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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LNCK 2013. 8. 2. 11:30

◈아버지와 아들                삼하18:5, 말4:5~6                  13.06.23.인터넷 설교 녹취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마지막 심판 전에,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구약의 처음에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그러나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 날’입니다. 재림을 가리킵니다.

 

먼저는, 그 심판 전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서로 회복되어지고

서로 돌이켜질 것이, 본문 말라기에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임하여, 저주로 그 땅을 친다고.. 경고하십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임하셔서, 심판하실 것이고,

마지막 심판 때는.. 하나님이 그렇게

가정이 회복되지 못한 점을 보시고.. 저주로 그 땅을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내가 다시 왕으로 올 때, 크고 두려운 그 날에

너희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내가 땅을 칠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것은 바로 ‘가정의 회복’입니다.

 

놀랍게 주님의 구원은, 그 완성이 가정입니다.

말라기서를, 세상 종말에 관한 (이중)예언으로 볼 때,

주님의 심판/재림 전에.. 주님은 구원사역을 완성하실 터인데,

그 구원사역의 완성은.. 다른 말로 하면, <가정의 회복, 가정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일을 위하여

‘선지자를 내가 보내리니..’ 선지자는 사람을 살리려고 보내십니다.

 

그를 보내서 하시는 일이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이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영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자녀된 성도들의 관계를 말씀하지만,

문자적 해석으로,

그것은, 실제 가정에서, 아비와 자녀의 마음을 서로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가 돌이켜지고, 회복되면

시일이 지나면 차츰, 우리 가정에서도

나와 아버지, 나와 아들과의 관계도 돌이켜질 것이고,

 

그것이 말세에,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시고,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 땅에서 이루기 원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이 만약 말세이면,

하나님이 말세 때, 중점적으로 하시는 일이.. 구원의 완성인데,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가정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성도들의 부자관계가 회복되어질 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서, 아비와 자녀의 마음이, 서로 돌이켜지고, 서로 회복되어지는 것이고,

 

만약 그 회복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이 임한다는 경고가.. 본문 말라기 4장1절~6절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마지막 일은, 가정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셔서 하시는 일은, 오순절날 성령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하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가 처음으로 한 봉사는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를 돕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초대교회의 사명은, 사탄이 처음 친 가정, 무너진 가정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역할은 보호, 아빠의 역할은 격려입니다. 주1)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축복은 아버지의 경로로 열립니다. 축복은 땅에서 잘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자마자,

너의 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의 잘못으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자녀들이 태어나서, 그 가시와 엉겅퀴로 상처 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요? 부모 세대의 죄로 인하여.

 

같이 겪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점이 좀 있어요. 무시할 수 없습니다.

 

▲1. 아버지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의 예

엘리 제사장은, 성경에 보면, 그 자녀가 불량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라...’ 삼상2:29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너는 제사장의 역할 이전에, 너는 아버지의 역할에서 불합격이다.

너는 너희 아들들을 나보다 더 귀히 여겼다.’

 

‘자기 자식이 저주를 자청하되, 잘못된 길로 나가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삼상3:13

라고 하나님은 엘리를 혼내셨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목회를 못 했어요. 글쎄 잘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그런 엘리 제사장에게

제사드리는 자기 직무, 즉 목회를 잘못하는 것을 뭐라고 하기 전에,

자기 자식에게 잘못된 것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가정에 있으십니다.

말세 때 부흥과 회복은.. 각 가정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와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말4:6

 

▲2. 다윗 왕과 압살롬의 예.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려 합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서, 아버지의 신하들을 규합해서 왕이 되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 아들 압살롬이 얼마나 나쁜 자인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무엇을 기록하고 있느냐 하면요...

 

이제 반란군이 진압되면서, 다윗의 부하들이 그들을 완전히 궤멸시키러 갑니다.

그때 다윗 왕이 한 말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부하들, 진압군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한 가지만 기억하라. 압살롬은 나의 부족한 아들임을 기억하라.’

‘백성들이 그 말을 다 들으니라.’

 

삼하18: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한 마디로 이스라엘 전 국민이 놀란 것입니다.

당시 다른 왕들 같으면, 그런 아들은 죽여 버립니다.

 

역대 왕들은 아들이 반란을 일으킬 기미가 있으면, 미리 죽여 버립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기를 죽이려 했는데도,

그는 ‘나의 부족한 아들임을 기억하라. 이 말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니라’

 

무엇입니까? 다윗은 왕으로서 세상에 성공한 이유는

부족한 자녀에게, 그가 온전한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 사울왕과 요나단의 예.

사울 왕의 경우를 예를 들면, 사울 왕은, 자기 아들을 끔찍이 위합니다.

