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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담의 은혜

LNCK 2018. 12. 27. 20:31

https://blog.naver.com/karamos/80142176537

◈가시와 담의 은혜       호2:1-7               2011년          ▣ 우상화

 

◑서론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놀라운 일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음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끈질긴 배역(backsliding)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너무 놀랍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배은망덕할 수가 있을까요?

 

둘째,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오래 참으시고

계속해서 사랑(love)하시는 모습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크게 두 가지 은혜를 주십니다.

첫째, 애굽에서 구원해주시는 구원의 은혜(Saving Grace)를 주십니다.

둘째,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계속 배역하고 우상숭배에 빠질 때 범죄하지

않도록 막아주시는 은혜(Restraining Grace)도 주십니다.

 

구원하시는 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죄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시는 은혜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호2:6)

 

본문을 통해 “가시와 담”이라는 두 가지 상징적 표현이 의미하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1. 고멜의 죄와 호세아의 심정

 

▲첫째, 고멜의 죄는 정절을 지키지 않은 죄(infidelity)였습니다.

호세아 2장에는 호세아 아내 고멜의 죄와

그에 대한 호세아의 심정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호세아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호 1:2)

 

호세아는 하고 싶지 않은 결혼이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고멜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2남 1녀를 얻게 됩니다.

 

첫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이스르엘(하나님이 흩어버리시겠다)이라고 지었습니다.

둘째 딸을 낳아 로루하마(내가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라고 지었으며

셋째 아들을 낳아 로암미(내 자식이 아니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자식을 낳았으면 잘 돌보고 남편과 가정을 이루어 정절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고멜은 남편을 버리고 연애하는 자를 따랐습니다.

 

▲둘째, 고멜은 실수가 아니라 “집요한 고집”을 가지고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말 속담에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멜은 이 속담처럼 부부싸움 하고 나와서 돌아다니다 홧김에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집요하게 바람을 피운 것입니다.

(*여기서 호세아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호 2:5)

 

우리는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니리’라는 말에서 고멜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멜이 연애한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유혹했던 “바알과 아세라”를 상징합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 숭배에 따르는 육신적인 쾌락과 함께

농사의 풍요를 준다는 거짓에 속았습니다.

 

바알은 남신이고 아세라는 여신입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신전 밑에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창기와 사람들이 음란한 짓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그것을 보고 성적인 자극을 받아 연애하게 되고

그 결과로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비는 바알과 아세라의 연애 결과라고 믿은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내려주고 그 덕분에 농사도 잘되며

떡과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이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알 신전에는 언제나 창기들이 있었고

바알 신전에서의 예배는 다름 아닌 성적인 혼음의 축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젊은 사람들은 성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바알숭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하는 바알 숭배를

고약하게 여기시고 여러 번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25장을 보면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숭배에 빠지고

모압 여인과 음행을 하자 2만 4천 명이 염병으로 죽은 사건이 기록되었죠.

 

그리고 아합 왕 시대에는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모두 합해서 850명과 영적인 대결을 벌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시는 신을 참 신으로 인정하기로 했는데

바알과 아세라는 불을 내리지 못했고 하나님께서는 불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 숭배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바알신이 육신의 쾌락과 풍요를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이유는 쾌락과 풍요 때문입니다.

고멜은 바알이 자신에게 많은 것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주신 분은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떡과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까지 모두 주신 것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연애를 해서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호 2:8)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이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넷째, 고멜을 향한 호세아의 심정은 호세아 2장 2-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호 2:2-4)

 

오늘날 우상숭배 하는 많은 사람이 우상을 위해 돈을 바칩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걷는다고 욕을 하지만

교회에서는 헌금으로 선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우상을 위해 사용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남편이 가정을 위해 중동에 나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보내주니까

아내가 그 돈으로 바람을 피운다면 남편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과 금을 우상에게 가져다주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심정은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호세아 2장 2-4절에서 고멜이 음란을 제거하지 않으면 벌거벗겨 나던 날과

같게 하겠고 광야같이 만들어 버리며 자식들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이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우상숭배를 하면 결국 모두 죽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끝은 사망이고 지옥입니다.

 

◑2. 가시와 담의 은혜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이 사망을 향해 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 바로 가시와 담입니다.

 

목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시와 담은

-외부에서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내부에서 짐승이 나가지 못하도록 예방합니다.

 

이와같이 가시와 담은 보호와 예방의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호 2:6-7)

 

욥기 1장을 보면 사단이 여호와 앞에 나타나자 하나님께서 물어보십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그러자 사단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하고

사단에게 욥을 자랑하십니다.

 

그러자 사단이 그때부터 욥을 송사하기 시작합니다.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욥 1:9-10)

 

하나님께서 욥의 사업에 보호의 울타리를 둘러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울타리로 둘러주셔서 복을 받아 잘되니까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니냐고 송사하는 것입니다.

 

2011년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의 가정과 사업과 영혼에

산울을 둘러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집회에 고훈 목사님께서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경상도 안동에서 금은방을 하는데 강도 4명이 들어왔답니다.

