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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LNCK 2013. 8. 21. 14:20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0807653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출32:7~14          2015-08-09

 

서론

 

로마서11:22절에는 하나님의 두 성품에 대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하나님의 두 성품은 ‘인자하심’(Goodness)과 ‘엄위하심’(Severity)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막연하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심과 동시에 무서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과 엄위하신 성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본문 출애굽기 32장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을 때에

산 아래에서는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주변에서 뛰놀고 먹고 마시며 광란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대해서 두 가지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처음에 엄위하신 반응을 보이시다가, 모세의 중보기도 후에는 인자하신 반응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2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엄위와 인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사건은 매우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얼마 전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지 40일이 지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를

하루나 이틀 전이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면

이들은 약 6주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출20:4~5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 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을 포함해서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출20:22~23절에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금이나 은과 같은 것을 녹여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24:7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6주가 지난 지금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주위에서 벌거벗고 춤추며

난잡하게 뛰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뛰노는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여호수아가 모세를 향해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난다”고 표현했겠습니까?

 

더욱 고약한 것은 하나님이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신 아론이 중심이 되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금고리를 모아 녹여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32:4절에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대제사장 아론이 그 송아지를 우상이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5절에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그는 이튿날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축제의 절기라고 공포하고 광란의 축제를 인도했습니다.

 

금송아지를 우상이라 하지 않고 ‘여호와’라 했으며, 우상숭배를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벌거벗고 뛰놀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잘못된 방법으로 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황당한 일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1) 그들의 마음이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렘17: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부패한 마음이 우상을 그려내고 타락한 손이 우상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행을 다녀보면 전 세계 방방곡곡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널려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상도 가지각색입니다. 온갖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주절주절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우상숭배는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롬1:22~23절에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동안 금송아지 숭배하는 것을 보고 배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상 앞에서 술을 마시고 벌거벗고 놀고 있던 애굽 사람들의 모습은 마음 속 한편에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을지 모릅니다. 애굽 사람들은 멤피스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소 형상을 하고 있는 ‘아피스’라는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배웠던 것입니다.

 

3)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속히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시편 106:19~21절은 출애굽기 32장의 사건을 세 구절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숭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애굽에서 큰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을 쳐 생수를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신속하게 망각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은망덕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상이 주었다고 하니 배은망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면 진노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셨습니다.

출20:5b절에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일반적으로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을 보면 할아버지도 하고 아버지도 하고 손자도 합니다.

3, 4대가 함께 모여 우상숭배를 합니다.

할아버지가 믿는 신을 손자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제사를 많이 지냈습니다. 각종 제기에 음식을 올려놓고

돌아가신 조상을 생각한 후,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이 다 먹습니다.

절대로 조상이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 먹어 치우고선

“조상님 다 드셨느냐?”고 물어봅니다.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행습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면 삼사 대까지 죄를 갚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23:24절에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며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을 타파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이어지는 33절에도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우상숭배는 너희가 성공하는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우상을 타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이스라엘 대제사장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엄위하신 반응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엄위하신 반응

 

하나님은 산꼭대기에서 계시를 주시면서도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출32:4b절에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8절에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이것은 산 아래에서 나눈 백성들의 말을 하나님이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 부패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몰래 숨어서 하는 일도 눈앞에 놓고 보듯이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피조물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4:13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벌거숭이와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다 아시고 엄위하신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32:10절에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대로 하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백성을 모조리 죽이고 너로 인해 다시 큰 백성을 이루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반응입니까?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이처럼 두렵고 무섭고 강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반역하여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생로병사를 겪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쇠해지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위하심은 이처럼 엄중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천사였던 루시퍼 역시 죄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쫓겨나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 때 루시퍼를 따르던 영광스러운 천사들도 귀신이 되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이 지구상에는 1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 노아의 가족 8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홍수로 멸망하였습니다.

