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H-92HJ8MSl0
◈주여, 비통함을 제게 주소서 느1:4 출처 中文 Russian English
A Call to Anguish by David Wilkerson
("다가올 폭풍 속의 유일한 소망"이란 제목으로도 번역)
▲세속화된 교회 현실
오늘날 기독교의 모든 모습들을 볼 때
제가 보는 것은,
인간적이고, 육체적인 방식과 사역들뿐입니다.
그런 사역들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사역들은 세상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와중에 오히려 세상의 것들이 교회 안에 기어 들어와서
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에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일례로, 지금 교회에는, 음악이 하나님의 집을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영감 없는 찬양이 너무 시간을 잡아먹고, 말씀이 거의 약화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듯)
그 외에도 각종 오락거리들이 하나님의 집을 차지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조차, 노는 것entertainment에 정신이 팔려 있고,
죄에 대한 교정과 책망에 대해서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이 어디로 갔습니까?
사역 가운데 비통함이 있습니까?
더 이상 그런 단어를
어릴 적부터 애지중지하며 자라난 이 세대에서, 들어보지 못합니다.
교정, 꾸짖음, 슬픔, 비통 등이.. 교회에서 전혀 들리지 않아요.
▲무엇보다 <비통함 anguish>이 필요합니다.
비통함anguish이란..
극도의 아픔과 고뇌를 말합니다.
내 마음/또는 내 주위의 타락한/세속화된 환경 때문에
나의 감정이 너무 휘젓듯이 불안하고, 매우 고통스런 상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깊은 아픔을 뜻합니다.
비통함 Anguish
진한 아픔 Deep pain
진한 슬픔 Deep sorrow
하나님 마음의 고통의 탄식 Agony of God's heart.
이제까지 우리는 종교적 미사여구와 부흥을 얘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수동적으로 변했어요.
이제는 이야기할 힘조차 다 빠져 버린 상태입니다.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할 것은 ‘비통함’입니다.
왜냐하면 비통함으로부터.. 진정한 열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열정은, 비통함의 세례(푹 잠기는 것)로부터 나옵니다.
성경을 찾아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폐허가 된 상황을 회복시키실 때,
그분은 먼저, 당신의 심한 고통anguish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당신의 교회와 당신의 백성들에게서 벌어지는 잘못된 해프닝을 볼 때,
하나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심한 고통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두고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그 사람을 취하여,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격정anguish으로
그에게 세례를 주십니다. 그를, 하나님의 마음/격정 속에 푹 잠기에 합니다.
▲느헤미야에게서 그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루실까요?
이 폐허를 어떻게 다시 재건하실까요?
여러분, 느헤미야는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직장인이었어요.
그렇지만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순간적으로 반짝 감정적인 (고뇌anguish하는) 사람,
또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관심을 가진 뒤
바로 식어지는 사람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말하기를 “나는 엎드렸다. 슬피 울었다.
그리고 금식하면서 밤낮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느1:4
왜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왜 느헤미야만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예루살렘을 회복시키는데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에게 고뇌anguish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간절한 기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과연 당신은, 오늘의 영적 현실이, 당신에게 부대낌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적 예루살렘인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과 결혼한 것이.. 정말 당신에게 걱정이 되고 있습니까?
지금 이 땅에는, 무감각한 차가움이 맴돌고 있지 않나요?
좀 더 가까운 데로 얘기하자면,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예루살렘이 어떤 상태이십니까?
(느헤미야 때처럼) 황폐되고 폐허가 된 사실에.. 어떤 부대낌이 있습니까?
폐허의 징조가 서서히 당신의 영성과 열정을 마르게 하지 않습니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당신 심령의 미지근함이,
또한 세상과 혼합주의가 점점 ‘예루살렘’(교회/나 자신)을 파고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태에서 사탄이 원하는 한 가지는,
당신의 전의戰意를 꺾어버리고, 싸울 의지조차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당신이 수고롭게 기도하지 않게 하고,
이제 더 이상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쏟지 못하도록, 사탄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당신은 TV를 보는데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런 가운데 당신의 가족들(영적 가족 포함)은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제가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이, 여러분 마음에 찔림이 됐습니까?
혹시 이런 설교를 듣고도, 찔림조차도 없지 않습니까?
