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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사회변혁

LNCK 2018. 8. 30. 15:41

◈기독교와 사회변혁                    골4:1                 출처 분실


(부제: 노예제도에 대한 바울의 대처 방법)


옳은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발설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 하다.

옳은 일이라고 해도 무조건 구습을 급진적으로 바꾸는 것은 현명치 못 하다. 


▶바울의 노예제도 반대 발언

성경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매우 존귀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아담을 만드실 때, 부인은 주셨지만 노예는 주시지 않으셨다.

노예제도는 타락한 인간의 죄성이 만들어낸 악습이다.


바울은 노예상인을 불경건한 죄인으로 취급했다(딤전1:10 사람을 탈취하는 자slave traders).

그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얻을 수 있거든 자유인이 되라고 권했다(고전 7:21).

주인들에게는 노예들을 위협하지 말라고 했고(엡 6:9), 노예들에게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고 권면했다(골 4:1).


바울은 노예나 주인이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노예 성도들도 자유인과 똑같이 ‘세례’와 ‘성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또한 칼리스투스는 노예 출신으로서 로마교회의 주교bishop가 되기도 했다.


▶바울의 노예제도 찬조성 발언

바울은 노예들에게, 자기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쳤다(엡 6:5, 골 3:22).

이 구절만 따로 떼서 보면, 바울은 노예제도를 찬성하거나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바울은 말을 바꾼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성경의 노예제도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①자칫 노예들을 동조, 자극했다가 만약 노예폭동이 일어난다면 →

수많은 노예들이 도리어 목숨을 잃게 될 까봐 염려했다.


스팔타커스 영화(로마시대 노예폭동과 처형 내용)처럼. 노예해방이 하나님 뜻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바울이 방문했던 모든 도시에 가서 그 중요성을 역설했더라면 아마 그런 불상사가 생겼을 것이다.


②또한 바울의 노예해방 발언으로 인해, 막 신생하는 기독교회 전체가

막강한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게 될까봐 염려했던 것 같다.

‘노예제도 폐지’도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평화로운 사회 유지’ 역시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노예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발언을 했다고 본다. 그

는 ‘평화로운 사회 질서 유지’를 깨드리는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다.


특히 신생 기독교회가 (교회 안에서) 노예를 형제로 대하자,

수 천 년 내려오던 기존 사회의 전통과 질서가 흔들거렸고, 이

것을 바라보는 기득권층에서는 기독교회가 ‘반사회적, 급진 좌파 위험 단체’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런 오해와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바울은 “노예들아,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쳤다. 


▶교훈

①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쏟아내면 안된다>는 교훈을 배운다.★ 

옳은 말이라고 막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옳은 말도 “때”가 있다.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전 3:7).


② 기존 체제를 인정하면서 개혁하는 방법을 배운다.★

노예제도가 나쁜 것이니까 모조리 갈아 엎어버리고, 확 바꿔 버리고 새로 세우자!

이것은 인본주의적, 공산주의적, 테러 혁명적 개혁 방식이다.

기존 체제를 부정하면 개혁되지 않는다. 기득권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죽는다.


우리가 선거철만 되면 종종 듣는 말이 “단절”, “청산”, “결별”, “차별화” 등이다.

틀린 말이라기보다는, 지혜롭지 못한 말이다. 나는 의롭고 깨끗한데, 너는 부정하다는 교만한 발상이다.

성경적 원리론,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다←교만은 패망의 선봉.

만약 그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해도, 다음 세대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단절”, “청산”, “결별” 등

 (마 7:12 참조)


이제 우리도 정통성과 전통을 이어가는 그런 성숙한 모습을 가질 때가 되었다.

노예제도를 인정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바울의 방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이런 기독교회의 점차적 개선 노력으로 노예제도는 유럽에서 점점 사라졌다가

12-14세기 경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 경쟁이 시작되면서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하는 일이 새로 시작된 것은

17세기 경이었다. 물론 이 새로운 노예제도도 영국의 기독교인 윌리엄 윌버포스와

미국의 링컨 대통령에 의해 다시 폐지되었다.


최근 한국은 동남아 근로자 학대로 새로운 ‘준노예제도’를 시도하고 있는데,

역시 기독교회의 노력으로 점차 개선되고 그들의 인권과 지위가 동등해지리라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국적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형제임이 성경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