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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 네게 행한 큰 일을 고하라 막5:19 출처
찰스 스펄전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막5:19).
◑가정의 회복
이 구절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신앙은 가족간의 유대 관계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가정의 신성함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가정은 거룩한 모임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사람들을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키지도,
혈육으로부터 소외시키지도 않습니다.
반면 미신은 그 반대의 일을 해 왔습니다.
가증할 미신은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와
사람들을 친족으로부터 떼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게 만약 이런 일이 허용된다면
저는 외로운 동굴 속에서 은둔자를 찾아내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친구여, 당신이 위선이 아닌 진정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이 되고자 한다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을 위해서 그가 하신 일을 드러내고 싶다면
주전자의 물을 다 마시고 빵을 한 조각도 남김 없이 다 먹고
이 쓸쓸한 동굴을 떠나시오. 그리고 얼굴을 깨끗이 씻고 집에 가서
주님이 당신을 위해서 하신 위대한 일을 친구들에게 고하시오..."
또한 저는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에 가서 수도사들에게 말하겠습니다.
"나오시오, 형제들이여, 어서 나오시오.
당신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한다면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가시오.
이 불합리한 훈련보다 더 악한 것은 없소. 그것은 그리스도의 법칙이 아니오.
당신들은 그가 원하시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소.
집으로 가서 친구들에게 가시오!"
그리고 자매(수녀)들에게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의 자매들에게 긍휼의 자매가 되시오.
집으로 가서 친구들에게 가시오! 여기에 앉아 '집으로 가서 친구들에게 가라'는
그리스도의 법칙에 불순종함으로써 자만심만을 키우지 말고
대신에 늙으신 부모님을 봉양하고 자신의 집을 회심시키시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건강한 마음의 첫 번째 분명한 징조는 마음의 평화와 가정의 기쁨이니
진정한 믿음은 자연스러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저는 친구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11:35).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가 주어질 때
미소 지을 특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아버지여....감사하나이다"(눅10:21)
라고 말씀에 나와 있듯이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저는 더 이상 당신들의 자식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우리를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더 이상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만드는 악한 행동입니다.
경건한 믿음의 삶이 혼자만의 고독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엄청난 속임수입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친족과의 인연을 끊는 사람을 좋은 믿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관계를 지켜 가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합시다.
기독교는 남편은 전보다 더 좋은 남편으로, 아내를 더 좋은 아내로 만듭니다.
그것은 아들로서의 저의 의무를 벗어 던지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의 사랑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제게 새로이 사랑할 이유를 줍니다.
즉, 전에 아버지로서 사랑했던 분을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형제와 동역자로서 사랑하게 합니다.
어머니로서 존경했던 분을
이제는 언젠가 영원히 저의 소유가 될 은혜의 언약 안에서 자매로서
사랑하게 합니다.
오! 여러분 중 어느 누구도
기독교가 가족간의 관계를 깨뜨리려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가족들을 더욱 단단히 결속시키고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한 가족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서로를 묶어 줍니다.
◑자기의 직접적인 체험을 이야기하십시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여기에는 그들이 고해야 하는 것이 있고
그것은 반드시 개인적인 체험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집으로 달려가자마자 곧 설교를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도록 명령을 받지 않았음을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은 처음부터 교리적인 문제를 복잡하게 설명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을 여러분의 특별한 관점과 느낌에 끌어들이려 하지 마십시오.
최근에 깨달은 여러 가지 교리를 가지고 집에 가서
그것을 가르치려 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여러분은 그렇게 하도록 명령받지 않았다는 점을 유념하십시오.
여러분이 원하고 다른 이들이 방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에 가서 여러분이 믿는 것을 말하지 말고
여러분이 느낀 것 즉, 진정으로 여러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책에서 읽은 위대한 일들을 말하지 말고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 하신 큰 일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직접 겪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한때는 잃어버리고 버려진 죄인이었으나
어떻게 주님께서 여러분을 만나 주셨으며,
어떻게 무릎을 꿇고 영혼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사43:25)라는 말을 듣고
기쁨 속에 살게 되었는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십시오.
다음으로 그것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관한 이야기여야 합니다.
본문에는 분명히 "네가 스스로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했는지 네 친속에게 고하라"가 아니고
"주께서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 네 친속에게 고하라"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와 피조물의 능력을 강조하고 은혜의 교리를 부인하는 사람은
자기 경험을 이야기 할 때 항상 스스로 행한 것을 많이 덧붙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위대한 기본 진리를 붙잡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믿는 사람은 오로지
'주님께서 저를 위해 하신 일을 전할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기도하게 되었는지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은혜가 나의 영혼에 기도를 알려 주었고
은혜가 나의 눈에 눈물을 알려 주었네.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저와 함께 하셨는지 말해야 한다면
그것을 또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 주시고
그 손을 놓지 않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네.
그는 자신이 행한 일이나 의지, 기도, 간구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죄인들을 사랑의 눈으로 보시며 자녀로 삼으사
영원한 생명의 후사가 되게 하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그 모든 것을 돌립니다.
집에 돌아가십시오. 젊은 형제들이여,
그리고 불쌍한 죄인의 이야기를 전하십시오.
집에 돌아가십시오. 젊은 자매들이여,
그리고 여러분의 일기장을 열어 친구들에게 은혜의 이야기를 전하십시오.
▲저는 한때 회심과 구원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설교자가 종종 그러하듯이 제 안에서 별 감동을 받지 못한 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 설교도 지루하고 무미건조해졌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아, 네 자신이 바로 비참하고 잃어버린 망가진 죄인이야. 그것을 말해라.
그것을 말해. 네가 받은 대로, 네 자신이 느낀대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해라."
아, 그때 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성도들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 두 눈을 반짝이며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직접 느낀 생생한 체험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에게는 아직 진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에게는 진리임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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