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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LNCK 2019. 3. 17. 07:30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8:11~21           여러 자료 취합

 

막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지 않았던 어떤 사역자의 고백입니다.

과거에 신학교에 다닐 때는, 교수님과 친한 동급 신학생을 부러워했습니다.

그 동급 신학생은, 미국 유학시절에, 벌써 방미중인 교수님을 찾아가서 식사대접을 하는 등

앞으로 유학을 다녀와서 벌어질 미래를 위해서,

그 교수님과 돈독한 친분을 쌓으려 하는 것이..

자기 눈에 보였기 때문에 부러웠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역자가 되어서는

자기 형이나 고모부, 또는 사촌 형이 큰 교회 당회장 목사님으로 두고 있는

친구 목사를 부러워했습니다.

교계에서도 어떤 큰 교회 목사님의 직접 후원을 받으면

자기가 개척을 하든지, 선교사로 나가든지.. 뭔가 일이 쉬워 보였기 때문에

교계에서 좀 영향력있는 목사와 친분관계가 있는

그런 친구목사를 부러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 역시도

기회가 찾아오지 않아서 그렇지, 기회가 만약 찾아온다면

좀 영향력도 있고, 인지도도 넓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런 목사님과 친분 관계를 쌓아서

그 분의 유명세에 자기도 덩달아 편승해서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받아먹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큰 떡은 주로 그 영향력있는 목사님이 드시겠지만,

자기는 그 분께 편승해서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떡고물이라도 주워먹으면

그것이라도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사역자가 아니고 일반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그럴 필요 없는데, 괜히 자기 주변 사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동창이 무슨 장차관이고,

자기 일가에 무슨 큰 회사 중역이 있고,

자기 고향사람 중에 무슨 유명인사가 있다는 식으로.. 항상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심리는

나도 그 성공한 사람 또는 유명인사와 거의 동급이거나

나도 그렇게 동창생처럼 성공할 수 있었는데,

아깝게 운이 나빠서.. 지금 이 모양밖에 되지 못했다...

그러나 나를 무시하지 마라,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 사람을 찾아갈 수 있고, 전화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임을, 최근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것이었지요!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란?

바리새파는 종교적 귀족, 종교적 우월의식, 종교적 교만에 사로잡힌 사람들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헤롯은 세상 성공과 권력의 화려함을 좇고

즉 지상에서의 권세와 재력을 쌓으며

현세적인 성공을 추구하거나 누리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에서 성공과 출세를 추구하고 누리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은

종교적 특권층이나, 사회적 특권층의 사고방식, 행태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언제나 낮은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돌아보시며

나중된 자가 먼저 될 것이요,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커지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사역을 하더라도

바리새인과 헤롯처럼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쳐다보며

그들과의 친분이나 뒷받침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버려진 사람들, 낙오된 자들, 소위 루저 loser 들을 관심가지고 돌보면서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사역의 본질인데

 

그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자신이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좇고(추구하고) 있었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누룩이란 퍼져나가는 영향력, influence, 어떤 전염성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보라, 나처럼 살아라, 나를 뒤따르라!’ 합니다.

(예수님을 뒤따르라..가 아니라!)

그게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이요, 헤롯의 누룩입니다.

 

 

배에는 떡 한 개가 있었습니다

 

13개의 입에 떡 하나 밖에 없어서 걱정이었던 현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떡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벳세다로 건너가던 중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자들이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떡이 배 안에는 한 개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떡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8:14~16

 

제자들은 “떡이 없다고 수군거렸지만

그러나 분명, “그들이 가진 떡이 배 안에는 한 개”(8:14)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떡이 없다고 수군거립니다.

13개의 입에, 떡 한 개로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뜻이었지요.

 

마치 오천 명을 먹인 기적 때에

저희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는 없습니다.”

라고 하며, ‘있는 데도 없다고 대답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한 개의 떡은 대체 어떤 빵일까요?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팔레스틴은 빵을 주식으로 합니다. 영어로 bread .

그걸 어떤 사람들은 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으로 번역하는데요,

우리나라는 밥이 주식입니다.

그런데 이나 이나 다 간식입니다.

그렇다고 으로 번역하기에도.. 좀 어색합니다.

이든지 이든지 당시 사람들의 주식으로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간식꺼리가 아니라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50.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배에는 이 떡 한 개이미가지고 있습니다. 8:14

이는 참으로 값진 떡입니다.

