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사자 같은 마귀 대적하기의 실제 벧전5:1~14 스크랩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우는 사자 같은 마귀 대적하기의 실제>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실제로”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는 마귀를
대적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겁니다.
왜 “실제로” 라는 말을 쓰느냐 하면,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마귀를 대적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마는,
그 내용을 가만 들여다보면, 마귀를 대적하는 게 아닌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에
“실제”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뭐 ‘사탄아 물러가라!’ 이런 말 많이 쓰잖아요,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원수마귀 사탄아 물러가라!’
그렇게 소리치면, 마귀를 대적하는 게 되는 겁니까?
(될 수도 있겠지만, 된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가 많지요)
마귀 대적/ 퇴치는 무슨 주술이나 주문이 아니에요.
▲진짜 흉하게 귀신들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비정상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그런 고약한 상황이 되었을 때만, 우리는 마귀를 파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귀에게 삼킨바 되는 상태는
이런 비정상적 상태보다는
훨씬 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경우가,
아주 정상인과 똑같은 상태일 경우입니다.
괴상한 행동과 말을 하고 그럴 때라야만, 마귀에게 삼킨바 된 게 아닌 것이고,
인격적으로 마귀에게 삼킨바 되었는데도,
우리 자신은 모르고 있을 때가 많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지금, 고난이 주어졌을 때
이 고난을 계기로,
마귀가 삼키려고 달려들고 있는 이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그렇게 흉악하게 귀신들린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근데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마귀의 형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굶주려서 먹이를 찾기 위해서 으르렁거립니다.
이제 눈에 닥치는 대로 삼키려고 다니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믿는 사람들을 삼켜버린다는 얘기에요.
이 상황,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다가 삼킨바 될 경우에,
어떤 상태가 내게 임하게 되는 건지 알아야, 마귀를 대적할 거 아닙니까?
도대체 어떤 상태일까요?
▲이 상태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신앙적인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는 그런 얘기 하지 말고,
철저하게 오늘 본문에 근거해서 한 번 말해봅니다.
9절에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에서
‘세상에 있는’이라는 말에 주목하고,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단어에 집중합니다.
여기서, 마귀에게 삼킨바 되었을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알 수 있는 힌트가 있다는 거예요.
먼저, ‘세상에 있는’이라고 하는 이 말은
우리 몸이 세상에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씀(마귀의 공격에 노출된 사람)은
믿는 사람에게나 안 믿는 사람에게나 동일한 일이고,
지금 70억 인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이렇게 70억 인구 모두가 몸을 이 세상에 두고 있는데,
사람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건 뭐에요?
몸은 이 세상이라는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걸 말합니다.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몸으로 이 세상을 사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고,
베드로사도의 말을 빌리면 ‘나그네’고,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곳이며,
‘그리스도 안’이 아닌 ‘그리스도 바깥’은 어떤 곳이냐를 알 수 있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요7:7절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너희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을 말하는 거예요.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여기서 이 세상이라는 것은
몸이 처해있는 공간으로서의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간세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4:4절에 보면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여기서 간음한 여인들은 여자 중에서 간음한 자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영적인 의미에서 다 여자입니다, 그걸 말하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과 벗 될 때,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세상과 벗 되는 게, 하나님 앞에서 간음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 세상도 인간세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우는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면서
삼킬 자를 두루 찾다가, 마귀가 삼키는 것은 교인들이에요,
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이미 다 삼켜진 채로 있는 것이고요.
세례 받은 신자이지만,
자기 마음이 인간세상 안에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으면, 세상 안에 있지 않는 겁니다.
▲자, 세상에 속했다는 게 뭘까요, 여러분?
내가 삼성, LG나 현대, SK의 직원입니다.
그러면 가장 우선적으로 그 사람이 소속돼 있다고 하는 특징이 어떻게 나타납니까?
그 회사의 규칙을 잘 지켜나가는 겁니다, 그게 속한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인간 세상에 속했다고 하는 증거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세상에서 정해놓은 핵심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세상에서 정해놓은 핵심가치가 뭐예요? 부귀영화, 오복이에요.
거기에 좀 더한다면 추상적인 가치로
박애주의, 평등사상, 나라사랑, 자연사랑, 이런 것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정하신 핵심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정하신 핵심가치는 뭡니까?
나라사랑이 아니에요, 나라사랑 했다면 유대나라가 로마를 무찔렀겠지요.
자연사랑도 아닙니다, 자연 사랑을 기치로 표방한 분이
때가 되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죽이면서까지
당신이 전하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리가 없습니다.
동물사랑? 아니에요, 동물 사랑이라면 제사를 금지시켰어야죠.
그렇다고 부귀영화를 좇았습니까?
