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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9:11-22 복음은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LNCK 2017. 1. 27. 19:47

◈복음은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히9:11-22             스크랩, 출처

 

더글러스 스타가 지은 <피의 역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첫머리에 17세기 파리 근처의 한 마을에 살았던 앙투안 모로이라는 광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증세가 심해지면 아내를 구타하거나 옷을 홀랑 벗어버리고 거리를 뛰어다녔답니다.

 

루이 14세의 주치의인 내과 의사이자

동물의 피를 인간에게 수혈할 때 나타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해 온 장-밥티스트 드니가

모로이를 잡아다 내과 의사들과 외과 의사들, 그리고 상류층 사람들로 둘러싸인 의자에 앉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팔에 있는 정맥을 절개하여 은으로 된 관을 삽입하고 10온스 정도의 혈액을 뽑아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그는 관의 다른 쪽 끝을 송아지의 다리 동맥에 삽입하여

한 컵 정도의 송아지 혈액이 그 남자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게 했답니다.

 

송아지의 피가 가지고 있는 '온순함과 신선함이 이 광증 환자의 피가 가지고 있는 열기와 난폭함을

누그러뜨리길' 바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두 차례의 수혈을 했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수혈하려고 하는데 격렬한 발작을 일으켜 수혈을 하지 못하고

결국 모로이는 다음 날 밤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아내는 드니를 비방했고, 드니는 명예 훼손죄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년 후 프랑스 의회는 인간과 관련된 모든 수혈 행위를 공식적으로 금지시켰고,

로마에서 두 남자가 수혈로 인해 사망하자

교황은 유럽의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이러한 시술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피는 생명이라 생각했고,

피를 바꾸면 새롭게 살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피는 참 신비합니다. 사람의 혈관을 한 줄로 이으면 얼마나 될까요?

11만2천Km로서 지구를 두 번 반이나 감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심장에서 뇌까지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8초 걸린다고 합니다.

제일 먼 발끝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18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이해가 갑니까?

인간이 만든 일반 비행기로 지구를 한 바퀴 돌려면 하루 정도는 걸려야 합니다.

  

그런데 피는 온 몸을 한 바퀴 도는데 불과 46초 걸린다고 합니다.

이 피가 심장에서 동맥으로 동맥에서 혈관 그리고 모세관까지 복잡한 통로를 거쳐 구석까지

맑은 산소와 영양소 등을 공급해주고 노폐물을 운반하여 신장을 통해 배설함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줍니다.

 

내분비기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운반해 주고,

외부의 병원체가 들어오면 그것들로부터 몸을 방어해 주고 체온 조절해 주어 생명을 유지해 줍니다.

 

그래서 피가 살아야 온몸이 살고,

피가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추고 피가 병들면 모든 것이 병든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피를 보면서

고대 근동에 있던 신들의 음식, 정회의식, 신의 진노를 풀기 위한 속전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성경이 신화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성경을 몰라서 그렀습니다.

 

성경은 고대 문화를 모방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피의 제사는 일관성 있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돌아가셨는데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효력은 무엇이겠습니까?

 

 

◑1.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영원히 속죄해 주십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구약의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해서 송아지를, 백성을 위하여 염소를 속죄 제물을 바쳤습니다. (레16:11-15)

일 년에 한 번 7월 10일 대속죄일에 드리는 속죄 제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반드시 짐승을 잡고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대제사장에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이 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의 모형이고 상징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속죄는 매년 마다 하는 불완전한 것이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완전하게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단번에 속죄를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한 번에 영원히 이루어 버린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첫 언약 때 범죄한 죄를 속량하시려고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8장 12절을 보십시오. 다시는 기억치도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는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세 곳에서 나옵니다.

-창세기 2:3절에서 천지 창조를 마칠 때입니다.

 

-둘째는 구속을 마치실 때입니다.

요19:30절에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입니다. 계시록 21장 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그 중심에 예수님의 보혈이 있는 것입니다.

보혈을 통해 하나님은 인류 구속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500년 전에도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슥13:1)”라고

예언하여 주었는데, 바로 예수님이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해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루다’는 말은 ‘획득하다’ ‘완성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획득하고 완성했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매년 대 속죄일에 반복적으로 드려야 하지만

예수님은 단번에 십자가를 통해 완전히 속죄를 해 버린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장래 좋은 일이란 바로 죄씻음과 하나님께 나아감을 말합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은 성전을 통하여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창조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몸이 창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몸이 더 크고 온전한 장막입니다.

 

피흘리는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간을 온전히 속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속죄받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도의 십자가의 보혈 밖에 없습니다.

 

이단들은 자신이 중보자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사기를 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방울의 피도 흘린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1:7을 보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구속의 능력은 영원합니다.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예수님의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둘째, 예수님의 보혈이 의롭다 칭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롬 5:9)”

 

셋째, 예수님의 보혈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

 

내 공로가 아닙니다. 어떤 이단의 괴수를 믿어야 속죄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집단에 속해야 속죄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속죄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날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일관성 있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속죄는 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피로 속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여 피에 관한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피라는 단어는 362회 정도 나오고 신약에서는 97회 정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피에 대한 내용의 중요한 요지는 구약에서 103회, 신약에서 25회가

죄를 용서받는 희생 제사 제도와 관련된 것이고 중요한 것은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죄지은 사람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짐승을 가지고 제사장에 가서

그 짐승의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포로 생활을 할 때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뿌린 가정은 장자가 죽지 않고 다 살아났지만

피를 뿌리지 않은 애굽 사람의 장자는 다 죽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바로 그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유월절에 성찬식을 하시면서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3)”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그리고 하나님은 고린도 전서를 통해 유월절 양이 바로 그리스도라로 분명하게 계시를 드러내 줍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5:7)”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다 성취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 보면 어린양의 피가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7:14을 보면 천국에 들어가는 백성에 대하여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구속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의 양심까지 정결해 완전히 죄의 가책으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구약 시대에 부정한 몸을 정결하게 하려면 어떻게 했습니까?

