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강이 다스리는 마음 골3:15. 시118:17 16.01.17.출처
우리는 지난 주일에, 말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배웠고,
죽고 사는 것이, 입술에 달려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에게, 입술의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입술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말의 뿌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성령의 은혜를 받고 변해야
우리의 말도 변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건강하십니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것 같지만, 감성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의 뇌는, 항상 이성보다 감성적 반응이 훨씬 빠릅니다.
분노가 치밀면, 일단 욕을 해버리고 나서, 1.5초 뒤에 순식간에 후회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강한 것 같지만, 유리판 같아서 깨지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억울함, 분노, 불안감, 고독, 수치심, 죄책감 등을 많이 느끼는데,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날 때나, 여성들이 갱년기를 지날 때나
중년 남성들이 사추기를 지날 때는, 이게 굉장히 더 예민해집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감성이 고갈되면
학생들의 경우는, 공부할 때 집중력이 떨어지고
직장인의 경우는, 일할 때 손에 일이 잘 안 잡힙니다.
사무실에나 집안도 막 어질러놓고,
정리할 기운도, 의욕도 없어집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병들면, 대인기피증이 생깁니다.
사람이 싫어지고, 자꾸 신경질이 납니다.
이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불면증과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옵니다.
심지어는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인간의 몸과 마음이 붙어있기 때문에,
마음의 병과 함께 육체의 병도 같이 오죠.
마음의 아픔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복통, 설사, 소화불량, 탈모, 피부병
고혈압, 가슴 통증, 두통 등이 종종 같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마음 건강을, 잘 관리하는 능력을, 심리학자들은 'EQ(감정지수)가 높다'고 표현합니다.
EQ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빨리 잘 분별해서, 대처합니다.
‘요즘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분노가 많아졌지? 왜 이렇게 신경질이 많아졌지?
내가 화가 났나? 내가 슬픈가?’
자기 감정의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EQ라는 단어를 전세계에 유행시켰던 대니얼 골먼 교수는 말하기를
‘괜찮은 사람과 탁월한 사람의 차이는, 감성적 자기통제능력이다.
최선을 다했던 일에 실패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욕을 먹고 외롭고 힘든 그 순간에
그 위기의 순간에, 자기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는 영혼의 힘,
그게 바로 감성지수가 높은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건강한 감성적 자기통제능력을 가질 것인지를 함께 다루어 봅니다.
참고로 저는, 전문정신심리학자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심리학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시각에서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본문 골3: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마음이 전쟁상태였습니다.
늘 불안과 불만과 갈등과 회의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뒤에, 그 죄의 뿌리가 뽑혀나가면서
마음의 전쟁 상태도, 이제는 종식되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참된 평강과 은혜가, 이제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 능력을, 주님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는데,
거기까지는 주님이 하셨는데, 그것을 누리는 것은, 이제 우리의 책임입니다.
여기 보니까,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영어성경에 Let the peace of Christ rule your heart,
문을 네가 열어야 된다는 겁니다.
‘주장한다’는 것은, 다스린다 rule 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영혼에 딱 장악하고 다스리게끔, 내가 문을 열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나의 결단입니다.
사탄은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우리에게 순식간에 염려와 근심과 미움과 분노를 심어서, 그 문제를 확대시키는데,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게끔 충동질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간 순간 의지적인 결단으로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1.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기도함으로써> 입니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라는 말은, 염려할 일이 터졌다는 겁니다.
지금 위기에 놓여있는 여러분의 사업이,
탈선으로 치닫고 있는 여러분의 십대자녀의 문제가 있고,
여러분을 배신한 사람이 주는 상처가 있고
이 모든 것들이, ‘아무 것’에 다 포함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순간에, 기도로써 하나님께 이 모든 문제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염려가 많아지면, 기도가 적어지죠.
반대로 기도가 많아지면, 염려가 줄어들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안을 채웁니다.
요즘 <신년특별새벽기도 40일>중에, 지금 13일째 지나고 있는데,
여기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염려가 많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새벽에 기도하니까요.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여기서 ‘고난’은 주로 인간이 주는 상처인데요,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고난당하는 그 순간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인간이 준 상처가, 그 독소가 내 마음으로 번져나가는 것이 차단됩니다.
사람도, 응급처치를 해야되는 골든타임이 있는 것처럼, 영혼의 상처도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상처가 오래되면 될수록, 해결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누가 상처를 주었을 때, 내가 순식간에 기도해야 됩니다.
