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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의 은혜

LNCK 2018. 8. 12. 14:16

https://matsy.tistory.com/7172883

 

◈‘그러나’의 은혜            창6:1~8              ☞창세기 설교모음

 

*김성수 목사 창세기 33강 중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부분도 바로 그 ‘그러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의 은혜란 모든 피조물이 다 멸망당할 때에

‘그러나’에 속한 어떤 무리들이 그 멸망의 물속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잘 보시면 성경은 온통 질서와 조화에서 혼돈과 부조화로

그 질서와 조화가 깨어지고

하나님은 다시 그 무질서와 혼돈과 부조화를 질서와 조화로 세우시는

동일한 패턴의 반복임을 쉽게 찾아내실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질서무질서새 질서, 조화부조화새 조화, 창조역 창조새 창조의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시고 인간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그 질서를 깹니다.

그것이 곧 불순종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고 다시 새 질서를 세우십니다.

 

환언하면 하나님께서 조화롭게 창조해 놓은 것들을

왕이 되고 싶은 인간들이 부조화로 망가트려 버리고

하나님은 그 부조화를 심판하시고 다시 당신의 은혜로 조화롭게 세우시는 것이

성경 전체의 내용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를 인간들이 그들의 죄로 망가뜨리고 부수어 버리면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그 망가지고 왜곡된 것들을 완전히 멸해 버리시지만

그 역 창조의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고 어떤 무리들에게 *남은 자

은혜를 쏟아부으셔서 그 속에서도 실패치 않으시고 다시 새 창조를 완성하신다는 것이

역사와 성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와 성경의 기록을 통해 새 창조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행복할 수 있는 것이구나’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배우게 되는 것이고요.

 

 

◑우리가 그 관점에서 이 노아의 홍수 사건을 보게 되면

노아의 홍수 사건은 역창조의 극치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의 세계, 조화의 세계가 인간들의 타락으로 역창조의 현상을 드러내게 되고

(역창조: 하나님의 조화로운 창조가 거꾸로 부조화와 혼돈으로 부수어져 들어가는 모습)

하나님은 그 역창조의 상태를 완전히 멸해 버리십니다.

 

그러나 그 역창조 속에서 꽃 피는 새로운 창조가

그 폐허의 자리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이 8장에 나옵니다.

 

(창8: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홍수로 멸망한 땅에 새로운 잎사귀가 등장합니다.

어떻게 온통 사람들과 짐승들과 기식하는 것들의 시체로 뒤 덮인 폐허의 땅에

새로운 것이 생겨났을까요?

 

성경은 일부러 ‘타라프’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동원해서

폐허 속에서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있음을,

다른 말로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확실하게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을 포함한 성경 전체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홍수와 불로 멸해지는 역창조의 심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하늘과 새땅의 완성에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영원히 멸망당할 세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해 놓으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너희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역사를 보게 되면

이러한 역창조의 과정 속에서 과연 우리가 새롭게 태어나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나의 은혜를 부어

반드시 너희를 새 하늘과 새 땅에 세울 것이다.

 

그러니 이 땅의 역사와 너희들의 인생과 내가 너희들에게 전해 준 성경을 통해

불순종의 죄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며

너희는 왜 나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너희는 어떻게 해서 나의 말을 듣고 순종하는 자로 지어지게 되는 것인지를

잘 배우고 오너라.’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절대 우리에게 겁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겁은 세상이 먹어야지요.

 

우리가 진짜 성도가 맞다면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는 노아의 홍수 사건과 같은 심판과 저주와 멸망의 사건들을 보면서

두려움이 아닌, 감당할 수 없는 감사로 빠져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 전체의 구조를 보시면

그 사실을 더욱 확연하게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히브리 문학의 아주 대표적인 특징은 ‘교차댓구법’이라 했지요? (점프 가능)

가운데에 전체의 주제를 심어 놓고 양 쪽에서 설명을 해 들어가는 그러한 구조입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도 그렇게 교차댓구법에 의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께 나누어 드린 표를 함께 봐 주세요.

