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희락주의 시73:25 출처 *기독교 희락주의 Christian Hedonisem
존 파이퍼
제가 ‘기독교 희락주의 Christian Hedonism’ 라고 부르는 용어 내지 비전에 대해
비평하던 한 신학교 총장과 나눈 대화를 기억합니다.
그가 지닌 고정관념은
‘희락(쾌락)주의 Hedonism’라는 단어의 철학적 의미에 관한 것으로
‘행복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이 기준
그것은 희락주의라는 단어의 역사적 의미 중 하나이지요.
고대 그리스에서 쾌락주의자는
무엇이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옳고 right
불행하게 하는 건 그르다 wrong 고 말했지요.
그래서 그 총장은 그런 개념에 의거,
‘기독교 희락주의’는 말 자체가 옳지 않다고 한 거지요.
그래서 제게 “기독교 희락주의라는 말을 퍼뜨리지 마세요.”
이에 대한 제 대답은, “기독교 희락주의는
행복을 옳고/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며
기독교 희락주의는 하나님을 옳고/그름의 기준으로 삼고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이건 정말 심각합니다.
기독교 희락주의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든/말든..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 건 죄입니다.
따라서 저는 하나님의 권위가
자기 삶 위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그 끔찍한 죄에서 자유하게 돕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희락주의는 행복을 신으로 삼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너의 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건 심각하죠, 오늘날 교회들은 하나님을 자기 분깃(유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나니까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73:25
오늘날 거의 모두에게 이런 (즐거움의) 고백이 없습니다.
위 시 73편을 쓸 때 다윗은 무엇을 의미했나요?
또는 시편 16편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16:1~2
따라서 <기독교 희락주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만유 안의 만유되심을 싫어하지 않고,
하나님을 보고 그 절대적 권위와
주권과 의로우심과 지혜와 참됨과 자비와 능력에
매료되게 (즐거워하게) 하려는 운동입니다.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 나의 기쁨을 얻기 위해 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