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다루는 방법 창 20:6 출처
아더 핑크
하나님께서 비 택자들을 주관하심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네 가지 감화력 혹은 권능을 저희에게 발휘하심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라이스(Rice)박사가 명백하게 분류한 것을 인용한다.
◑1. 하나님께서 때로는 악인들에게 구속하는 힘을 발휘하셔서
그것으로 저희가 곧 단행하려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으신다.
이에 대한 분명한 예는 그랄의 왕 아비멜렉에게서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그랄지방에 내려갔을 때 그의 아내 때문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서
자기 아내더러 누이라 하라고 지시했다.
사라가 미혼 여자인줄 알고 아비멜렉이 사자를 보내서 그녀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했었다.
이때에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명예를 어떻게 보호하신 것을
다음 말씀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 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창 20:6)
라고 한 말씀이다.
만일 그가 간섭하시지 않았더라면 아비멜렉이 사라에게 범죄 했을 것이나
주님이 그를 제재하셔서 그 마음속에 품은 악한 생각을 구체화시키기를
허락하시지 않았다.
비슷한 경우가 요셉과 그 형제들이 그를 취급함에서도 들어난다.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고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미워해서
저희 맘대로 할 수 있는 줄 알고 “저희가 그를 죽이기로 꾀했다”(창 37:18).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한 계획을 성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먼저 하나님께서 르우벤을 감동시켜서 그를 저희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다음에는 유다로 하여금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서
저희가 그를 애굽으로 데리고 가게 하자고 하게 하셨다.
몇 해 후에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알게 한 대로
하나님께서 저희들로 그렇게 제재하신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요셉이 말하기를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고 했다.
하나님께서 제재하는 힘을 악한 자에게 발휘하신 예가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시켜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한 경우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방임해 두었을 때에 발람이 발락의 청원을 쉽게 수락한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마음에 있는 생각을 제재하신지를
그 자신의 말로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민 23:8,20).
하나님이 제재하시는 힘을 악인 개인에게 뿐 아니라
한 민족 전체에게도 발휘하신다.
여기에 대한 놀라운 실례는 출 34:24의 말씀
즉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해마다 세 번씩 여호와의 명령대로
자기들의 집과 소유를 다 그대로 버려두고 절기를 지키려 예루살렘에 올라와 있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대로 저희의 이방인 이웃들의 탐심에서 나오는 계획과 소원을 제재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짐을 보호하실 것이란 말씀이다.
◑2. 하나님께서 때로는 당신의 주장이 성취되게 하기 위해서
악한 자들에게 저희의 육에 속한 태도의 반대로
그것을 무효케 하는 유순한 세력을 발휘하신다.
위에서 요셉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제재하는 능력을 역사하셨다고 하였으나
이제는 그가 애굽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역시 불의한 자들에게 유순하게 하는
능력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다”고 말한다.
그의 상전이 주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알고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의 총무를 삼았다”(창 39:3,4).
후에 요셉이 억울하게 옥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같이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창 39:21)
전옥이 요셉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고 그를 존경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옥에서 석방된 후에 행 7:10에 보면
“주께서 그 모든 환란에서 건져 내사 애굽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고 한 것을 알게 된다.
바로의 딸이 어린 모세를 돌본데에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모세의 원수들로 실패케 하신 놀라운 증거를 보여 준다.
바로가 명령을 내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장자 아기들은 다 학살하라고 했다.
어떤 레위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석 달 동안 그 어머니가 집에 감추어 두었다.
그 이상 더 숨겨 둘 수 없어서 아기를 바구니에 담아서 강가에 있는 갈밭에 숨겨 두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애굽 공주가 강에 목욕하러 갔다가 아기를 발견하고
히브리인의 남자 아이가 나면 강에 던져 죽이라고 한 아버지의 악한 법령대로 하지 않고
“그녀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겼다”(출 2:6).
그래서 이 어린 생명이 구출되어 후에 이 공주의 양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접근하셔서 당신의 주권적 목적에 따라서
그 마음들을 부드럽게 하신다.
불경건한 에서가 자기 아버지를 속인 동생에게 복수하려고 맹세했으나
다음에 야곱을 만났을 때에 그를 죽이지 않고
“그의 몸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췄다”(창 33:4).
이세벨의 나약하고 악한 남편 아합은 선지자 엘리사의 기도로 삼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에 심히 노해 그를 원수로 여겨 사방으로 그를 잡으려고 찾았으나
그를 찾지 못한 때에 그가 맹세하였다(왕상 18:10).
오히려 저희가 피차 만났을 때에 선지자를 죽이는 대신
아합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20절).
