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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은 자에게 주시는 선물

LNCK 2018. 9. 10. 20:54

◈구원 받은 자에게 주시는 선물       창9:1~29      

본문 창9장은, 홍수 후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한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자(노아)에게 주시는 축복, 은혜를 보게 되는데요...

◑1. 첫번째,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에게 뭘 주시는가?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죄와 허물을 덮어주심>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번째 축복이요, 선물입니다. 

9:20~21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우리가 노아 때문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위로도 받기도 해요. 
홍수 심판이 있기 전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6:9

그런데 오늘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 그는 그 큰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어요. 
세상 모두가 다 멸절하는 가운데서도, 자기 가족까지 구원한 
의인이었고,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던 자였던 그 노아의 모습을 보세요. 

그런 의인인 그가, 당혹스럽게,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자고 있었더라' :21 
이게 바로 노아의 모습인 것이죠. 

우리는 이 큰 심판에서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도 
'당대의 의인,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고도 말하는 노아가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첫번째는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다' 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게 되는 것이죠. 
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죄인이다' 이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요.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난 이후부터, 타락한 이후부터 
이제는 우리 속에 죄가 쑥 들어와 버렸고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여전히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다... 
그 실증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본문입니다. 마시고, 취하고, 벌거벗은 것입니다. 9:21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
이라는 것과, 

그리고 또 하나 '홍수 같은 심판으로는 우리를 본질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거예요. 
때리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형벌을 내려가지고는 우리가 바뀌지 않는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어떻게 대우하십니까? 
사실 이거는 심판이 지나가고 난 이후에, 그 큰 축복을 받은 이후의 노아 아닙니까? 
그리고 그 큰 심판에 두려움을 알게 된 이후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노아가 마시고 취하고 벗어버린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하셨는가요? 

▲그런데 오늘 이런 노아를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보여지는데 

1) 첫번째는 '가나안의 아버지' 입니다.  9:18, 22

본문이 '함'이고 하면 될 것을, '가나안의 아버지'라며, '가나안'을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이 창세기의 첫번째 수신자가 누굽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지요. 모세가 저자이니까요.

지금 출애굽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가나안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어요. 그만큼 부패하고 타락한 자(가나안)의 후손이라는 거죠.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 노아의 실수와 죄앞에서 
한 부류의 사람 함(가나안의 아비)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22
  
여기서 '보았다'는, 슬쩍 지나쳐가듯이 봤다는 것이 아니고 
자세히 유희하면서 즐기듯 바라봤다..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일부 성경학자들은 이 말을 '완곡법'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함이 뭔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쳐다만 본 게 아니라요.
그런데 성경에 그걸 노골적으로 적시할 수 없으니 '바라봤다'고만 적은 것입니다.

일례로 레20:17 '누구든지 그 자매 곧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을 취하여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찌니 그가 그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 죄를 당하리라'

위에서 '보는' 것을, '범하는'것과 동일시해서 말씀하고 있지요.
쳐다보기만 해도, 범하는 죄가 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완곡적인 표현입니다.
'보고 추행하는' 정도를 그냥 완곡하게 '보았다'고 성경에 쓰는 것입니다. 완전히 범하지는 않아도요.

함은 이렇게 범죄하고는, 또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22 흉보며 소문냈다는 말이죠.

자 이것이 노아라는 구원받았지만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 죄와 허물가운데 있는 
노아를 대하는 첫번째 부류(함)의 태도였다면, 

2) 두 번째 부류는 셈과 야벳입니다. 두 사람이 같이 나오지만, 셈이 주도적 역할을 합니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셈과 야벳은 일단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어요. 
특별히 셈은 옷을 자기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 하체를 덮었습니다. 
 
자 이제 노아가 술이 깼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대했던 두 부류의 사람에게, 이제 노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지금 술이 깬 노아가,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다 알았어요. 
그리고 난 이후에 노아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셈과 야벳을 칭찬하지 않아요. 
지금 누구를 높이고 있어요?
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어요.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셈을 통해서 하나님이 노아를 덮어주셨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셈을 통해서, 
노아와 같이 '구원받았지만 그러나 여전히 부패성과 죄성을 가지고 있어서 
실수하고 죄악을 저지른 노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우해주셨다는 거에요?

