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라, 열려라! 막7:34 11.08.28 출처보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7:34
◑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제가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문이라는 것은
열리기보다는 닫히는 쪽에 익숙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의 문은 자꾸 닫으려는 것이 본능입니다.
심리, 마음은 닫힌 마음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외로워지고, 영혼이 어두워지지요.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한 그 공로로,
그 분의 부활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강력한 영생의 힘이 터진 이후로
기독교가 있는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는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인생과 말문이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절망도 열리게 되어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덤 문도 주님이 열어주시고
감옥도, 쇠창살도, 인종도, 계급도, 빈부의 문까지도 주님의 손으로,
강력한 복음 능력으로 열리게 하십니다.
여러분 베드로전서 5:7절에 보면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어떤 염려의 문도 주님께 맡기면, 열린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십니다.
빌립보서 4:13절의 말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불가능의 문을 열어주시는 능력 가진 그 분 안에서는, 닫힌 문이 없다는 유명한 선포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가 무엇을 먹고, 마시고, 무엇을 입어야 되는지 주께서 천부께서 아시느니라.'
이는 주님이 아시는 대로, 그 분이 결국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문은 주님이 여실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아는 것은, 이 땅의 마귀 사탄, 이 사탄의 악령은 언제나 있습니다.
사탄은 열린 문까지도 자꾸 닫으려고 합니다.
열린 문도 굳이 쫓아와서, 사랑의 문도 닫아버리고, 영생의 문도 닫아버리고,
신앙의 문도 어떻게든 닫고, 닫히고 닫히고 닫히고. 사탄은 문 닫는데 전문가입니다.
사탄은 그래서 거부합니다. 거절합니다. 공격합니다. 부정적입니다.
그리고 배척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세상입니다.
이것이 인류를 괴롭히고, 이것이 심지어 아직도 이 대각성의 성령의 역사가 있기 전에
많은 벧엘교회 가족들 가운데 아마도 괴롭혔던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세상이 이루어지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달려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우리들에게
언제나 주님이 허락하시고 명령하시면,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영접하게 하는 분입니다. 열린 인생이 되게 하는 분입니다. 열린 마음이 되게 하는 분입니다.
위로를 퍼부어주셔서 앙심과 분노와 원망으로 닫혔던 마음을 다 열게 하시는 분입니다.
믿는 대로 될지어다!
여러분 믿는 대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이 열리게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심을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세 번 강하게 하십시다. 아멘! 아멘! 아멘!
▶여러분 바울만 해도 꽉 막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자존심이 문을 닫고. 그의 특별한 의식이 문을 닫고.
그는 저만이 잘났다고, 나만큼 잘난 사람이 세상에 어딨냐고.
그 자신의 프라이드가 꽉 자신을 닫아버렸던 폐쇄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만 잘났고, 자기만 이 세상에서 흠잡을 게 없는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의 닫힌 문을 열어버렸습니다.
다메섹 성 앞에서 눈이 감겨져서 무릎을 꿇고 '오, 주여, 누구십니까?'
그는 질질 사람에게 끌려서 다메섹에 들어갔고, 아나니아를 통해 눈이 열려지고 비늘이 벗겨지니까
그때부터 이 바울이란 사람의 문이 열리는데
유대인에게도 문을 열고, 헬라인에게도 문을 열고, 이방 사람에게도 문을 열고
로만 시티즌에게도 문을 열고.. 다 문을 열었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지진이 쳐서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의 마음 문이 열리고
귀신이 닫은 문도 열리고, 마케도니아로 향하던 문도 열리게 했고,
로마 군대의 병영과 그 모든 로마의 제국의 문이 열리게 했습니다.
▶이것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어디서부터 입니까?
바울과 같은 분, 또 저와 여러분의 문을 열게 하시는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한 분입니다. 이 막히고 다다른 인생의 문을 누가 시작해서 열어주십니까?
천국 문을 여시고, 영생의 문을 여시고, 십자가로 죄를 깨트려버리시고,
십자가의 길을 열어주시고 심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우리 삶의 모든 문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여십니다.