유대인 여자 에스더는 위엄 있는 메대 파사의 왕궁에 들어가는 것이
“규례를 어기는 것”(에 4:16)이라고 말했다.
그때에 그는 죽을 것을 각오했으나 “그가 심히 사랑스러움으로
왕이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에 5:2)라고 했다.
또 청년 다니엘은 외국에 포로가 되었다.
그때에 왕이 그와 그의 동무들에게 매일 먹을 음식을 정해 주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마음에 결심하고 그 지정한 음식을 먹어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하고
자기의 뜻을 환관장인 그의 상전에게 말했다.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상전은 이방인이요 또 왕을 두려워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니엘을 향하여 노하여 그의 명령대로 실시하라고 하였는가.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 1:9).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 21:1).
이것에 대한 놀라운 예가 이방 왕 파사의 고레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포로가 되었으나 그 포로에 대한 예언된 목적에 거의 도달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폐허가 되어 있고 유대인들은 먼 나라에 있었다.
그런 형편 아래서 주의 집을 재건하는 것에 아무 소망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파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파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스 1:1-2).
기억해야 할 것은 고레스는 이방인이요 역사가 증거 하는 대로
그는 매우 악한 왕이었다. 그러나 주님이 그를 감동하셔서
당신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70년이 차기 전에 성취되도록 이 조서를 내리게 하셨다.
스 7:27의 기사에서 같은 예시가 발견되니 이에 의하면 에스라는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고레스가 재건하가고 명령한
그 집의 준공과 미화시키게 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함을 돌린 것이 나타난다.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셨다”(스 7:27).
◑3. 하나님이 때로는 악인들에게 지도하시는 권능을 발휘해서 전화위복이 되게 하심.
적절한 경우로 요셉의 역사에 다시 한 번 돌아가서 살펴보자.
그 형들이 잔인하고 무심한 동기로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
저희는 그를 치워버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장사꾼에게 파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었다.
그들에게는 이 고귀한 소년을 노예로 사는 것은 이익을 보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의 악한 행동 이면에서 비밀히 역사하셔서
그들을 주장하신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로 마침 이스마엘 사람들이 그때에 지나가므로
요셉을 죽이려든 일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더욱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셉을 보내시려고 하던 애굽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있었다.
또 하나님은 저희가 요셉을 살 것을 미리 정해두셨다.
이 사건에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셨고
이것이 다행스러운 우연적 기회 이상의 것이었음은
후에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한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창 45:7)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지도하시는 능력이 악인에게 나타나심에 대한 또 하나의 뚜렷한 예가
사 10:5-7 말씀에 나타나 있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다.
사 10:5-7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여”라고 한 말씀이다.
앗수르 왕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기 위하여 세계적 정복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군략적 야욕과 야망을 지휘하시며 주장하셔서
그로 하여금 당시 적은 이스라엘 나라를 정복하는데 그의 마음을 집중하게 하셨다.
그러한 일이 교만한 왕의 마음에 없었으나 (그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로 어떻게 하셨으므로 그대로 하는 것 외에 별 수가 없었다(삿 7:22).
악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능력을 발휘하신 최고의 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거기 관련된 모든 형편들이다.
일찍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으로 경영하는 섭리로 증거 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사건이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사건들 가운데 그 사건의 세밀한 부분까지
예정하셨다. 우연이 또는 사람의 임의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또 어떻게 당신의 아들이 죽을 것을 작정해 두셨다.
그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목적하신 것의 대부분은
구약 예언을 통하여 알려졌고 이 예언들의 정확하고 말씀하신 대로 성취에 있어서
하나님이 악인들 위에 발휘하신 주관적 능력에 대하여 분명히 증명되고
충분히 지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시지 않은 것이 없고 그가 다 작정하신다.
그가 목적하신 대로 되었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그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배반을 당할 것이 작정되었다면
(시 41:9 참고 마 26:50 비교)그를 판 자는 예수의 제자 유다이다.
그 배반자가 그 무서운 반역적 행위의 삯으로 은 삼십냥을 받을 것으로 작정되었고
대제사장들이 그에게 이 돈을 주었다.
이 반역에서 얻은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손이 유다를 인도하여 그 돈을 대제사장에게로 돌려주었고
또 저희의 뜻을 돌이키게(마 27:7)하셨다.
우리 주님에 대하여 거짓 증거할 사람들을 작정하셨다면(시 35:11)
그대로 그런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주님의 영광은 “때리고 욕하는 것”(사 50:6)이 될 것이라고 작정해 놓으셨다면
그렇게 할 자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구주께서 “죄인으로 간주”될 것으로 작정되었다면 자기도 모르게 빌라도가
다른 두 강도와 함께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 초와 우슬초를 주어서 마시게 하기로 작정되었다면
하나님의 이 작정이 바로 문자 그대로 실시되었다.
