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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실망 눅14:15-24, 겔5:11 11.10.09.설교스크랩, 출처
*원제목: 그 일로 심히 후회하는 사람들
◑구약의 하나님의 실망
▶새벽기도회 시간에 성경을 한 장씩 읽으면서
새벽기도회 시간에 나온 사람만 듣기에는 너무 아쉬운 말씀이라고 생각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에는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인 에스겔서를 읽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한 지 5년쯤 되는 해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을 이방사람의 손에 맡겨서
70년 동안 처절한 고난의 삶을 살게 하신 것일까요?
성경을 살펴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고생할 때 모세를 보내서 그 처절한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반석에서 물을 내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하늘만큼 넓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섭섭하게 생각하셨고 화가 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내 힘으로 잘먹고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섭섭하게 생각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섭섭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진노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2)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대신 바알(풍요와 쾌락의 신)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싫어하십니다.
우상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께서 참지 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다른 것도 용서하시지만
우상을 섬기는 것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보면 우상을 섬기는 자에게, 하늘에서 주의 노를 불처럼 쏟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바알을 섬기지는 않지만 자식, 자존심, 물질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혹시나 하고 예언자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하시고 달래시고, 때로는 간청하시고, 때로는 협박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서 3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생각으로 한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아파하시고 한탄하시는 중에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하신 것이
새로운 선지자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 전에 예레미야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보충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예언 활동을 했다면,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바벨론에서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으레 '저 사람은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음에도,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선지자 에스겔의 말에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는 패역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서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새벽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며 한탄하시는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마음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한다. 하나님이 이쯤하시면 정신을 차리고 돌이킬 만도 한데
어떻게 이렇게 끄떡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시고
포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론적인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5:11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7:4절 말씀에도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네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고 하셨습니다.
8:18절에서도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지 않고, 긍휼히 여기지 않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되풀이해서 우리의 마음을 저리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에스겔서 2:5절을 보면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고 하셨습니다.
2:7절에서도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미 포기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고 목이 곧아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을 것을 알지만
듣든지 안 듣든지 전하라는 것입니다.
3:27절에서도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고 되풀이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을 아시고
지칠 대로 지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듣는다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포기하시는 하나님의 실망스러운 마음,
더 이상 희망을 가지지 않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라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들을 사람은 들을 것이고, 듣기 싫은 사람은 듣지 않을 것이지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시간에 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실망
▶제 추측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으실 것으로 기대하신 것 같습니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추측이 아니라, 성경 곳곳에 그렇게 생각할 만한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언자들을 세워서 말하면, 예언자는 사람이니까 그 말을 안 들을 수 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시면
사람들이 환영을 하고, 그 말씀을 들을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오셨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막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자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동네 낭떠러지로 데려가 밀어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아무 권능도 행할 수 없어
몇 사람에게만 안수하고 병을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6:6절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믿고 따를 것으로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또 성경 곳곳에서 바리새파 사람들, 제사장들,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고 화가 나게 한 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11:17절에 보면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리를 부시는데 사람들이 춤추지 않고,
예수님이 슬피 우시는데 사람들은 가슴을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람들이 따로따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심히 낙심하시고 한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당시 예수님과 함께 하던 군중들을 보시면서 한탄하시는 모습이
바로 에스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그냥 전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주지 않는 것 때문에 많은 실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목이 곧고 엉뚱한 생각을 사는 것을 보고 실망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땀이 피가 되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한심하셨겠습니까?
‘언제나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다는 것을 알까..’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의 말씀은 잔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 가운데 마지막에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당시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심정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이 잔치를 연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입니다.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이 밭을 둘러보아야겠다,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을 해보아야겠다, 장가가서 못가겠다고 합니다.
초청한 사람들이 다 오지 않았습니다.
종들이 그 말을 주인에게 했더니, 주인이 노했습니다. 무시당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다리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고 합니다.
싫다는 사람은 그냥 두고, 아무나 데려와서 잔치 자리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이유 때문에 잔치자리에 오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축복의 자리에 앉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겪었던 자신의 심경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취급하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무시했는지,
예수님의 절절한 심경을 표현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시면, 모든 사람이 열광할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초청하면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 그 자리에 올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제가 누구를 초청하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와야 할 것을 기대합니다.
만약 안 오시면, 대단히 섭섭합니다.
대통령이 초청하면 다른 일 다 제쳐놓고 와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세상의 중심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지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놓쳐서는 안 되고
이렇게 하라면 하고, 저렇게 하라면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냥 듣고 흘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면 당연히 모든 것을 제쳐두고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초청했다면 최대의 영광입니다. 서로 가려고 해야 합니다.
귀중한 축복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찮은 세상일로 핑계를 대고 오지 않았으니
예수님께서 화가 나실 만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주인이 노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화가 날만합니다.
▶문제는 초청받은 사람들이 왜 거절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초청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신앙으로 초청을 받고, 말씀으로 초청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초청하는 분이 누구인지 모르고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귓등으로 듣는 것입니다.
인목사가 말하면 안 들어도 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냥 흘려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두렵게 생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초청을 거절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철이 없는, 세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초청한 잔치자리는 귀중한 자리입니다.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먼저이고를 몰랐던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이 초청한 그 잔치자리에 가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삶에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쓸데없는 일, 나중에 해도 되는 일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정작 놓치면 안 될 일을, 놓치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주위에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것에, 목숨을 걸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밭을 샀으면 다음날 돌아보면 되고,
-결혼을 했으면 평생 같이 살 것이니까 조금 천천히 가도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잔치자리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평생을 후회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잔치에 가지 못하고, 다시는 그런 축복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은 지났습니다. 기회는 떠났습니다.
그 때 그 잔치가 그렇게 중요한줄 알았다면, 예수님이 초청한 것이었다면
만사 제쳐두고 갈 것을 평생을 이 일로 후회하였을 것입니다.
▶본문 가운데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초청한 사람들이 안 오니, 잔치를 그만둔 것이 아니라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결국 엉뚱한 사람이 잔치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주인은 초청한 사람 때문에, 잔치를 미루거나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무나 데려다가 잔치자리를 채우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고, 교회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일하시는 원칙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초청하시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만
하나님의 잔치자리에 우리를 초청하시지만,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꼭 그 자리에 와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십니다.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누구든 오고 싶어 하는 사람과
함께 잔치를 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사람 때문에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사람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나 하고 싶은 사람하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못하지..' 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못난 사람이라도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어차피 교회일은 사람이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께서는 개의 하지 않으십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내가 순간 잘못 판단해서, 세상적인 사사로운 일, 자잘한 일상의 일 때문에
예수님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낙오자가 되고, 평생 축복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회는 언제나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를 초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초청할 때
우리는 "예."라고 순종해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건강할 때,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물질의 여유가 있을 때, 열심히 정성스럽게 헌금해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봉사하고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이 여러분께 요구할 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들과 함께 하십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분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나 없이 무슨 일이 되려나.' 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입니다.
자칫 머뭇거리다가 자리를 빼앗길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셔서
이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귀한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