그 분의 입에서 그래서 "에바다" 하고 외치셨습니다.
저를 따라하십시다. "에바다"
이것은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던 유명한 선포입니다.
지금 여러분과 저의 인생에도, 열려야 할 문이 너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 문이 무엇이든지,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령의 능력이
"열려라" 하면 열려질 것이고
그리고 그 분을 향해서 우리가 스스로 열면
여는 것만큼 우리 가운데 밀려들어올 것임을
오늘 이 밤에, 우리 마음속에 확신이 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내 모든 영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내 막힌 벽의 문도 열어주시고, 내 건강의 문도 열어주시고
행복의 문도 열어주시고, 화목의 문도 열어주시고
미래의 문도 열어주시고, 승리의 문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럴 때 정열적인 남미 출신이 한 분 계셔야
앞에서 박수를 치기 시작해서 다 치게 만들 텐데요.. 박수의 문이 열리게 할 텐데요.. 하하하
▶이 갈릴리 한 동네를 지나면서, 예수님의 눈앞에 귀 먹고 어눌한 한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이름도 누군지 밝혀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예수님 앞에, 그 군중 속을 뚫고 예수님 앞에 와서 섰을 때
예수님의 눈에 나타난 이 어눌하고 귀먹은 이 청년,
요즘 말로 하면 장애인. 여러 가지 몸의 불편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딱 하나, 이 사람들도 이 어눌한 청년을 데리고
기꺼이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청년을 예수 앞에 데려가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며
사람들을 헤치며 주님 앞에 데려왔는지 충분히 상상이 가는 일입니다.
◑1. 사랑스런 자에게 열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상상을 펼친다면,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비록 몸은 불편하고 귀는 막히고 어눌하고 말도 잘 못하는 청년이지만
주님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에 긍휼의 문을 열어주셨으면
이 청년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이 청년이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분명히 예수님의 눈앞에도
너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쳐주셨지요.
▶이 청년을 보자마자 즉시 이 청년을 붙잡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나가셔서
이 청년의 양쪽 귀에 손가락을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손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손에 침을 뱉으신 것은, 전심을 다하시는 힐링의 준비가 시작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앞에서 귀에다 손을 넣든지 침을 뱉으시든지 상관하지 않고
이 어눌한 청년이 주님을 바라보던 그 표정이 어떠했을까요.
악한 표정을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 앞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겠습니까. 러블리!
주님 앞에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 So Lovely! 너무 사랑스러워보이는..
그때 주님이 이 청년에게 에바다! 열려지라. 네 삶의 귀도 열리고 눈도 열리고
모든 것이 열리라! 하고 주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는데, 인생을 살면서 자꾸 문이 닫히는 것은 교만함 때문입니다.
오만방자한 사람의 문은 열려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향해 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열지 않고, 믿음을 향해 열지 않으면, 영생을 향해 열리지 않습니다.
악하게 행동하고 까다롭고 건방지고..
혹시 우리 가운데 그런 분은 안 계시겠지만,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 주변을 보십시오.
다 그들의 문이 닫혀져요.
그들의 자식의 문이 닫히고, 가정의 문이 닫히고
그 부모까지도, 그 선생님도, 그 친구도, 그 자녀들도
모두 그런 사람을 향해서 문을 닫아버립니다. 아예 열고 싶어 하지 않아요. 닫힙니다.
그러나 요셉 같은 경우는 참 사랑스러웠어요. 소우 러블리!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도 뒤따라 다니며 그의 문을 열어주셨고
형통의 문을 열어주셨고, 드디어 그 고난의 삶을 극복하는 불가능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다윗 같은 사람, 얼마나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웠고
사람들 앞에서 사랑스러웠는지.. 걸어만 다녀도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하나님도 얼마나 이 다윗이 사랑스러웠는지
심지어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까지,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마음에 합했겠어요?
