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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역사

LNCK 2012. 6. 10. 09:07

https://blog.naver.com/karamos/220310355857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역사           창46:28~47:6             2014.06.22.

 

서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고통의 세월을 겪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과 슬픔을 통해 정한 목적을 이루신 이후에

반드시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시는 보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시편은 총 150개의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모세가 기록한 시가 한 편 있습니다.

바로 시편 90편입니다. 시편 90편 1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시 90:15).

 

모세는 우리를 곤고케 하신 시간만큼, 고통을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위로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나이 130세가 되어서야 드디어 잃어버렸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된 요셉은 초라한 모습이 아닌 세계 최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46:30절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야곱은 이제 만족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17년의 세월을 더 허락하셨습니다.

야곱은 130세에 요셉을 만났고 147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17년을 더 산 것입니다.

 

야곱이 147세가 되어 세상을 떠날 때, 그는 더 이상 슬픔의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슬퍼한 것만큼 기쁨을 주시고,

고통을 당한 만큼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의 가족이 몇 명이나 이민을 왔습니까? 70명이 왔습니다.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 명이었더라” 46:27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에 온 것은 단순히 사람의 계획에 의한 이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으로 이민 올때, 첫 번째 단추를 잘 끼워야 했습니다.

왜냐면 첫 번째 단추를 제대로 잘 끼워야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애굽에 정착하면서 사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죽고, 요셉이 죽어도 이들이 머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요셉은 야곱의 가족 70명이 공적인 입국 절차를 제대로 밟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가족들의 이민을 참으로 지혜롭게 추진하였습니다. 요셉은 지혜가 있었습니다.

전10:10절에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성공하기에 유익하며,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자르는 목수가 무딘 날을 가진 톱을 사용하면 힘만 들고 자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톱날을 잘 갈아서 날카로운 날을 사용하면 몇 번 썰지 않아도 곧 나무가 잘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무를 자르기 전에 항상 연장의 날을 살펴보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민을 오는데 있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는지,

요셉은 이 어려움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했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도와주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이민 과정의 세 가지 어려움

 

요셉의 가족들은 일반적인 이민자가 아니라, 애굽 왕 바로의 초청을 받은 초청이민자들이었습니다.

45:18절에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바로가 요셉의 가족들을 초청한 이유는 요셉의 신세를 갚으려고 한 것입니다.

요셉 덕분에 온 백성이 다 살게 되었으므로 신세를 갚기 위해 자비를 베푼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일반이민이 아니라, 특별이민을 온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미국에 이민을 가더라도, 부모 초청이나 형제 초청으로 가면

시간도 아주 오래 걸리고 절차도 매우 복잡합니다.

그런데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특별 외교 문서를 보내어 비행기와 필요한 경비를 보내주고,

그의 특별 초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고 신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민을 오는 데는

세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야곱과 그 가족들의 직업이 ‘목축업’이었기 때문에 생긴 어려움이었습니다.

바로가 그들을 초청할 때는 그들이 목축하는 사람들인 줄 몰랐습니다.

 

46:34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가증히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애굽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도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 특히 짐승을 잡고 고기를 파는 사람들을 하대하였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은 좋아하면서, 고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하대하는

아주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문화였습니다.

(*조선시대 백정이 중앙아시아 출신 유목민 이민자들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밖에 따로 살았고, 도축은 그들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그들이 전문이라서)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라 할지라도

이 문제는 요셉과 야곱의 가족들이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민 올 때 면접하는 사람이 “당신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목축업입니다”라고 대답하면

“당신의 이민을 받을 수 없다”고 할 가능성이 높은 심각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과 요셉이 거짓말을 해서, 면접관을 속여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이민을 오고자 하는 사람을 받을 때,

해당 나라 사람들이 가증하게 생각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가족은 직업이 목축업이었기 때문에, 이민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요셉의 입장에서 애굽 사람들이 가증히 여기는 목축을

아버지와 형제들이 계속하게 되면

국무총리인 요셉의 권위에도 심각한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 보니 ‘요셉은 목축업자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덕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자는 소위 백정의 아들인데, 어떻게 이런 자가 우리의 총리가 될 수 있느냐?”며

계속 비난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로의 신하들은 왕을 찾아와

“바로 왕이시여, 이런 자가 어찌 우리의 총리가 될 수 있습니까?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요셉이 쫓겨나면 야곱의 가족들도 애굽에서 쫓겨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족의 이민은 요셉 자신에게도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어려움은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이민을 와도

애굽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태양신과 각종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이 애굽의 신들을 치신 사건이었습니다.

 

애굽에는 신들이 아주 많습니다.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 가서 독립된 정체성을 유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사는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려면 애굽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살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가족들에게는 독립된 지역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이러한 어려움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갔을까요?

 

◑2. 어려움을 해결하는 요셉의 지혜

 

어느덧 요셉도 총리가 된 지 9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총리로서 9년의 경력을 쌓은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만나게 된 시점은 총리가 되고 난 이후 7년 풍년의 때가 지나고

2년 동안 흉년이 지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5년 동안 흉년이 계속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민을 올 가족들을 모아 놓고 오리엔테이션(사전교육)을 했습니다.

요셉의 지혜는 보통 지혜가 아닙니다. 그는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족을 모아 놓고

바로가 묻는 질문에 대답할 말을 미리 일러주기 위해 오리엔테이션을 했던 것입니다.

 

▲첫째로 요셉은 가족들에게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정직하게 정면 돌파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정직하게 정면 돌파하라!

 

46:33~34절에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우리는 대대로 목축을 한 목축업자입니다”라고 정직하게 대답할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르쳐준 말은 거짓이 없는 정직하고 성실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합니다.