▲비통함anguish과 관심concern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관심’은 무엇인가 잠깐 당신의 흥미를 끄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프로젝트에, 어떤 문제의 원인에, 당신의 관심사나 필요에
어떤 관심을 잠깐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난 50년 동안 설교사역을 해 오면서, 배운 한 가지를 가르쳐드리죠.
비통함anguish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면,
성령님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이 보고 들은 예루살렘의 폐허 때문에 무릎이 꿇려지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마음에 비통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님으로부터만,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서만,
우리 마음에 비통함이 생기고,
진짜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알 것 같아요.
오 하나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내가 심한 괴로움agony 가운데 있기 전에는
그것 때문에 심한 비통함anguish에 빠지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프로젝트(추진 사업)들,
우리의 모든 사역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사실은 모두 헛것입니다.
요즘 주일학교 교사들 중에
말씀을 듣지 않고 지옥에 갈 아이들을 위해
비통하게 우는 교사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진정한 기도 생활은, 심한 고통anguish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마음을 기도하기로 작정하면,
하나님은 내려오셔서, 그 분의 비통anguish한 마음을.. 당신에게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부르짖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모독 받고 있습니다.
성령님도 조롱받고 있습니다.
대적들은, 주님의 신실하시다는 증거(설교/책)들을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런 일을 막는 무슨 대책이 지금 나와져야 합니다.’
영적 갱신, 부흥, 영적 각성과 같은 움직임들도.. 이제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부수어 달라고 간절히 간구하기 전까지는
영적 갱신과 부흥은 결코 안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시간이 점점 지나가고 있고,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발 여러분이 그런 일에 관심concern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탄식하며 기도는 안 하고 인터넷과 텔레비전 앞에서 몇 시간씩 보내면서 말입니다.
제발요.
‘주님, 지금 우리가 주님 제단 앞에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원래 되어야 할 참 자녀의 모습을 지금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하나님이 가지시는 마음의 짐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그저 쉽게 살기 원했고,
마냥 제 삶이 행복하기만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주님, 진정한 기쁨/참된 기쁨은,
비통함anguish 가운데서 나온다는 것을 제가 압니다.’
▲육체를 따라 허무하게 살지 맙시다.
육체의 그 어떤 것도.. 진정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지 못합니다. (회중들: 아멘!)
돈이 얼마나 있든지,
어떤 새 집을 샀든지 상관없습니다.
물질적인 그 어떤 것도 절대로 우리에게 참 기쁨을 줄 수 없으며..
우리에게 참 기쁨은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들만을 통해서,
또한 우리가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함을 통해서,
또한 우리가 주님의 비통한 마음을 품을 때만.. 참 기쁨이 내게 주어집니다.
여러분의 가정 주변에 세속주의의 침입을 막는.. 느헤미야처럼 성벽을 세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 주변에 생활의 나태함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느헤미야처럼 성벽을 세우십시오.
예루살렘 주위에 난공불락의 성벽을 지어, 대적이 틈을 타지 못하게 하십시오.
‘하나님,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입니다.’
▲편안한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들 중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지금 시각이, 최후 심판에 점점 더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정말 중요하게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은 정말 그런 점들을, 염려하고 계십니까?
그들이 죽어서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런 점들을, 전혀 염려하지 않고, 편안하게? 잘 지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심각한 잘못입니다.
여러분의 편안함은.. 주님의 은총이 아니라.. 영적 나태함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통함 없이, 걱정만 하는 (한심한) 사람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도 전 세계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터넷과 TV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저 ‘요즘 돌아가는 세상이 너무 걱정스러워!’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원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요즘 비통해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이런 상황가운데,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있기는 있지만, 매우 극소수입니다. 소수점 이하입니다.
이런 상황을 주님 앞에 가져가서,
금식하며 슬퍼하는 사람을, 지금 찾아볼 수 있습니까?
금식이 힘들면, 한밤중에 깨어나 기도하는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화 있을진저.. 취하여 먹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포도주를 마시며...
요셉(북왕국)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암6:1~6
히브리 원문을 보면,
그들이 북왕국의 폐허에 대해 비통해하며,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해, 고통하지도 않았고,
비통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웃기는 한담을 하면서 서로 낄낄거리고,
심지어는 즐겁게 함께 찬양하기도 했을 것이며,
먹고 교제하고, 서로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피폐해져가는 상황과 현실에 대해서는
그들은 전혀 울거나, 비통해하고, 기도하고,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며, 거부감을 나타내었습니다.