한 개의 떡만 있으면 넉넉한,

우리 공동체가 다 먹고도 남을 오직 필요한 한 개의 떡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 그리스도말씀의 떡입니다.

 

지금 본문의 사건은,

7개로 4천명을 먹이신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8:1~9

제자들은 적은 량의 떡으로 수천~수만명이 배불리 먹는 것을 본 직후였습니다.

 

그런데 이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려 하신 것은, 단순한 끼니 해결이 아니라,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6:48

 

제자들은 끼니 걱정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지금 배 안에서 또 다시 생명의 떡을 설교하십니다.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지금 예수님은,

생명의 떡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구절에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8:21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깨닫다라는 단어는        *수니에미

-어떤 의견이나 생각을 함께하다

-전쟁터에 함께보낸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보다 적절하게 번역하면,

 

나와 함께 서지 못하겠느냐?’

나와 함께 가지 못하겠느냐?’

생명의 떡 하나로 사는, 나의 삶의 방식에 너희가 내 옆에 나란히 서지 못하겠느냐?’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8:21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8: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1.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즉 하나님 나라 역사는 어떤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

부유한 자, 권세자들을 통해 (본문에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비천한 자, 낮은 자, 가난한 자, 낙오한 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친 떡 5개로, 7개와 같이 적은 것으로 (본문에는 떡 1개)

오천명, 사천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음이 있는

복음의 역사,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떡 한 개만 제대로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요, 복음이요, 죽은 영혼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도 어떤 자기 영향력이 있고, 자기 철학과 자기 신념이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전도합니다.

나처럼 살아라, 나를 본 받으라! 그러면 너희도 나처럼 성공한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그 누룩을 조심하라, 그 염병처럼 퍼지는 사상을 주의해라!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처럼, 오병이어처럼, 비록 떡 한 개라도,

작고 비천하지만 결국은 크게 이루어진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7에서 바울 사도는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함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배설물(쓰레기)로 여깁니다.

 

바리새인이나 헤롯이 해야 할 고백도, 바로 위와 같은 것이죠.

자기가 이룬 성공, 자기가 가진 재력 등을 배설물처럼 버려야 하는데,

그러나 그들은 정반대로 자기 누룩을 퍼뜨립니다.

    

 

▲마치는 말

오늘 우리에게도 자기 자랑이 될 만한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꼭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버려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 누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요?

복음의 누룩을 갖고 신앙생활하고 있는지요? 13:21

아니면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가요?

 

그리고 사역의 방향도, 언제나 예수님처럼,

모든 계층을 사랑하시면서도

특별히 언제나 낮은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를 돌아보시며

나중된 자가 먼저 될 것이요,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이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커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눈에는, 사역이 안 될 것 같습니다.

 

낮은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어린 애들을 돌아봐서 무슨 그림(미래 청사진)이 보이겠습니까.

 

오병이어, 칠병이어, 본문의 떡 1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것 손에 쥐고는, 아무 미래도 안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사역은, 미래가 안 보이는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떡 5개에, 7개에, 1개에 축복하시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수 천 ~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음이 있는,

영혼 구원의 역사가, 영원히 배부른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

 

▲평소와 다르신 예수님

이 단락 막8:14~21에서, 예수님의 어조는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격앙적'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신약성경에서 '문체로 볼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격앙적'으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15절에도 경계하라, 삼가라, 주의하라   charge, take heed, be aware

17절,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며, 둔하냐? (이하 개역성경)

18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냐?,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19절, 몇 바구니 거두었더냐?

20절, 몇 광주리 거두었더냐? (지금 정황은 8:1~10에서 4천명을 먹이신 직후) 

21절,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평소에 예수님 답지 않게 속사포처럼, 제자들을 다그치십니다.

그만큼 '빵 1개 남았음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한참 실망하셨다는 뜻입니다. 

 

 

The theme of blindness in Mark 8:14~20 is in contrast

with the theme of light in next paragraph 8:21~26. 

The apostles’ lack of understanding is a favourite theme of Mark’s Gospel.

(6:52; 7:18; 8:17-18; 9:10,32; etc.). 

Jesus sounds like an impatient teacher today:

“Do you not understand? 

Have you no perception? 

Are your minds closed...

Do you not remember?” 

The word used for ‘closed’ (둔하다, hardened, 8:17) is the same that

he used elsewhere to describe the minds of the Pharise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