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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감정 솔루션 1강 “상실”

LNCK 2016. 2. 29. 19:13

크리스천 감정 솔루션 1상실”                       창13:14                  출처보기

    


 

"상실감"이 주는 것은, 그 사람 혼자만의 떠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다 뒤흔들어놓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을 위대하게 만드시려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게서 떠나게 하십니다.


그 사람의 떠남이, 내 인생에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떠남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사람이 떠나갈 때는,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됩니다.

어떤 상실 속에서도, 그냥 낙심하지 마십시오.  - 설교 중에서

 

..........................


◑"상실감"을 경험한 아브라함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주제는 상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제일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내곁에서 떠났을 때입니다.


   벤자민 시물크 목사님은, 흑사병이 유행할 때도, 많은 사람을 돌보면서 굉장히 신실하게 사역하셨는데,

   한 수도사가 늘 그분을 증오하고 미워했거든요.

   시물크 목사님이 어려운 이웃을 도우러 간 사이에, 수도사는 그의 집에 불을 질렀고,

   목사님이 돌아와서 보니까 집이 다 새카맣게 탔을 뿐만 아니라,

   두 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숯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절망가운데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정말 사랑하는 그 아이들을 잃어버린 그 절망감, 상실감!

   그런데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주신 분도 여호와시고, 취하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그렇게 고백하면서, 이겨나가셨거든요.


여러분, 위 내용은 아주 극단적인 예였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너무너무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곁을 떠나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죽음의 문제일수도 있고요,

-또 인간관계 속에서 어긋난 오해나 이런 것 때문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일수도 있고,


상실감이 주는 것은, 그 사람 혼자만의 떠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다 뒤흔들어놓습니다.


참 이상해요. 내 삶에서 이것만 빠져나가면 되는데, 나머지 것이 다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

그 어떤 중심 축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요. 그런 아픔들이 있죠.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가 정말 사랑했던 조카 롯이,

자기를 떠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사실 75세에, 이제 혈혈단신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네 본토친척아비집을 다 떠나오라'고 하셨는데,

75세가 되도록 자녀가 없는 삶을 살면서,

자기의 형제인 하란이 낳은 조카 롯이, 자기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 형제 하란이 죽고 나니까, 조카를 돌볼 사람은 자기 밖에 없었던 거죠.

어차피 아들도 없고 희망이 없는데, 온 인생의 희망을 조카 롯에게 두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 조카를 내가 잘 보살피고 사랑하리라!'


그런데 이 조카가, 어느 날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옵니다.

그랬을 때 그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이 풀이 죽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절망감에 휩쌓여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브라함아. 너 있는 곳에서 고개를 들라.”


고개를 들라(눈을 들라)는 말은  창13:14

아브라함이 풀이 죽어있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면 유일한 피붙이로, 마치 아들처럼 생각했던 롯이 떠나가버린 그 상황은,

75세의 나이에 아브라함은 의지할 사람이 없습니다.


정말 정성을 다했고, 사랑을 주었는데,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위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가는 그 조카.

아브라함은, 그 상실감의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을 어떻게 위로하시는가요?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상실"의 경험이 있으시죠? ()

   연세가 많을수록 그 경험은 더 많겠죠. 연애할 때 그렇게 사랑했는데, 이럴수가 하는 그 절망감!


   제가 청년대학부를 지도할 때 보면,

   청년들이 목사인 저를 찾아올 때,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목사님, 청첩장입니다.' 하고 올 때나

   -아니면 '목사님 그 사람 죽고, 나도 죽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애인이 떠나가고, 자기를 버렸다는.. 그 상실감.

   그때 오는 아픔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치유하시는가요?


▲1. 진짜 내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뒤에 오기 때문에, 그가 떠나는 것입니다. 


사실은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정해준 사람이 아니다.. 그걸 잊지 않아야 됩니다.


그 사람이 떠나가지 않으면, 진짜 나에게 기쁨이 될 사람이 못 오거든요.

그래서 사실 아브라함은 롯이 자기의 모든 것인줄 알았고, 거기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롯이 떠났기 때문에, 이삭이 올 수 있었죠. 이삭의 이름이 무슨 뜻입니까? 기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기쁨이 될 존재를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사람 없으면 나는 못 살 거야, 이 사람 없으면 나는 다 무너져'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이 사람이 최선이고,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이 떠난 곳에는 하나님의 또다른 예비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이 사람을 통해서 영원한 위로를 주시려는 게 아니고,

진짜 기쁨이 될 사람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25년 후에 이삭을 얻고, 얼마나 기뻐합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축복은, 롯을 통해서 주어진 게 아니고, 이삭을 통해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혹시 정말 사랑하는 귀한 사람이, 내게서 떠나갈 때 낙심하지 마세요.

