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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주신다 롬3:10~12, 히12:2 2019.03.24.출처
김철기 선교사
◑일평생 자기 의를 주의해야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는 다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롬3:10~12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인류 전체에 아무도 하나님을 찾아가는 사람,
아무도 의인이 없다고 하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고
봉사를 하고 헌금하면서
‘나는 전에 죄인이었지만 지금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이 성경의 정죄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아마존이 살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든지/도망가든지’ 둘 중 하나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저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뉴욕처럼 사계절이 있고
철마다 옷도 갈아입고
때마다 갈 수 있는 극장, 식당도 많이 있으면
그냥 대충 대충 살 수 있을 터인데
뭐 아침부터 저녁까지
덥고, 또 벌레가 늘 물어대니까 힘들고
그런 모든 것 가운데서 옵션이 딱 2개 뿐이었어요.
‘열심히 살든지/아니면 도망가버리든지!’
그래서 저는 열심히 사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하여간 하나님이 우리를 아마존에서
열심히 살게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았는데, 그게 자기 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암투병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는, 우리 집사람이 세상에 살아있을 동안에는
제가 꽤 괜찮은 선교사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내가 일한 선교의 열매가 곳곳에 있으니까’
그렇잖아요 우리가 그런 열매가 있을 때 어깨가 올라가고
목에 힘이 주어집니다.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해서 이룬 보람, 자부심, 긍지가 있을 때
우리가 다 교만해지는 것이거든요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자기 의’입니다.
보람을 느낀다.. 할 때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딱 서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을 제끼고 내가 이룬 일이다.. 라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누가 이루도록 그 모든 조건을 주셨습니까?
사람도 주시고, 친구도 주시고, 자원도 주시고
건강도 주셔서 내가 그 일을 이루었는데
하나님을 딱 제끼고 자기가 이루었다고 딱 목에 힘을 줄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모가지를 비틀어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제가 스스로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사람이 소천하고
그제야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니었구나’
어떻게 그걸 알았냐면
마25장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오른 쪽은 양들, 왼 쪽은 염소를 구분하는데
염소쪽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배고팠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염소쪽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안 했습니까? 우리는 많이 했습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양 쪽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너희가 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다’
저는 이 소자가 누구라고 생각했느냐면
아마존에 살고 있는
자기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몰라서 자기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 사람들이 소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목숨을 바치겠다고
진짜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주님이 제게 가르쳐주신 것은
‘소자는 그 아마존이 가난하고 헐벗은 원주민이기 이전에
가장 네게 가까이 있는 네 아내가 소자이니라!’
그 사실에 제 눈을 열어주셨어요
여러분께 가장 가까이 있는 소자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소자는 남편, 자녀 같은 가족입니다
가족이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와 돌봄과 위로를 받아야할 소자인데
그 소자는 상관하지 않고
다른데 멀리 있는 누군가가 소자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산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주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가 (아내 소천 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완전히 사기꾼이었구나
내가 희대의 사기꾼이었구나!’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저를 존경했겠습니까?
제가 한국에서 선교사에게 주는 최고의 상이라는
언더우드 선교상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존경했겠습니까.
제가 진짜 이룬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이 제게 보여주실 때
‘소자에게 하지않은 것은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아내는 돌아보지 않고, 격려, 위로, 사랑하지 않고
먼 다른 사람들을 (자기 업적을 위해)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사기입니까?’
주님이 제게 ‘완전히 너는 사기쳤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진짜로 제가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회개한다고 뭐 난리쳤는데
진짜 제가 소자에게 하지 않는 것,
즉 주님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잘 보이기 위해서
그들을 섬겼다는 그 위선을 깨달으면서
진짜 제가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모든 동기속에는 다 내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제가 1995년부터 계속 지금까지
저희 지역 경찰서에 구금된 사람들에게
아침을 제공하고, 점심을 제공합니다
제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었냐면
‘제발 우리 집은 뚫지 말아라
우리 집에는 훔치러 들어오지 말아라’
라는 생각이 제 속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 경찰서 구금자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줄 때
제 마음속 동기 그 아래에는
‘내가 하는 이 선행으로 인해서
나를 좀 괴롭히지 말아라’
셰익스피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선한 것 속에 악이 있고 악한 것 속에 선이 있다’
우리 행위를 주님만 다 보실 수 있거든요
주님이 보실 때 우리가 선하다고 하는 것 가운데도
우리의 욕심과 야망과 순수하지 않은 동기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누구만 아느냐?
주님만 아시는데 그 주님이 우릴 찾아오셔서
그것까지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깊이 회개하면 마지막으로 주님이 빼주시는 것이
‘자기 의’입니다
◑문제에 빠지지 말고 그 너머 하나님을 바라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시고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주십니다! *제목
▲다 ‘고통의 십자가’가 있다
혹시 ‘내게는 십자가가 없다’는 분이 계십니까?
나는 십자가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한 부류는 치매에 걸린 사람입니다
치매환자는 가장 행복한 기억만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치매에 걸린 사람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문제의 십자가가 없다’고 말하는
두 번째 부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죽어버린 사람, 자아의 완전한 죽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 땅에 문제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고 그 나머지는 다
문제의/고통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정상인 사람에게는 다 문제가 있고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이 한 가지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여러분께 다 소원(문제 해결)이 있으실 텐데
▲십자가를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여러분이 주님을 백퍼센트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는
불신의 열매로 여러분의 문제(의 십자가)가 있고
걱정이 있고, 여러분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 때문에 걱정이 많다..