무심한 군인들이 그의 옷을 제비 뽑을 것으로 작정되었다면
확실히 저희가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의 뼈가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으로 작정되었다면(출 12:46, 민 9:12)
하나님의 주관하시는 힘으로 로마 군인들로 두 강도의 다리는 꺾게 하되
우리 주님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못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뼈 하나를 군인이나 사귀들이 꺾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이상 더 말할 필요가 있는가?
십자가의 죽으심과 관련하여 성경에 예언된 것 전부가 정확히
또 글자대로 성취된 것은 전능한 힘이 그 날에 된 것은 다 지도하시고
주관하신 것을 변론할 여지가 없음을 나타낸다.
◑4.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또 저희의 눈을 어둡게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신다.”
이것은 성경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전개할 때에
이제 우리는 그 가장 장엄한 장면에 도달하였고 특별히 성경 말씀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 말씀 보다 한 치라도 더 나아감을 하나님이 금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는 은혜를 주시기 바란다.
신비로운 것은 하나님께 속함이 사실이나 성경에 계시된 것들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속해 있음도 역시 사실이다.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시 105:25).
이 말씀은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을 때를 언급한다.
이 늙은 족장과 그 가족을 영접한 바로가 죽은 후에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즉위할 때였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번성하여 애굽 사람들보다 많아졌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저희의 마음을 변케 하여 당신의 백성을 미워하게 하셨다.
애굽인들이 미워한 결과 저희가 하나님의 백성을 잔인하게 구속하고 무자비한
감독아래 두기를 그 백성이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했다.
이에 응답해서 그가 모세를 저희의 지도자로 주어서 구원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택하신 종에게 나타나셔서
애굽 궁중에 가서 많은 이적을 행할 힘을 주시고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가서 사흘 동안
여호와를 경배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게 하셨다.
그러나 모세가 떠나가기 전에 바로에 대하여 모세에게 경고하시기를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출 4:21)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기 위함이라”(롬 9:17)고 성경이 대답한다.
다르게 말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교만하고 권세 있는 왕을 정복시키므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이런 방법을 택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은 임의로 행하시니 당신이 원하시는대로 행하실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서 이스라엘로 나가지 못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 땅에 심한 재앙을 내려서 그가 마지못해 제한적 허락을 하게 했고
애굽 사람들의 처음 난 것들을 죽였고
이스라엘이 실제로 해방된 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애급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더니”(출 14:17-18)라고 하셨다.
이런 사건이 헤스본 왕 시혼에게 생겼으니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그의 땅을 통과해야만 했다.
저희의 역사를 회고할 때에 모세가 그 백성에게 말하기를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의 통과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붙이시려고
그 성품을 완강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음이라”(신 2:30)고 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그렇게 된 것이 다음 말씀에서 증명된다.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바 되었으니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로 모세에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수 11:19-20)
(가나안 족속이 죄가 많아 부패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진멸하려 하였다).
이 장엄한 진리의 계시가 구약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요 12:37-40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니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 매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하나님에게 눈이 멀게 함과
마음을 강퍅케 하심을 당한 자들은 짐짓 빛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증거를 거역한 사람들이었다.
살후 2:11-12의 말씀을 생각해 보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성구는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하신 것을 오히려 기독교인들에게도 하시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유대인들이 그의 증거를 멸시한 나머지
그들의 눈이 어두웠던 것과 꼭 같이 진리를 배격하는 과오를 범한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이 유혹을 당하게 하셔서 저희가 거짓을 믿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시는가?
그가 인류를 다스리는 역사를 하시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가 인간을 어떤 범위와 방편으로 통치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마음으로 당신과 원수가 된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감화시키시는가?
이런 문제들을 성경에 비추어서 대답하려고 시도한 것들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자들에게 살리는, 지휘 하는, 또 보전하시는 능력들을 발휘하신다.
그러나 악인들에게는 그가 구속한 유순한, 지도하시는, 강퍅하게 하는
또 눈이 멀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시되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무한한 지혜와 공의의 지시에 의하여 발휘하신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은 다 그대로 실시된다.
그가 작정하신 것은 다 성취된다.
사람의 악행에는 제한이 있다.
악행과 악인들에 대한 제한은 하나님께서 정했으니 그 한계는 넘어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를지라도 선인과 악인이 다 같이 최고 주권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그 행사에 속해 있고 또 그가 모든 것을 다 다스리신다.