암6:1~6절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북이스라엘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마냥 즐거워만 하고, 비통해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또한 자녀들의 죄를 고백하는 경건한 성도들을,
지금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 일(비통함)을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죄와 모든 동족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백했습니다.
이제 종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1:6~7
그는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죄를 범했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회개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파괴와 폐허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한 번도 ‘하나님, 왜 입니까?’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도록 허락하셨는가요?
왜 그렇게 극심한 모욕과 많은 살육을 허락하셨는가요?’
느헤미야는, 요즘 우리 미국인이 묻는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911후에 미국 크리스천 가운데, 이런 질문이 많았습니다.
▲비통함이 전혀 없는 현실을 보십시오.
911 직후에, 일부 목회자들은 TV와 라디오에 출연해서
‘911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큰 재앙을 당하고도,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니!’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911이 일어난 배경에는 백가지의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 한 가지인,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
‘911은, 하나님이 미국이 깨어나길 원하셔서 막지 않으신 것입니다.’
거기에 희생된 희생자들은,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고귀하게) 희생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궤계(911)를 얼마든지 막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막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의 궤계를 중지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미국에 대한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미국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민들이, 지옥 가운데서 영원히 잠들려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두 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우리에게, 또한 전세계에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재앙과 심판의 날은, 정말 도적같이 찾아오고, 반드시 닥친다고요!
그 예고편을 우리가 본 것입니다.
▲평소에 기도하던 느헤미야, 비통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왜 유독 하나님은, 느헤미야에게만 비통한 심정을 주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타락함을 바라보는 당신의 비통한 심정을,
유독 느헤미야 한 사람과만, 나누기 원하셨던 건가요?
그것은 평소에 느헤미야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더불어, 나의 결단도 꼭 필요합니다.
제가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부르심에 대해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특별히 택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이 감당하는, 자원하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느헤미야처럼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본인의 응답이 같이 갑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대부분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응답 안 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습니다. 눅14:18~19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이곳 페르시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일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수산궁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페르시아 황제의 비서실장(술관원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황궁에 더 오래 머물러야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일으키실 것을 확신합니다.’
대신에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것은 제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제게 주소서.’
여러분은, 비통함으로부터 멀어지고
수동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크리스천으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느헤미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처럼 부르짖으십시오.
‘오 하나님, 당신의 이름이 모욕받고 있습니다.
대적은, 주님의 신실함의 증거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이 시대의 기도하는 성도이십니까?
정말 기도하는 성도는.. 비통함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 비통함에서, 여러분은 ‘일생의 중대결정 lifetime decision’을 내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 분의 심장을 열어서, 여러분께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장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당신의 교회의 상태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마음 상태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자, 상태를 잘 보았느냐? 정말 비참하지 않느냐?’
이때 여러분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주님의 부담을 담당하려 한다면..
네가 회복의 도구로 쓰임받기 원한다면..
여러분이, 자기 말고 다른 누군가가 여러분 가족을 위한
회복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나는 너의 마음에 불을 주었다.
나는 너에게 나의 심장을 주었다.
나는 나의 비통함을 너에게 보여 주었다.
네가 그 비통함을 느끼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지난 50년 동안, 비통함 없이, 주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저는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Never!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Never!
저는 압니다.
설교가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령한 사람이 받은 계시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지 않습니다.
비통함 없이, 슬픈 마음으로 하는 금식 없이,
깨어진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기도 없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벽은 결코 재건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통함의 세례’ 없이 시도하는, *‘위에서 부어주시는 비통함?’ 또는
그 어떤 것도,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통함 속에 푹 잠기는 것’
여러분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시작할 때,
여러분이 녹아지고 깨어지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여러분이 주님과 마음을 나누게 될 때, 주님과 똑같은 마음을 품게 될 때
그제야 여러분은 비로소 비통함 anguish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것은 폐허 상태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사의 모태(시작 포인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고통의 굵은 베옷을 기꺼이 입는 종들만
하나님의 언약을, 이 시대에 이루어갈, 권위와 권리를 갖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언약”을 설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우리가 구원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교회(성도)는 구원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이론으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비통함)을 아는 사람만이, 언약을 성취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무조건 ‘언약’이, 여러분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신에 비통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는 제 자녀들이 지옥에 가도록, 보고 있지 않겠습니다.
