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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본 사닥다리

LNCK 2019. 5. 9. 14:04

https://blog.naver.com/karamos/220307020030

 

◈야곱이 본 사닥다리        창28:10~22        2013.12.22.

 

서론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은 800km나 되는 아주 먼 거리입니다.

(밧단아람은, ‘아람의 평야’라는 광범위한 평원 지역이며, 하란은 그 중 한 도시)

 

브엘세바를 떠날 당시 야곱의 나이가 몇 살쯤이었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청년시기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던 시기와 창세기 27장의 눈이 어두워진 이삭의 나이를 고려해 볼 때,

야곱이 최소한 돌베개를 베고 벧엘에서 잠을 잤을 때의 나이는 최소한 77세로 추산됩니다.

(당시 150~180세 살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젊은 중년의 나이라고 볼 수도 있죠)

 

야곱은 이 나이가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끼니때마다 아버지께 드릴 식사 심부름이나 하고,

형이 죽인다고 쫓아다니니 나이 77세에 비참한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밧단아람에서 네 명의 아내와 결혼해 열두 명이 넘는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복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읽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예수여, 저주를 받으시오!”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말은 “내가 저 분의 제자라면 성을 갈겠다”는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즉, 자기를 저주하고(Cursed oneself) 부인했다는 말입니다. 그 저주의 강도도 아주 약했죠.

(우리 말에, '그랬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저주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저주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브엘세바를 떠날 때의 야곱은 청년이 아니라

77세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77세의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밧단아람으로 가다보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벧엘이라는 곳에서 잠을 자고 가야할 형편이 되었고 돌을 하나 주워 베개를 삼고

들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창 28:11).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해당 구절을 다른 구절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신앙의 유비’(Analogy of Faith)라고 합니다.

 

야곱이 사닥다리를 본 것은 호세아 12:4~5절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야곱이 사닥다리를 본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77세에 비로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야곱은 그 이전에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으나

구원을 개인적, 주관적으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구원을 주관적으로 경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과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77세까지 살았습니다마는

그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77년 동안 야곱은 어떻게 하면 남에게 사기를 쳐서 뭔가를 빼앗을까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이름도 ‘찬탈자’라는 의미 아닙니까?

그런데 이 야곱이 벧엘에서 사닥다리를 본 후로 그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 야곱이 겪은 변화는 어떤 것인가?

 

창28:16~22절은 야곱이 겪은 변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내가 이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전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도다!”

 

분명한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이 일어난 것입니다.

야곱은 매일같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은 나하고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5세까지 아브라함과 같이 살았음)

그런데 이제 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보니

야곱이 “내가 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 28:17).

 

야곱이 전에는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속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사기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창 28:18~19).

 

그 성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스럽게 살았는지 성 이름을 ‘고생’이라는 의미의 ‘루스’라고 지었는데,

이것을 야곱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의 ‘벧엘’로 바꾼 것입니다.

 

다음날, 야곱은 일찍 일어나서 베개로 썼던 돌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둥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야곱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예배는 건성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일대일 상황에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진정한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창28:20~21).

 

야곱은 하나님과 얄팍한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지금 77세의 나이에 외삼촌 집에 혼자 가고 있는데,

진실로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채워주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돌 하나뿐이지만 이 돌을 통해 이곳에 성전을 짓겠다는

헌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에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진심으로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구원이란 바로 이렇게 큰 변화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 몇 구절 외우는 것이나

예배당에 와서 기분이 좀 좋아졌다는 식의 감정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 구원 받았다는 것은 영접기도 잠깐 따라했다는 의지적인 활동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던 사람이 진심으로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던 사람이 십일조를 드리고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겪게 된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겪을 수 있으며,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주시는가?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질문인 것입니다.

 

 

◑2. 야곱이 만난 사닥다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야곱은 꿈에 사닥다리를 보고 이런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보았던 사닥다리는 무엇입니까?

그 해답도 역시 ‘신앙의 유비’로 풀어야 합니다.

 

요1:51절은 사닥다리가 무엇인지 푸는 열쇠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창28:12절에는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에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닥다리는 인자(Son of Man)이며, 인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죄의 지배를 받고 사는 인생, 외로운 인생, 77세가 되도록 결혼도 못한 인생,

죄의 결과로 인해 쌍둥이 형에게 쫓겨 다니는 도망자가 된 인생,

안식이 없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사닥다리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이런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닥다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예표하고 있습니까?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로 예표하고 있습니다.

땅에 사는 죄인들과 하늘에 계신 거룩한 하나님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은 절대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닥다리를 통하면 땅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100% 천국에 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사닥다리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죄인들을 연결하시는 유일한 중보자(Mediator)이십니다.

