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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되지 않는 삶의 본질 P3 / 존 파이퍼

LNCK 2019. 2. 13. 21:13

 

낭비되지 않는 삶의 본질 P3          빌1:20~21           출처             P1        P2     

The Essence of Unwasted life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물을 붙드시고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이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주는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시편 191절입니다.

이렇게 자연은 하나님의 이야기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 귀를 열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온 세상이 그런 것들로 가득합니다.

 

장차 우리는 심판대에서, 그 자연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들었는지

그 영광을 보았는지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장난이나 게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호텔에 숙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닷가인 그곳에 수영장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우습다고 생각했어요.

수영장은 이 단상 정도의 크기이고, 그리 크지는 않아요.

저는 수영장을 보고 바다를 번갈아 보았어요.

 

이곳은 사람의 수영장이고 *호텔 수영장

저곳은 하나님이 만드신 수영장이라 생각했죠. *바다

 

그런 것이 어디나 있어요. 그런 음성이 어디나 있어요.

그저 당신의 귀와 눈을 열고

성령께서 민감성을 주시길 기도하세요.

 

낭비된 삶이란, 그 자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삶이고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이시는 일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이 문장에 대한 논란이 크므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생각한 낭비되지 않은 삶이란

죽든 살든 그리스도를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우주는 아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도록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매우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오셔서

당신이 하나님께

왜 제가 존재합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나를 크게 하기 위해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진리에 많이 실족합니다.

너는 나를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것을 행하라

네가 그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을

무슨 폭군이나 독재자쯤으로 생각하는데요,

그건 자기가 신이라고 여기는, 신의 위치 쯤으로 여기는 교만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을 증거하는

성경 본문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사야 43:6-7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면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신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보이게 하도록

당신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3:11절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이 되게 하며 내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해내셨습니다.

그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시편 1067-8절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의 압제에서

구해내셨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8:9,11)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로마서 158-9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7:1)

 

세상 끝에 다시 오시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10절입니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예수님이 모든 영광을 받으시려고 세상 끝에 다시 오십니다.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려고 오십니다.

 

이것은 바울의 생각이 아닙니다.

구약부터 계시된, 또한 성령으로 계시된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삶이 그리스도를 높이는여부로 정의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그리스도의 디자인이고

그리스도를 위한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왜 제가 이것을 거론할까요?

왜 논란이 되는 이런 것을 거론할까요?

 

하나님이 영광 받기 원하신다는 내용의

30~40개의 그런 본문을 그냥 제쳐놓지 않을까요?

슬쩍 제껴 놓거나 건너뛰면 되잖아요.

 

그리고 왜 그냥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것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설교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을 보면,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 중심 God centered’ 을 원하고

그리스도를 높이기 Christ-exalting’ 원했고,

그것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은, 바울이 사도로서의 의무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이런 설교내용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피상적인 설교만 듣고는

아무도 변화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것(만물과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함)

얼마나 급진적 radical 인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간절하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선포했다면

저 존 파이퍼도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제 부모님은 고린도전서 10:31절을

수백 번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조니, 먹든 마시든 무엇을 하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거라!”

 

저는 그것이 저의 의무임을 알았어요.

 

그러나 1968~1971년에 발견한

진리만큼 제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어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신다는 거였죠.

 

그리고 나는 거기에 동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

 

그것은 제 영혼에 다이너마이트 같았어요.

당신에게도 그럴 수 있어요.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스스로 영광 받으심을 위한

그 삼위 하나님의 열정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이 개념을 불편해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이 진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동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실은 매우 급진적 radical 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여러분이 불편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서나 이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 일들을 행하십니다. 주권적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는

삼위일체 안의 계획으로

삼위 하나님이 서로를 영화롭게 하심이

성경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인간 중심의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제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5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서 120-21절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원동력입니다.

 

왜 그것을 거론해야 합니까?

바울이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을 살기

원한다고 했고

그것이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디자인이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당신God을 스스로 높이시는 열정이

그 배후에 있다는 것까지 왜 말해야 할까요?

 

제가 그것을 말하는

5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께서 부단히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의로우시고 신뢰할만한

분이신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의는

의로운 것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준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야 할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행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 안의 의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의롭게 행하신다는 것은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중요한 것을 중시하고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무한히 귀한 것을 귀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무한히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있게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스스로 영광을 받지 않으시면

어쩌면 하나님은 불의하고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의로운 하나님을 원합니다.

의로운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공의롭고 거룩하며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2 두 번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고수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을

조금이라도 가늠하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보다

아들, 예수님을 기뻐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하나님의 본질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영원히 앞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지 않으셨던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히 기쁨이 넘치는

베수비어스 화산과 같으십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없는 하나님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3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고수하심은 다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잘 속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잘 속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밟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죄책감을 벗으려고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죄 사함을 받으려고

영원한 각자의 우상을 얻으려고 하죠.

 

즉 골프, 성관계, 음식, 바닷가, 서핑, 햇볕 등

그런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그런 유익을 주는 한 괜찮다고 하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 중심이라는 사상은

그런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내가 너의 최고의 보물이냐?

아니면 너의 최고의 보물을 얻기 위해

나를 이용하느냐?”

 

4 이제 네 번째를 보겠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할지 모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받아들이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될지 모르지만

제 설교를 듣고서 그런 불신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중심성과

하나님이 하나님을 스스로 높이시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를 스스로 높이심이

언듯 보면,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고린도 전서 13:5절에서 말씀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항상

자신의 유익을 구하신다고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므로 틀렸습니다.