독사에게 물렸을 때, 순식간에 빨리 헝겊으로 딱 핏줄을 묶어서
독이 퍼져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독을 뽑아내는 것처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상처를 내게 주었으면, 고난의 칼이 왔을 때, 순식간에,
그것이 독이 되지 못하도록, 우리는 기도로 그 쓴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순식간에 그러면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것이 상처가 되어서, 여러분의 인격을 병들게 하지 못하도록,
마음의 병이 들지 못하도록,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미 마음의 병이 든 것도, 주님께서 그 독소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 40일 기도 중에, 여러분의 마음에 있던 어떤 독과 상처가, 깨끗이 제거되기를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는
둘째로, <하나님의 안식과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대부분 너무 스케줄에 과부하가 걸려 있어요.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너무 지금 탈진되어 있거든요.
피곤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괜히 분노와 짜증이 많아집니다.
이럴 때 내리는 결정은, 거의 열에 아홉은 우매한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피곤하고 힘들 때, 예민할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이세벨이 온 나라에 현상금을 걸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애쓸 때
엘리야는 미친 듯이 도망가면서, 탈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은 이제 선지자 때려칠 것이라고, 죽고싶다고 그랬어요.
만약 그때 그 결정을 했더라면,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데미지가 왔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행히 그렇게 막 상태가 안좋은 엘리야를
그냥 먹이고 재우고 먹이고 재우고 하신 다음에 40일 동안 아무 결정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까지, 그냥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그러면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걸어가게 하신 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엘리야에게 다음 스테이지를 결정하게 합니다.
그때 내린 결정은, 40일 전에 상태 안 좋았을 때 했을법한 결정과는
전혀 다른 결정이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상태가 안 좋으면, 결정하지 마십시오.
홧김에 결정하지 마세요.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중요한 결정을 미룰 줄 압니다.
여러분이 좋은 결정을 내리려면,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잠시 안식하면서
영혼의 숨고르기를 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그래서 일주일, 그리고 매일의 스케줄 사이사이에
의도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한, 안식의 공간들을 집어넣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많이 노력합니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어지고 많아지면,
그래서 너무 피곤할 때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때는 타임아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도 만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설교준비 하지 않습니다.
글 쓰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이때는 일단 손을 놓고, 나가서 산책을 하든지,
커피를 마시면서 좋은 음악을 듣든지, 잠시 5분, 10분 낮잠을 자든지,
순식간에 그 상황으로부터 멀어져야만 됩니다.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것 같지만, 이렇게 쉼표를 찍으면,
하나님께서 내 육체와 정신을 재충전 시킬 수 있는, 공간/여지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지나고 보면, 우리가 문제를
그 당시에 너무 문제화 시킨 것이, 문제가 됩니다.
▲정말 중요한 일은, 너무 빨리 처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좋습니다.
특별히 사람에 관련된 일을 다룰 때는, 더욱 그렇더라고요.
여러분, 선진축구와 후진축구의 차이는, 후진축구는 공간을 좁게 사용합니다.
공이 가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다닙니다.
그런데 선진축구는 축구장 전체를 넓게 사용합니다. 패스의 반경이 넓습니다.
인생도.. 하나님의 사람, 승리하는 인생은, 굉장히 공간을 넓게 봅니다.
유연하게 공간을, 군데군데 확보해서,
뜻하지 않은 삶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놓죠.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세 가지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뒤를 돌아보고, 둘째는 위로 올려다보고, 셋째는 앞을 내다봅니다.
우리가 과거를 깊이 반성하고,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안식일마다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마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일 밤마다 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재 아픔 속에는, 그 열쇠가 과거의 암호들 속에 숨겨져 있거든요.
이것을 영적인 시각으로 제대로 해석해야, 우리가 새로운 미래로 갈 수 있어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우리는 매일 밤 하루 일과가 끝난 뒤에,
또한 매 주일 한 주일이 끝난 뒤에, 이렇게 안식의 시간을 통해서,
자기 영혼을 추스르는 습관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의 의미 속에는, 네가 네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지 않으면,
네 이웃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책임자의 자리에 있을수록, 안식과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기 마음이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여러분, 특히 젊은 세대들은 검색보다는, 사색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하루가 마음이 굉장히 복잡해져서 시작하게 됩니다.
