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으로 천국에 들어가나? 마7:21~23 출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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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 .. 구원파가 강조합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불안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가지가 ‘내가 과연 구원 받았을까?’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서, 지금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내가 정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여러분, 이것을 한 마디로 ‘구원의 확신’이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여러분, 내가 구원의 확신을 통해서, 내가 천국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구원에 대해서 불안해 하니까
많은 어떤 신학적인, 교리적인 그런 것들을 통해서 그 불안을 해소하는데,
‘우리가 구원의 확신만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신학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이 신학이 지금 많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구원의 확신만 있으면, 나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불행하게도 성경을 보면,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내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 말씀한 구절이 한 구절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 교리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이것은 인간의 불안감 가운데 나온 개념입니다.
▶참고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한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구원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고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어떤 죄를 저질러도, 구원 받는다는 교리!
여러분 이것은, 심각한 이단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한 날, 회개한 날을 반드시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 예수님을 영접한 날 후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틀린, 구원파의 강조점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지금도
구원에 확신이 있는 신자는 천국에 들어가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정답을 말씀드리면, 구원 받은 사실은 내가 알 수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아십니다.
(나는 알아도, 어렴풋이 알지요)
◑구원의 의외성
마7: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즉 복음을 이해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22절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그날은, 주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그 때에 양과 염소가 구별되는 시점입니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건 뭡니까? 심판의 그 날이 되면, 많은 혼란이 온다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알고, 내가 복음을 알고, 내가 다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고,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는데, 내가 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느냐는.. 혼란입니다.
어떤 분이 질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손을 얹고 기도하니까, 그 질병이 치료받았습니다.
그 모습 보면 ‘이 분은 믿음이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 사람은 반드시 구원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23절에 보면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이 그런 사람의 구원도 ‘모른다’고 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안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모른다’
주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으로 어떤 능력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 받는 조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수많은 기적과 권세와 권능을 네가 행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나는 그런 너희를 한 번도 알았던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불법을 행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마7:23
여기서 ‘불법을 행하는 자’는, 헬라어로 ‘법 없는 자 lawless’인데,
예수만 믿었지, 하나님의 계명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법 없이 사는 신자들을 뜻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일에 등한시 한 자들)
너희들이 주님의 이름을 알고, 너희들이 여러 주님의 권세를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법 없이 산 자들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왜 나를 버리십니까?’ 라는 식으로 말했을까요?
자기들은 구원 받을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선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줄 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영접을 하기만 하면, 우리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도
우리는 구원 받는다고 쉽게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원 받는 자의 의외성>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유는, 너희들이 많이들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구원 받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구원의 의외성> 가운데서
네가 그 자리에 속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마25:31~46절에 보면, 거기도 <구원의 의외성>이 이렇게 나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즉, 주님이 천군천사를 이끌고 마지막에 이땅에 오신다는 겁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
32절에,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33절에.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언제인가 구별하실 날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영접했기에, 내가 너를 영원한 천국에 들이겠다고 말씀합니다.
34절,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런데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나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천국에 들이시는데,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기억 안 난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앞서 말했던 것처럼, 구원의 의외성을 말씀하는 겁니다.
구원 받은 자의 의외성!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죠. 아 이 사람은 구원 받을 거야!
그런데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이 구원 받겠어?’
그 사람이 의외로 구원 받는 날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의 확신함을 통해서, 내가 구원을 확신한다고 해서
내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것 같아 보여서’
그가 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나의 구원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예수님이시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구원의 확신함에 대해서 말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확신이, 즉 자기 구원의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갈6: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스스로 속지 말래요.
고전10: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9:27절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사도바울이 구원의 확신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라면,
그는 왜 이런 말씀을 했겠어요?
내가 복음을 전하고 나서, 내가 버림 받을까봐 두렵대요.
즉, 구원은 한 번 단번에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연속성이 있다는 겁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 구원이 나타나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구원 받는 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1.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 구원의 완성을 향해 달려갑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은 삶에서 증거가 나타나는데
그 삶이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매일 매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생활하십니까?
나는 그 마음으로 산다고 말하지만
내 삶을 보면, 두렵고 떠는 마음이 전혀 없어요.
마치 당연히 내가 구원 받은 것처럼,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겁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며 살아라!
내가 단번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내 구원의 확신함이 있는 것으로
내가 구원 받는 것이라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씀 안 했겠죠.
공동번역은,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쉬운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이루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현대인의성경은, 구원을 계속 이루어가십시오! 라고 말씀합니다.
헬라어 성경은, 시제가 과거완료가 아니고, 현재(진행)형입니다.
즉 구원은 어제 이루어진 것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매일 내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빌2:14~15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우리의 삶 가운데서 흠없고 순결한 삶을, 흠없는 자녀로 살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뭘까요? 하나님의 법/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이 있다는 겁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도바울이 갈5:7절에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무엇을 위해 달음질하느냐?
구원을 위해서, 구원 받기를 위해서,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 달음질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잘 달리다가, 그들이 멈춰버린 겁니다.