이 다윗도 기록에 보면 참 이웃집 아줌마하고 썸씽도 있고 그런 거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소우 러블리,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사랑스러움이 믿음이 되고 그 사랑스러움이 신앙이 되고
그 사랑스러움이 축복이 되고 용서가 되고 위로가 되어서
그 문을 열어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교회 와서 공부한 말 가운데 러블리(사랑스러운!)라는 말처럼 세상에 좋은 말이 없어요.
너무 사랑스러우면 인생이 열려요.
사람도 도와주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랑스러움 속에 믿음을 보시고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딕셔너리에도 없는 단어이지만,
참 어떤 분들이 문이 닫히냐면 거만틱, 거만틱한 분들이 다 문이 닫힙니다.
더 문이 닫히는 분들을 보면 교만틱하는 분들, 그 영어 모르시나요? 교만틱하는 분들이 다 문이 닫힙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여러분 제가 오래 전에 저희 교회에서 만났던 J라는 청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히 워즈 소 러블리.
그의 말하는 거나 행동이나 믿음의 태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때가 교회가 작을 때였고 찬양이 막 시작될 때였는데
"J 형제, 찬양도 잘하는데 이제 찬양팀에 올라가서 찬양 좀 하지 그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충성!"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한 번은 차편이 필요해서 '누가 차편 좀 줄 수 있겠는지?' 그랬더니
묻지도 않고 '몇 시요? 몇 시면 됩니까?' 즉시 그 모습.
그 속에서 정말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사람의 눈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어요.
그 하는 행동, 그 형제, 사는 삶을 보면 사랑스러운 사람을 보면
결국 그의 인생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의 문이 활짝 열리고, 누구든지 형제를 좋아하고 축복하고
직장의 문도 열리고, 믿음도 열리고, 기쁨도 열리고
결혼하고 나서 기도하더니 어느새 부인의 자궁도 열어주셔서 자식도 태어나고.
사랑의 문이 열리고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성령 받으셔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문이 열리고 성령이 달려오셔서
주를 향해서 활짝 열리는 분들에게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해지면
성령이 우리를 다 사랑스럽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 얼굴도 사랑스럽게. 눈빛도 사랑스럽게. 우리말도 사랑스럽게.
그래서 성령 받으셔야 해요.
예수 그리스도 앞에 활짝! 에바다 라고 말씀하시는.
본문의 이 청년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오늘 이 밤에도 우리의 사랑스러운 믿음의 태도와 주님을 향한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주님이 우리를 열어주셔서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나와 내 모든 자식과 내 가족들이 주 앞에 사랑스럽게 되도록 하여 주옵소서.
◑2. 연약한 자에게 열립니다
▶또 한 가지 이 청년을 보면 약해보였습니다.
이 약해진 모습 앞에 우리 예수님,
이 청년을 향해서 그리스어로 보니까 '아테나조'라는 말을 썼어요. 이 말은 탄식하다라는 뜻입니다.
신음하고 연민한다는 것입니다. sighed
주님 앞에 연약하고 사랑스러워보이는 소 러블리.
그런데 So weak. 너무 약해 보이는데 너무 사랑스러워보이고.
주님이 얼마나 그 연민이 터져 나오셨고 안타까우셨으면
아테나조. 탄식하시더라.
결국 이 약해보이는 청년 앞에 에바다 라고, 주님께서 열리라, 열려지라고 명령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강해보이는 것이 성공의 비결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 착각을 심어줍니다.
경쟁하고 성취하고 기회만 나면 선두에 서서 앞서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청년들도 많이 있지만
벌써 눈에 띄는 여자가 보이면 그때부터 뛰기 시작해요. 까딱하면 놓칩니다.
괜찮은 청년 하나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으면 다 날아가요.
우리교회 청년 가운데 한 분이, 의대생인데,
그 등록카드를 쓴 걸 보니까 메디컬 스쿨 스튜던트라고 적혀있고
그 옆에 생년월일을 쭉 적어놨던데
벌써 이 청년은 어딜 가든지 경쟁이 심한 대상이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나이부터 먼저 밝혀 놓은 게 아닌가 하고 웃으면서 생각했어요.
지금 이 세상은 강해야 모든 걸 다 얻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도 약해보이면 다 손해 보는 것 같지요.