자기 아들 요나단을 왕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면서까지,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사랑의 표현이, 아들 사랑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아들 요나단이, 자기 경쟁자 다윗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후계자가 될 생각을 하지 않고, 다윗과 친구로 돈독히 지냅니다.

 

요나단은 정말 좋은 아들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보다 훨씬 좋은 아들입니다.

놀랍게도 좋은 아들에게, 사울왕은 욕과 저주를 합니다.

‘이 패역부도한 계집의 소생아!’

자기 아내까지 욕을 하고 있습니다.

 

화가 난 사울왕은,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창을 던지려고 잡았습니다.

던지지는 않았지만, 창을 잡고 던지려는 시늉까지는 했습니다. 삼상20:33

 

자기 아들에게 창을 던지는 자가,

밖에 나가서 아무리 열심히 바깥일을 해도,

자기가 하는 일도 잘 안 되고, 그 자녀도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입니다.

본문 말라기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도 가정이요, 회복도 가정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저주하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가정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욕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서,

그 아들도 안 풀리고, 그 아버지도.. 사울왕처럼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화만사성’이란 고사성어는,

인간역사의 오랜 경험과 관찰에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우연의 일치일까요? 대단히 성경적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의 바깥에서 성공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 자녀에게 분노의 창을 던지면서, 밖에 나가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버지도 잘 되지 않고, 그 자녀도 잘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사장이건 왕이건, 그들을 훈계할 때,

‘네가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잘 대하지 못한 것’을 훈계하십니다.

 

놀랍게 요나단은, 좋은 아들인데, 죽을 때 자기 나쁜 아버지처럼 죽습니다.

저주입니다. 아비의 저주가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요나단은 나라를 위해서 전쟁을 승리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이런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인생의 마지막은, 아버지와 함께 벳산이라는 도시에서

목이 잘린 채로 옷을 벗김 당하고, 아버지와 함께 못 박혀 죽습니다.

그의 죽음은.. 저주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아비의 저주를 들었는데, 우연일까요? 요나단은 그 저주대로, 비참하게

자기 생을 마감했습니다.

 

▲제 성목사 자신의 예,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기 바라십니까?

 

잘 되길 바래서 잘 해줘도, 어쩌면 여러분 부모의 삶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저주가, 아무리 자랑 하려고 하는 여러분의 자녀의 삶을, 제한되게 합니다.

아버지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와 관계가 안 좋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제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졸업사진에 보면, 아버지가 안 나옵니다.

제가 자라는 결정적 기간에, 아버지는 집에 안 계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이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아들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안 좋았던 관계가, 이제 똑같이 저와 제 자녀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들 하는 짓이, 꼴도 보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많이 혼을 내도 안 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두려웠습니다. ‘얘가 자라면 두렵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위기가 왔습니다. 제 아들이, 이스라엘에서 유대인 학교에 다닐 적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얘가 숙제를 1년 동안 안 해왔다’고 부모인 저를 호출했습니다.

 

저는 배신감과 함께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동시에 속에서 두려움도 일어났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와 사이가 안 좋아지겠구나..’ 분노 안에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이거 큰 일 났구나, 가만히 넘어갈 수도 없고..’

그 때 본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말라기의 본문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 선지자가 와서 먼저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이키고..’

 

선생님은, 숙제를 하는 어린이로 돌이키게 하려고, 부모인 나를 학교로 불렀지만,

제가 말라기 본문 말씀을 딱 붙잡는 순'간, 말씀이 제게 빛이 되는 순간 깨달은 것은,

제가 서울 보광초등학교 2~3학년 시절에,

숙제를 제가 2년 동안이나 안 해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가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Its good, he is better than me.’ 괜찮습니다. 우리 아들은 제보다 더 낫습니다.

 

저는 숙제를 2년 동안이나 한 번도 안 해 갔는데,

아들은 1년 동안 한 번도 안 해 갔으니, 제보다 더 낫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담임선생님은, 저를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았습니다.

제가 우리 아들은, 옛날 제 모습보다 낫다고 하니까, 막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점점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새벽에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3시에 집을 나서야 했을 때,

아내도 자고 있고, 딸도 자고 있었는데,

어린 우리 아들이 일어나서, 아빠의 샌드위치 도시락을 만들어 주었을 때,

정말 마음에 감동과 감사가 밀려왔습니다.

 

본문 말라기 말씀을 외우면서,

제가 ‘아비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돌이키려고’ 기도하며 애를 썼을 때,

‘아들의 마음도 아비에게로 돌이켜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딸이, 아빠인 저 더러 학교에 못 오게 하는 것이 이해됩니다.