그 자녀를 주님께 의탁하지 않고
내 자녀니까 내가 변화시키기 위해서 애쓰기 때문에
자녀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눈물을 쏟고 있습니다.
자녀 일을 내 자녀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 자녀를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지 않기 때문에
내 불신으로 인해서 ‘자녀의 십자가’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는 돈이 없어서 진짜 어렵다’
돈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면, 돈이 있거나 없거나 행복하고 감사하고
돈이 없는 것이 내가 주님을 따라가기에 더 쉽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데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골머리를 썩는 것입니다.
건강이 내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건강 때문에 걱정한다면
내 건강이 누구의 건강입니까?
주님이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신데
주님이 나를 살려주시든지, 데려가시든지
주님께서 내게 최선으로 베푸실텐데
건강이 내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건강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내 목숨과 뜻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땅에 두려움과 문제와 근심과 십자가는
내가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이 땅에서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 분이 내 두려움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신 분이시고
그 분이 내 인생에 주권자이시기에
내가 두려움 때문에, 내가 문제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시기 원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가면서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갔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하면서 갔습니까?
억지로, 죽어도 안 가고 싶었는데
끌고가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할 수 없이 갔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바벨론에 포로로 계속 있지 말게 해 주소서
하나님, 우리를 보호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바벨론을 쳐서 이기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상황과 바벨론 같은 문제 위에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모든 소동과 문제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문제 너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어요. 그 문제만 바라보았어요
꼭 우리가 하는 행태와 똑같습니다.
우리가 건강이 나쁘면 ‘하나님, 건강을 해결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는 돈이 없습니다 돈을 벌게 해 주소서’
‘하나님 저는 이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더 주시옵소서’
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 뒤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그 문제를 허락하시면서
그 문제에 갇히지 말고, 그 문제에 빠져서
그 문제의 바다속에 빠져죽지 말고
그 문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제가 문제입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라고 우리가 기도하기를, 하나님을 기다리시는데
우리는 그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그럽니다.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새벽에도 나와서 기도하고
철야기도 나와서 기도하고
계속 나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열심히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시겠습니까.
‘제발 정신을 차려서
그 문제 속에 빠지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나를 바라보라’ 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시편기자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제가 이번에 갑상선 암을 통과하면서
제일 큰 유혹은
‘제 설움에 울고 싶은 유혹’이었습니다.
제 설움에 북받쳐 스스로 울고 싶은 유혹!
이것이 자기 연민입니다.
자기 설움에 우는 것이 죄입니까, 아닙니까?
자기 설움에 우는 것,
‘내 팔자야, 내 팔자야! 내 팔자가 왜 이러냐?’
하며 자기 설움에 우는 것이, 여러분은 죄가 아니라고 그러셨는데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냐면
자기 설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었습니까, 안 울었습니까?
우리가 애굽에서는 고기도 실컷 먹었고, 부추, 외도 실컷 먹었는데
여기는 외도, 고기도.. 아무 것도 없다고 울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너희가 우리를 여기 광야로 데리고 와서
우리를 이렇게 못 먹게 한다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자기 설움에 우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 유혹이 많이 찾아왔는데
그래서 제 설움에 울고 싶었어요.
자기 연민으로 제가 울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제가 의식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파서 죽겠는데 계속 외쳤습니다.
토가 막 나오려하고, 현기증 나고
허리도 아프고, 배도 아픈데
그래서 너무 아파서 울고 싶은데
울지 않기 위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수 백 번, 수 천 수만 번 감사를 고백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이 유혹을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제 집사람이 7년 동안 암투병을 했는데
한 번도 자기 설움에, 자기가 암으로
그렇게 말기암 통증으로
마치 생살을 칼로 자르는 것처럼 아프다고 얘기했는데
그 아픔을 겪으면서도
자기 설움으로 우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자기 설움의 바다에 빠져서 울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주님께로 갔던 아내 허운석 선교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도록 우리 시선을 그 분께 고정시켜 주십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이 십자가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십자가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활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을 것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십자가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도록 우리 시선을 그 분께 고정시켜 주십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참으사’ 히12:2
우리의 문제가 우리 부끄러움입니다.
우리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괴로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너머에 있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문제를 주셔서
십자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마치는 말
새옹지마 얘기로 시작했는데
복이 될지 화가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실은 우리에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소원하고 바라는 것은
나중에 우리에게 화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뒤집어서 보여야 잘 보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면, 우리 가치관은 세상적 가치관이기 때문에
우리의 욕심은 이 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뒤집어서 보면 예수님이 진짜로 보입니다.
♬생명 주께 있네, 소망 주께 있네, 능력 주께 있네♪
이 땅의 돈의 능력.. 얼마 후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 땅의 권력의 능력.. 곧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 땅의 명예의 능력.. 곧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 땅의 아름다운 미의 능력.. 곧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 영원한 능력, 영원한 소망!
주님께 있습니다.
영원한 실재를 따라서 걷는
날마다 진정한 실재를 따라서 걷고, 또 걷고
그것을 붙들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날마다 서는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