여러분, 운전할 때도 스마트 폰으로 얘기하지 마시고,
운전할 때 얼마나 좋은 시간입니까.
저도 집에서 오고 갈 때, 매일 운전할 때 하루에 약 1시간을 쓰는데,
이 시간이 제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때는 좋은 설교를 듣거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서 내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재조명해 주시면서,
내게 말씀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깊은 묵상과 침묵의 시간을, 여러분이 매일 확보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거칠어지고, 조급해집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러한 철저한 자기 관리와, 균형적인 삶의 표본이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타이트하게 바쁘게 사신 분이 어디 있습니까?
하루에 수천 명을 만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 주시고, 설교하시고 하셨지만,
주님은 절대로 청중들에게 휘둘리는 인생을 사시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조용한 영적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군중의 박수갈채에도 교만해지지 않았고,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불법재판을 당하실 때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이 건강하셨기 때문입니다.
내면세계가 하늘의 영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에, 인생의 모진 충격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예수님의 마음관리를 배워야만 합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 가면 모든 일이 쉬워집니까? 다 쉬워지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자기 내면세계의 풍성함을 주님께서 주십니다.
▲3. 세 번째로 우리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에게 선포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 때문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10초 안에, 1시간 안에 즉 골든타임 안에, 즉 우리 영혼이 병들기 전에,
하나님의 시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 격려해 버려야 합니다.
괜찮아,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그가 ‘너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너는 될 거야!
‘너는 절망이다’라고 세상은 말하지만, 나는 살아날 거야,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야. 이보다 더 힘든 때도 이겨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셔,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너는 독수리의 날개로 비상할 거야!’
이렇게 그 골든타임에, 긍정의 언어, 믿음의 언어를 여러분의 마음에 먹이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입술의 권세를, 성령께서 사용하셔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뇌의 변화와 호르몬의 변화가 막 나타나서, 마음이 밝아집니다.
우리 안에 자기 비난의 소리도 있고, 자기 격려의 소리도 있습니다.
자기 비난의 소리는 마귀가 불붙이는 것이고, 자기 격려의 소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귀의 소리를 무시하고 성령의 소리를 붙잡아야 됩니다.
특별히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사람들이 모질고 독한 말을 해서,
여러분의 영혼에 마음의 상처를 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스스로에게 선포하셔야 됩니다.
한 10번을, 그 순간마다 선포하셔야 합니다.
저도 그래서 평소에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암송하고 있다가,
이런 사태가 터질 때마다 제 스스로에게 막 말씀을 선포합니다.
어떤 힘든 일이 생겨서, 인생이 코너에 몰려서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꼭 죽을 것 같다 싶을 때는,
제가 항상 선포하는 말씀이 시118:17절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그리고 인생에 갑자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쳐서
‘내가 이러다가 끝나는 게 아닌가?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들이 이 소리, 저 소리를 해서 제가 불안해질 때는,
저는 렘29:11절을 제 스스로에게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래, 내가 한 번도 안 당해 본 일이라서 내가 놀랄 뿐이지,
이건 재앙이 아니야, 평안인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내가 모르는 히든 축복의 카드를 숨겼을거야.’
이걸 믿고 제 스스로에게 계속 선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힘든 상황속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격려하십시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너는 담장너머로 뻗은 가지야.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나는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야.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나를 상치 못하듯이,
나를 불가운데로, 물 가운데로 지날 때도 지키실 거야!’
이런 말씀을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선포하면서, 자기의 마음의 독소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100% 먹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살리십시오.
▲4.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데미지를 회복시키는 정말 축복의 통로가 공동체입니다.
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영어성경으로 보면, 너희가 평강을 위하여 한 몸을 받았기 때문에,
그 힘에 의지해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뭐냐면, 여러분이 모르고 있지만, 좋은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것이
여러분이 순에 속해 있고, 어떤 사역팀에 속해서
긍정적이고 따뜻한 비전의, 격려의 언어를 하는 사람 주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하는 축복의 통로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가족을 두시고, 교회를 두신 것입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렸을 때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제일 몸이 약하고,
열등감이 많았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자존감이 낮았어요.
의욕도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 프랭클린의 아버지가, 형제들 중에서 제일 몸이 약하고,
의욕이 없는 이 프랭클린을 끊임없이 격려합니다.
‘너는 정말 특별한 일을, 하나님이 네게 시키실 것 같다.’