 

▲중세기 스콜라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켄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라는 책에서

그는 “사람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되면

아무도 죄를 지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위하신 반응이 있다는 사실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일에 담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31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위하신 반응은 매우 무섭기 때문에

성도들은 죄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시는 바른 안목을 가져야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인자하신 반응

 

그러나 하나님은 엄위하신 분만은 아닙니다. 인자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인자하시다는 것은 단순히 “친절하시다”는 의미를 넘어서

“택한 백성을 향해 영원무궁한 사랑을 갖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합니다.

 

이 인자는 중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구원해 내신 백성들에게 헤세드의 인자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자>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32:10절에 기록된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는 말씀을 한글로 읽으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지만, NIV에는 “Now leave me alone.”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를 내버려 두라”시는 것입니다.

 

“모세야, 말리지 마라. 내가 이 백성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말리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자살할 테니까 말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날 좀 말려달라!”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대로 하게 하라고 하신 것은 “나를 말려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실 때에는

구원의 기회도 더불어 주시겠다는 의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나를 통해 40일 후 니느웨 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주신 것은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구원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은 살려주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아무런 경고 없이 즉각적으로 심판을 내리신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경고하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레10:1~3절에 보면 다른 불로 분향한 나답과 아비후를 하나님은

아무런 경고 없이 불태워 죽이셨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아서 헌금을 하는데,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땅을 팔아 그 일부를 드린다고 해도 괜찮을 것을 다 드린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짓의 영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그대로 즉사했습니다.

아무런 경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경고 없이 엄위를 보이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 진멸하시겠다고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진짜 죽이시려면, 아무 경고 없이 죽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은

지옥에 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옥에 가지 말고 돌이켜 천국에 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경고문은 죽이려고 붙여놓는 것이 아닙니다. 살리기 위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낭떠러지가 있는데, 그 앞에 경고판이 붙어 있으면 가까이 가겠습니까?

가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가지 않습니다. 절대로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낭떠러지보다도 더 깊은 심연이자 무저갱인 지옥에 가지 말라고

성경에 수도 없이 많은 경고판을 세워두었는데, 사람들이 그리로 가까이 갑니다.

 

그리고 막 떨어집니다. 경고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경고의 말씀이 있을 때, 이 말씀을 믿고 지옥을 피하여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중보자 역할을 하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중보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중보기도한 것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위해 도고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보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용어의 정의 문제’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보자는 오직 하늘과 땅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간단해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세 가지 사실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1) 그는 ‘하나님의 은혜’(Grace of God)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거래하려는 자세로 나아와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은 이만큼을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자격 없고 부족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도록 간구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2) 그는 ‘하나님의 영광’(Glory of God)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12절에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 죽이려고 광야로 이끌고 갔다”

고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웃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에 해가 된다고

논리적으로 하나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위대함이 드러납니다.

 

3)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Faithfulness of God)에 호소하였습니다.

13절에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약속을 지켜주시도록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세 가지 간구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14절에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이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3. 셋째로, 모세는 회개의 확실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우상숭배에 대해 모세가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하나님이 주신 두 돌비를 산 아래로 던져버렸고 금송아지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린 후, 백성들로 그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우상을 갈아 마셔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출 32:26).

그랬더니 레위 지파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즉, 여호와의 편에 서지 않은 자들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다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 3,000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고 그 때부터 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32:29절에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상숭배하면 망합니다.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우상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다 갖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쓸모도 없을뿐더러

재수도 없는 물건들입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라틴어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미인데,

‘성도의 삶’은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 앞에 살다 보면 두 가지 감정을 갖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나의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시기에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의 모든 악한 생각과 행위, 죄악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도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일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을 향해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성도도 때로는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모세가 중보기도를 했지만, 지금은 모세보다 훨씬 위대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이 사람이 나를 믿는 사람이고, 죄를 지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중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의 다른 중보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누가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만 하나님의 인자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부귀영화를 다 누려도 하나님 편에 서지 않은 사람은 불쌍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편에 설 것이냐?”

 

미국 남북전쟁 중 한 군인이 링컨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각하! 하나님이 우리 편이십니다!” 그러자 링컨 대통령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편입니까? 마귀의 편입니까?

하나님의 편에 굳게 서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