역설적으로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약해질 때 결국 절대자를 향해서 마음을 열고 고난과 병이 깊어질 때
그때 믿음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이유는
약해보이기 때문에 주님의 손이 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들이, 세상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약한 자들에게 편을 덜어줍니다.
약한 자들에게 삶의 관심을 드립니다.
약한 자들이 연민의 에너지를 받게 되고 특별히 약한 자들 의롭고 불우한 자들, 병든 자들,
가난한 자들, 약한 자들 편에 서시러 이 땅에 오신 주님이
그들의 삶에 오셔서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원리입니다.
▶사도 바울도 남의 손에 이끌려, 눈이 멀어 끌려갈 때
그때 하나님께서 바울의 문을 열기 시작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열어주시고
복음의 사도로 열어주시고, 로마도 정복하게 만들어주시고
오늘도 그의 전도가 온 세계의 끝에 전파되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 역시 강한 베드로일 때 그 삶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티베리아 바닷가에 가서 수척하고 힘들고 눈물 나고 울적한 마음으로 약해진 모습으로
티베리아 바닷가에 고기 잡고 있을 때, 그때 주님이 찾아오셔서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놀라운 삶의 문이 열리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 하갈과 같은 사람, 그 아들을 먼저 받아서 그 첫 번째 부인인 사라에게 큰 소리치고
집안에서 떵떵거리고 문제 일으킬 때, 그 하갈은 처치곤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리고 빵 한 덩어리와 물 한 병을 주고서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내보냈을 때, 그때부터 약해진 이 어머니는
그때부터 자신의 모든 삶의 근거가 흔들린 약한 모습.
이 어머니의 눈물이 그 아들을 이끌고 사막으로 나가는데 물은 다 떨어졌어요.
물을 구할 데가 없습니다. 아들이 눈앞에서 죽어갑니다.
그때 이 하갈의 입에서 주여! 부르짖고. 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거에요.
'내 아들이 죽게 되었나이다.' 이게 어머니죠. 보소서. 약해지고 약해진.
먼저 아들을 얻었다고 큰소리칠 때 그 교만.
그 방자함 앞에는 문이 닫혔지만,
주여 내 아들이 죽게 되었나이다. 약한 심정으로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하갈아. 네 눈을 들고, 그리고 보아라.'
세상에, 그때까지 못 보던 그 샘물이, 눈앞에서 펑펑 터지는 모습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청년, 주님께서 오셔서 약해보이는 청년의 귀를 만지실 뿐 아니라
그의 손에 침을 뱉으시고 혀를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이 사랑스럽게 약한 모습으로 입을 열고 혀를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손에 뱉은 침을 이 청년의 혀에다가, 주님께서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무슨 방식의 치료인지 왜 침을 그 혀에다가.. 저 같았으면 '싫어! 안 고칠래!' 이랬을지 모르는데
'그저 하시옵소서. 주여 하시옵소서.' 혀를 내밀고 침을 바르니까
그리고 에바다 하시니까 그의 입이 열리고 말이 열리고 사람의 인생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약한 것입니다.
믿음은 절대 창조주 구원의 하나님 앞에 나의 약한 모습으로 설 때
내 스스로 막혔던 모든 문들이, 가정의 번영의 문들이
자식의 문들이 신앙의 문들이 열리게 하실 줄 믿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확실히 믿으면 세 번 아멘 하십시다. 아멘. 아멘. 아멘.
바로 약한 자, 약하게 주님의 눈길에 띄는 자. 약함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된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달려오셔서 성령으로 그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3. 간절한 목마름이 그 행복과 천국의 문을 열게 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여기서 보면 목말라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상상하고 짐작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 청년이 그 어눌한 인생을 얼마나 오래 살아야 되었겠어요.
그 조건에서 얼마나 더 오래 살아야 하겠어요.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 병을 안고 살겠어요.