모든 능력을 다 갖추고 계셨지만,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습니다.
사람들이 임금 삼으려고 할 때 그 자리를 뿌리치고 사람들을 보내버리고,
당신을 좇는 사람들의 동기와 의도를 비난하십니다.
그러면 그분의 핵심가치는 뭡니까?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이니까 거기서 파생된 두 번째 핵심가치가 뭡니까?
하나님의 뜻을 그때그때 이루는 겁니다.
여기서 여러분, 착각하면 안 돼요.
▲이 점과 연관돼서 교회 안에 들어와 가지고
최근에 교회를 완전히 통째로 삼켜버린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 긍정적인 삶’, 이런 것들이 다 그런 것이에요.
여러분, 목적이 이끈다는 말은
비전이 이끈다, 꿈이 이끈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근데 이게 왜 ‘우는 사자가 교회를 삼킨’ 사상이 되는 겁니까?
목적이 이끈다는 말 자체가
비전이 이끈다는 말, 꿈이 내 인생을 이끈다는 말 자체가 이단사상이에요.
목적이 이끄는 게 아니라 목자가 이끄는 거예요.
양들의 목적지가 푸른 초장이지만,
푸른 초장을 마음에 그리는 양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목자를 보는 거예요.
목자를 보고만 있었는데, 목자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 가신 겁니다.
나는 매순간 하나님만 보고 있었고, 하나님만 좋아했는데, 뒤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내 몸이 있는 동안에
내 몸을 통해서 이러이러한 일들을 이루어 가신 겁니다.
그런데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세상에 속한 자가 돼버리는 겁니다.
세상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겁니다, 비전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이 세상에서 내 인생을 내가 소원하는 대로 이끌어 가려고 하는 이 마음,
거기에 하나님을 덧붙여서 명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비전을 제시하십니까?
비전(야망)을 버리세요.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세요.
내 비전(야망)을 떨치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에게 먹혀버리고 말아요.
이 세상에 태어난 김에 인생을 한 번 멋지게 꾸려보자고 하는
세상적인 가치에 먹혀버리고 맙니다. (이게 본문의 마귀에게 먹힌 자)
▲여러분, 교회 안에서 어떤 진풍경이 일어나는가 하면,
장사가 안 되니까 걱정을 합니다, 돈이 안 벌려서 걱정을 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와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하면서,
또 어떤 교단의 열성분자들은 이런 기도까지 드리는 걸 봅니다, 기도원에 가보면 늘 그래요.
‘사업이 안 되게끔 하는 원수마귀는 사업에서 물러가라!’
내가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일들,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다는 건 이미 세상에 속한 거거든요, 마귀에게 먹힌 거예요,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 싶으신 게 있을지언정
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갖고 싶은 게 소원이어야 되고,
그 소원으로 끝나야 되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자체가 마귀에게 먹힌 거거든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안 이루어질 때마다 하는 얘기는,
다 마귀의 역사라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내 소원대로 안 되면 다 마귀의 역사에요.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마귀에게 먹힌 사람이 ‘마귀야 물러가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자, 오늘 고난에 대한 관계에서
우는 사자 같은 마귀가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으니 깨어서 대적하라고 얘기합니다.
고난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욥을 보면 되요.
욥에게 고난이 주어졌습니다.
사탄과 하나님이 같이 욥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에게도 기회고, 사탄에게도 기회입니다.
사탄에게는 이제까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삶이
실제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열 명의 준수한 자식을 주셨기 때문이고,
엄청난 재산들을 주셨기 때문이고, 건강하게 살고 예쁜 아내를 주셨기 때문이고,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많은 친구들이 욥을 따르는
그런 삶을 허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곤란한 환경과 환란이 주어졌을 때
마귀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욥의 아내처럼.
그러니까 찬스죠, 하나님께도 찬스에요, 어떤 찬스입니까?
‘진짜로 네가 나를 경외하는 것이 자식보다 재산보다 사회적인 명성이나 존경보다,
아내보다 친구들보다 우선적이었느냐?’
이걸 확인함으로써 욥이 진짜로 하나님을 경외했음을 포착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승리하십니다,
끝내 욥은 모든 걸 다 뺏어가는 이 시련과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는 그 힘을 그렇게 괴로워서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면서까지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신 거예요.
▲지금 베드로가 편지를 보내고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현실에 처해있는 겁니다.
이제 박해를 통해서 내가 그 동안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의지하고 살았던 이 세상에서 얻은 것들을 다 잃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사업이 안 됩니다, 자식문제도 꼬이기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어떻게 세상일이 이렇게 안 될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를 가질 정도입니다.
이때가 하나님에게도 찬스고 사탄에게도 찬스라는 거예요.
