모든 소유를 4단계에 걸쳐 다 빼앗았습니다.
1단계, 돈을 가지고 오면 양곡을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그들의 돈을 다 빼앗았습니다.
요셉은 그 돈을 전부 바로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바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2단계는 백성들의 짐승을 받고 양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짐승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짐승의 순서대로 가지고 옵니다.
이 사람들이 맨 처음 가져오는 것은 말이었습니다.
그 다음 양, 소를 가지고 왔고, 마지막으로 낙타를 데리고 왔습니다.
성경에 약대라고 기록되어 있는 낙타는 애굽 사람들에게 자가용과 같은 소중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양곡을 받기 위해 낙타도 요셉에게 가져갑니다.
그러면 요셉은 그 짐승들을 받아서 바로에게 가져다줍니다.
3단계로 그들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땅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온 땅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굽 전역이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바로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4단계는 백성들의 몸을 받아 바로의 노예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노예가 된 애굽 백성들은 요셉에게 씨앗을 받아 바로의 땅을 경작해서 먹고 사는
소작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이 낸 소출의 1/5을 상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성경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요셉이 백성들의 모든 것을 착취하였다고 비판합니다.
공산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말합니다.
요셉을 매우 비윤리적인 사람, 부르주아의 앞잡이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런 요셉이 예수님의 예표가 될 수 있느냐고 비평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의 상황을 현대인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애굽은 당시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창47: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애굽 백성들이 모두 굶어죽을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굶어죽는 것이 낫습니까? 노예가 되는 것이 낫습니까? 노예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니 눅15장을 보면 탕자가 유산을 받아 모두 탕진하고 굶어 죽을 상황이 되었는데,
“내가 여기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아버지의 집에 가서 차라리 종이 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굶어죽는 것보다 종이 되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우리는 노예라고 하면 쇠사슬에 매여 노예 시장에 팔려 나온 아프리카 노예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당시 애굽이나 가나안 땅에서 노예라는 것은
마치 조선시대의 머슴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로부터 양곡을 무료로 공급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양곡을 얻기 위해서 국가에 땅이나 짐승, 자신의 자유를 파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국가에 헌납하고, 그 대가로 양곡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굽 백성들은 공짜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굶어죽을 처지가 되면
자기의 몸을 노예로 팔아서 양곡을 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형제를 노예 삼으면 7년째는 풀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라도 풀어주지 않았으면 50년째 희년이 되었을 때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안식일법과 희년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노예는 주인의 집에서 평안히 살았습니다. 노예는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인이 명하는 일을 충실하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속편한 직업이 노예인 것입니다. 아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예가 되는 것은 굶어죽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유를 얻기보다 스스로 영원히 주인의 종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출21:5~6절에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런 노예가 있으면 제사장은 문에다 그의 귀를 뚫어서
주인의 집에 영구한 노예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3,500년 전 애굽 백성들이 바로의 노예가 된다는 말은
대단히 안전한 사회보장제도가 시행되었다고 봐야 정확한 판단입니다.
노예가 되지 않으면 길에 버려져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굶어죽어도 양식을 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예가 되면 잠을 잘 수 있는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고,
처자식들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니,
요셉은 백성들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탁월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했던 것입니다.
온 국민이 노예가 되었으니 사실상 노예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왕의 신하인데, 신하이거나 노예이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세금은 몇 퍼센트를 냅니까? 20%입니다.
20%의 세금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금보다 적은 것입니다.
우리는 직접, 간접세를 내기 때문에 적어도 30~40%의 세금을 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그 옛날 애굽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 세금을 거둔다고 착취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애굽 백성들은 요셉에게 착취를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창47:25~26절에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제사장들에게는 납세의무를 부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애굽 백성들은 요셉에게 “네가 어찌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착취하느냐”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당신 때문에 살았습니다. 주께 은혜를 입었으니 기꺼이 바로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요셉은 착취자가 아닙니다. 애굽 백성들을 굶어죽을 위기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보호해준 은혜의 시행자였던 것입니다.
바로가 모든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하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잃은 것도 아니고 20% 세금만 바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양곡도 얻고 처자식도 살리고 자신도 사는 아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애굽 백성 전체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시혜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은혜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는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구원받는 은혜와 다른 것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든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힘입어 살고 기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는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은혜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에 대해 욕을 하는 매우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면 택한 백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특별은혜는 무엇입니까?
◑2. 택하신 백성들에게 베푸신 특별은혜(27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47:27
애굽 백성들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 와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업을 얻었습니다.
바로의 짐승이 늘어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이 이전보다 더욱 많아졌습니다.
왕성하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13절의 내용과 크게 대조됩니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47:13
애굽 백성들은 사방이 쇠약한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겨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예가 된 애굽 백성들과는 완전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센 땅에서 이처럼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숫자적인 번영을 이룬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창46: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약속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내가 너로 번영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세상이 기근으로 굶어죽을 상황이 되었어도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수적인 번영을 이루었던 시기가 바로 애굽에 거주했을 때입니다.
70명이 430년 만에 200만 명이 되었습니다. 1년에 2.4%의 인구가 증가한 것입니다.
