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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사건의 네 가지 의미

LNCK 2017. 10. 11. 08:54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1885967

 

◈바벨탑 사건의 네 가지 의미        창11:1~9            2013.04.14.

 

서론

 

창11장에는 유명한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인류의 언어가 혼잡하게 되고 민족이 분산된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는 창10: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벨렉이 태어났을 때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고

언어의 혼잡이 와서 말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민족이 나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벨렉’은 언제 태어났느냐?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100세 곧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5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30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창11:10~16).

 

셈의 아들은 아르박삿이고 손자는 셀라고 증손자는 에벨이고 고손자가 벨렉입니다.

그리고 셈이 홍수 후 100세가 되었을 때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고, 셀라는 30세에 에벨을 낳고,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습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홍수가 끝나고, 101년 만에 벨렉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100년 동안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했지만

그들이 흩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도 하나였습니다. 

 

그러면 바벨탑 사건 일어나기 전에는 어떤 언어를 사용했겠습니까?

중국말이겠습니까? 미국말이겠습니까? 노아가 쓰던 말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쓰던 말을 셈이 썼을 것 아닙니까? 셈의 아홉 번째 후손이 아브라함인데

아브라함이 히브리어를 썼으므로, 아마도 히브리어를 썼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떤 언어인지 몰라도 노아가 썼던 언어임이 분명합니다.

 

노아가 사용하던 언어 한 가지로 다 소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01년이 지나 벨렉이 태어났을 때,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고

언어의 혼잡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전 세계에 약 6천개 정도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같은 언어끼리도 사투리를 쓰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사람이 경상도에 가면 못 알아듣는 말이 있고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가도 못 알아듣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원래 우리 교회에 오기 전 부산으로 오라고 초청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러 갔는데, 제가 성도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언어도 다르게 사용되는데

언어가 완전히 달라지니까 민족이 분산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기 11장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언어의 혼잡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만을 말씀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네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1. 바벨탑은 하나님을 향한 반항이다

 

사람이 탑을 세우는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하나님이 탑을 세웠다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탑을 세운 것이 잘못이 아니라, 탑을 세우려는 이유와 동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 11:3~4).

 

노아와 그 후손들이 방주가 도착한 아라랏 산에서 동쪽으로 이주해

시날 땅 바벨이라는 곳에 정착하여 살다가 탑을 세우려는 동기 2가지가

여기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이 아니라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한 것입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세 아들들에게 흩어져서 온 땅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1).

 

그런데 불과 홍수가 끝난 지 100년 만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흩어지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활용했습니다.

시날 땅은 평지이기 때문에 돌이 없었습니다.

대신 흙을 뭉쳐서 불에 구워 벽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벽돌을 그냥 쌓으면 고정이 안되니까 접착제로 역청을 사용했습니다.

 

역청은 바벨론 지역과 사해 지역에 많이 나는 것으로 오늘날로 하면 아스팔트입니다.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여 소위 ‘지구라트’라는 큰 탑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악용하여 하나님께 반항하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권위에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죄입니까?

 

삼상15:23절을 보면 사울 왕을 향해서 사무엘 선지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3).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은 박수무당의 죄와 같고, 귀신을 숭배하는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사울 왕은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관해 말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사울 왕은 왕위에서 쫓겨났고

바벨탑 사건은 인류의 언어 혼잡을 가지고 왔고

결국 민족이 분산되어 민족끼리 싸우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2. 바벨탑은 영적인 지도자에 대한 반항이다

 

바벨탑이 지어질 때 노아는 살아있었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창9:28). 노아가 600세에 홍수가 일어났고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았으니까 950세에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가 끝나고 101년 째 벨렉이 태어났을 때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으니까

당시 노아는 701세였던 것입니다. 250년은 더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셈은 몇 세였느냐?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 11:10~11).

 

셈은 100세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 5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고 했으니까

600세에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고손자인 벨렉을 낳을 때의 나이는 불과 200세 밖에 안됩니다.

그러니까 바벨탑 사건이 일어날 때 노아도 살아있었고 셈도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노아와 셈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창11:2~4절을 보면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

더 이상 노아와 셈의 말을 듣거나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말합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3).

 

하지만 서로 말한다고 해도 언제나 주동자가 있는 법입니다.

유대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바벨탑을 쌓도록 주동한 사람이 니므롯이었다고 했습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 10:8~10).

 

니므롯은 바벨탑 사건이 일어날 때 사람들에게 영웅 취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아와 셈의 말을 듣지 않고 니므롯의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반항해서 약 10억의 인구가 모두 물에 빠져죽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100여 년이 지나자

또 다시 자신의 후손들이 큰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향해 반항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노아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100년 만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10억의 인구가 죽는 심판을 내리셨다는 것을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저(피영민 목사)는 1953년생입니다. 그러니까 625 전쟁이 끝나기 전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공산당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악한 집단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자녀들은 벌써 625 전쟁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625 전쟁이 남침이냐고 물어보면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합니다.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과 100여 년 전의 실수를 노아의 후손들이 그대로 하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겠습니까? 바벨탑

사건은 이처럼 영적인 지도자의 말에 반항한 사건이었습니다.

 

◑3. 바벨탑은 복음에 대한 반항이다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탑을 하늘에 닿게 해서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천국에 들어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100층이 넘는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빌딩들도 하늘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벽돌을 쌓아서 하늘에 닿으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유치한 생각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제외한 인간의 모든 종교가

바벨탑의 사상과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선을 행하고 도를 닦으면, 그 영혼이 천국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헛된 생각입니다. 인간은 결코 자기 힘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창 11:5).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 11:7).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시면서도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단수로도 쓰고, 복수로도 쓰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제2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오신 사건이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로 올라가서 모셔올 수도 없고

음부로 내려가서 모시고 올라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의 노력으로 천국에 오는 것은 어림도 없다. 그러므로 나를 믿으라.

나를 믿는 자는 아무리 죄가 많아도 용서해주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겠다.

나를 믿는 자는 나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산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성령을 선물로 받아 이 세상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게 된다.”

 

세상에 강림하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바벨탑의 종교는 이런 복음에 반항하는 종교입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탑을 쌓아 하늘에 오를 수 있다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합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저 주시는 복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바벨탑은, 오늘날 남아있는 지구라트의 형태를 띄었다고 볼 때,

그것을 쌓은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함의 후손 니므롯이 주동이 되어 쌓았다고 보는데,

그 목적은 ‘제사’가 그 첫째 목적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하나님께 대한 제사는 아니었겠죠)

 

◑4. 바벨탑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복에 반항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는 에덴동산에서 평안하고 안전하게 모든 것을

공짜로 먹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기쁨도 잃어버리고

안전과 축복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땀을 흘려야 겨우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발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대접받고 평안하게 살았지만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니까

배에서도 쫓겨나 삼일 내내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탕자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평안을 누리며 부요하게 지냈지만

아버지 집을 떠나보니 잠깐은 즐거웠지만 결국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지만

그것마저 주는 이가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항하면 가난과 비참이 오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인간은 언어의 혼잡과 민족 간의 갈등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쌓아올리던 바벨탑도 더 이상 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언어가 혼잡하게 되니까 함께 일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벨탑은 결국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인생은 결국 헛수고요 폐허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