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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만 같지 못하면

LNCK 2013. 8. 21. 13:43

https://blog.naver.com/karamos/220158778877

 

바리새인만 같지 못하면            마5:17-20               2011.03.06.

 

※기독교회가 사회적 책임 감당을 해야 하는 이유를,

실천적, 실제적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어서 스크랩 했습니다.

 

 

제(인명진 목사)가 며칠 전에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신 자승스님과 식사를 했습니다. *2011

이때 자승스님이 하신 말씀이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이어서

여러분과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불교계는 정부 특히 한나라당과 불편한 관계에 있습니다.

특히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교계에서는 여러 차례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개신교에 편향적이고 개신교의 편만 든다는 느낌 때문에 많은 반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불교계의 관계가 이렇게 최악이 된 것은

지난 연말 국회에서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한 금년도 예산에서

불교계와 관련이 있는 템플 스테이 예산을 삼감 하면서부터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불교계 지도부를 찾아가서

템플 스테이 예산을 확보해주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해놓고서

막상 예산을 통과할 때는 싹둑 잘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불교계에서는 당연히 무시했다는 생각과 배신감이 들어

전국 사찰마다 종교 편향을 자행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사찰 출입을

금지한다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모든 불교계 행사에 한나라당 지도자들 정부 관계자들을

참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불교는 전통적으로 호국불교라고 해서 역대 정권과 비교적 잘 지내는 친정부적인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명박 정부와는 큰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승스님은 정부가 불교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은 정부 탓이 아니라

그 책임이 불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불교가 해온 것을 생각하면 불교가 이렇게 무시당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못나서 그렇다면서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가 1700년인데

언제 한번 국민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까운 역사인 일제치하에서 모든 백성들이 고생하고

기독교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고 감옥에 갈 때

불교는 산중에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조용히 지냈으며,

 

기독교가 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고 병원을 세워서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을 했을 때

불교는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군사독재시절에 기독교는 탄압받고 고생하는 국민들과 함께 하고

민주화투쟁에 앞장섰으며,

많은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가고 목숨을 잃었는데,

불교의 스님 중에는 감옥에 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개발시대에 기독교는 노동자와 농민들과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고생하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 함께 투쟁하였으며,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고 보금자리가 되고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찾아와 고생하는 외국인노동자를 위해서 교회가 앞장서서 일하는데

 

불교와 스님들은 편안하게 지내고 고생당하는 국민들을 외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국민이 불교나 스님을 좋게 보고 존경하고 지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불교를 이렇게 무시해도

불교 편을 들어줄 국민이 없다고 생각하고

불교를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라는 (자조섞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차별하고 무시하는 것을 보고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정부가) 생각하면

감히 국민이 무서워서라도 어떻게 이렇게 (불교를 대놓고 무시)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다 불교의 잘못이고 스님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불교에서는 정부에게 무시하지 말라고 하기 전에

불교 스스로가 무시당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한다는

‘오대결사’ 라는 자정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제가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불교의 지도자들이 사태를 너무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솔직히 말씀드려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날 군사독재 시대에 민주화운동이나 인권운동은, 우리 기독교의 독무대였습니다.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불교나 천주교가 참여한 것은, 우리 기독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룩하고 인권을 지키는 일에, 기독교가 앞장섰습니다.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들의 편에 서는 일도 기독교가 주도해왔습니다.

외국인노동자를 돌보는 일도 기독교가 앞장섰고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 교회에 한국 사회에서 제일 먼저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외국인노동자를 돌보는 것은 우리 교회가 가장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탁아소를 세우고 공부방을 세우는 등 복지사업을

기독교가 가장 활발하게 해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가 자승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놀랐던 것이

기독교에는 복지기관이 몇 개가 있고, 불교에는 몇 개가 있는지

정확하게 그 실태를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복지시설에 있어서도 불교가 기독교와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모든 일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독점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다른 종교와 뒤지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할 때인데

기독교는 교회 안의 온갖 추악한 일들로 말미암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상승기운을 타고 있는데, 기독교는 반대로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2011

 

요즘 우리 모두가 다 느끼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기독교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고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네티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국민들도 기독교에 대해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디 가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의 최고 지도자가 이런 각오를 가지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두렵고 우리 기독교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 간의 경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기독교인이 몇 명, 천주교인이 몇 명,