6:9,10 A 도입: 노아와 세 아들이 등장

6:11,12 B 온 땅의 타락: 강포가 땅에 충만하다

6:13‐22 C 심판 선언: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7:1‐10 D 방주 승선 명령: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7:11‐16 E 심판의 시작: 큰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림

7:17‐22 F 심판의 급속한 진행: 물이 많아져서 방주가 땅에서 떠오름

 

7:23‐8:1 M 하나님의 은혜의 새 창조: 하나님이 권념하사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기억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교차댓구법의 중심축

 

8:1‐5 F' 심판의 급속한 정리: 물이 점점 감하여

8:6‐14 E' 심판의 종결: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8:15‐19 D' 방주 하선 명령: 너는 방주에서 나오라

8:20‐22 C' 심판 종결 선언: 내가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9:1‐17 B' 하나님의 축복: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9:18‐19 A' 결론: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온 땅에 퍼지니라

 

잘 보시면 가장 가운데 부분에 하나님의 은혜가 놓여 있고

6장과 7장은 역창조의 완결로 완전히 파괴가 되지만

8장과 9장은 다시 새 창조로 전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표로 보니까 노아의 홍수 사건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가 확실하게 보이시지요?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로 옛 것들이 물러가고

새로운 것이 완성이 되는 새 창조에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첫 창조를 당신의 최종 목적으로 삼으셨던 것이 아니라

새 창조, 즉 하나님의 은혜로 건설될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해

첫 창조를 하셨던 것이고

 

그 첫창조가 인간의 불순종으로 어떻게 역창조의 길을 가게 되며

그 역창조를 딛고 어떻게 새 창조가 완성이 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인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성경을 통하여 그리고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혼돈과 공허의 상태에서

내 백성들의 생육과 번성을 이루어 내시는지

그 하나님의 열심과 은혜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열심 앞에 철저하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했던 아담에게도

생육과 번성의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을 살게 될 새로운 피조물의 상징인 노아에게도

생육과 번성의 명령이 동일하게 떨어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도 생육과 번성의 약속,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하신 것이고요.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과 마귀의 세력들이 아무리 역 창조로 방해를 해도

반드시 당신의 백성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생육시키고 번성시켜

당신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그러한 명령과 언약 속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최초의 하나님의 백성인 아담과 하와에서,

그리고 모든 기식하는 것들이 다 죽어버린 역창조의 종결 상태에서

은혜를 입은 새 사람 여덟 명과 새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에서,

 

그리고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의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어떻게 생육되고 번성이 되었습니까?

 

(마8: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계7:9‐10) ‘그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하나님의 새 창조의 완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목표지점을 설정해 놓으시고, 역사와 인생을 이끌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 장면을 성경에서 보면서

아무리 인간과 마귀들이 역 창조로 방해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새 창조는 반드시 완성이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시고

모두 구원하실 것이라는 성도의 견인(牽引)교리도 그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떠한 세상의 방해나 공격에도 기죽지 말고

열심히 한 곳만 바라보면서 가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창조와 역 창조와 재창조의 이야기를 반복해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멸망당해 버릴 쓰레기들 속에서도

창세전에 택해 놓으신 당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부으셔서

새로운 창조를 해 내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 8절의 ‘그러나’의 은혜인 것입니다.

6: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창6:5‐8)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 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5절과 6절과 7절은 보시다시피 역 창조의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악한 불순종과 무질서의 상태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러나의 은혜를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의 은혜 속에 들어 있는 이들이 바로 여러분과 저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정녕 죽으리라’는 역창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도

그들을 바로 죽이지 않으시고 그들의 부끄러움을 무죄한 짐승의 희생으로 말미암은

가죽옷으로 가려주시고 그들에게 창세기 3:15절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모든 피조물들이 멸망의 죽음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무흠한 제물의 피, 다른 말로 당신의 은혜로

그 죽음 속에서 다시 생명을 일으키실 것임을 암시해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노아의 홍수 사건에도

그 새 창조의 의지는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다 죽이셔야 했습니다.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한탄과 근심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6:7

그 모든 것 안에는 당연히 노아도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은 그 멸망의 저주 속에서 건져집니다.

어떻게요? 은혜로.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통제와 질서와 조화를 떠나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결단하고 실행에 옮기며

선과 악 조차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는 세상의 네피림, 용사, 유명한 자들을

모두 쓸어버리실 것인데

 

그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진 어떠한 한 무리는 그 속에서 건지셔서

당신의 은혜를 부어 다시는 불순종의 악을 저지르지 않는 자들로 만드시는

새 창조를 이루실 것임을

우리는 이 ‘그러나’라는 단어 속에서 메시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6:8절을 히브리 원어로 보면

그 은혜의 교리를 좀 더 확고하게 다질 수가 있습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본문 5절에 보면 하나님의 눈에 비친 모든 시간, 모든 개체들이