비가 오면 이스라엘은 무지 세게 옵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이 되어서, 학교에 우산을 가지고 갑니다.

 

그러면 딸이, “아빠 학교에 오지 마” “왜?”

“창피해”

 

그런데 제가 어릴 적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어릴 적 그랬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엄마 아빠 닮았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지금 제게, 똑같이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딸이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보광초등학교로 꼭 우산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우산도 쓰지 않고, 일부러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빠가 히브리어를 서투르게 해서 놀림 받으니까,

아빠는 학교에 오지 마. 애들이 아빠 말을 따라하면서, 놀리잖아”

 

그런데 제가 말라기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우리 가정의 회복을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가 잘 되어야,

아버지의 목회도 잘 되고, 자녀의 장래도 잘 된다는 사실을,

그 중대성을, 제가 깊이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 날도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저는 우산을 들고, 딸의 학교로 갔습니다.

“아빠가 우산 들고 와서, 안 창피하냐?”

“괜찮아. 우산 가지고 와”

 

놀랍게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 창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아버지인 제게도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놀랍게 저와 아버지와의 관계, 그러니까 우리 아들로 말하자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가, 손자로 인해 치유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비의 마음이 자녀에게 돌이켜지고,

자녀의 마음이 아비에게로 돌이켜진 ..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는 말

아비의 마음이 아들에게 돌이켜지고, 아들의 마음이 아비에게로 향한다면

직업이나 학교 공부가, 잘될 때나, 잠깐 잘 못 될 때나 상관없습니다.

화가 결국은 복으로 바뀝니다.

 

다윗 왕은 나라를 다스린 것이, 왕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스렸습니다.

자기 아들이, 반란군의 수장이 되어서, 나라를 빼앗으려는 데도

자기를 지지하는 군대를 모아놓고 하는 말이,

‘그는 나의 부족한 아들임을 기억하라’

 

여러분, 사울왕의 실패는, 군사력의 열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의 실패는,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에 대한 자세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다윗의 성공은, 그가 왕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가 아버지로서 자녀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서.. 이미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 주님이 하실 일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 다음에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합니다.

즉 가정을 회복시키시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격려는, 세상을 여는 축복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 속에 아버지의 격려가 얼마만큼 있습니까?

아버지의 격려.. 이것이 아버지의 사명입니다.

 

사울왕 같은 아버지가 되면 안 됩니다.

자녀가 실력이 안 되고, 경력이 모자라도..

아버지의 격려가 있는 자녀는, 결국은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정이 회복되면, 하나님은 그 가정을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격려하십시오.

아빠들 가운데, 자녀에게 잘 해 주면서도, 분노의 창을 던진 분은 없습니까?

 

사회에서 이상하게 안 풀린 사람은,

그것은 내가 자녀에게 던진, 분노의 창 때문 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녀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절대 축복의 문을 안 열어주십니다.

 

이건 제 얘기입니다.

저는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들에게 던진, 분노의 창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저는 무너졌습니다. 내가 아들에게 분노의 창을 던지고 있다면,

세상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도,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달랐습니다. 아들이 자기를 향해 창을 던져도,

그는 눈물만 흘리며 아들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내 부족한 아들이라.’

즉 압살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이 부족한 다윗을, 온전한 왕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여, 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가정이 회복되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저주가 미칠까 하오니,

우리 모든 가정들이, 아비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돌이켜지고,

아들의 마음이 아비에게로 돌이켜지는 놀라운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그들이 하는 사업과 학업이, 다 잘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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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엄마의 역할은 보호, 아빠의 역할은 격려입니다.

엄마들을 통하여 하는 역할은, protection 보호입니다.

엄마를 통하여 어린아이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결혼할 연령이 오기 전에 사춘기가 오는데,

사춘기에 상담학과 성경이 만나는 정의는,

사춘기는 반항하는 시기가 아니라,

엄마의 영향력에서 아빠의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을 느끼는 단계가 사춘기입니다.

 

사춘기는 엄마의 영향력에서, 아빠의 영향력이 필요한 것을 느끼는 것이

엄마를 저항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사춘기의 장점은, 자녀가 아빠를 찾기 시작합니다.

아빠가 빨리 퇴근하기를 기다립니다.

아빠의 역할은 상을 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엄마의 역할은 보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여성(엄마)의 모든 생각과 구조는 보호하는 것입니다.

남자(아빠)의 모든 구조는, 격려하는 것입니다.

 

아빠의 사명은, 자녀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격려할 때, 그 격려가 축복으로 바뀝니다.

격려가, 하나님이 마련한 그 자녀 안에 좋은 점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아빠는 자녀들에게 격려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가슴속에, 여러분이 한 몇 가지의 격려,

그것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