 

사람이 지혜롭다고 할 때,

하늘에서 온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고, 흑암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음모와 술수가 강하고 거짓말을 잘 하며, 얼굴에 궤휼이 가득한 사람은

흑암에서 온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약3:15절에 의하면 ‘그들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늘 정직하고 성실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정직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정직이 최고의 정책’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요셉의 정책은 정직이었습니다.

 

잠11:3절에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

잠언11:6절에도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요셉은 처음부터 정직을 정책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첫 번째 원리이고, 하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이단자들은 모두 부정직하고 거짓말투성이입니다. 그들은 어제 한 일을 오늘은 하지 않았다고 하며,

그들이 한 짓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끝까지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지혜는 사악한 ‘흑암의 지혜’입니다.

 

정직한 것이 하늘의 지혜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어려움이라도 정직으로 정면 돌파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요셉은 자기 형제들이 목축을 한다고 해서 형제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로 인해서 자기가 당할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형들 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창 47:2).

 

요셉은 바로 앞에 자기 형제들을 보여줍니다. 형제들 중 오인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고

“나의 형님들입니다”하며 소개합니다. 형님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 야곱은 이미 나이가 130세나 되어 얼굴에 검버섯도 많이 피고

노인이 된 초라한 모습인데, 그를 바로 앞으로 인도합니다.

 

47:7절에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합니다.

지금 누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야곱이 바로 앞에 나아가면서 복을 빌어줍니다. 야곱의 당당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요셉의 형들이나 요셉의 아비인 야곱은 바로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신데 우리가 주눅이 듭니까?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47:8절에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의 이 질문에

야곱은 대단히 어른스럽고 인생경험이 많은 어르신의 대답을 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47:9~10).

 

요셉은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시골 출신이었지만 출세한 사람들 중에는 집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를 가리키며

“누구시냐”고 묻는 질문에 “집에서 일하는 아저씨, 아줌마”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못된 자식입니다.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부모나 형제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매우 당당했습니다.

 

요셉은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히2:11절에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두고 형제라고 부르셨는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이 천하의 미물보다 못한 죄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2:17절에는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히 2:17).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가족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가족들을 기근의 멸망에서 구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것도

우리를 지옥의 멸망에서 구원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이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끄러워하셔도

우리는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죄인들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너는 내 형제요, 내 자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최고의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교회, 그리고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해서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합니다.

식사 기도할 때도 기도를 하는 것인지, 잠시 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 올 때, 성경을 신문지에 싸서 다닌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데, 우리가 전도하는 일을 부끄러워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것이 부끄러우니까 전도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도리어 그 이름을 자랑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의 형제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아주 대놓고 모독을 합니다.

요새 예수님의 이름 모독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아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주 별 소리를 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한 것 때문에 나중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인간이 모독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이름,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민족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구별된 땅을 예비하였습니다.

34b절에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고센은 애굽 동북부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고,

출애굽 하기에도 매우 유리한 위치가 바로 고센 땅입니다.

이 땅은 검고 비옥하여 농산물이 잘 나옵니다.

파와 부추와 오이와 참외, 양파와 같은 야채가 잘 자랍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와 강이 가까워 생선과 물고기를 손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고기와 생선, 그리고 야채를 먹고 건강하게 자손들이 마음껏 번영할 수 있는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이 고센 땅에는 애굽 사람들이 들어와 거주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목축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후손들이 민족적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땅이 고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에 민11:5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불평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들은 고센 땅에서 값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센 땅은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가 증가될 수 있었고,

신앙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출애굽도 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정직하게 목축업을 해 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가족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함으로

애굽에 잘 정착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3.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바로가 요셉의 요청을 다 허락합니다.

47:5~6절에 “바로가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 네 아비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비와 형들로 거하게 하되

고센 땅에 그들로 거하게 하고 그들 중에 능한 자가 있는 줄 알거든

그들로 나의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

 

야곱의 가족들은 일평생 해오던 목축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애굽의 국가 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왕의 짐슴을 주관하는 일을 통해서 왕가에 짐승을 공급하는 일을 책임지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야곱의 가족은 정체성을 가진 민족 국가를 이룰 수 있도록

합법적인 모든 절차를 마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잠언 21:1절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마음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고레스 왕의 마음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미국 대통령의 마음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마음껏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들은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하였기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되셨습니까?

 

미가5: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고,

하나님이 당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요셉이 마리아와 고향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내려갔다가

그만 아이를 낳게 된 것이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의 마음도 움직이셔서 예언의 말씀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결론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하는데, 우리는 ‘역사’를 His Story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분이 만들어 가시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고,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의 길은 완전한 길이고, 아무도 하나님에게 도전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스스로 역사의 주인인 것처럼 교만했다가

7년 동안이나 짐승처럼 풀을 뜯어먹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니엘4:37절에는 7년이 지나고 그가 깨달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여러분, 하늘에는 왕이 계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런 말은 어리석은 자나 하는 말입니다 (시 14:1).

 

지식은 있어도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어떻게 천지가 있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태양은 적절한 온도의 빛을 비춰줍니까?

하나님이 없다면 어떻게 이 공기 중에 있는 적절한 산소가 유지되겠습니까?

 

그 일을 오바마 대통령이 하겠습니까? UN사무총장이 하겠습니까?

인간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의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교육은 지혜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저는 인천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가 인천중학교를 다닐 때, 전임 교장 선생님으로 길영희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학생들에게 항상 정직을 가르치셨고,

실제로 무감독시험제도를 시행하여 학생들에게 정직이 무엇인지를 어려서부터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욕하면, 세 가지가 자신을 가리키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세 배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정직성을 기르고, 언행을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잠3:14~15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가 최고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5절에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늘 어려운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간 요셉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하늘의 지혜로 채워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