바울은, 너희들이 어떻게 복음을 받았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어떻게 받은 그 구원의 기쁨인데,
너희들이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지 않고,
너희들이 왜 멈추어 있느냐는 뜻입니다. 위 말씀이요.
그래서 너희들은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한
어떤 구원의 여정을 달리기로 표현한 것이, 한 구절만이 아닙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신앙생활은, 구원의 완성의 자리까지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26절에,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빌2:16절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도, 그 구원의 길을 달음질이라고 말씀합니다.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달려가노라)
신앙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달려가노라)
갈2: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벧전4:4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사도바울은, 이 구원의 문제가, 한 번에 확신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달음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은 달음질하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2. 구원은, 현재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이 깨닫는 것은, 우리 구원의 문제는 현재형입니다. 과거가 아니라요.
어제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었다 할지라도, 내가 어제 구원의 길을 갔다 할지라도
내가 다른 일에서 넘어지고, 왜 그 자리에서 돌이키지 않고, 일어서지 않으면
나는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떤 미국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하셨습니다. (이 단락 삽입글)
‘만약 불신자가 간음하면, 그가 구원 받나요?’
그러자 성도들은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신자가 실족해서 간음을 한다면, 그가 구원 받나요?’
이때 성도들은 웅성대며 의견이 반으로 나눠졌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계속 설교했습니다.
성경에는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구원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는데,
고전6:9, 갈:5:19~21, 계22:15
오늘날 신자들은, ‘한 번 구원, 영원 구원’이란 이상한 신학에 사로잡혀서,
불신자는 그렇게 될 줄을 믿으면서도, 자기는 신자라서 안심하고 있다는 겁니다.
신자는.. 그런 죄를 짓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그런 죄에 빠지면.. 그는 신자의 길에서 벗어난 겁니다.
물론 신자도 그런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구원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만,
그게 쉽지는 않다는 거죠. 다윗의 회개 과정에서 보듯이요.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는, 그 회개의 길로 인도해 가시겠지만요. 득보다 실이 많죠.
그러니 신자는 지옥 갈 각오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겨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관계에 있는가?
하나님하고 온전한 관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유일한 주인이 되시는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유일한 왕이 되어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서,
그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무엇입니까?
삶의 변화입니다.
즉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삶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가 매일 그 은총과 혜택을 기쁘게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그 관계가 깨어진다면, 구원의 완성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회개와 우리의 영접이, 이것이 진짜인지/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의 변화와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움으로 지키는 삶을 말하는 겁니다.
이 주님의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운 이 때에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 연약한 인생 속에서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은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오늘 하나님의 법을, 신실하게 이루고 살아가는가>.. 입니다.
그런 나의 진면목을 파악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훈은
예수님을 유일한 구주로 영접하는 관계가 성립되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 성화의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회개의 열매를 맺고,
훗날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완전한 영화를 이루는 그 날까지 내가 서는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여정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 여정을 너희들이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은,
어떤 교리를 지식적으로 믿는 게 아니라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또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그 믿음과 신뢰의 관계를 계속 형성해 나가는 상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그 신실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을 보면서
그 분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그것이 크리스천의 구원의 삶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즉 인격적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을 믿으면서 사는 것이지
구원의 확신이라는 그 개념 자체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 구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내 구원으로 말미암아 내가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구원에서 떨어지는 삶을 사는가? 하며 두려워하며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그 나를 향한 사랑에 대한
강한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내가 주님 오실 때, 만나는 그 날까지
내가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어가겠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신앙입니다.
◑출애굽기의 교훈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갔나요?
그들이 출애굽 함과 동시에,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까?
아니죠. 그들은 광야를 거쳤습니다.
그 광야 가운데서, 모든 사람이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까? No!
고전10: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다수의 사람들이 “멸망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삶의 현실임을 말씀합니다.
지금 바울이 옛날 그 당시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가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듯이,
우리도 지금 그 물을 마시며 구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도 저들처럼 멸망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구원의 길을, 조심히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를 위해 이뤄놓으신 그 하나님의 구속, 그 복음을
우리가 믿음으로 신뢰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이 시간에
이 광야와 같은 시간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법을 이루어
구원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론의 혼란으로 말미암아서
많은 이들이 이단적인 사상에 빠지고
많은 이들이 잘못된 구원관으로 말미암아, 자기 구원을 의심하거나/지나치게 과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성경적인 구원 신앙인지 많은 분들이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 있다면, 우리가 돌이켜서, 하나님의 법이 내 귀에 들려지고
그 하나님의 법을 행하는 자리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원을 내가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 구원을 확증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구원의 길을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내 자신의 실상을 올바로 볼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면, 말씀이 들려지지 않으면
기도가 회복되어지지 않으면, 내 자신을 절대로 똑바로 볼 수 없습니다.
내가 모태신앙이고, 내가 목사이고 장로이고, 어떤 직분을 맡고 있고
그게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가 되는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이 나의 의요/왕이요/주인’이 되시는, 그 신실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이 땅에 이루며 살고, 그래서 내 삶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래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 받는
즉, 구원을 날마다 이루어 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