다 한탄과 근심의 대상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오직 노아만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 극명한 대조를 눈여겨 보십시오.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여기서는 여호와의 눈에 금심과 한탄 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8절의 ‘그러나’ 이후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눈에는 ‘은혜’가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조차도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눈앞에서 모두 멸망해 버려야 하는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의 눈으로 바라봐 주셔서

그 속에서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획득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육신의 옛 몸을 입고 있기에,

다른 말로 첫 창조의 몸을 입고 있기에

우리의 죄 된 본성과 습관과 집착과 중독과 통제성향 등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이 진행시키고 있는 역창조 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질서와 조화를 깨는

무질서와 불순종의 삶을 여전히 살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러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건 미미하나마 그 속에 이미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여전히 뒹굴고 있는 우리의 손에

새 감람나무 잎사귀를 쥐어 주셨습니다.

저주의 홍수로 두려워 떨고 있던 노아에게 새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한 위로를 주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새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에서 이렇게 멋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겨우 새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를 손에 든 불안에 떠는 노아와 같은

심정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 그 분이 누리시는

모든 영광과 아름다움과 행복과 안식을 모두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계21:5‐8)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6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7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고,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8 그러나 비겁한 자와 신실하지 못한 자와 가증한 자와 살인자와 음행하는 자와

마술쟁이와 우상 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믿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당신의 생명수를 부으셔서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자들을 우리가 성도라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믿으십니까? 정말 그 사실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에게는 소망이라는 것이 있으실 것이고

그 소망은 여러분을 절대 절망 속에 그냥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합시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 내가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이런 어두운 상황,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캄캄한 인생의 터널 그런 것 바라보지 마시고

우리가 믿고 있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

그리고 우리가 입게 될 새로운 몸을 생각하십시오.

 

역사와 인생과 사건 만을 바라보며, 그 역사와 인생과 사건에 지배당하지 마시고

역사의 종국을 알고 있는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그 역사와 인생을 주도해 나가셔야 합니다.

 

▲(고후5:17~18)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우리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신분적으로 원론적으로 이미 (새창조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이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신 여러분, 그렇다면 그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께서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시는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역 창조의 혼돈 속에서 건져져서

새롭게 창조된 노아와 같은 자로서

그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을 준비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무엇을 하며 산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그저 순종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성경으로만 말씀을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연구해서

그 분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기를 애쓰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그 분의 뜻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어떤 것이라 했지요?

‘너는 죽고, 하나님과 네 이웃을 목숨 바쳐 사랑하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목숨 바쳐 그거 하다가 가면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잘 안 되더라도

결국은 우리가 그렇게 완성이 될 것이므로 열심히 노력해 보는 것입니다.

 

나와 의견이 조금 다르다고, 나를 모함했다고, 나의 진심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했다고,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해서

그 상대방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이려 달려드는

그러한 역 창조 속의 사람들이 되지 마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멋진 용서와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되십시오.

 

세상은 그런 우리를 가리켜 바보라고, 약해 빠진 자라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입은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비라는 것이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그 시대에 산꼭대기에다가 배를 지었습니다.

 

그것도 120년 동안이요. 그건 정말 세상 적으로 볼 때 바보 같은 짓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그 짓을 한 것입니다.

 

그 노아의 반대편 사람들은요? 네피림이 되고, 용사가 되고, 유명한 자가 되기 위해,

다른 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보 같은 짓을 한 노아의 손을 들어 주신다니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역사가 무엇이며 이 역사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분들이기에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통해 배우고 오라고 하신 그것들만 열심히 경험하고 익히고 배우다가

새하늘과 새 땅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가 나왔다고 하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관엘 갔었습니다. 그 영화의 내용은 인류가 멸망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전부 흡혈귀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한 사람의 생존자가 살아남아서

그 흡혈귀들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맞서서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은 죽어버리는.. 그런 허무맹랑한 만화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몰라요. 그리고 매일 매일을 공포에 떨며 삽니다.

그런데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그런 모습으로 이 땅을 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세상의 왕으로 삼고 싶어 하는 마귀와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언제든지 남의 피를 빨아먹을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흡혈귀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그 속에서 보여 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란 그토록 힘겨운 것입니다.

 

내 피를 빨아 먹고 있는 흡혈귀를 힘으로 밀쳐 내지도 못하고

그 흡혈귀를 감싸 안아주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기가 어찌 수월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피 흘리기까지 한 번 노력해 봅시다. 용서하고 사랑하며 죽어 주십시다.

우리는 역사를 알고 역사의 종국을 아는 해석학적 공동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