이 아버지의 말을 통해서 프랭클린은 살아납니다.
그래서 미합중국의 역사상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위대한 대통령이 됩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의 아내가, 여러분의 남편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은 고치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격려하고 살리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주위의 믿음의 공동체를 마음껏 활용하십시오.
제게도 좋은 '목회자 교제 모임'이 있습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이 제게 정말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치유해 주시고, 위로를 주십니다.
저는 또 우리 부교역자들과도 함께 교제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격의 없이 웃고 떠들면, 삶에 기쁨이 생기고, 비전을 나누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막 엔돌핀이 일어나고, 생각과 마음에 막 독소가 해결되고, 너무 기쁩니다.
여러분, 은혜로운 교회공동체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많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항상 혼자 있습니다.
마귀가 그걸 자꾸 틈타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마음이 병들고 힘들수록, 은혜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기도를 부탁하고 같이 서로 사랑하는, 그 타이트한 사랑의 공동체 안에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요.
◑자, 이제 구체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4가지 분야를 살펴봅시다.
▲1. 내 가슴속의 <분노>를 다스리기
마음의 상처의 많은 부분이 분노에서 옵니다.
억눌린 분노가 얼마나 우리를 병들게 합니까.
분노는 다양한 형태로 일어납니다.
A는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 있을 수 없습니다.
B는 참고 참고 참다가 한 번 터지면 메가톤 급입니다. 초토화 시킵니다.
그리고 자기는 뒤끝은 없다고 합니다.
C는 속으로 조용히 분노를 삭입니다. 씨익 웃으면서 삭입니다.
나중에 오뉴월에 서리가 내립니다. 그러면서 치밀한 복수를 계획하고, 밤에 악몽을 꿉니다.
이 세 종류의 분노 발산은, 다 마음의 독입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내가 화내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요.
‘나같이 좋은 사람이 화 내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상황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상황은, 그냥 폭탄의 뇌관과 같은 것입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분노의 잠재적인 덩어리들이 있었어요.
그 상황이, 그 사람의 한 마디가, 그를 건드린 것 뿐입니다.
우리 안에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으면, 분노의 뇌관이 됩니다.
내 인생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잘 풀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 꿈은 이렇게 더디 이루어지는 것인가?
왜 내 친구들에 비해서, 나는 승진이 느린 것인가?’
이런 쓴뿌리들이 속에서 조금씩 쌓이면, 나중에 조금만 뭐라 그래도, 막 화가 납니다.
식당에 가서 옆 테이블보다 음식이 조금 늦게 나와도 ‘이것들이 나를 무시하나?’
하면서 분노가 일어납니다.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노가 축적됩니다.
나를 공격하고, 배신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분노가, 믿음의 형제 자매들 사이로 오고 갈 때는,
하나님이 이것을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오는 가장 큰 벌은, 기도가 막히는 겁니다. 예배가 막히는 겁니다.
감사와 찬양이 안 되고,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여러분, 남을 미워하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순식간에 병들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로 분노를 풀어야 됩니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위 구절에 분노의 골든타임이 나옵니다.
분노를 그 시간 안에 해결 못 하면, 바로 마귀의 교두보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의 감정이 확 솟구칠 때, 일단 쉼표를 끊어야 됩니다.
일단 마음속으로 20초만 천천히 세어도, 이게 많이 해결됩니다.
‘하나.. 둘.. 셋.. 넷..’ 숨을 길게 들이마쉬고 내쉬면서
calm down calm down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이렇게 20초만 지나면, 대부분의 문제는 끝납니다.
이렇게 여유를 두는 20초 동안에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벧전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주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라고 했습니다.
분노를 불붙이는 것이 어둠의 세력이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을 제어하는 것은, 그보다 강한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분노의 순간에 참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우리 주님이 임하십니다. 주님이 임재하셔서, 여러분을 다독이십니다.
