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시라 창45:1~15 출처
김명혁 목사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45:8
이 말은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죽이려 하다가
결국 자기를 애굽의 장사꾼들에게 노예로 팔아먹은 악독한 형들을 향해서 한
요셉의 말이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말이었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의 이 말속에는 형들에 대한 용서의 마음도 나타나 있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마음이 진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형들과의 대화 속에 요셉은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섭리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줄 알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줄도 모르고 고백할 줄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황인범 군은 불편한 캄보디아에서 어렵고 힘든 봉사의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느끼면서 눈물로 고백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가 저에게 감사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지난 3개월간 캄보디아에서의 시간은 정말 매일 매일이 은혜와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평화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이 조금씩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여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리며,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 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토바이에 앉아서, 평화교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평화교회로 향하는 시간은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저에겐 아이들 한명, 한명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정말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하나하나 물밀듯이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저를 선택하여 사용하여 주시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사모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날이 자라나는 모습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층 더 자라가는 우리 아이들과,
저를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또한 여러 곳에서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동역자분들을
붙여 주심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사랑이 너무나 많으신 우리 선교사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캄보디아의 영혼들을 섬기러 오는 귀한 동역자들을 많이 만나게 하심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너무나도 많이 받은 제 자신이
앞으로 그 받은 사랑 조금이나마 더 많이 전할 수 있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알기에, 더욱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캄보디아 평화교회에서 티모시 인범 올림” 황인범 군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처럼, 사도 요한처럼, 막달라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줄도 알고
고백할 줄도 아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요셉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요셉이 깨닫고 느끼고 고백했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느끼고 고백했습니다.
◑첫째로, 노예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애굽의 장사꾼들에게 노예로 팔았던 사건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형들은 요셉을 애굽의 장사꾼들에게 은 이십개를 받고 팔았습니다(창 37:28).
요셉은 이 사건을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난 섭리적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형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원망과 불평의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고
은혜와 사랑과 감사의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만하고 미련하고 뻣뻣한 죄인들은 불행하게 보이는 사건을 바라볼 때
원망과 불평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새롭게 돌이켜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지나친 편애를 받으면서 잘난 척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지나친 편애 때문에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등한시 했던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겸손과 신앙을 배웠을 것입니다.
사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나그네와 노예 생활을 하면서
겸손과 신앙의 덕목을 배우고 익히게 되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선교사 패트릭도 스코트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도
모두 고향에서 붙잡혀 노예생활을 한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그 노예생활에서 저들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요셉도 틀림없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을 배우고 익혔을 것입니다.
또한 요셉이 스스로 알지는 못했지만 요셉이 은 이십 개에 팔린 것은
훗날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팔릴 것을 예표하기도 했습니다(마 26:15).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은 이십 개에 판 사건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난 사건으로 받아드리며 형들과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
사실 불행하게 보이는 그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섭리가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둘째로, 감옥살이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를 감옥에 집어넣은 사건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도 힘이 들었는데
얼마 후에는 감옥에 들어가서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창 39:19-20).
요셉은 계속해서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바로의 시위대장(경호실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충성스럽게 하여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거짓말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는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요셉은 얼마든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사건도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사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한 것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서도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창 39:20-21).
사실 억울해 보이고 불행하게 보이는 옥에 갇힌 사건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섭리가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요셉이 옥에 들어가서 원망대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시고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 39:21-23).
사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감옥에 갇힌 죄수의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랬고,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그랬고, 사도 요한과 요한 번연이 그랬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힌 몸으로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자기와 함께 하시는 지극한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꿈을 해석하는 신기한 지혜까지 주신 것을 체험했습니다.
아마 요셉의 파란만장한 생애 중에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지극한 은혜와 사랑을 가장 많이 체험한 때는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였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창세기 39장 21-23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한 분이십니다.
절망스러운 불행한 자리에 처한 사람들에게 지극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억울해 보이고 불행하게 보이는 그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섭리가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셋째로,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은 바로가 자기를 애굽의 총리로 세운 사건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왕 바로가 옥중에 갇혀 있던 자기를 불러내어
애굽의 총리로 세울 때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로 이루어진 은혜와
사랑의 사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9:8).
요셉은 바로와 처음 대면할 때부터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증언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 41:25).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28).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32).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세울 때 바로도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이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38-39).
요셉은 바로가 자기를 애굽의 총리로 세운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를 세우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9:7-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이루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을 자기를 통해서
이루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마지막 장 마지막 세 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 50:24-26).
히브리서 11장도 요셉의 사적을 한 마디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히 11:22).
무엇을 말합니까? 떠날 것을 말했습니다. 출애굽을 미리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인류 구원을 예표한 출애굽 사건을 미리 말한 것입니다.
인류 구원의 사건을 미리 말했습니다.
사명과 소명을 인식하며 사명과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인데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총리의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총리의 자리를 통해서 이루실 사명이 중요한 것입니다.
에스더의 황후의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황후의 자리를 통해서 이루실 사명이 중요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인류 구원의 사역을 예언하는 사명과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물의 사람, 요셉
오늘 저는 요셉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니 요셉이 깨닫고 느끼고 고백했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요셉이 자기에게 부여된 민족 구원과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수행한
가장 감동적인 사건은 자기를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붙잡고
목을 안고 방성대곡한 사건입니다.
형들의 잘못을 눈물로 용서하고 형들과 화해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머리로 지식으로 논리로 진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과 통곡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살 깊이 받은 사람의 특징은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내어 울었고
죄인인 한 여자도 눈물을 쏟아 주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주님이 우셨고 사도 바울이 울었고 김치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이 우셨습니다.
이중표 목사님도 항상 눈물을 흘리는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주님 생각에 내 마음에는 눈물이 흐른다. 혼자 울면서 길을 걷는 때도 많다.
오 주님이 주시는 눈물이여, 흐르고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어
주님의 사랑이 파도치게 하소서.”
지금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요셉과 같은 눈물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흠뻑 받고 우는 사람,
그리고 남북의 형제들을 끌어안고 방성대곡할 수 있는 눈물의 사람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사람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셉과 같은 눈물의 사람을 일으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눈물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