'셈을 통하여 그를 덮어 주셨다, 옷으로 가려 주셨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셈은 옷을 가져와서 노아를 덮은 것이지만, 
의미적으로 보면 '노아의 수치를 가려서 덮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셈의 하나님'을 찬송한 것입니다. :26

자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셈을 통해서 
노아의 잘못을 덮어주시고, 용서해주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말씀은, 그 당시에 살던 그 사람들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게' 됩니다.

우리도, 노아와 똑같이,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여전히 죄와 허물가운데 지내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셈의 후손을 통하여 우리도 덮어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11장에 하나님이 노아의 죄를 덮어주시는데 사용했던 셈의 족보가 나오기 시작하는데요. 

11:1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자 이렇게 해서 이제 셈의 자손들이 퍼져가고 있죠. 

셈의 후손 가운데
26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셈의 후손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노아의 잘못을, 셈을 통하여 덮어주셨어요. 
자 그런데 이제 셈의 후손가운데 아브라함이 나온다고요.

또 족보를 계속 내려가면, (창세기를 지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 왕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다 셈의 후손들입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가리워 주실 것을
본문에서 셈이 옷으로 노아를 덮어주는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3
그래서 노아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한 것입니다. :26

여러분 죄와 허물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고,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하나는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덮어주시는' 거에요. 
셈을 통해, 나중에는 셈의 후손을 통해서 '덮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셈의 후손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믿음의 조상 계열이 되었고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와 축복은
'나의 허물을 하나님께서 덮어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번째는, <언약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노아(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신 두 번째 선물인 것입니다. 

9:8~1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자 이제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구원받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홍수 후의 새 삶을 시작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또 닥칠지 모르는 홍수로부터의 안전보장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또 가장 먼저 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언약을 맺고 계신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언약의 첫번째 의미는, 바로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냥 체결해 주신다.. 입니다.

14~15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지금 노아 가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필요는.. 홍수의 두려움의 제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교지에 나갔다가 피랍되었다 돌아오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구덩이에 갇혀 있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그랬으면
이 트라우마가 몇 년을 가는가봐요.

그러니까 그냥 가둬놓으니까, 이렇게 소변이나 대변을 볼 곳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대변만 봐도, 그 트라우마가 또 생각이 나는 거예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의 구름 한 조각만 떠도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또 비가 오려나? 또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시려나?' 

근데 이 마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수심판이 지나고 난 이후에도, 자기들 속에는 여전히 죄를 짓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전히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홍수로부터의 안전보장인 거에요. 
'다시는 이런 심판이 없을 것이라'는 안전보장!

지금 홍수 후에 새 삶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사실은 이것이었어요.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언약을 주십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들을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안전보장을
언약해 주시는데, 

14~15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지금 하늘에 비구름이 쫘악 일어나요. 그러면 무지개가 함께 나타나는 겁니다. 
그 무지개를 보면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안심할 수 있었던 거죠.
'혹시 비가 내리더라도, 하나님께서 홍수로는 우리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언약해 주셨어!'

하나님이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는 이유는 
'너희를 보니까 너희 삶이 깨끗해졌고, 이제 너희가 합당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심판 안 하겠다' ..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삶이 예전과 전혀 다를 바 없고, 
노아는 마시고 취하고 벌거벗고, 
함은 그걸 가지고서 또 조롱하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내가 언약했던 무지개를 보면서 
나는 물로 너희를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약속, 계약)이라는 것은 쌍방의 약속이잖아요. 
그러면 언약이 성취되려면, 이쪽도 약속을 지켜야 되고, 저쪽도 약속을 지켜야 돼요. 

모든 언약들의 특징은 바로 '쌍방적'입니다. 한 쪽만 깨뜨려도, 그 언약은 깨어지죠.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은 전혀 달라요.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입니다. 
그 언약 당사자인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내가 스스로 언약을 지키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의 언약, 십자가의 언약'을 주신 것은, 

그런데 그 언약을 맺은 우리가, 만약에 우리 삶이 조금 부족했거나 
혹은 우리 삶에 죄악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걸 보시고, 언약을 취소하지 않으신다는 거죠.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언약의 누림은,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이나 그 후손들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근데 또 구름이 막 뜨네요.  
비가 후두둑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는데 소나기처럼 막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구름을 보고서 또다시 겁을 먹고, 또 심판이 오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구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구름 속에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그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 빗소리가 또 퍼붓기 시작하는 그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다시는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의 성취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거에요? 