불교인이 몇 명이라는 교세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진정한 경쟁은 그런 숫자가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고 얼마나 잘 섬기느냐가

종교 간의 경쟁이며, 역사가 그것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자승스님은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 고통 받고 억울한 사람이 교회를 찾아갔지만

이제는 불교의 사찰로 찾아오게 하겠다고 굳은 각오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승스님은 얼마 전에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를 조계사에서 상영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활동했던 이태석 신부의 감동적인 삶을 영화한 것인데

여러분들도 보셨겠지만 자승스님은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계종에서 일하는 종무원들과 스님들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절에서 상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여러 가지로 망설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총무원에서 일하는 종무원들에게 보여주면

이 사람들이 틀림없이 천주교 신부들은 이렇게 훌륭하게 사는데

스님들은 무엇을 하며 사는가 하는 생각에

천주교로 개종을 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했다고 합니다.

 

개종자가 생긴다고 해도 불자들에게 특별히 스님들에게 보여주어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사람이 불교에서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잔잔한 파장이 일어나 자승스님이 말씀하시길

‘이 영화 내가 상영해서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되었다.

내가 이 영화를 크게 선전했다’며 껄껄거리고 웃으셨습니다.

 

이 영화 때문에 천주교인이 많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사탕 몇 알 주고 전도지 돌려서 어깨띠 두르고 예수천당해서 교회 나오는 세상은 끝났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전도지였습니다.

 

▲제가 장황하게 자승스님과 있었던 일을 소개한 것은

여러분도 이 말씀을 통해서 많은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라서입니다.

 

1970년대 암울한 군사독재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하고 인권운동을 하고

감옥에 가고 고문을 받고, 억울하고 억압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도운 것은

지나놓고 보면 대단한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지난날 한국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러 이웃종교에서 이것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교회였다는 것을

부러워하고 존경합니다.

 

숫자로 말하면 불교가 개신교보다 훨씬 많습니다.

교회당 짓는 것보다 불교사찰 짓는 것을 보면 훨씬 더 잘 짓습니다.

 

불교계에서 우리 개신교를 부러워하는 것은

좋은 예배당을 가졌다고 교세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질곡의 역사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었던 것을

국민들이 알아주고 존경하여 이것이 역사가 되는 것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교회가 어떻게 해야

역사가 그것을 알아주고 국민들이 감동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타종교가 우리를 부러워하고 우리를 존경하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갈릴리교회가 지난 25년 동안 해왔던 일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G20를 할 때 워싱턴포스트지가 한국이 대단한 민족이 되었는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가를 한국민 자신들은 모르고 있다.’ 라고 기사를 썼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역사적이고 훌륭한 일인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우리만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나간 날들 우리 기독교가 한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었는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웃종교가 다 부러워하고 존경하는데 우리 스스로만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모든 선교의 사역이 선교사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주노동자선교사역은 자랑스럽게도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주노동자 선교의 개척자이며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우리 교회가 선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 미리 알고 이 사역을 시작해

지난 20년간 꾸준히 지속해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다문화사회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나라만 살아갈 수 없고

여러 나라의 사람이 섞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다문화사회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접근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닌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지역사회의 저소득계층의 자녀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세우고

특별히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통합교육을 시키는 자랑스러운 일을

우리 교회가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도시락은 우리가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사역입니다.

 

우리 주위에 아직도 세끼의 밥을 먹지 못하는 배고픈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세끼 밥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배고픈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우리들에게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북녘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배고파 굶주리고 있다는데

우리 교회는 고작 500명의 어린이들에게 양식을 보내고 있습니다.