저는 주님이 종종 저를 다독이시는 것을 느낍니다. calm down calm down
그때 주님의 사랑이 내 속으로 쫘악 들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랑이 분노를 죽입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정말 화를 잘 내는 친구였는데,
결혼하고 나더니 화를 안 내더라고요. 배우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나니까,
사람이 따뜻해지는 겁니다. 사랑이 분노를 씻어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여러분이 예수님을 묵상하시면서, 예수님의 권리포기를 따라가셔야 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분노하는 원인의 핵심은, 우리 자존심입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내가 세상에서 살면서, 대접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집에서 남편으로서, 자녀에게 부모로서,
내가 이 나이에 걸맞는 사람으로서 받아야 되는 대접이 있는데,
거기에 걸맞는 대우를 안 해 주면, 분노하는 겁니다. 우리 분노의 근원에는, 내 자존심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목사로서, 어떤 외부 집회에 초대받았을 때,
가서 어떨 때는 너무 형편 없는 의전을 해 줘가지고,
제 속에서 너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면 제 속에도 그게 있는 거죠. ‘이 정도는 강사 대우를 해 줘야 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어떠셨습니까? 우리 주님은, 최악의 의전을 받고 사셨습니다.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고 오신 그 분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너무 가난하셨고, 너무 평범한 외모에, 빽 있는 사람도 뒤를 봐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너무 무시하고 욕하고 괴롭혀도, 그는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화내지 않으셨습니다. 권리포기가 확실히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시죠? 내가 겸손해질수록, 분노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교만이 극에 달한 사람은, 화를 잘 냅니다. 자존심이 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권리포기를 하면,
‘아, 나같은 죄인은 어디가서도,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전제하고 살면 괜찮아요.
저는 그때, 너무 형편없는 강사 의전을 받으면서, 분노가 일어났을 때,
우리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어디를 가도, 강사 의전을 그냥 제로(0)로 생각합니다.
‘내가 가서 물 떠마시고, 내가 찾아가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화를 낼 일이 싹 줄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권리포기를 따라하십시오.
▲2. 우리 마음에 <절망감과 슬픔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사고가 일어났을 때입니다.
그토록 피땀 흘려 일구었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때,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태산같이 믿었던 친구가 나를 배신했을 때,
건강하던 몸에 암이 있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절망감과 슬픔이 확 들어옵니다. 이때부터 우울증이 들어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 인생에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 닥쳤기 때문에, 하나님께 섭섭한 것입니다.
이 상황을 넘어선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에 하박국입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자, 여러분, 그 당시 전쟁이 나서 적군이 휩쓸고 간 뒤에
농부의 상황을 여기서 설명한 것입니다.
갖고 있는 곡식은 싹 쓸어가 버리고, 농사를 지어야 할 소도 외양간에 없고,
젖을 짜야될 가축도 다 잡아가 버렸습니다.
농부는, 텅빈 외양간과, 초토화된 밭 앞에서 울고 있습니다.
자기가 먹여살려야 될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처참하고 슬픔과 절망감의 상황에서, 그런데 전혀 다른 반응이 튀어나옵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이 알 수 없는 어떠한 절망감과 슬픔도 이겨낼 수 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의 힘을 배웁니다. 그것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하박국은 지금 구원의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이 고통을 이겨내는 겁니다.
구원을 묵상하는 것은, 천국을 바라보는 겁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아무리 절망이 와도, 우리는 천국에 보금자리가 마련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 땅에서는 물질을 잃었지만,
천국에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쌓아놓으신 보화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는 병들었지만,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히 건강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배신과 증오가 있었지만, 천국에는 영원한 사랑과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그 천국의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우리는 보통 세상 것을 누릴 때는 잘 깨닫지 못해요.
그러나 내 인생에 절망이 왔을 때, 여러분이 천국을 생각하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그 분에게 항상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구원의 하나님을 붙잡을 때, 우리 기쁨에 진정한 파워가 오는 것입니다.
▲3. 내 가슴속의 <두려움> 다스리기
우리 안에 두려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이 아픈 분들의 대부분이 두려움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성공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자식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비난과 공격에 대한 두려움들이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괴롭힙니다.
마귀는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우리의 미래를 절망으로 빠뜨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순종하지 못하게끔, 마비시키는게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어떤 이단보다도 무섭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재능과 은사와 비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작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못하게 마비시키는 게,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삶의 기쁨을 앗아가 버립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기도도 잘 안 되고,
하나님한테 원망만 생기고, 조용한 카페에서 앉아 있는데도 마음은 막 전쟁상태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움을 넘어서, 하나님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갈 때는, 시선이 흔들리지 않았을 때는,
폭풍의 물 위를 늠름하게 걸었던 베드로가,
그전에는 물이, 폭풍의 물인지도 알지 못했는데,
주님께 시선을 떼니까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해지면.. 믿음이란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겁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해지니까, 내가 극복할 수 있던 문제가, 나를 극복해 버립니다.