직장에서 '저 직원 없으면 나는 안 되는데..' 천만의 말입니다.

그가 떠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더 훌륭한 사람이 옵니다,

나중에는, '그 사람이 떠난 게 천만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최고로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상실을 느낄 때는, 은근한 기대감이 있어야 됩니다.


'네가 나를 버렸니?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더 위대한 사람을 주시려고..'

그런 기대감을 가져야죠.


그렇지만 그사람과 헤어질 때는, 겉으로는 슬픈 척 해야죠.

그렇지만 뒤돌아서서 웃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데, 내게 얼마나 좋은 분을 허락하시려고 저 사람을 떠나게 하실까!'

 

2.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상실"을 내게 허락하십니다. 


그 사람이 안 떠나가면, 내가 하나님을 안 바라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의지할만한 사람, 소망을 두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하나님을 절대 안 찾습니다. 하나님을 어쩌다 곁눈질로는 찾겠죠.


자기가 의지할 사람, 재정적으로 후원해주는 사람, 내가 믿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봐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기대가 있으면, 하나님은 액세사리가 됩니다.


어느 날 정말 사랑하고 내 모든 것을 다해서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는 순간,

'아하 인간은, 믿을 대상이 못 되는구나. 인간은 의지할수록 상처투성이구나. 결국은 다 떠나는 구나.'

이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떠난 이후에, 하나님과 25년동안을 깊이 교제합니다.

어딜 가든지 예배하는 사람이 됩니다.

정말 하나님 없이는 못 살기 때문에, 하나님밖에 바랄 이가 없으니까요.


   여러분에게서 사람이 떠나갈 때는,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눈에 보이고 만져져서 귀한 것 같지만,


   그 사람은 오히려 내 위로가 필요하고요, 진정한 의미에서 내 도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 사람도 자기가 살기 힘들고, 아프고, 상처가 많거든요.


   하나님만이 너무나 강하시고, 지혜로우시고, 위대하시고, 변치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만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믿고 의지할 대상인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예배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상실"을 경험한 다음에, 비로소 그렇게 변합니다.


▲3. "상실"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감춰져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떠남이 내 인생에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떠남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롯이 떠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계시받게 됩니다.

그런데 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데, 아브라함에게 알려주느냐, 거기에 롯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롯이 거기에 안 살았으면, 그 계시를 못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롯이 거기에서 사는 바람에, 고대 근동의 대전쟁이 일어납니다.

당시에 세계대전 수준이었습니다.

네 왕이 연합군을 조직해서, 그 지역의 모든 성읍을 초토화시키고,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때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었던 롯도, 포로로 잡혀갑니다.


75세가 훨신 넘은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게 됩니다.

75세 노인인데, 자기의 사랑하는 조카가 포로로 잡혀갔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집에서 길리운 군사들, 종들을 모아서, 그냥 밤새 달려가서, 그 네 연합군들을 완전히 다 무찔러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잡아갔던 그 포로들, 노예들을 자유롭게 석방해줍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고대근동의 모든 상처난 사람들의 마음, 포로된 사람들 자유케 해주는,

영웅중의 영웅이 아브라함이 됩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 미처 못하셨죠? 아브라함이 75세 나이에 그냥 애가 없어서 슬퍼하며 살았던..

그 정도로만 아셨죠?

그런데 사랑하는 롯이 떠났기 때문에, 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영웅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롯이 같이 있었으면, 포로로 잡혀 가지 않았으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되었을 텐데,

누가 구원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사랑이, 노인이지만, 자기를 용사를 만들어 놓은거죠.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떠남이, 아브라함 생애에 가장 영웅적인 생이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나를 떠났다는 이 자체로만 괴로워하는데, 천만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을 위대하게 하려고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 곁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아픔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의 아픔도 몰라요.


그리고 정말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통해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혹시 '자녀가, 엄마인 나를 이렇게 배신하고 떠날 수 있는가?'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거기에 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 자녀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내게 그 상처를 주고 떠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절대 여러분, 낙심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상실을 상실로 그치게 하지 않으세요.


▲정리하면, 그래서 상실을 만나면 딛고 일어서야 됩니다.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십시오.

 

1. 이 사람이 나와 영원히 있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또다른 사람, 진짜 기쁨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가 떠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그 사람이 떠나가야만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그 사람이 떠나가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3. “상실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내 인생을 위대하게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상실을 주고 떠난, 가해자도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입장을 바꿔서, 이제 롯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롯이 떠나왔어요. 그런데 그 떠나옴이 얼마나 삼촌 아브라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그리고 떠나왔을 때, 꿈과 기대감을 갖고 왔지만, 혼자있는 그 외로움이 엄습할 수 있거든요.


