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학: 바울의 일생 1강 (이근목사) - YouTube
◈바울의 유년시절, 다메섹 회심, 아라비아 3년, 예루살렘 방문 빌3:5, 행26:10
<바울의 일생> 中 1강, 2강 요약 ☞시리즈 보기
◑서론 : 추정하는 것이지, 정확한 연대 파악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2000년 전에 바울의 삶을 따라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냥 바울이 삶을 하나하나 추적해 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이미 많은 학자들이요. 사도행전과 서신서 그리고 많은 고대 문헌들을 참고해서
바울의 연대기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아직 완전한 일치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연대기도, 사실은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추측이 많이 담겨 있는 연대기입니다.
그래도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 바울서신들 .. 이런 책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종합해서 어느 정도는 맞춰 갈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사도행전이나 갈라디아서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원래의 목적은 예수님의 구속사적인 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원래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굳이 이 글에다 역사적인 물증을 남겨 놓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역사적 사실 위에다 구속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역사적인 사실 위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 가셨던 구속사적인 그 일들을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린 역사적인 사실도 알아야 되고
그 이후에 함께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방법을 같이 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이 쓴 편지들을 우리가 잘 종합해서
바울의 일생을 하나하나 짚어가 보기를 원합니다.
왜냐면 성경에 기록된 지역, 어떤 사건, 어떤 인물
이런 것들이 하나도 그냥 헛된 것이 없기 때문에
왜 이것이 기록되었을까
이것이 바울의 삶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라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보면서, 바울의 일생을 알아가 보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유년 시절
빌3:5 '나는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라고 바울이 고백합니다.
바울이 태어난지 8일 만에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이미 엄격한 유대인의 규례에 따라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5살 때부터 구약 성경을 철저하게 배우기 시작하고
열 살이 되면 유대의 문헌들을 다 암송하는 그런 나이가 바로 10살입니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회당에서 종교 교육을 받았고
또 교육이 발달한 다소에서 그의 기초적인 지식이 쌓여 갔다면
기초적인 지식과 또 종교적인 지식이 바울에게는 골고루 갖춰지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향인 다소는 수사학과 철학이 굉장히 유명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필체에도 수사학적인 표현 굉장히 글을 쓰는 문체가 뛰어난 것을 보는데,
이것이 어릴적에 받은 바울의 교육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세상 교육을 받고 그러나 바울의 부모가
아들 바울을 정통 유대인으로 키우고 싶다 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다소에서만 공부하고 있을 순 없습니다.
그가 정통 유대인으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야만 했습니다.
당시에 유능한 청년들은 이렇게 대도시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13살 정도 되었을 때에 예루살렘으로 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부모는 바울을 유대인 랍비로 키우고 싶었던 거 같아요.
행22: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예루살렘)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바울은 '나는 이 성 예루살렘에서 자랐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의 청소년기가 바로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하죠.
바로 13세부터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며 자랐던 것을 뜻합니다.
청소년기를 예루살렘에서 유학하며 보낸 거죠.
행23:6절에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레위지파만 성직자,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였던 바울은 성직자, 즉 제사장은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두개인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될 수 있는 건 바리새인이었죠.
바리새인이라는 건 우리가 잘 아는 '랍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랍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바울이 택한 길이었다고 볼 수 있죠.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바울은 정말 정통 코스를 밟게 된 거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가말리엘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중받는 인물이었고
가말리엘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또 유대교의 엄격한 선생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밑에서 바울이 공부하고, 그 밑에서 자랐다면
나중에 바울은 이 과정을 통해서,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밑에 보통 그렇게 하듯이 13세에 들어갔다면,
가말리엘 문하에서 5년에서 6년 정도를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13~19세 추정
그리고 랍비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인턴을 한다고 해요.
갈1:14절에 '나는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동년배, 동시대인)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여기서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말할 때
당시 동시대인, 동년배보다 자기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참고로, 바리새인의 시조는 에스라로 볼 수 있습니다. 율법에 열심이 있었다는 거죠.
바울은 가말리엘 밑에서 5~6년 수학한 후에
랍비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인턴을 한다고 해요.
그 기간이 약 13년에서 14년의 기간인데,
이 기간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어야만 됩니다.
그리고 이 인턴 기간이 다 끝난 후에, 다시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30세가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때는 산헤드린 공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추정을 하냐면, 보통 바울에 대한 기록이
복음서에는 하나도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복음서의 예수님 활동 기간에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복음서 어느 부분에 바울에 대한 기록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도, 자신이 쓴 서신서에
생전에 예수님을 스쳐 지나친 일에 대해서, 한 줄이라도 언급을 했든지,
들은 소문이라도 언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언급이 전혀 없어요.