2.4% 인구증가라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21세기인 오늘날도 교회에 두 가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28: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 마13:31~33절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작게 시작해도 크게 확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 12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세가 어마어마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세가 가장 빠르게 확장되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2014년도 기독교 인구가 8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1900년도에 ‘의화단 사건’이라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의화단은 백년교의 분파였는데,
백년교는 중국의 이단 종교로서 손오공과 삼장법사를 섬기는 종교였습니다.
그 가운데 의화단은 주먹을 쓰는 소림사 같은 분파였습니다.
자기들은 주먹만 써도 절대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당시 청나라 때 외국 문물과 기독교가 나라 안으로 유입되는 것을 보고
‘부청멸양’이라고 해서 청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서양 것을 멸망시키자는 취지로
제국주의와 기독교를 반대해서 일으킨 폭동이 1898~99년에 있었던 의화단 사건입니다.
*扶淸滅洋 청을 도와 서양을 멸하자
이 의화단 사건의 중심에 청나라의 서태후가 있었는데,
그녀가 처음에는 의화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가 부청멸양을 내세우며
반기독교 운동을 펼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먹을 가지고 싸우니 외세의 총과 대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서양의 8개국이 북경에 진입해서, 의화단을 제압하자 청나라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독교 선교사가 200명 이상 죽었고, 그리스도인들이 20,0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많은 순교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의화단 사건으로 말미암아 1900년도의 중국 기독교는 거의 멸절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 110여년이 지난 2014년도에 중국의 기독교 인구는 8천만 명이 되었습니다.
무려 1,000배 이상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교회에게 베풀어주시는 특별한 은혜, 구원의 은혜인 것입니다.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3. 특별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한 야곱 (28~31절)
하나님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는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칠 세라” (창 47:28).
야곱은 147세가 되어 죽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기 전 유언을 남깁니다.
그런데 야곱은 유언을 남기면서 후손들에게 일반은혜보다
특별은혜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죽습니다.
28~29절에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사십칠 세라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그가 그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환도뼈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
하나님의 자녀들 각자에게는 모두 죽을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한이 오기 전에는 아무도 죽지 않고, 기한을 넘겨서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죽을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은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 전에는 병에 걸려도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면 멀쩡해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시편 90:12절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죽을 때가 다가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을 불러서 환도뼈 아래 손을 넣고 두 가지 맹세를 하게 합니다.
애굽에 장사하지 말 것과 죽으면 나를 매어다가 선영에 묻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50:1~14절에 요셉은 아버지에게 맹세한 대로 야곱이 죽은 후에
40일 동안 향 재료를 넣어서 아버지의 시신을 보존합니다.
그리고 바로 왕의 허락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서 야곱을 장례를 치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마므레 동산에 묻었습니다.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앞 막벨라 동굴입니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돈을 주고 산 가족묘입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 사라, 이삭, 리브가, 레아도 묻혀 있었고, 야곱도 거기 묻힌 것입니다.
야곱은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자손들을 교육시켰습니다.
‘너희는 나를 애굽에 묻지 마라. 애굽 땅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애굽에 나를 묻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애굽에 묻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내 시신을 매어 가나안 땅에다 묻어달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야곱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애굽 땅은 세상의 상징이고 가나안 땅은 천국의 상징입니다.
고로 야곱의 유언은 “나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고, 애굽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애굽에 영원히 거할 사람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가 더 중요하다”는
후손들을 향한 교훈적인 메시지를 남긴 것입니다.
우리도 죽을 때 자손들을 다 모아놓고
“내가 일평생 신앙생활을 해봤는데, 말짱 헛것이더라. 하지 말거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식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주 못된 짓을 하고 죽는 것입니다.
자식 교육을 아주 잘못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죽을 때 애굽 땅이 아무리 좋아도 나를 애굽에 묻지 말 것과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말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지 바로의 노예가 아니다! 나는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다!”
라는 명백하고 분명한 교훈을 남긴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둘 곳이 못 됩니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고, 굶어 죽는 것 보다 번영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6절에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하늘의 본향을 사모한다고 말했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일반은혜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은혜는 악인들도 받는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은혜만 받고 특별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땅을 떠나야 할 정해진 시간이 오면 돌아갈 본향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인천시 화평동 350번지에서 살면서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많이 했습니다.
각종 신문을 접어서 한참을 하다보면 날이 저물고 저녁때가 되어 어머니가 부르십니다.
김치찌개 해 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밥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딱지를 내려놓고 밥 먹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딱지는 한 포대를 따서 잔뜩 메고 있어도 저녁때가 되었는데
아무도 불러주는 이가 없으면 이 얼마나 불쌍한 아이입니까? 그 아이는 밤이 두려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이 계신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특별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반은혜도 받고, 특별은혜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도 특별은혜를 귀중히 여기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특별은혜를 귀하게 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주일이 되었는데도 교회에 가지 말고 학원가라고 가르치거나,
일단은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고, 돈이 최고, 권력이 최고, 유학 가는 것이 최고라고 가르친다면
그것이 별 볼일 있는 줄 아십니까?
그들은 특별은혜에 대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업신여기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자유에 맡겨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몽둥이 가지고 두들겨 패서라도 반드시 가르쳐야 할 너무나 귀중한 진리인 것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십일조는 네 것 아니니 떼먹지 말라고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기도하면서 살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은혜도 물론 중요하지만 특히 우리의 후손들에게
특별은혜를 가르칠 수 있는 세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