다시 살아나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께로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문제만 분석하고 있으면,
사람들의 사나운 비난의 말을 계속 묵상하면서
‘내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칠까?’ 이 생각만 하면, 도저히 두려움의 늪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시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니까, 이 말이 나오는 겁니다.
'아무리 떠들어도, 그냥 사람이야, 네가 어찌 하겠어?’
그래서 우리는 힘들 때일수록, 말씀을 확 붙잡아야 됩니다.
평소에는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을 다 우리는 섞어서 들어요.
그렇지만 여러분 인생이 절체 절명의 위기에 처해서, 너무나 큰 두려움이 엄습하면,
그 때는 사람의 말을 딱 끊고 하나님의 말씀만 집중해서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마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사51: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합니다.
사람들에게 듣고, 하나님께는 듣지 않습니다.
‘내게 듣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너무 두려울 때는, 여러분과 친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소리를 끊고, 주님의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와야 됩니다.
간절히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기도가 쌓일수록,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자리에, 예배의 자리에 가서, 말씀을 딱 붙잡아야 됩니다.
두려움을 옆에서 조장하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그 마귀는, 여러분이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 있으면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그 시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할 때는, 마귀가 가까이 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려운 일이 많기 때문에, 그냥 기도의 자리에 많이 나아갑니다.
걱정할 시간에 가서 더 많이 기도하는 거예요. 더 많이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다스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어떤 대상을 향해서 마음이 강퍅하게 딱 닫혀 버립니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 하면서, 다른 문화, 인종, 사람들과 잘 지내던 A교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분이 퇴근하는 길에, 흑인 권총 강도를 당했습니다.
강도는 그를 땅에 눕히고, 머리에다 권총을 대고, 돈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런데 돈을 빼앗긴 것보다, 그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트라우마 였습니다.
권총을 자기 머리에다 대고, 흑인이 막 욕하면서 거기서 받는 정신적인 충격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 분은, ‘흑인은 나쁜놈들, 흑인은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딱 자리잡았습니다.
후에 그 분이 신학교를 다녔는데, 하루는 흑인 신학생의 멱살을 붙잡고,
‘너희들은 믿을 수가 없어’ 그러면서 ‘너희들이 나를 강도짓 했어!’ 막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흑인이 한 말이, 나도 아직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 그렇지만 나도 코리언들에게 당하는 흑인들이 내 주위에 많다.’
한국 사람들에게 사기 당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건이 터지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 대상을 향해서 마음이 딱 닫혀버립니다. 강퍅해 지는 거죠.
어떤 분은 어릴 때 다니던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받은 상처가 커서,
자기는 목회자를 다 못 믿겠다고 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자기는 교인에게 받은 상처가 커서, 교인들을 못 믿겠다고 합니다.
유리성에 딱 닫혀서, 교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럴 만한 상처가 있었겠죠. 그렇지만, 상처 때문에 마음이 강퍅해져서,
교인은 목사를 못 믿고, 목사는 교인을 못 믿는다면,
그게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얼마나 테러블한 삶이겠습니까.
마귀가 조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어떤 자매는 어릴 적에 폭압적인 아버지께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회 나가서 목소리 큰 어른만 보면, 자매는 그냥 트라우마가 일어납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도 트라우마가 있고,
사회에 나가서 사장님께도 트라우마가 있고, 교회에 오면 목사님 한테..
즉 모든 권위적인 존재들에 대해서, 이 자매가 마음을 닫는 것은,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상처가 강퍅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데, 오늘 성령님께서
그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성령께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부드럽게 바꿔주셔야, 우리가 말씀대로 살 능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새 마음은, 과거에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형제를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용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나의 선입관과 편견을 부수어버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과거에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로 인해서 상처를 받고
마음이 강퍅해진 분이 있다면, 오늘 성령님을 초대하기를 바랍니다.
자라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있어서, 권위에 대해서 마음이 닫혀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성령님께서 치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시면, 여러분은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치유하는 영적인 리더는,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그 마음에 상처를 성령의 능력으로 극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인생을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마음에 받아서, 피흘리는 마음, 병든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신 후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치유가 있었고, 독소가 뽑혀나갔지만, 아직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들,
주님 이시간에 하늘 문을 여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깨끗이 치유하여 주옵소서.
내 무의식 속에 남아있던 상처까지도, 우리 주님께서 온전히 치유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