딸과 아내의 옷을 벗기고 자신을 묶은 뒤에 돈을 내놓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1400만 원을 내놓으니까 금은방을 하면서 겨우 1400만 원 밖에

없냐며 온통 다 뒤졌는데 감사패 하나를 발견했답니다.

 

정찬근 장로님이라고 하는 분이 주신 감사패인데

이분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활동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정찬근 장로님께 금은방 주인이 헌금해서 감사하다는 패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강도가 그 감사패를 보더니 정찬근 장로를 아느냐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다고 했더니 강도 4명이 정찬근 장로님을 안다고 하니까

너희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1400만 원도 안 가져갈 테니

정찬근 장로님 하는 일에 헌금하라고 하면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강도 4명 모두 감옥에 있을 때 정찬근 장로님께 은혜를 받아

그분께 감사패를 받은 사람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가정에 울타리를 쳐놓으시면 아무리 강도가 들어와도

아무 일 없이 나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시와 담은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하지 않도록 막아주시는 역할도 합니다.

민수기 22장은 예방의 담의 예입니다. 본문을 보면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가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가지도 말고 저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압 왕 발락에게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가게 됩니다. 근데 발람이 타고 다니는 당나귀가

갑자기 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발람이 당나귀를 때리며 길로 가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길옆 담에 발을 비벼

발람의 발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또 발람은 당나귀를 때렸는데

이번엔 당나귀가 주저앉았습니다. 발람이 또 때리자 하나님께서

당나귀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귀지만 영안이 열려 내 앞에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이는데 너는 선지자가 돼서 그것도 안보이냐고

발람을 꾸짖은 것입니다. 물론 제가 조금 보태서 말했지만,

당나귀가 담에 발을 비벼서 발람의 길을 막은 것입니다.

 

담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성도가 죄로 가는 길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가시와 담은

-우리를 보호하는 것과,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

이 두 가지 기본적인 역할을 합니다.

 

◑3. 가시와 담을 두시는 궁극적 목적

 

▲첫째, 우상숭배의 결과로 형편이 비참해진 현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을 두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호 2:7)

 

고멜이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다 가시에 찔리고 또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가다가

담에 머리를 부딪쳐서 깨지고 피가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위대한 선지자인 남편과 자녀들을 두고 바알과 아세라와 연애하는 자를

따라간 것 때문에 형편이 비참해진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준 것들을 가지고 우상숭배를 하니까 모두 뺏어버린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 응하지도 않고 땅이 곡식에 응하지도 않도록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땅이 하늘에게 비를 달라고 해도 주지 않고 곡식이 땅에게 물을 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형편이 비참해졌습니다.

 

형편이 비참해지자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남편 호세아 옆에 있었을 때는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며

다시 남편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탕자의 비유에서도 잘 알듯이 탕자가 유산을 들고 나와 다 탕진하고

돼지의 사료로 쓰이는 쥐엄열매를 먹어야 할 만큼 형편이 비참해지니까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는 일꾼들도 자신보다 형편이 나았다며

아버지 집의 일꾼으로라도 가서 얻어먹고자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진실로 돌아오는 “행동적인 회개”(active repentance)를

하게 하십니다.

탕자나 고멜 모두 돌아가려고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결코 죄와 우상으로부터 떠나가야겠다고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으로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받아주십니다. 고멜이 돌아오니까 남편 호세아는

몸을 더럽힌 것이 무슨 낯짝으로 돌아왔느냐면서 박대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다시 받아주었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받아줬듯이 하나님께서도

우상숭배하고 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받아주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 2:14-15)

 

좋은 말씀으로 타이르고 위로하시며,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주십니다.

없어도 되는 포도원을 등기해서 저의 포도원이라며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골 골짜기에도 “소망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아골 골짜기는 여호수아 7장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였을 때

그것이 아간의 범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아간과 그 가족들을 모아놓고 돌로 쳐서 죽인 곳입니다.

고통의 장소, 괴로움의 장소에서 소망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다가 형편이 비참해지고 아골 골짜기와 같이 괴로움이 있는 분이

계신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아오겠다고 생각만 하지 마시고 행동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아골 골짜기도 소망의 문으로 바뀌게 되고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시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해주십니다.

 

우상에게 기도하면 우상이 들어줄까요? 우상이 기도를 들어줄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실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호 2:21-22)

 

하나님께서 하늘에 응답하여 구름을 주시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여 비를 주고

땅은 곡식에 응답하여 수분을 주는 것입니다.

 

결론

 

대한민국에는 유교, 불교, 선교, 샤머니즘 등이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명절만 되면 제사를 지내고 자식 장가보내려고 날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계속한다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우리를 벌거벗기시고

광야처럼 만들어 결국 목말라 죽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숭배 하는 이유는 쾌락과 물질의 유혹 때문입니다.

하지만, 쾌락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물질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우상의 유혹에 빠지지 마시고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소망의 문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가 잘해서 의로운 사람이 됐다거나

거룩한 사람이 됐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간증을 하더라도 내가 잘했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더라고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을 주시지

우리가 무엇을 잘했다고 복을 주십니까?

우리에게 의가 있고 거룩이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죄를 막아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나의 자랑, 나의 의, 나의 거룩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복이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