40개의 성경 구절을 다 틀렸습니다.. 라고 여러분이 말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아들 예수님을 높이시고

하나님의 스스로 영광을 높이시는 것은

당신이 잘 되도록 돕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간을 높이는 (복 주는) 수단만이 되신다면

그것은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면

나를 크게 느끼게 만들 것이다.”

 

물론 기분은 좋습니다.

그것을 믿기는 어렵지 않죠.

누군가 나를 크게 느끼게 만들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 속에서는 당신 자신이

최종 목적입니다.

상대방이 수단이 되죠.

그래서 나 자신을 크게 느끼도록 만들죠.

 

그것은 성경적 사랑이 아닙니다.

 

성경의 사랑은 수고하고

희생하고 심지어 죽습니다.

당신을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기뻐할 수 있게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영혼을 팔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세상적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믿으면서(이용하면서)

그걸 일부라도 얻게 되면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거죠.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주시든지/말든지

여러분을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영원히 높이는 것을

즐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원래 창조목적대로 살 때, 내가 비로소 행복해집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바닷가,

장엄한 그랜드 캐니언 앞에서

그것이 사실임을 압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관찰하면서

순간이나마 당신의 영혼이

자기중심적 자아에게서 벗어나고

자아 몰두에서 벗어나서

가장 깊이 있고 만족스럽게 하나님을 영광돌리면서

당신의 영혼은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대상이라면

그런 감격스런 순간이 영원히 계속 계속

여러분의 삶속에 이어집니다.

 

당신은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높이지 않게 하신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자신을 찬양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를 찬양한다라고 하셔서

당신의 작은 자아을 만족시키신다면

당신은 멸망할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은 쪼그라들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그것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음을 압니다.

 

당신은 훨씬 더 큰 것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아님은 항상 자신을 높이셔야하고

아들을 높이셔야합니다.

내 아들을 높이거라 그러면 네 영혼이 만족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아니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하나님 중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낭비되지 않은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라는 바울의 개념이

 

사실은 바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높이신다고

제가 말하지 않는다면

저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생명의 값으로 자신을 소비하셔서

당신을 자유하게 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영원히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설교의 큰 주제가 될 것입니다.

 

5 다섯 번째 이유입니다.

만일 제가 이 사실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바울은 죽든 살든 자기 몸으로

그리스도를 높이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생각이 아니라

사실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높아지시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그리스도께서 거기 동참하셔서

삼위일체께서 서로를 높이십니다.

 

만일 제가 그것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단순히 당신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당신의 심령에 주셨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보게 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장엄하신지 보게 된다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아세요?

 

이건 너무 엄청나! 다 인식할 수조차 없어

최소한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저의 사랑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나 혼자 남겨진다면 어떡하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영원히 가질 기쁨이

내가 만들어낼 수 있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떡하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십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항상 존재하셨습니다.

성령은 항상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인격이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위에 운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성령을 보내리니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것이 당신의 삶 속에서 성령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대 사명을 나 혼자 감당하는 게 아니죠.

성령께서 당신에게 임하시고 당신 속에 운행하셔서

이제 내가 너를 위해 그렇게 해줄게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7:2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나를 사랑하신 사랑은 삼위일체 안의

아버지와 아들 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작거나 약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무한합니다.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작지 않습니다.

에너지, 자유, 기쁨으로 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은하계의 모든 힘을

무색하게 할 만합니다.

 

그런 사랑이 우리 안에 있게 해달라고

예수님이 기도하셨습니다.

 

언젠가 지금의 생애에서 부분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할 것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런 사랑을 부여받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부활의 몸이 아니라면

우리는 폭발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하려면

영적 몸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시는

에너지를 감당하려면 말입니다.

이런 분이 있습니까?

저는 불우한 집안 출신이에요

저의 아버지는 기뻐한 적이 없어요

항상 화내고 명령만 하셨어요.

저는 당신과 같은 곳에 도달할 수 없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우리 모두가 절뚝거리고 있어요.

우리 모두가 결함이 있어요.

여기에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정서적 결함이 있고

육체적 결함이 있어요.

정신적 결함이 있고

다 결함이 있어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여기 없어요.

세상에 사는 동안 마땅히 사랑해야 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깨어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 안의 겨자씨

우리가 조금 맛본 그것,

우리가 조금 본 그 빛이

우리가 자신을 연 만큼 충만히 임할 것입니다.

 

대 격변을 일으키는 힘으로 임할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면 그럴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활의 몸을 갖게 되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이제 마치겠습니다.

빌립보서 12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 안에 영화롭게 되시죠?

어떻게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시죠?

 

살든지 죽든지..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1:20-21)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쪽에서는 내가 하는 모든 일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라 합니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리스도를

유익하게 여길 때 그렇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그리스도를 너무나 즐거워해서

행복한 결혼생활과 가정을 잃더라도

결코 아무런 손실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 정도로 그리스도를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급진적radical으로

행복해지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가장 행복한 경험을

잃어도 유익이라고 말할 정도여야 하죠.

 

기도합시다.

아버지, 저희가 아버지를 존귀하게 보이게 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저희에게 강력히 역사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저희 마음에 적용하게 하소서.

 

이것은 단지 말이나 개념이 아니라

사실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오니

오셔서 아들 예수님을 존귀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