그러니 예수님과 바울은, 동선이 하나도 겹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바울은 나이가 비슷하지만 (예수님은 BC 4년 출생, 바울은 AD1년 출생)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학할 때,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계셨고,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을 3년반 하실 때는,
바울은 자기 고향 다소에서 랍비 인턴십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결혼과 독신
여기에 또 하나 재밌는 거는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결혼을 했을까, 독신으로 살았을까?
라는 것에 의문을 갖고 연구를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연구 신학자들은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인 사도 바울이 결혼을 했을거다' 라고 추측을 합니다
왜냐면 바리새인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들에게 결혼은 필수라고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달고 사는 유대인들에게는요
결혼은 그냥 의무사항입니다.
그래서 아마 바울도 바리새인으로서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만약에 일을 했어야 한다면, 그도 결혼을 했어야 된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이 왜 한 번도 자기 가족에 대해서, 서신서에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바울이 율법에 충실한 과거를 살았다고 볼 때,
바울은 아마도 결혼을 했으리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신학자는이 바울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바울이 이혼했다’ 라는 말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추측입니다.
바울을 이해하기 위한 추측일뿐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 결혼 생활과 이혼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한 것을 보면,
‘바울이 경험적인 측면에서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건 바울은, 자신의 가정에 관해서 자신의 가족에 관해서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빌3:8절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 라고
바울이 말을 할 때, 어쩌면 여기에 바울의 가족도 포함되지 않을까? .. 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딤전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이 지나간 세월동안의 바리새인의 철저하고 엄격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사실은 자기가 비방자고, 박해자고, 오히려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했다 라고 고백했죠.
▲그러던 바울의 성경에 첫 번째 등장은, 스데반의 순교 때입니다.
산 사람이 돌에 맞아서 순교를 당한다 라고 했을 때, 그 일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헤드린 공회원이 7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회원 71명이 모여서 재판을 한 후에, 그들이 투표를 해서 찬반 결과를 낸 후,
그를 돌로 쳐 죽이느냐 마느냐라는 결정을 하게 되는데,
찬성 투표 결과가 나왔고, 실행하는 현장 책임자로 사울이 등장하게 됩니다.
행26:10절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자 여기 보면, 성도들을 옥에 가두며 죽일 때에, '내가 찬송 투표를 던졌다'라고 말합니다.
'아 바울도 산헤드린 공회원 중에 한 명이었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투표권을 행사한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행7:58절에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세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당시는 청소년기에서 40대 이전을 그냥 '청년'이라고 불렀다 라고 합니다.
나중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죠.
롬10:2~3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에 의해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중에 바울이 고백합니다. 자신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했었다... 그때 자기가 잘못됐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 이상 1강 중에서 제게 필요한 부분만 녹취했고요 아래는 2강 ............
◑바울의 회심과 다메섹 생활, 아라비아 3년,
행9장에, 바울이 회심하는 장면이 나오죠.
이때를 AD 33년으로 잡습니다.
바울이 태어난 연대기를 AD 1년으로 잡습니다. 그러니 33세에 회심한 거죠.
(*예수님은 BC4년에서 ~ AD30년으로 볼 때, 십자가 사건이 있는 후 3년이 지나서죠)
AD년도가 바울의 나이와 이렇게 비슷하기에, 바울의 나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행9: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바울이 크리스천들을 핍박했기 때문에, 벌받아서
고난의 그릇으로 택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은 바울을 진실로 사랑하셨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사도 바울을 고난의 그릇으로 택하셨다 라고 하셨죠.
그래서 바울은, 이때부터 평생 고생하고, 핍박 당하고, 쫓겨다니는 삶을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순간마다,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게 됩니다.
자 바울이 이렇게 회심을 했습니다. 사흘동안 감겨있었던 눈을 다시 떴고요.
자기 주변의 인물들이 바뀌었어요.
지난날에는 자기 주위에 강성파 유대인들,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지만,
이제 모든 상황이 바뀌고, 바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찬들입니다.
바울은이 다메섹에서 제자들과 만나서,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또 그들의 전도의 말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지난날에 자기가 잘못 살았던 것을 후회하고 한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바울이 성격일까요?
