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적 영적 침체의 2단계 : 불신 마11:16~17 출처
조엘 비키
‘내 백성이 나를 외면하고 나에게서 돌아서고 있구나.’
세속화로 인해 교회는 불신(unbelief)이라는 마비 상태로 한 단계 더 깊은 영적 침체를 경험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사역하셨던 세대를 행해,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이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함과 같도다”(마 11:16-17)
라고 안타까워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피리를 가지고 결혼식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흥겨운 가락을 연주했습니다.
그 후에 장례식장에 어울리는 애달픈 가락으로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 무엇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대다수 교회의 상태가 아닐까요?
율법에 나타난 애도의 가락이 아무리 강단에서 선포되어도,
얼마나 많은 죄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고 한탄하면서 가슴을 칠까요?
복음에 담겨져 있는 혼인잔치의 흥겨운 가락이 아무리 만방에 울려 퍼져도,
자신의 죄에 대해 가슴을 부여잡고 탄식하는 죄인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된 기쁨을 누릴까요?
이젠 율법도 죄인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두려워 떨게 만드는 힘을 상실했으며,
복음도 영원한 축복을 누리기 위한 열심을
더 이상 성도들에게 호소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어떠한 상태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아, 저는 율법에 둔감하고, 복음에도 마비된 상태에 있습니다.
심지어 지옥에 대한 생각까지도 무감각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태는 아닙니까?
오늘날에는 지옥 형별에 대한 설교조차도 교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관한 설교는 어떠합니까?
인간은 본래부터 천국이나 지옥 어느 쪽도 원치 않았습니다.
언젠가 한 무신론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만 천국과 지옥을 고수하면 된다.
나에겐 단지 발붙이고 살 수 있는 이 세상만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우리가 이런 말을 감히 입밖에 내놓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역시 그러한 태도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불신은 우리를 실제적인 무신론자로 만듭니다.
불신은 우리가 지옥을 지옥으로 인식하고 천국을 천국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할 뿐 아니라,
은혜를 은혜로 , 죄를 죄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성경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불신은 우리를 진리에 대해 무감각한 자로 만듭니다.
우리가 지성을 사용해서 진리를 알 수도 있겠지만, 그 진리가 우리 가슴 속에 뿌리박히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저주 받을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며
우리를 꺼지지 않는 지옥 불 속으로 던져 넣은 것에 불과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분명히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한 쪽이 너무 새까맣게 타 버렸고, 다른 한 쪽은 아직 덜 익은 반죽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 문을 하나님께로 열어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내면적 지식을 소유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감각하고 차가운 이성적 지식만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불신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가 심지어 불행이나 행복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증대됩니다. 완전히 무감각하고 무정한 상태가 바로 불신의 지향하는 최종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