 

분단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후세에 대해 부끄럽지 않고

먼 훗날 통일이 된 후에 북녘 동포들을 만날 때 부끄럽지 않을 것이

500명의 어린이들에게 양식을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 통일이 되어 만나게 될 북녘 동포들이

‘우리가 배고파 굶주릴 때 당신들은 살 빼느라 애를 먹었다는데

그러고도 어떻게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냐?’고 물을 때

우리가 이 일을 한 것을 이야기하면,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가난한 농촌을 생각하며 기쁘고 즐거울 때뿐만 아니라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에도 정성을 모아서

송아지를 보내는 것은 정말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많은 빚을 진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송아지가 한 가정의 삶을 넉넉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보람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보낸 송아지가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낳아서 내가 죽은 후에도

내가 보낸 송아지가 베트남 들판을 뛰어다닌다고 생각하면

이 일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사막화가 진행되는 몽골에 나무를 심는 일은 온 인류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또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인 지구환경을 지키고 살려내는 선구자적인 일입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들이 살 수 있는 지구환경을 지켜 넘겨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지구가 병들고 망가져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지만 이 자연의 재앙을 보면서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다면

역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먼 훗날 우리가 하는 이 일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놀라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밖에도 가나의 컴퓨터기술학교, 캄보디아의 프놈펜의 기술학교에서 하는 일들도

다 훌륭한 선교사업입니다.

 

▲그런데 금년에 저희 교회가 세 가지 선교사역을 더 하려고 계획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우리 교회에 가나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놀라운 사역을 벌이고자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이미 가나 장로교회의 데이빗 목사님이 와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우리 교회 안에

가나 교회를 설립하면 이미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몽골,

GIC 교회와 함께 다섯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한국교회에서 처음 있는 일이며 대단한 역사적인 선교사적인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또 한 가지 금년에 노숙자선교를 하려고합니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노숙자가 생겼습니다. 여름에는 공원에 그리고 전철역사에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우리 교회가 짊어져야할 또 하나의 짐입니다.

 

지난 해 여름 제가 새벽기도회에 나오는데 우리 교회 주차장 한 구석에

노숙자가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이때부터

노숙자들에 대한 마음의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 올 때마다 주차장을 둘러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노숙자들을 생각하면 잠자리가 불편합니다. 더군다나 금년 겨울에 얼마나 추었습니까?

이 추운 겨울에 웅크리고 잠을 청하는 저 사람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제 마음에 큰 짐이었습니다.

 

지금 영등포역 근처에 650명의 노숙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 햇살 보금자리라는 노숙자 쉼터가 한 곳 생겼습니다.

저희 교회가 결단을 하고 이 사역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노숙자들의 쉼터의 월세가 한 달에 백만 원쯤 든다고 하는데

우리 교회가 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일을

우리 교회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숙소를 다녀왔는데 제 마음에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허름한 건물에 150여 명의 노숙자들이 모여서 지내고 있는데 14-15억쯤 든다는데

우리 교회가 사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하면 저녁에 따뜻한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재수생들을 위한 사역을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재수생의 문제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고 또 혹시 여러분 자녀 중에 재수생이 있어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학교 입시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주눅 들어 있고

교회에 잘 나오던 아이가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재수생들을 돌보고 입시의 실패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하여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교회 중에 이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가 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많이 모여 있는 노량진 학원가 근처에 조그마한 장소를 마련하여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상담을 해주고 격려하고 예배를 드림으로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고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사역을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꼭 해야 할 중요한 청년 학생선교입니다.

우리 교회 단독으로는 하기 어려울 것 같아

뜻있는 교회와 함께 선교의 사역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선교의 이름을 브릿지 미션이라고 지었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낙오자의 삶에서 다시 새로운 삶으로 돌아오는 다리,

믿음을 잃어버린 삶에서 다시 믿음의 삶으로 돌아오는 다리를 놓는 선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선교의 사역을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교회의 선교의 지경을 더욱 넓혀나가고자 합니다.

이만큼 하면 제가 늘 마음의 빚으로 가지고 있던 선교의 사역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모든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더 뜨거운 기도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굳센 믿음이 필요합니다. 역사에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들 듣고

순종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수천 명이 되고 수만 명이 되고

국민들의 99%,100% 가 예수님을 믿는 복음화도 이루고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었던 서구교회가

지금은 관광코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역사의 아픔에 함께 하고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 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백성들을 감동하게 되고 이웃종교가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마5: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선함이 이웃 종교만 같지 못하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쟁해야 합니다.

이것에서 뒤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58장 7절에서는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금식기도는 밥을 굶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입니다.

 

8절 이하에서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갈릴리교회가 이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선교의 사역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하는

기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이런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가정에 넘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