그런데 이 청년이 주님 앞에 와서, 그 눈빛만 봐도,
정말 그 얼굴빛만 봐도 금방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눈망울만 봐도
우리 예수님 앞에서 정말 목마른 모습, '주여, 주님 말고는 아무도 저를 도울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내 눈을 뜨게 하겠습니까. 누가 치유의 권능으로 나를 대하겠습니까.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 목마른, 타는 이글이글한 눈망울. 아마 충분히 저는 그렇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기록은 여기에 다 없어도 저는 느껴집니다.
주님께서 혀를 내밀게 하시고, 그 혀에 침을 바르시고
그리고 그 청년의 그 목마름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씀, '에바다! 열려지라. 열려지라.'
여러 가지 이유로 닫혀 있고 누구도 도울 수 없었던 그 문이 에바다! 열려지게 한 것입니다.
시편 42장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이 음성을 따라 외치신 한 분 한 분이 바로 이 목마름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그 목마름을 보시고, 주의 눈에 띄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눈빛을 보고 얼굴을 보고 눈망울을 보고
그 여러분의 타는 안타까움을 바라보시고
주의 입에서 주님의 은혜가 "에바다"하고 터져 나오는 이 밤 되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밤 그 무엇이든 열리게 하옵소서.
그것이 이 대각성 기도회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입니다.
'내 삶이 닫혔나이다. 나도 열어주옵소서.'
목마른 것은 지금 여기 내 영혼입니다.
주님께서 이 밤에 내 앞에 지나가시기 전에, 주여 지금 내 목마름을 받아주옵소서.
내 목마름의 영혼을..
목마른 내 영혼. 사슴 같이 목마른 내 영혼. 내 마음을 열고 주를 찾나이다.
이 시간에도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들으면서도 '왜 이렇게 시간이 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왜 이 얘기 저 얘기하고 있어 그냥 결론내지.'
그러다 옆에 보니까 어떤 분이 적고 있어요. 막 더 화가 나는 거예요.
'나는 안 끝나서 죽겠는데 넌 뭐가 좋아서 적고 있냐.'
그래서 들여다봤더니 한 문장만 계속 적고 있다잖아요. '설교는 짧아야겠다. 설교는 짧아야겠다.'
오래 전에 이 교회에 와서 얼마 후에 재직회를 하고 있는데 재직회를 인도하다보니까
저 문간에 제 딸이 왔어요. 쟤가 왜 저기 서있나 했더니 저를 향해서
(다급하게 부르는 동작) 그래서 가만 보니까,
그래서 큰일이 난 줄 알고 슬쩍 뒤로 가서 수진, 왜? 아빠!
아이 니드 파이브 달러스. 그래서 제가 십 불을 줬더니 땡큐!
제가 그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래서 제가 가서 오 불이 아니라 십 불을 주었어요.
그 다음부터 제가 배웠어요. 그 전까지는 '주여, 주시려면 주시옵소서.'
아니에요. 그 딸을 생각하면서 '주여! 주여! 몇 만 불 이상 주여 헌금하게 하여주옵소서.'
천국이 좀 시끄러웠을 거예요. 저 때문에. 그랬더니 성도들이 헌금하시더라구요.
이번 대각성 기도를 시작하면서도 주여! 처음엔 다 무겁지만 뒤로 갈수록 쉬워지게 하여주옵소서.
주여. 제 딸이 저에게 오 불 구할 때보다, 저는 오, 주여! 그랬더니
온 교회가 얼마나 성령이 역사하시고 기적이 터지고..
여러분. 지금 열리면 되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서지 말고, 주여 내 닫힌 문을 열어주옵소서.
닫힌 눈을 여시고 닫힌 귀를 열어주옵소서. 닫혀져있는 내 사랑의 샘물을 터지게 하여주옵소서.
받아주고 이해하고 끌어안고 울고, 내 인생의 문이 주님 때문에 열려지고
성령 때문에 열려지게 하여주옵소서.
원하시면 아멘하십시다. 주여 나에게 에바다를 외쳐주옵소서.
세 번 외칩시다. 에바다! 에바다! 에바다!
주께서 그대로 이루어주실지어다.
타자 J.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