더 두려운 것은, 내가 상처를 주고 떠났기 때문에,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 좋으라고 타인에게  상처를 준 것이잖아요. 그럴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어요.

(자기가 잘못했으니까요. 죄책감이 있죠.)


그래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은 복을 안 주실 거야이런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는가 하면,

딸들과 나중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딸들 사이에서 암몬과 모압 민족을 낳게 됩니다.

그런 아픔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본의아니게 상처를 줬든지,

내가 의도적으로 상처를 줬든지, 어쨌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실의 아픔을 줬을 때는

내 마음이 편치 않죠.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중요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잘못했을 때는,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사과를 받아들이든/안 받아들이든

내 입장에서는 어쨌든 내 편함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을 위해서

상대편은 나에게 전적인 기대를 했는데, 상처를 줬으면, 일단 사과를 해야 됩니다.

 

▲2. 그 때문에 너무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내가 아무리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상대편에게 그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은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서

그를 어떻게 도울까를 생각해야지,

내가 저 사람에게 저렇게 상처를 주었는데

'나같은 인간은 쓸모없어' 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려봤자, 상대방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3.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나에게도 은혜를 베푸셨듯이

피해자인 그에게도, 하나님이 특별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그를 위해서 축복의 기도를 해 주는 것, 그것이 중요한데,

왜냐면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 준 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내가 그사람에 미친 영향력보다도, 하나님이 그사람에게 주실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실 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도

반드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실 줄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룻의 입장에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 선으로 바꾸셔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잖아요.

롯은 상상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상처준 그 사람도 사랑하시고, 내가 실수한 것도 선으로 바꾸셔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실 줄 믿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판 다음에, 그 죄책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요셉을 떠나보내고 난 다음에, '그 가시 같은 녀석 없어져서 속이 시원하다' 그랬겠어요?


   얼마나 괴로워했느냐면 나중에 요셉을 만났을 때, 이들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데,

   그렇게 요셉을 만났는데, 요셉이 '형님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저를 먼저 보내신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도, 형들은 근심에 사로잡힙니다.

   거의 20년이 지난 다음에 나중에 야곱이 죽을 때,

   형들이 '이제 우리도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요셉이 분명히 용서를 했는데, 자기들은 죄책감으로 그 수 십년을 시달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아픔이란 것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형들은 그렇게 팔았는데,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 사건을 통해서 놀라운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렸기 때문에 국제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래서 이집트 총리가 되잖아요.

그래서 고대 근동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룹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역사하시고 섭리하셔서,

내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이렇게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으면, 여러분이 가해자일지라도,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이 선을 이룰 줄 믿고, 내 죄를 회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그걸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세상 다른 신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피해자일 때만 나를 도우실거야천만에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해자일 때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의 양심의 아픔들을 치료하십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둡니다.

엄청난 가해자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바울은 그 사건을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인물이 됩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에게 가면, 유대인들이 배신자라고 바울을 배척하고,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 가면, ‘너가 스데반 돌로 쳐 죽이고,

우리 부모님은 감옥에 너 때문에 갇혀 있는데, 네가 뭔데 여기서 설치느냐?’고 거부할 것입니다.

 

바울이 갈데가 없으니까, 이방인들에게로, 자기를 모르는 전 세계를 향해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가해자이지만, 그를 통해 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엄청난 비전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진리를 외칠 수밖에 없는,

복음의 본질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가해를 가했기 때문에,

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어떤 상실감을 겪었는지, 누구에게 어떤 상실의 아픔을 줬는지는 모르겠어요,

내가 치유할 수 없고, 내가 해결할 수 없어도,

내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하면, 나 때문에 새로운 계시도 주시고,

놀랍고 위대한 일을 이루실 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 어떤 "상실" 속에서도 더 이상 낙심하지 마세요.

 

마치는 말

그 상실의 경험을 했을 때, 아까 세 가지 다시 한 번 복습해 볼까요?

 

1. 그 사람이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이 아니고, 더 기쁨이 되는 사람이 뒤에 오기 때문에,

그 상실을 내게 허락하심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2. 상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떠나면, 하나님이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롯이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사..'13:14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게

우리는 매일 나타나신 것 같지만, 25년 만에 나타나실 때도 있고 그래요.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지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느냐면,

롯이 떠난 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고 계시는 순간입니다.

  

그는 분명히 자기 욕심을 따라 떠난 것입니다.

그러한 상실

내 편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3.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섭리" 같은,

그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어서,

그 시대에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그런 아픔을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더 이상 상실 때문에 좌절하지 마세요.

위대하신 하나님,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끝까지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