 

이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땅 위에 인성을 입고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성을 입으신 인간일 뿐만 아니라,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있는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인(God-man)이십니다. 인간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사람이지, 하나님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가 신성을 가지고 하늘에 오르신 그 분은

신성과 인성을 한 몸에 지니신 그 분이십니다.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도 얼마나 훌륭합니까? 공자, 맹자, 모하메드, 석가모니 모두 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늘에 닿을 수 없는 짧은 사닥다리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해 주는 중보자일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신성과 인성을 가진 유일한 분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이 사닥다리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저는 이것이 좀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천사들의 운동방향이 오르락내리락이 아니라 내리락오르락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1:51절에도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말 번역의 표현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어 상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사들의 운동방향에 엄청나게 중요한 메시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행하신 속죄사역이 하늘로 올라가면

하나님은 만족하시고, 이 땅의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속죄사역의 순서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답답해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습니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두 가지 일을 하려고 오셨습니다.

첫째는 죄인들의 죗 값을 대신 갚기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오셨습니다.

둘째는 죄인들이 천국에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만한 의가 없기 때문에

그 의를 준비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100% 지키시고, 죄 없는 삶을 사셔서 의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죄인 대신 피 흘려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 용서함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의를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공로가 하늘에 상달되니까 하나님이 ‘만족’(Satisfaction)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택한 백성들을 위한 속죄가 완성되었으니

이제는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존재는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습니다.

다른 존재가 우리에게 복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하늘에 상달되고 하나님의 만족하심으로 우리가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4).

 

아브라함도 복의 근원이 되고 이삭도, 야곱도 복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쾌락, 만족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나를 통해 복을 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77세가 되기까지 “사람들에게 무엇을 빼앗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77세가 지난 지금 야곱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통해 복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의 복이 내려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예표인 것입니다.

 

또 야곱이 본 사닥다리에 담긴 의미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딤전2:5절에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인간의 소망은 정치에 있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힘쓰면 됩니다.

누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맡은 직분에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정치나 경제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 천국 문을 열어주는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다른 답이 없습니다.

 

종교다원론자들은 천국 가는 길이 여러 개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닥다리가 여러 개 있다는 것은 마귀의 소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 이외에 다른 모든 사닥다리는 천국에 닿지 못한 짧은 사닥다리입니다.

하늘에 오르지 못하는 사닥다리입니다. 오직 야곱의 사닥다리만 능력이 있는 사닥다리입니다.

 

 

◑3. 야곱의 사닥다리는 무슨 능력이 있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에 닿는 능력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늘의 꼭대기를 닿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11:4절에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그들은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내려오셔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시키셨습니다.

공연히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고 하다가 언어만 혼란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고생을 하 되었습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00%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데

성공하는 사닥다리입니다. 성공의 사닥다리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성공적인 사닥다리인 것입니다.

 

▲둘째로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도 끄떡없는 사닥다리입니다.

계7:9절에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아무리 큰 무리가 이 사닥다리에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부산에서 목회하는 신학교 동창생 친구 목사님은

성도 이사 가는 것을 도와주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3층에서 사닥다리가 부러져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면서 턱이 다 으스러지고 왼쪽 뇌에서 골수가 흘러 나왔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데, 다행히도 턱이 한 번 걸치고 떨어져서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특별새벽예배에서 모인 헌금으로 치료비를 도와주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사닥다리로는 절대 높은 데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땅에서 삼층천까지 올라가도 끄떡없는 사닥다리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달려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사닥다리인 것입니다.

 

▲셋째로 이 사닥다리는 하늘 문을 여는 능력의 사닥다리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이 사닥다리가 올라가니까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닥다리는 하늘의 복을 내려주는 능력 있는 사닥다리입니다.

야곱이 여기서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습니까?

 

“내가 너에게 땅을 주고 네 자손이 티끌처럼 많아져 동서남북 사방으로 편만하고,

네 자손이 복을 받아 복의 근원이 되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복을 주리라”는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사닥다리는 하늘의 복을 열어 놓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의 자녀 가운데 교회를 나오지 않는 자녀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젊은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 무엇을 하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 자손들도 하늘의 복, 땅의 복을 받으려면 이 사닥다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인간적으로는 탁월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이 그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 26:14).

 

네 인생은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야곱이 본 이 사닥다리를 붙들어야 하늘의 복이 열리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붙들고 10년만 열심히 예수님을 믿어보세요.

복이 옵니다. 20년 동안 열심히 예수님을 믿어보세요. 반드시 대성합니다.

 

결론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하늘의 복이 열리는 것이 바로 야곱의 사닥다리인줄로 믿습니다.

야곱은 이 사닥다리를 보고 믿는 순간 진정한 구원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닥다리를 보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발을 디뎌서 올라가야 합니다.

하늘에 올라갈 때까지 믿고 올라가야 합니다. 땅에서 발을 떼야 합니다.

 

설교를 듣고도 내일, 모레하며 믿지 않는 사람은 사닥다리를 올라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받고 싶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획기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천국의 사닥다리에 발을 올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복은 사닥다리되신 예수님을 통해 옵니다.

사닥다리 바닥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은 올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올라와서 첫 번째 단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계속 올라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