결국은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놓지 않으면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붙어있을 수 없습니다.
이걸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루어지게 해주시는 거예요.
사업이 안 된다고 자녀문제가 잘 안 된다고
이 세상에서의 자녀의 삶의 형통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의 사업의 형통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의 나의 출세의 형통을 위해서 머리를 씁니다.
세상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푹 뒤집어쓰셨습니다.
멈춰라, 왜?
머리가 우는 사자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서커스단에서 그런 것 가끔 하지요,
사자의 입을 열고 조련사가 자기의 머리를 집어넣습니다.
그런 것처럼 내가 이 세상일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세상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머리를 쓰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오늘 본문에도 나오지만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이끌어 가실 것이에요.
근데 그것이 내가 세상에서 배운 대로 원하는 대로 이루어 가지 않기 때문에
자꾸 걱정인 거죠, 그러니까 죽어야 돼요, 내 일에 대해서 죽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푹 쓰신 거예요.
왜냐하면 세상일을 생각하고 염려하면 머리가 사자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니까.
그리고 일이 안 되니까,
어떡하든지 내가 좀 이 일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 컨트롤하려고 하고 management 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 손이 사자의 입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손에 못을 콱 박아버린 거예요, 사자의 입에 안 들어가게 하려고.
또 내가 내 인생을 잘 꾸려보겠다고 뛰어다닙니다, 그래서 발에다 못을 박아버린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잘 되려고 내 발로 뛰어다니고
내 인생을 내가 이끈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살다보면,
그것이 바로 발이 으르렁거리는 사자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 배에서 소원이 일어나요, 내 배에서 소원이 일어나는 순간에
창으로 배를 찔러버립니다.
소원의 기운을 만들어내는 모든 사악한 피를 다 빼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사자같은 마귀에게 먹혀요.
십자가는 인간세상, 우는 사자 같은 마귀가 사람을 삼켜서 가두어두는
인간세상이라는 우리의 입구에 서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그 마귀가 관장하는 우리로 떨어지게 돼있고,
십자가에서 죽으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 따라서
부활과 승천하신 과정을 통해 만들어놓으신 공간,
‘그리스도 안’에 마음이 머물면서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것처럼 지금 하늘에서 내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그때 이 세상에 있는 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거예요.
우리는 양이 목자를 보며 쫓아가듯이 쫓아가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푸른 초장을 보면서 ‘목자시여, 그리로 가면 안 됩니다, 이리로 가게 해주세요!’
우리 기도가 맨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가 푸른 초장을 정해놓고 그 푸른 초장으로 뒤에서 목자를 향하여
‘이리 가세요, 저리 가세요!’ 조정하는 이걸 기도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먹힌 상태에서,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의 뱃속으로 들어가면서
예수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겁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고난이 왜 주어지고 있는 겁니까?
우리 마음이 예수님 이름 부르고 하나님 이름 부르면서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 이 세상 것에 대한 애착, 이 세상 것에 대한 미련,
완전히 칼로 무 베듯이 잘라가지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이전돼야 되는데,
십자가가 그 칼 아닙니까? 세상에 대해서 우리를 끊어내는 칼(=고난).
그리스도는 세상에 속해있지 않아요.
그러므로 세상에서의 부귀영화, 세상에서의 형통과
세상에서의 잘나가는 목회를 꿈꾸고 있다면, 마귀에게 삼킨바 된 겁니다.
그래서 시련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목회가 안 되게 하시는 겁니다.
목회가 잘되기를 꿈꾸고 있는데 목회가 잘되면, 마귀에게 내준 거예요.
목회가 잘되기를 바라는데 목회가 잘 안 되고 있으면,
주님께서 마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여러분 목사님들을
붙잡아 내려고 지금 마귀와 예수님이 씨름하고 있는 겁니다.
왜 씨름하게 됩니까? 내가 그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러니 주님께서 당기는데 힘이 드는 거예요.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붙드는 겁니다.
끊어내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그리스도는 세상에 속해있지 않고,
세상에 속해있지 않으면 세상에 속한 가치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만이 나의 핵심가치입니다.
그리고 핵심가치가 된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당신 스스로 이루어 가십니다.
▲이렇게 해서 마귀를 대적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 머리가 세상을 생각합니까?
내 손이 내 인생을 주무르고 있습니까?
내 발이 내 인생을 주도하려고 뛰어다니고 있습니까?
내 뱃속에서부터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소원이 나오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마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흡입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순간마다 십자가에서 가시면류관 쓰고, 못 박히고,
창에 찔리고, 살이 찢겨 죽으신 주님의 모습이 나임을 기억함으로써,
삼키려는 마귀의 입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