부정한 자는 진 내에 같이 살지 못하였습니다. 시체를 만지거나 부정케 된 자들은 피나 재를 뿌려

정결한게 된 후 성내에 들어와 살 수 있었습니다. 피와 재로 정결하고 거룩해졌습니다.

 

레위기 11장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서 발생하는 부정을 씻는 일,

민수기 19장에서는 죽은 자와 접촉할 때 발생하는 부정,

레위기 12-15장에서는 일상생활 중에서 질병으로 발생된 부정을 씻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결례는 외적인 것에 불과하지 마음까지 정결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늘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어떤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까?

  

1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외적 정결뿐 아니라 양심까지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흠없이 완전하게 드려진 제사로 말미암아 죄의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깨끗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내가 도덕적으로 정결하여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보혈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의 속박으로부터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지난 죄로 말미암아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보혈이 벗어나게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도말해 주시고 기억치도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우리는 고통스런 죄의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죄의식에서 완전한 자유를 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좌선을 하고 심신을 도야한다 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죄에 얽매여 죄의 포로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누가 스스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누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설 수 있겠습니까?

 

아담도 죄인이고 가인도 죄인이고 아브라함도 죄인이고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 바울도 죄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인들이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모두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죄로부터 해방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늘 죄의식에 짓눌려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확실합니다. 지난 죄는 다 용서되었습니다. 오늘의 죄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내일의 심판도 확실하게 피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가 루터가 중세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면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였답니다.

어느 날 환상으로 마귀를 보았습니다. 마귀는 루터가 지은 많은 죄들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루터에게 보이며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많은 죄를 짓고도 무슨 성직자며,

또 종교개혁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

 

루터는 마귀에게 말했답니다. "그것들은 내가 지은 죄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벌써 다 용서받은 것들이다. 그 따위로 날 공격할 수 없다. 마귀야 물러가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혼한 것이 뭐, 중독자가 뭐, 가난한 것이 뭐, 음행한 것이 뭐,

네 자식도 잘 못 가르치는 것이 뭐, 능력도 없는 것이 뭐, 실패한 것이 뭐, 멍청한 것이 뭐..."

사탄이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를 붙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당당하게 예수님의 보혈로 승리하여야 합니다.

 

 

3.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 섬기도록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구약에는 대 제사장만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섬기다는 것은 경배하며 예배하는 섬김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예배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만 경배하는 진정한 예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탈출 시킨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출3:18)”

  

예배의 실패자 가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은 끝없이 예배의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 받기 위해 택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 택한 백성도

하나님을 잘 못 섬기고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입니다.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하는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 바른 예배를 드리라고 합니다.

내가 죽는 예배를 진정 드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죽은 예배가 아니라 자기가 왕이 되는 예배, 하나님을 도구화하는 예배를

계속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 가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 1:10)”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 2:3)”

 

누가 온전한 제사를 드린 것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의 제사는 희생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어떤 제사입니까? 자기희생의 제사입니다.

흠 없은 자기희생의 제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흠 없는 자기희생의 제사입니다. 완전한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한 제물이 되어 온전한 제사를 십자가에서 드린 것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제사,

자신을 드려 자신은 없어지고 하나님만 들어내는 제사를 십자가의 보혈로 단번에 드린 것입니다.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이 이제는 대 제사장만이 들어갈 성소에

언제 어느 때든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케 해 주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해 줍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 2:13)”

 

예배는 손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학과 제니퍼 그랜빌 교수의 연구 결과

교회에 다니는 10대들의 성적이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미국학교 7학년부터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매주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중퇴 비율이 낮았다고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10대들은 전혀 참석하지 않은 10대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정신위생계에 있어서 세계적인 학자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고 하는 논문

에서 정신적 요소가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네가지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첫째가 일, 둘째가 놀이, 셋째가 사랑, 넷째가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네 요소 중에 예배가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조지 W. 컴스톡 박사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에 비해,

전혀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치명적인 심장병에 걸릴 위험률이 거의 두 배나 높은 반면,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신앙인이 주요 질병의 낮은 발병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새 힘을 받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우리는 예배를 통해 존귀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7)"

우리는 예배를 통해 진정한 용서를 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2-3)"

우리는 예배를 통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고 영혼이 소생함을 누립니다.

예배시간에 나와 삶에 지친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면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삶의 목적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예배는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 감격하여 기쁨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들어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오히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구원역사와 은혜의 말씀에 대해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더불어(With God),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Unto God)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란 우리의 마음과 뜻, 몸과 시간, 지성과 감성, 우리의 태도 등,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고 축하하는 기쁨의 축제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우리는 성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의 자유는 예배를 위해 주신 것이며

우리에게 주신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도 예배를 위해 주신 축복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죽어야만 했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첫째는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그 효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둘째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죄를 위한 대리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대속한 대속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를 위한 속건제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와 하나님과 화해를 위한 화목제물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혈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김필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