바울은 그 뜨거운 마음을, 바로 다메섹의 유대인들의 회당에 가서 전하게 됩니다.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9:19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유명한 사람이에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고, 랍비며, 산헤드린 공회원이기 때문이죠. 26:10
그래서 바울이 다메섹의 유대인들에게는 저명한 인사이기 때문에
그가 회당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 정말 사람들이 모두가 반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바뀌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핍박하러 온 사람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그러자 회당에 모였던 유대인들이 막 당황을 하는 거예요.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 때문에 유대인들은 막 당황을 하게 되고,
또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불과 며칠 만에 돌변해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서 나타났기 때문에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이게 뭐야?' 하면서,
바울을 핍박하게 되지요.
행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갈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주1)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을 떠나게 되었는데, '아라비아' 라는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아라비아'
'아라비아'는 현재의 '아라비아'가 아닙니다.
현재의 '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아라비아 반도)의 넓은 사막지역을 뜻하죠.
당시 '아라비아'는 다메섹 동편의 '나바테아 왕국'을 뜻합니다. 주2)
당시에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다 왕이, 로마제국 아래서 다메섹까지
잠깐 관할지로 두고서 통치했던 적이 있었나 봅니다.
어쨌던 다메섹 인근 나바테아 왕국이, 바울이 말하는 '아라비아'라고 보는 거죠.
어쨌든 바울은 아라비아(나바테아)에서 3년을 머무르게 됩니다.
요즘 관광 가면, 요르단의 페트라를 방문하는데, 그 지역입니다.
갈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 바울이 3년이란 기간을 아라비아의 어디선가 혼자 지내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더 확실히 하는 시간을 가졌다 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바울이 광야 생활을 했다 라고 알고 있고요.
또 그 기간을 통하여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하는 시간을 묵상하고
또 예수님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33~36세)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온 바울은 이제 다른 바울이었어요.
옛날에 사울이라고 하는 그 사람이 아니고
뭔가 완전히 변화된, 이제는 그리스도인 바울이 되어서 다시 다메섹에 나타났던 거죠.
그리고 하나님과 말씀과 그 구약율법에 정통했던 바울은,
그 지식이 잘 정리가 되어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때는,
남들보다 훨씬 더 탁월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된 거죠.
고후11: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위 시기는, 바울이 회심한 즉시 다메섹에서 전도했을 때 일어났던 사건으로 보기 쉬우나,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 수련 시간을 갖고 난 이후에 다메섹으로 돌아왔을 때,
벌어진 사건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갈1:17
왜냐면 피신할 때, 바울을 도와준 조력자들이 있었는데,
바울이 다메섹에 들어간 지 단 며칠 만에,
그가 다메섹의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런 유대 관계를 쌓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3년 아라비아 생활을 마치고 다시 다메섹에 왔을 때(갈1:17),
어느 정도 다메섹 제자들과 친분이 두터워졌을 것으로 생각되니까요.
우죽 급했으면 생선 광주리에 매달아서 바울을 피신을 시켰겠습니까.
'어디로 가야 되지?' 바울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15일간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누구를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을까요?
어쩌면 베드로였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1차 방문, 15일간 AD 33년 경, 바울 33세 경
예루살렘 성도들은 바울을 피했습니다.
아직은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유대 크리스찬들을 핍박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막 자기를 피해 다녔는데,
그때 누구를 만나냐면, 바나바를 만나게 됩니다.
행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그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가 있었다 라는 것은
어쩌면 마가 다락방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정교회 예루살렘 교회였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부터 항상 거기서 모였으니까요.
그리고 마가의 친척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이 사울 청년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인도해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울이 만난 분들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베드로 였다는 것이죠.
갈1:18~19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행9: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의 출입하며'
바울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도들과 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겠어요?
바울은 여기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복음에 대해서 정리를 하게 됩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15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구약적인 지식을 풀어놓는 시간이 되었을 합니다.
행9:28~30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그 위험한 그 상황을 본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울을 급하게 다소, 그의 고향으로 바울을 돌려보내게 됩니다.
........................................
주1)
행9:23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이제 죽이기로 작정했다' 라고 했는데,
이 기록에 시간적 텀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시간적 텀을 해석하는게 어려운데,
아마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아라비아 지역에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정말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 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른 시점이라고 봅니다.
주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은
B.C. 9년에서 A.D. 40년까지 아라비아의 나바데아(Nabataea)를 다스렸던 왕.
이 아레다 왕이 다메섹을 다스렸다는 표현은, 아마 잠시 그런 시절도 있었나 봅니다.
혹자는 다메섹이 이중의 통치를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방백 - 이는 지방의 '행정 장관'을 지칭하는 말.
혹자는 행 9:23, 24을 근거로이 행정 장관이 유대인 출신으로
다메섹의 유대인을 담당했던 사람이었고
그 휘하의 경비병들도 유대인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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