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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치유 히12:15, 딤후4:10 출처
사람은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안경이 있어서 이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처라는 안경을 통해 자신이나 세상을
결코 아름답거나 긍정적으로 볼 수 없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든지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위대한 사도로 불리던 바울도 마음의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갈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고 하였는데
여기서 ‘흔적’(스티그마) 이라는 것은 상처자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의 일생의 사역 가운데 온갖 상처를 다 받았고
그런 것들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마음의 상처까지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바울과 함께 했던 이들이 배신하고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차라리 모르거나 반대하던 사람이라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고 하던 자들이 등을 돌리고
자신을 배신하는 것을 겪었을 때 바울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어쩌면 육신의 상처보다 더 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가 누구보다 많은 은사를 경험하였고
로마를 복음화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그가 상처를 받을 정도라면
저와 여러분들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얼마든지 상처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기억하사기 바랍니다.
만일 이 자리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혹시 나는 마음에 상처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고 한다면 단 한 사람도 손을 들지 않으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이런저런 상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처는 대개 어떤 사람에게서 받게 됩니까?
돌아보면 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오히려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먼 사람이면 별로 개의치 않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와 가깝기 때문에 더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가장 상처를 준 사람들은 형들이었습니다.
야곱에게 가장 상처를 준 사람은 형 에서와 외삼촌 라반이었습니다.
가족은 일단은 서로에게 허물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다보니 본의 아니게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 받게 됩니다.
문제는 서로의 상처로 인해 생겨난 쓴 뿌리로 인해
서로가 쓴 물을 토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를 고생시키시는 아버지에 대해서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어김없이 술을 드시고 오는 날에는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래서 이분은 늘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기만을 간절히 소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자식만 부모에게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무례하게 행하고 성실하지 않음으로
자식 때문에 부모도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또 친한 사람이나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이와 같은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을 보면 마음에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너무나 크고 많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첫째로 이 상처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쓴 뿌리가 나서 마음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모든 환경이 좋아도 이상하게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받은 상처로 인한 쓴 뿌리의 열매입니다.
셋째로 더럽게 됩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더럽게 할 수 있습니다.
포장지는 멋진데 그 포장지를 뜯어보니 쓰레기가 들었다면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 속은 더러운 것을 추구한다면 아직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망령된 삶을 살게 됩니다.
에서와 같이 ‘망령 된 자’ 라는 말은 속되고 더럽다는 뜻입니다.
다섯째로 영적인 것을 소홀하게 합니다.
여섯째로 에서처럼 진정한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일곱째로 하나님께 버림받고 회개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상처가 해결되지 못할 때
얼마나 엄청난 손해가 있게 됩니까?
내 안에 처리되지 못한 상처는
이처럼 자신에게 더 큰 아픔과 또 다른 상처를 반복해서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 상처의 희생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일 아닌데 쉽게 흥분하고 일단 흥분했다 하면
그 속에서 온갖 독한 것들을 토해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상처로 인하여 생긴 쓴 뿌리 때문에 쓴물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쏟아내는 독 때문에 상대방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며
더 큰 문제는 한번 쏟아낸 것은 다시 주어 담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쏟아낸 독한 것들이 다시 자신을
곤란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어떠한 상처든 치유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내가 받은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한 쓴 뿌리가 있을 때
그것이 토해내는 쓴물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갈 때
치유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치유 받기 보다는
회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가정을 멀리합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교회를 멀리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치유가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가정을 깨버리고,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교회를 옮기면 되겠습니까?
안보면 될 것 같지만 안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는 상처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시는데
우리가 그 훈련을 피한다고 훈련이 끝나겠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다가오는 훈련을 피해서 도망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강한 훈련을 시키실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나무 멍에를 부러뜨려버리니까
하나님께서 쇠 멍에를 매어주셨습니다. 렘28:13
치유 받아야지 막나가거나 회피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유년기에 신체적 학대를 받은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70%가 부모에게 받은 학대를 그대로 자녀에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분들은 분명 자기 부모처럼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텐데
왜 반복해서 자신의 부모처럼 똑같이 자녀들을 학대하게 되었을까요?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상처를 치유 받을 때
더욱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 황실 아카데미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피터 구르퍼’는
모든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꿈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사람이 만든
바이올린을 연주해 보기를 원했습니다.
마침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을 빌릴 기회가 생겨서
핀란드에 가서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바이올린을 넘어뜨렸는데
그만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였지만
수소문 끝에 런던에서서 악기를 잘 수리하는 수리공이 있어서
그에게 맡겼더니 놀랍게도 수리 된 후에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큰 찬사를 받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보다 더 유능한 치유자가 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상처가 아무리 깊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앞에 나와서 치유를 받게 될 때
분명 우리는 이전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으시기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을까요?
▲1. 치유자이신 하나님 앞에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누가 나의 상처를 치료하십니까?
출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도 치유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치유하기를 원하시고
내가 주님을 찾기를 기다리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기자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해주실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의 상처를 주님께 넘겨드릴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었던 알렉산더에 대해
딤후4: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라고 하면서
주님께 상대의 처리를 맡긴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에 딤후4:17-18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님이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강건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 주님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신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사람에게 하소연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속상한 것, 억울한 것, 아프고 괴로운 것
다 내어놓으시고 주님의 치유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치유의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2.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 속에 있는 복수심이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될 뿐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통해서
내게 들어오는 쓴 뿌리를 자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상처를 은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 때문에 종살이에 옥살이라는 말로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고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는 자리에서 요셉은
그 상처를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였습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요셉과 같이 우리가 받은 마음의 상처가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기 위한 은혜의 방편이라는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주님의 치유의 역사가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마디로 상처받는 생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자기 백성들로부터 상처받고, 제자들로부터 상처받고,
마지막 하나님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처를 온 몸에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러한 상처를 원망하지 않았고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상처를 홀로 받으신 예수님은
결국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위대한 치유자가 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절대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치유하라는 주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 상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을 가슴에 품고 원망하며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치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질병 가운데서 어려움을 받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것은 나만 왜 그런가하면서 원망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변에서 그런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치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비록 내 과거가 상처로 얼룩졌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자신이 그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어서 치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제 우리 안에 상처가 쓴뿌리가 되지 않도록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상처를 주님께 치유 받드시고
이제는 세상 가운데 진정한 치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때로는
이웃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까?
그 이유는
한가지,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마음 안의 일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나
상처를 받는 사람이나
그 치유는
온전한
사랑으로 만이
치유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온전한 사랑은
그 어떠한 처지에서도 상처를 주지 않으며,
그 어떠한 처지에서도 상처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