주님, 제 부모, 배우자가, 멸망 길을 가도록, 구경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비통함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지,
그래서 가족과 이웃을 전도하는 것이지..
그저 하나님의 (구원)언약만 믿고, 비통함 없이 지내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후략
................................. 위 설교문의 영어 (일부) ...................................
And I look at the whole religious scene today
and I all see are inventions and ministries of man and flesh.
Its mostly powerless.
It has no impact on the world.
And I see more of the world coming into the church and impacting the church.
Rather than the church impacting the world.
I see the music taking over the house of God.
I see entertainment taking over the house of God.
Obsess with entertainment in God's house,
A hatred of correction and a hatred of reproof,
Nobody wants to hear it anymore.
Whatever happened to anguish in the house of God?
Whatever happened to anguish in the ministry?
Its a word you don't hear in this pampered age.
You don't hear it.
Anguish means extreme pain and distress.
The emotions so stirred that it becomes painful.
Acute deeply felt inner pain because of conditions about you,
in you, or around you.
Anguish.
Deep pain.
Deep sorrow.
Agony of God's heart.
We've held onto our religious rhetoric and our revival talk
but we've become so passive.
All true passion is born out of anguish.
All true passion for Christ comes out of a baptism of Anguish.
You search the Scripture, and you'll find that
when God determined to recover a ruined situation,
He would share His own anguish
for what God saw happening to His church and to His people.
And He would find a praying man
and he would take that man and
literally baptize him in anguish.
You find it in the book of Nehemiah.
Jerusalem is in ruins.
How is God going to deal with this?
How is God going to restore the ruin?
Folks, Nehemiah was not a preacher, he was a career man.
(But) This was a praying man.
God found a man who would not just have a flash of emotion,
Not just some great sudden burst of concern and then let it die.
He said "No. I broke down and I wept and I mourned and I fasted.
Then I began to pray night and day."
Why didn't these other men, why didn't they have an answer?
Why didn't God use them in restoration?
Why didn't they have a word?
Because there was no sign of anguish.
No weeping!
Not a word of prayer!
It's all ruin!
Does it matter to you today,
Does it matter to you all that God's spiritual Jerusalem, the church, is now married to the world?
That there is such a coldness sweeping the world?
Closer than that, does it matter about the Jerusalem that is in our own hearts?
The sign of ruin that is slowly draining spiritual power and passion.
Blind to lukewarmness, blind to the mixture that is creeping in.
That's all the devil wants to do is get the fight out of you. And kill it.
So you won't labor in prayer anymore.
You won't weep before God anymore.
You can sit and watch television and your family go to hell.
Let me ask you,
is what I just said convicted you at all?
There is a great difference between anguish and concern.
Concern is something that begins to interest you,
you take an interest in a project or a cause or a concern or a need.
I want to tell you something.
I've learned over all my years, of 50 years of preaching,
If it is not born in anguish,
If it has not been born of the Holy Spirit,
Where what you saw and heard of the ruin that drove you to your knees,
took you down into a baptism of anguish where you began to pray and seek God.
I know now.
Oh my God do I know it.
Until I am in agony,
until I have been anguished over it,
all our projects, all our ministries, everything we do... (are meaningless)
Where are the Sunday school teachers that weep over kids they know
are not hearing and going to hell?
You see, a true prayer life begins at the place of anguish.
You see, if you set your heart to pray, God's going to come and start sharing His heart with you.
Your heart begins to cry out,
Oh God, your name is being blasphemed.
Holy Spirit is being mocked.
The enemy is out trying to destroy the testimony of the Lord's faithfulness.
And something has to be done.
There is going to be no renewal, no revival, no awakening,
until we are willing to let Him once again break us.
Folks, it is getting late, and its getting serious.
Please don't tell me, don't tell me you're concerned...
when you're spending hours in front of internet or television.
Come on.
Lord, there are some need to get to this altar and confess.
I am not what I was, I am not where I am suppose to be.
God I don't have your heart or your burden.
I've wanted it easy.
I just wanted to be happy.
But Lord, true joy comes, true joy comes out of anguish.
There is nothing of the flesh will give you joy.
I don't care how much money,
I don't care what kind of new house,
there is absolutely nothing physical that can give you joy.
It is only what is accomplished by the Holy Spirit when you abey Him and take on His heart.
Build the walls around your family.
Build the walls around your hearts.
Make you strong and impregnable against the enemy.
God. that's what we des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