믿는 사람 속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언약'은 누가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믿는 자에게! 
그 언약을 안 믿는 사람은, 당연히 그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고, 고통당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놋뱀을 장대에 매달아라.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 것이다'

그러면 지금 뱀에 물려서 죽어가고 있는데 
또 '뱀을 쳐다보라, 그러면 산다'고 하는 그 말이.. 얼마나 어색하게 들리겠습니까?

'놋뱀을 쳐다보면 뱀의 독에서 고침받고 산 다고? 이게 말이 되냐? 
차라리 무슨 독을 빼내는 해독제나 주든지...'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약속,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축복인데,
그걸 누가 누리냐는 거예요? 
그 말을 믿고서 놋뱀을 바라보는 자들이 누리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무엇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크고 작은 언약을 주십니다. 개인적으로 주시는 언약(약속)도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두려움도 떠나가고, 하나님의 약속도 이루어진다
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 그 언약들을 (성경말씀 한 구절 한 구절들이 다 언약입니다)
누리시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세번째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구원받은 노아'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죠.)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생육'은.. '열매를 맺는다' 라는 거에요. 
'번성'은.. '그 열매가 많아진다'는 걸 의미예요.     ☞‘생육하고 번성하라’의 의미 

그런데 지금 함께 살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멸절당했습니다. 단지 누가 남았습니까? 
노아의 8식구만 남았는데, 이제 겨우 네 가정이 있어요. 노아, 셈, 함, 야벳. 
창조때부터 그때 당시까지 있었던 이 땅을 채웠던 사람들을 하나님은 다 쓸어버리시더니 
겨우 남은 세 가정보고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라'는 말이
과연 현실적인 축복처럼 들렸을까요?

그것이 축복이 되려면, 반드시 그 속에 포함되어야 될 단어가 있습니다. 9:1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생육, 번성, 땅에 충만'에 앞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근데 이 '복'이란 단어를 그냥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정황이 창세기 9장입니다. 
이 말은 먼저 창1:28절에 나왔던 말씀이죠.

창1:28절은,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고,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주신 축복입니다.
죄가 땅을 더럽히기 전에, 죄가 우리 속을 더럽히기 전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완전했던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복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모든 복들을 다 상실했어요.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리고 모든 땅을 죄가 덮었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죄가 덮었고 
하나님의 아들들까지 죄로 가득 하여서 육신이 되어버린 상황이었어요. 6:2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창9장의 본문에서, 
구원받은 노아와 그의 식구들에게, 창1:28절과 똑같은 복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9:7' 라는 의미는 '다시 복을 주신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저와 여러분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은, 

'복을 회복시켜주신다'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복을, "다시 복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복은, 오늘날 우리도 동일하게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본문 9:7절에서 노아가 받은 복은 '다시 복을 주셨다'는 의미가 있지만
'더 큰 복을 주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말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한 복이었어요. 1:28
그 당시 땅은 저주받기 전에 낙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9:7절에서 받은 복은, 1:28절과 좀 다른 것은
그 땅은 아담의 타락 이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 받은 땅입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 후손들은 (오늘날 우리들을 포함해서)
에덴동산에서의 죄없는 아담과 하와 와는 달리, 전적 타락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은 복과 축복을 말씀하시는 것은  9:7 

어쩌면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것보다, 
우리가 오히려 더 큰 복을 지금 받고 있다.. 라는 의미도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열매 맺기는 쉬워도, 
저와 여러분이 열매 맺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땅도 저주받았죠. 
우리도 부패성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도 하나님이 어떻게 해요?
'생육하게 하시겠다, 번성하게 하시겠다, 땅에 충만하게 하시겠다'는 큰 복을 언약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통해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하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예표합니다. 

홍수 이후에, 새로운 인류로 새 출발하는 노아는, 
-말씀에 순종하며
-제단을 쌓으며
-번제를 드리는.. 구원받은 성도의 새로운 삶에 대해 지난 8장에서 살펴보았죠. ☞창8장 구원 받은 자의 새로운 삶

그런데 본문 9장에서, 구원받은 새 성도, 마치 아담과 하와와 같은 새 신분인 성도가
또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어쩌면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하나님은 무지개를 통해 일방적으로 '언약'을 주셨습니다.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의 약속입니다. 
-우리 허물과 죄를 덮어주셔서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에덴동산과 똑같은, 에덴동산의 회복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