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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 평

LNCK 2019. 2. 8. 20:54

 

단 한 줄 평        행9:36      이재철 목사 사도행전135강

 

요즘 '한 줄 평'이 유행입니다.

TV 시사교양 프로그램, 또는 뉴스 논평에서 보면

거기 패널이나 전문가들이 오래 이야기를 한 다음에

마지막에 진행자는 '단 한 줄 평'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패널이나 전문가들이 '한 줄 평'을 하는데

그 '한 문장'이 기가 막히게, 자기의 의견을 요약해서 함축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한 줄 평이 종종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이달리야 군대 백부장인 고넬료를

행10:2절에서 이렇게 <한 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10:2

 

단 한줄 문장에 불구하지만,

이 짧은 한 문장이야말로,

고넬료 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9:36절에, 다비다에 대해 <한 줄 소개>가 나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행9:36

 

다비다에 대한 단 한 문장의 소개 내용인데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짧은 소개 문장 하나 만으로도,

그의 경건한 삶이 어떠했는지.. 모두 다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다비다를 설명하는데,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는 이 짧은 문장 이외에,

무슨 수식이 더 필요하겠는가요!

 

그 외 아브라함 .. 믿음의 조상

요셉 .. 꿈을 꾸었던 사람

베드로 .. 수제자

도마 .. 의심 많았던 사람

 

이완용이라고 해서, 왜 그에게 장점이 없었겠는가요?

왜 그에게 재능이 없었겠는가요?

(히틀러도 소년 시절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고 하지요)

 

이완용이 재능이 없었다면 고종 19년인 1882년에,

어떻게 그가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겠는가요.

 

그러나 우리는 그 이완용에게 붙여진 <단 한 줄>의 문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완용’

 

설령 이완용의 장점이 하늘을 찌르고, 그의 재능이 바다를 가른다 할지라도,

이 짧은 한 줄의 문장 앞에, 도대체 그의 장점과 칭찬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요!

 

이완용이 자기 사익을 위해서, 나라까지 일본에 팔아먹으면서,

이 땅의 주권과 평화를 유린하던 비슷한 그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국적을 초월한 인류애로, 세계 평화를 위해서 헌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190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스위스의 장 앙리 뒤낭(Jean Henry Dunant)입니다.

 

앙리 뒤낭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그에게 결점이 없었겠는가요?

그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었겠는가요?

 

그러나 온 세계 사람들이 그 앙리 뒤낭에게 부여한 <단 한 줄>의 문장,

세계 적십자 운동의 아버지’란 이 짧은 문장 앞에서,

그의 모든 단점과 결점마저도,

이미 그의 아름다움과 장점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비단 과거의 인물만, 그것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만,

그 인생이 <단 한 줄>로 표현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모두,

<단 한 문장>으로.., 심할 경우에는 <단 한 단어>로 표현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지금 이 시간에,

단 한 사람의 얼굴만 자신의 머리 속으로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을 자신은, 한권의 책의 분량으로 기억하고 있는가요?

A4용지 한 두 페이지의 분량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가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에게 누군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제 3자에 대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때, 자신은 어떻게 대답하는가요?

 

A4용지 한 두 페이지의 분량으로 대답하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

‘그 분 내가 존경하는 분이야!’

혹은 '그 사람은 세상을 사랑해서 평생 세상을 좇던 사람이었지!’

 

이렇게 우리들도 그 누구든, 단 한 줄로 대답하지 않는가요!

 

그렇다면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역시,

나를 단 한 문장, 혹은 단 하나의 단어로, 지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한 줄의 문장, 그 한 단어의 내용이 대체 무엇이겠는가요?

 

그 해답은 그 사람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해답은 나의 삶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진정으로 주님을 좇아 살았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한 한 문장은, 분명히 긍정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주님을 좇아 사는 삶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한 짧은 한 줄의 문장은, 부정적인 내용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오래 산다고 한들,

우리가 살아생전에 아무리 많은 일들을 행한다 한들,

 

세상 사람들은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우리를 기억하고,

하나님 역시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우리의 삶을 평가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보면

 

인생은 그 짧은 한 문장의 평가를 얻기 위한 대장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지 상관없이,

앞으로 이제부터는, 함부로 아무렇게나 살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경건하고,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라’

라는 한 문장으로 우리의 삶이 압축될 때,

우리의 코끝에서 호흡이 멎는 순간,

우리에겐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펀 글  출처보기 

 

 

 

 

여러 사람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비슷하다. (펀 글)

 

(한 목회자)가 청년 시절에 합창단 수련회를 갔다가

거기서 인성 관계 훈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30명 남짓한 단원들 개인 개인마다

그 사람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찾아 주는 겁니다.

그 동안 단원들끼리는 오랫동안 겪어 왔잖아요?

그러니까 모두들 다른 단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그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서로 얘기해 주는 건데, 추상적이거나 애매모호하면 안 되니까

영화나 드라마 또는 만화나 소설의 주인공으로 표현해 주기로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해도 찾기 어려우면

모두가 알 만한 실제인물로라도 캐릭터화하기로 했습니다.

 

서로를 위해 하는 것이므로 신중하게 선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모두가 잘 받아들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 후에 생각할 수 있도록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제 단원들 모두가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 대해서

그를 상징하거나 연상되는 어떤 인물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단원들 하나 하나 마다 그에 맞는 캐릭터를 찾고

단원 전체의 명단이 적혀있는 종이에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그것을 적어 나갔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종이에 그렇게 적어 나갔지요.

그러니까 한 사람마다 그를 상징할 수 있는 캐릭터가 30개 가까이 모이겠지요?

 

그런 다음 몇몇이 그것을 취합하는 시간을 가진 후, 드디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모두들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한 사람씩 발표가 됐습니다.

무기명이니까 너무 진솔하게들 써 놔서 당혹스런 부분도 꽤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단원들마다 똑 같은 이름이 상당수 나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비슷하게 나온다는 얘기지요.

 

[사도행전 순서설교 135] 제 구시 쯤 되어 (10장 1-8절)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